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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신문 15개 읽는 ‘활자중독’ 신동아 정치기사 ‘광팬’

세계무대 데뷔 10년, 팝페라 테너 임형주

  • 김유림 기자 | rim@donga.com

신문 15개 읽는 ‘활자중독’ 신동아 정치기사 ‘광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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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것 혐오”

신문 15개 읽는 ‘활자중독’ 신동아 정치기사 ‘광팬’

2003년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임형주.



2003년은 임형주에게 이래저래 잊을 수 없는 해다. 그해 대통령 취임식에서 애국가를 불렀을 뿐 아니라 6월 미국 카네기홀에선 남자 성악가 중 최연소로 데뷔 독창회를 열었다. 첫 세계 데뷔 공연은 성공적이었고 해외 진출의 발판이 됐다. 그해 초 낸 음반 ‘샐리 가든’은 45만 장이 나갔는데 이 중 8만 장은 해외에서 팔렸다. 프랑스 살 가보, 오스트리아 미라벨궁전,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 등 전 세계 음악인들이 동경하는 무대를 모두 섭렵한 그를 여전히 우리는 ‘애국가 소년’으로 기억한다.

▼ ‘애국가 소년’이라는 꼬리표, 이젠 지겹지 않아요?

“전혀 싫지 않아요. 영광스럽죠. 국가를 대표하는 애국가가 제 대표곡이라는 게.”



▼ 그래도 좀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

“한때는 국가 행사의 애국가 독창 제의가 들어오면 거절한 적도 있어요. ‘애국가 소년’ 꼬리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요. 하지만 지금은 다 기쁜 마음으로 해요. 2013년에도 한국전쟁 유엔군 참전 및 정전 60주년 기념식 등 여러 차례 무대에 섰어요.”

▼ 2009년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곡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불렀어요. 취임식 인연이 길었나봐요.

“그분에겐 최고의 순간이었을 취임식에 제가 함께했으니 떠나실 때도 제가 위로해드리고 싶었어요.”

▼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 때문에 ‘좌파’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했어요. 2012년 전국투어콘서트에서는 한 관객이 ‘빨갱이’라고 소리를 치기도 했고.

“취임식에서 노래할 때 열일곱이었어요. 당연히 ‘노사모’도 아니고 투표권도 없었어요. 대통령직인수위의 초청을 받아 영광스럽게, 즐겁게 가서 노래했을 뿐이에요. 그 후로도 노 전 대통령을 국가 행사에서 몇 번 뵀지만, 다 공적인 자리여서 대화를 거의 못해봤어요. 그냥 저를 한국에, 그리고 세계에 알리게 도와주신 고마운 분이죠. 저는 이명박 대통령 때도 국가행사에 자주 참석하면서 김윤옥 여사님과 가까웠어요. 저는 극단적인 걸 정말 혐오해요. 저더러 가장 위대한 대통령 2명 꼽으라고 하면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꼽겠어요. 한 분은 경제를 부흥시키고 또 한 분은 민주주의의 기틀을 만드셨잖아요.”

▼ 뜻밖이네요.

“제 또래 친구들이 대통령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고 희화화하는데,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대통령은 국민 대다수가 선택한 나라의 대표잖아요. 대통령들은 저마다 강한 기운이 있는 것 같아요. 확실히 나라의 대표가 되려면 천운(天運)을 받아야 하나봐요. 특히 이 전 대통령 뵐 때마다 정말 안타까웠어요. 제가 해외에서 많이 생활하다보니 실감하는 건데, 이 전 대통령 때 정말 한국의 대외적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거든요.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는 그 효과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 지난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독창회에 프랑스를 공식 방문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찾았죠.

“네, 참 감사한 일이죠. 박 대통령은 누구를 만나도 늘 먼저 고개 숙여 인사하고 웃으시는데, 그 미소의 힘이 대단해요. 앞으로도 해외 순방을 많이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 의의를 폄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상의 해외 순방을 통해 국가 이미지가 개선되고 양국 교류가 활발해지는 경향이 분명 있거든요.”

“정치부 기자 됐을 것”

‘스물여덟 예술가’라는 ‘스펙’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는 정치 이야기를 즐겼다. 그 힘은 바로 신문이다. 자신이 ‘활자중독증’ 환자라고 했다. 매일 15종의 신문을 구독하고, 해외에 있을 때는 현지 신문까지 챙겨 본다. ‘신동아’도 7년째 구독하고 있다. 빈말이 아닌 것이, 그는 2011년 한국신문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신문읽기 스타’에 올랐고 2010년엔 동아일보 역대 최연소 칼럼니스트로 등용됐다. 스스로 “음악가가 되지 않았다면 사회부나 정치부 기자가 됐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 그와 신문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마치 다른 언론사 기자와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각 신문의 특징을 명확하게 꿰뚫고 있었고 ‘나와바리’(취재구역) ‘1단’ ‘단독’ ‘5판’ 같은 언론계 ‘전문용어’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 2010년 25세 나이로 동아일보 칼럼니스트가 됐죠.

“처음 제의가 왔을 때 정말 신기했고 기뻤죠. 내가 쓴 칼럼으로 누군가가 논술공부를 한다니…. 제가 죽은 뒤에도 제 글은 동아일보 역사에 남는 거잖아요. 게다가 2010년 동아일보 창간 90주년을 함께한다는 건 정말 영광이었죠. 지금도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로부터 ‘이 양반은 노래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글도 잘 쓰더라’라는 말을 들으면 ‘노래 잘 부른다’는 얘기보다 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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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림 기자 |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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