
박근혜 대통령과 김관진 국방부 장관(오른쪽), 최윤희 합참의장(왼쪽).
북한의 안보 위협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당·청이 일사불란하게 보폭을 맞추지 못하고 불협화음을 내자 청와대는 최근 여당 인사들에게 국방안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개인 의견을 말하지 말라며 ‘함구령’을 내렸다고 한다. 새누리당 고위 인사는 “유승민 의원 등이 국회에서 박 정부 국방정책의 문제점을 잇달아 지적한 직후 청와대가 당사자들에게 ‘공개석상에서 당이 정부 국방정책을 비판하는 일을 자제해달라,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전했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유 의원은 10월 11일 최윤희 합참의장 인사청문회와 11월 국정감사 등을 통해 현 정부의 국방예산 증가율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준비에 크게 미흡하고, 전작권 환수 시기 재연기와 관련해 절차상의 하자가 많다고 지적했다. 국방위의 다른 여당 의원들도 박 정부가 2015년 2월로 예정된 전작권 환수 재연기를 미국 측에 요청한 것을 두고 ‘군사주권 포기’라고 질타했다. 특히 유 의원은 전작권 환수 재연기와 관련해 군 통수권자(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제안한 DMZ(비무장지대) 세계평화공원 구상을 “아직 굉장히 황당한 단계에 있다”고도 했다.
“청와대, 강한 불쾌감 표시”
친박계의 ‘미스터 쓴소리’로 통하는 유 의원에게 박 정부 국방정책의 문제점을 자세히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그는 정중히 고사했다. 유 의원은 “지금은 국방위 공식 회의 자리에서 언급한 이상의 말을 하기가 좀 그렇다”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발언 자제를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청와대가 여당 의원들의 입단속에 나섰지만 박 정부의 초기 국방정책에 대해선 여권 내에 여전히 불만이 팽배해 있다. 특히 국회에서 국방정책 입안을 주도하는 유 의원이 문제 삼은 국방예산 증가율의 하락, 전작권 환수 재연기, DMZ 세계평화공원 구상 등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국방예산의 경우 진보정권인 노무현 정부 때의 평균 증가율이 8.8%였지만 이명박 정부에선 5.3% 증가에 그쳤고, 박 정부 들어 처음 국회에 제출된 내년도 예산안에는 올해 본예산 대비 4.2% 늘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엔 미국과 전작권 환수를 합의하는 과정에서 국방예산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이명박 정부와 현 정부에선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면서 결과적으로 보수정권의 국방예산 증가율이 진보정권 때보다 크게 떨어졌다.
전작권 환수 재연기는 박 정부 출범 직후 내부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미국 측에 이를 요청한 사안이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10월 8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2015년 12월 전작권 전환은 적절치 않다. 이미 지난 5월 초 국방부가 청와대에 전작권 전환 연기를 건의했으며 대통령이 동의했다”고 밝혔다.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은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내년 사업예산 402억 원이 편성돼 있다. 2014~2016년 3년 동안 약 2500억 원을 투입해서 조성할 세계평화공원은 면적이 1㎢ 정도에 불과하다. DMZ의 총면적이 570㎢인데, 그 안에 1㎢짜리 공원을 조성하는 데 이처럼 막대한 예산을 쓰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국방정책에 비판적인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런 대목에 주목한다. 특히 전작권 환수 재연기가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면 그 사유를 국민에게 소상하게 설명해야지, 마냥 북한의 도발 위협 때문이라고만 둘러대는 건 당당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DMZ 세계평화공원 구상은 현실을 외면한 장밋빛 청사진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다만 지적받는 문제 가운데 상당수가 이전 정부부터 추진된 것이고,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현 시점에 벌써 국방정책의 공과(功過)를 평가하기는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국민 설득하는 절차 생략”
새누리당 길정우 의원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외교안보, 남북관계 공약 작성을 주도했다. 박 정부 대북정책의 핵심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도 참여했다. 그는 11월 14일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전작권 환수 시기의 재연기가 불가피하다면 왜 그런지를 국민에게 설명하는 절차가 필요한데, 그런 절차가 생략되고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다음은 길 의원과의 일문일답이다.
▼ 현 정부가 전작권 환수 시기를 다시 연기한 데 대해 비판이 많다.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 대통령이 사과할 사안까지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지금 시점에 연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선 소상한 설명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더 중요한 건 과연 우리 군이 전작권을 환수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느냐는 부분이라고 본다. 자주국방을 완수하는 데 드는 돈이 어디 한두 푼인가. 환수 문제를 공론화할 때부터 군 당국자들은 예정된 시간 안에는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을 거다. 미군이 빠진 전력 공백을 메울 정도의 예산 투입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미동맹에 의존하다 보니 우리 군 스스로 전작권 환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