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호

코미디의 몰락? 한국인 유머감각 변했다

‘개그콘서트’도 시청률 곤두박질

  • 정해윤 | 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입력2015-08-21 1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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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 ‘개그콘서트’의 8월 2일 시청률은 10.2%. 한 자릿수 시청률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공중파 TV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은 ‘개그콘서트’와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 둘뿐이다. MBC에선 폐지됐다. ‘코미디의 몰락’이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코미디의 몰락? 한국인 유머감각 변했다
    ‘개그콘서트’(개콘)와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은 방청객 앞에서 연기하는 공개 코미디라는 점에서 스튜디오 코미디와 구분된다. 노장층이 요즘 코미디를 알아듣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공개 코미디의 특성인 빠른 호흡을 못 따라가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공개 코미디는 1999년 시작됐다. 젊은 개그맨들에게 ‘대모’ 대접을 받는 김미화가 KBS 임원들을 설득해 대학로 스타일의 개콘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방청객의 웃음을 즉각 확인할 수 있는 방식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2000년대 전성기 시절 개콘은 모든 예능 프로그램을 합쳐 시청률 1위에 오른 효자 프로그램이었다.

    “아이고, 의미 없다”

    이런 성공은 타 방송사를 자극해 SBS도 2003년 동일한 형식의 웃찾사를 시작했다. MBC도 공개 코미디 형식을 여러 번 시도했다. 요즘 방송에서 맹렬히 활동하는 젊은 개그맨 상당수가 개콘과 웃찾사 출신이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공개 코미디의 하락세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웃찾사는 2010년 폐지됐다가 2013년 부활했다. 개콘도 전성기 때 30%대에 달하던 시청률이 거의 3분의 1토막 났다. 올 봄 개편에서 두 프로그램은 강도 높은 쇄신으로 영광의 회복을 시도했다.



    웃찾사는 개콘과 같은 시간대로 옮겨 정면승부를 걸었다. 개콘도 PD를 교체하고 새로운 코너를 마련했다. 시청률에선 간신히 두 자리 숫자를 유지한 개콘의 승리. 그러나 “아이고, 의미 없다”라는 유행어가 절로 나온다. 위기론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다. 새로운 스타도 없고, 화제만발 코너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코미디 프로그램의 인기가 하락했다고 웃음에 대한 국민적 수요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코미디 이외 장르에서 웃음을 소비하게 된 것이 주된 이유라 할 수 있다. 이는 고대 그리스 시대 ‘학문의 왕’이던 철학이 이후 각 개별 학문에 영지를 내주고 쇠락한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한국 코미디 역사는 서영춘, 구봉서, 배삼룡, 송해 같은 유랑극단 출신이 브라운관에 등장한 데서 시작한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를 풍미한 대표적 프로그램이 ‘웃으면 복이 와요’다.

    1980년대 코미디계에 큰 변화가 닥쳤다.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원로 코미디언들이 방송가를 떠난 것이다. 당시 최고권력자를 닮았다는 이유로 방송출연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개그맨’이라는 새로운 희극인 집단이 방송사 공채를 통해 본격 등장한다.

    우리 코미디계에는 배삼룡, 이주일로부터 이어지는 ‘바보 캐릭터’ 계보가 있다. 이들은 표현의 자유가 제약받던 시절 슬랩스틱 코미디를 통해 웃음을 줬다. 식자층으로부터 저질이라고 손가락질 받았지만 그들이 활동할 때는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국민 코미디언의 시대였다.

    바보 캐릭터 → 언어유희

    그런데 개그맨 등장 이후 ‘언어유희’가 바보 캐릭터를 대체했다. 이들은 ‘영 일레븐’ ‘젊음의 행진’ 같은 젊은이들 대상 프로그램에서 스탠딩 코미디를 했다. 이때부터 세대 간에 웃음의 분화현상이 나타났다.

    1988년 6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우리 코미디는 또 다른 단계로 접어든다. 그동안 금기시되던 정치풍자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1노3김 성대모사가 주특기인 최병서와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코너를 진행한 김형곤은 정치풍자를 대표할 만한 인물이다.

    토크쇼 성격의 코미디도 이때 시작됐다. 1988년 올림픽을 치른 후 우리 국민의 정서는 급격히 세계화했다. 토크쇼는 미국에서 발달한 장르로, 우리나라엔 접목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1989년 최초의 토크쇼인 ‘자니윤쇼’가 시작된다. 자니윤은 느끼한 ‘버터 발음’에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섹드립’(야한 농담)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초기에 코미디언들이 주도한 ‘일요일 일요일밤에’ 같은 버라이어티 쇼는 결국 코미디언들에게 자충수가 됐다. 이 프로그램은 김흥국, 조형기, 노사연 같은 비희극인들을 주연으로 만들었다.

    ‘일밤’의 히트 코너인 ‘몰래카메라’ 역시 비희극인들을 웃음의 주연으로 만들었다. 근엄한 연예인들이 조작된 방송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일 때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때부터 한국인들의 웃음 코드는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가 닥쳐오면서 ‘공익적이고 따뜻한 웃음’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이경규의 ‘양심냉장고’, 신동엽의 ‘신장개업’, ‘러브하우스’ 등이 이런 요구에 부응했다. 단순히 웃기기만 하면 되던 시대에서 웃음과 감동을 함께 줘야 하는 고난도 코미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코미디의 몰락? 한국인 유머감각 변했다


    웃음의 보편화

    1990년대에는 시트콤도 정착했다. ‘남자셋, 여자셋’을 시작으로 ‘순풍산부인과’ ‘세 친구’ ‘논스톱’이 큰 인기를 끌었다. 시트콤은 ‘시츄에이션 코미디’의 약자로, 장르상 코미디에 해당되지만 코미디언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간혹 등장하더라도 조연에 머물렀다. 여러 명의 작가가 공동집필하는 이런 방식은 코미디언 없이도 웃기는 시스템을 고착화했다.

    현재 코미디를 포함한 예능계에선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김구라 같은 개그맨 출신 MC들이 전성기를 구가한다. 이들 가운데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은 신동엽 정도다. 나머지는 토크쇼, 버라이어티쇼의 진행자 역할을 맡는다.

    방송에서 ‘예능’이란 보도, 드라마, 교양을 제외한 웃고 떠드는 모든 프로그램을 일컫는 모호한 개념이다. 예능의 영향력은 대선주자들이 출연해 ‘신고식’을 할 만큼 막강해졌다.

    언뜻 보기에 코미디와 예능은 비슷해 보이지만 두 장르의 속성은 다르다. MBC와 KBS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은 ‘무한도전’과 ‘1박2일’이다. 정형돈과 이수근은 개콘에서 스타덤에 오른 실력파 개그맨이지만 무한도전과 1박2일에선 한동안 자리를 잡지 못했다. 반면 노홍철이나 김나영은 별다른 전문성 없이도 예능 프로에 폭넓게 출연한다.

    예능의 전성시대는 웃음의 보편화를 의미한다. 과거 서태지가 활동하던 시대만 해도 연예인에게는 신비주의가 유효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너나 할 것 없이 예능에 나가서 망가지기를 자원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웃음에 대한 코드뿐만이 아니라 유명인에게 기대하는 모습도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아이돌 가수 중에는 ‘비주얼 담당’과 ‘예능 담당’이 따로 있다. 무한도전의 새로운 멤버 광희는 대표적 예능 담당이다. 그의 소속팀 ‘제국의 아이들’에는 ‘미생’의 주연 임시완이나 ‘상류사회’의 주인공 박형준 같은 잘생긴 멤버들이 있다. 반면 광희는 성형수술 중독남에 수다스러운 캐릭터로 예능 프로를 도맡는다. 슈퍼주니어는 아예 팀원 전원이 ‘예능돌’이라고 불릴 정도로 재미있는 이미지를 강조한다. 이특, 희철, 신동, 은혁 등은 예능인으로서도 경쟁력을 인정받는다.

    한국 사회가 ‘예능 공화국’이 되면서 이제는 일반인의 예능감도 수준급이다. 최근 방송가의 대세가 된 ‘먹방’(먹는 방송)의 배경에는 백종원, 이연복, 최현석 같은 전문 셰프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예능 프로에서 기죽지 않고 순발력 있는 토크로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이들 이른바 ‘셰프테이너’의 등장은 전문성과 예능감을 함께 갖추는 것이 새로운 성공 공식이라는 점을 입증한다.

    한때 인기를 끌던 정치풍자 코미디가 자리를 못 잡는 이유를 파고들면 코미디언의 자리를 대신하는 정치평론가들이 있다. 2011년 ‘나꼼수’가 인기를 끈 것은 정치적인 메시지보다 재미있게 접근한 방식에 있다. 종편TV에서 발굴해낸 정치만담가들도 비슷하다. 정치인에서 방송인으로 변신한 강용석이나 정치만담가 이봉규 등은 정치 프로그램도 낄낄대며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줬다.

    절제되고 자연스러운

    최근에는 ‘관찰 예능’이 또 다른 웃음코드가 되고 있다. 나영석 PD의 최근 프로그램엔 코미디언도, 개그맨도, 심지어 예능인도 나오지 않는다. ‘꽃보다 할배’는 중량감 있는 원로배우들이 해외여행에서 만들어내는 소소한 에피소드로 웃음을 줬다. ‘삼시세끼’는 이서진, 차승원 같은 배우들이 고립된 산간 마을이나 어촌에서 하루 세끼 밥 해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다. 놀라운 것은 이런 프로그램이 동 시간대 시청률에서 수위를 달린다는 점이다. 이렇게 웃음에 대한 코드가 변하고 전방위로 확산되고 너나 할 것 없이 웃기려 들다보니, 정통 코미디, 코미디 프로그램, 코미디언, 개그맨의 존재감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코미디의 위기는 공중파의 위기’라는 주장도 나온다. 개콘과 웃찾사가 침체에 빠진 시기는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다. 이 무렵 스마트폰과 SNS의 등장으로 젊은 세대가 시청률 집계에서 빠져나갔다. 또 종편TV와 케이블TV가 약진했다. 종편TV와 케이블TV의 기획력은 여기서 히트한 프로를 공중파가 베낄 만큼 향상됐다.

    개콘이 망가진 것은 광고 부담을 과도하게 짊어진 데 따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2009년까지 개콘은 방송시간 80분에 평균 13개 정도의 코너가 방영됐다. 시청률이 오르자 방송시간 115분에 코너가 18개까지 늘었다. 당연히 겹치기 출연이 늘고, 코너의 길이도 길어지고, 웃음의 질도 떨어졌다. 2010년대 들어 공중파의 그 어떤 장르도 예전만큼의 시청률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해외 판권이라는 새 시장이 생겼지만, 국내 광고시장에서 공중파는 더 이상 절대강자가 아니다. 시청률과 광고 압박은 코미디 창작에 필요한 여유를 앗아간다.

    대신 케이블TV의 코미디 프로그램은 비교적 순항한다. tvN의 ‘SNL코리아’와 ‘코미디 빅리그’는 꾸준히 화제를 만들고 있다. ‘SNL코리아’는 섹시 코미디로 인기를 끌고, ‘코미디 빅리그’는 ‘나는 가수다’의 경연 방식을 코미디에 도입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MBC 공채 개그우먼으로 ‘중고 신인’이던 이국주는 김보성 흉내로 ‘으리’ 열풍을 일으키며 스타덤에 올랐다. 친정 MBC에서라면 기대하기 힘든 성공이다.

    국제화와 脫권위

    한국인은, 특히 젊은 층은 유머 감각에서도 미국 등 서구의 그것을 점점 더 폭넓게 수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과거엔 과장된 말이나 극단적인 동작에 낄낄거리며 웃었지만 요즘엔 ‘오버한다’고 여긴다. 대신 간결하고 위트 있는 톡 쏘는 표현에 더 호감을 보인다. 폭발하는 웃음보다 절제된 웃음을 즐기는 것. 또한 작위적 설정보다는 자연스러운 이야기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실제 이야기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마음을 열려고 한다. 연예인 출연 토크쇼가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실제 체험담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엔 여전히 유교적 권위주의가 팽배하지만 젊은 층은 탈(脫)권위를 지향한다. 최근 상대를 윽박지르는 까칠한 캐릭터가 인기를 끈다. 이경규, 박명수, 장동민의 ‘호통 개그’가 그것이다. 이는 젊은 층이 탈권위에서 한발 더 나아가 권위 자체를 웃음의 소재로 전락시키는 점을 반영한 결과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텔레비전에서 대통령과 같은 권력층은 더 활발하게 웃음거리로 활용될지 모른다.

    젊은 층은 고정된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웃고 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곳곳에서 유머를 생활화하려 한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가 이를 가속화했다. 이들은 고정된 개념을 뒤집거나 해체하거나 비트는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해석적 다양성을 즐긴다. 국제화가 더해갈수록 한국인의 유머 감각은 이런 방향으로 더 나아갈지 모른다. 이런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면 코미디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즐길 거리가 넘치는 세상에서 희극인의 고충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웃음을 원하는 인간의 본성은 코미디의 미래를 낙관하게 한다. 어느 시대나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면 새로운 웃음을 원한다. 비록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국민 코미디언이 등장하기는 어렵겠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젊은 희극인은 끊이지 않고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영화 ‘인터스텔라’의 대사처럼, 누군가는 답을 찾아낼 것이다. 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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