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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油價) 혁명? 국민 사기극?

“20% 싸게 팔겠다”…‘국민석유’ 논란

  • 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유가(油價) 혁명? 국민 사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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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싸게 들여와 싸게 팔겠다’ 선언적 계획뿐
  • ● “마진 포기해도 그 가격엔 공급 불가능”
  • ● 구매, 운송, 저장 등 주요 계약 미체결 상태
유가(油價) 혁명? 국민 사기극?

6월 21일 이태복 대표가 국민석유주식회사 설립을 발표하고 있다.

의식주를 제외하고 가계지출 항목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유류비다. 자동차 한 대를 굴리려면 적게는 월 몇 만 원에서 많게는 몇 십만 원까지 든다. 기름값이 한 푼이라도 싼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려는 알뜰 소비자들의 요구가 커지자 이명박 정부는 유가(油價)정보 공개 사이트 ‘오피넷’을 열었다. 주유소 간 가격 경쟁을 유도해 기름값을 낮추려고 ‘알뜰주유소’도 도입했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기름값을 20% 낮추겠다는 회사가 나타났다.‘경제민주화 1호 기업’을 자칭하는 국민석유주식회사다. 국민석유는 값싼 착한 기름을 공급하겠다며 10월 18일~11월 15일 국민을 대상으로 1000억 원 규모의 주식 공모를 실시했다.

1장짜리 사업계획서

정유업계는 국민석유 때문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경쟁사가 출현해서가 아니다. 국민에게 값싼 기름에 대한 환상만 심어줄까 우려하는 것. 정유업계 한 인사는 “준비도, 실행계획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값싼 기름을 공급하겠다는 약속은 터무니없다. 그렇다고 그런 얘기를 입 밖에 꺼냈다간 ‘독과점 재벌이 가격 경쟁을 방해한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아 함구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국민석유 공모가 국민 사기극으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한 전직 관료는 “값싼 기름을 공급하겠다는데 혹하지 않을 국민이 있겠나. 문제는 과연 현실적으로 값싼 기름이 공급될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국민석유의 사업계획에 따르면, 단기적으로는 싱가포르 국제 현물가 대비 18~20% 낮은 가격으로 휘발유, 경유 등의 석유제품군을 수입해 소비자에게 리터당 200원 저렴하게 공급하겠다는 것. 이 같은 단기 사업이 성공하면 중기에는 저렴한 벙커C유 등을 도입, 혼합정제(블렌딩) 과정을 거쳐 한국 품질기준에 적합한 휘발유와 경유를 생산함으로써 리터당 300원 싸게 공급하겠다고 한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시베리아, 캐나다 등 세계 각지의 저유황 완제품과 원유를 수입하고 △국내 중소기업의 촉매제와 정제시설 국산화를 통해 정유사업에 진출하며 △이를 통해 리터당 400원 저렴한 기름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석유가 밝힌 사업계획 내용은 이것이 전부다. 전자공시시스템 투자설명서의 사업계획도 마찬가지다. 단지 ‘기름을 값싸게 들여와 싸게 공급하겠다’는 선언적 내용만으로 사업계획을 채운 것이다. 투자설명서와 사업계획서엔 구체적으로 어떻게 값싼 기름을 공급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이 빠져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들은 ‘20% 싼 기름 공급’은 비현실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유업계 종사자는 “원유 도입에서부터 정제, 운송 과정을 거쳐 소비자에게 공급되기까지의 원가를 따져보면 리터당 10, 20원 낮추는 것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석유제품시장 유통구조개선 및 경쟁촉진대책’의 일환으로 알뜰주유소를 확대해 전국 주유소 리터당 평균가격보다 30~50원 인하해 판매하고 있다. 만약 국민석유의 주장대로 리터당 200원 싼 가격에 기름 공급이 가능하다면 정부와 정유사들이 저렴한 기름 공급을 외면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유가 공개 사이트 오피넷 데이터를 통해 기름값 결정 과정을 살펴보자. 올 9월 기준으로 정유사가 공급하는 휘발유 1리터의 세전 공장도 가격은 885.35원이다. 같은 시점 국제 원유가는 리터당 737.80원. 정유사는 이 가격에 원유를 사서, 유조선에 실어 국내로 수송하고, 통관하면서 관세와 수입부과금을 내고, 정유공장에 원유를 보내 정제하고, 정제한 휘발유를 저유소에 수송하기까지 리터당 147.55원의 마진을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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