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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치의 달인

새 배우자, 자식보다 더 이기적 처신하라

재혼의 정치학

  • 이종훈 |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새 배우자, 자식보다 더 이기적 처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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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엔 이혼도 많이 하고 재혼도 많이 한다. 재혼은 초혼만큼이나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결혼식을 할 것인지 등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 잘못 판단하면 본인의 삶, 새 배우자와의 관계, 사회생활, 자녀관계, 노후가 다 꼬인다.
새 배우자, 자식보다 더 이기적 처신하라
1990년대 후반 러시아에 가보니 재혼, 삼혼이 흔했다. 그곳 노인은 “비교적 최근 현상”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유교문화의 뿌리가 깊어 러시아처럼 변하려면 꽤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빨리 그런 시대로 접어드는 듯하다.

러시아 닮아가는 한국

최근 이혼이 늘어나면서 재혼도 동반 증가세다. 2014년 전체 혼인 30만5500건 중 21.6%인 6만6000여 건은 커플 가운데 1명이 재혼인 경우다. 결혼하는 부부 5쌍 중 1명이 재혼이라는 뜻이다. 평균 재혼연령은 남성 47.1세, 여성 43.0세. 평균 이혼연령은 남성 46.5세, 여성 42.8세다. 재혼하는 이들은 대체로 이혼 1년 이내에 재혼한다고 볼 수 있다.

결혼 실패의 낙인

재혼이 이처럼 흔해지긴 했지만, 재혼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초혼보다 주변의 시선을 더 의식해야 한다. 사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한 차례 결혼에 실패했다는 낙인이 알게 모르게 생기기도 한다. 실패의 상처를 극복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두 번째 결혼은 성공해야 한다는 사명의식도 갖게 된다. 당연히 신중해지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을 되돌리고픈 욕망

그러나 이혼과 재혼이 늘면서 이런 고정관념도 차츰 변하고 있다. 이혼은 실패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된다. 실패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또는 제2의 인생을 살아보려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엔 시간을 되돌려 사랑을 만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누구나 삶을 다시 살아보고픈 욕구가 있다. 이 사람 말고 다른 사람과 산다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결혼생활이 불행한 이에게 이혼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다. 재혼 역시 마찬가지다.

교황의 한마디

이런 인식이 보편화하면 아마 재혼은 물론 삼혼과 사혼, 그 이상도 흔해질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재혼을 비정상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재혼한 사람에게는 영성체를 인정하지 않고 대모와 대부가 될 수도 없었던 천주교다. 그런데 재혼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종교가 사회적 변화를 수용하는 양상이다.

살아보고 결정하겠다?

이혼과 재혼에 대한 인식은 변하고 있지만, 아직은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보니 많은 재혼 커플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실혼(동거) 상태로 지낸다. 2010년부터 5년간 선고된 사실혼 부당파기 소송 141건 가운데 45.4%인 64건이 재혼이다.

재혼 커플이 법률혼보다 사실혼을 선호하는 데에는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있다. 초혼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심 아래, 일단 살아보고 법률혼으로 갈지 말지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살아보고 ‘아니다’ 싶으면 헤어지기가 용이하기도 하다. 최근 초혼에서도 ‘동거 후 결혼’이 늘어나는 추세다. 재혼에선 이것이 대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헤어지고 난 뒤 결혼한 것이 아니라 연애만 한 것이라고 우길 수 있는 장점(?)까지 겸비했다.

연애 따로, 재혼 따로

재혼 전략에서 이러한 ‘선 사실혼, 후 법률혼’은 권장할 만한 대안이다. 다만 소속감이 약하다는 단점은 남는다. 밀고 당기는 연애감정의 긴장도를 유지할 수는 있겠으나, 재혼으로 얻고자 하는 안정감을 확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2015년 6월 한 재혼정보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일상생활 중 재혼 욕구가 가장 강하게 느껴질 때는 ‘남은 인생을 생각할 때’ ‘정서적 불안감을 느낄 때’ ‘생활이 힘들 때’다. 특히 여성은 아무래도 남성의 ‘노후 고정 수입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남은 일생 동안 정신적 · 질적 안정을 보장받으려는 욕구가 재혼으로 이끈다고 할 수 있다. 재혼에서도 역시 ‘조건’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연애 따로, 결혼 따로’는 초혼보다는 재혼에 더 잘 어울리는 표현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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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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