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리블랜드 미술관은 1913년 재단이 설립되고 1916년 정식 개관해 100여 년 역사를 가진 곳이다. 다양한 분야에 걸친 4만5000여 점의 소장품은 6000년이 넘는 인류 역사를 아우른다. 특히 훌륭한 아시아 예술품을 많이 소장한 미술관으로 미국 내에서 손꼽힌다. 6억 달러나 되는 수익재산을 보유해 미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미술관이기도 하다. 2012년 확장 공사로 1만8000평의 전시공간을 갖췄다.
클리블랜드 미술관은 미국 최대의 예술 전문 도서관 잉걸스 도서관(Ingalls Libraries)의 본부이기도 하다. 예술 전문 서적 43만 권과 디지털 자료 50만 점을 갖췄다. 도서관은 1913년 미술관 설립 계획이 시작됐을 때 동시에 추진됐다.
철도왕, 발명가, 땅부자…
클리블랜드는 오대호로 통하는 항구도시이고, 수많은 운하와 철도가 내륙으로 뻗어나가는 교통의 요충지다. 덕분에 1796년 처음 마을이 생긴 이후 제조업 중심으로 급속도로 성장했다. 1814년 정식 행정구역이 됐고, 1836년 시(市)로 승격했다. 인근 지역과 합쳐 인구가 300만 명 가까이 되는, 미국에서 14번째로 큰 도시다.
인류 역사상 가장 돈 많은 부자로 기록된 록펠러(John D Rockefeller)가 1870년 그 유명한 석유회사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을 설립한 곳이 이곳, 클리블랜드다. 많은 사람이 스탠더드 오일이 뉴욕에서 시작한 것으로 오해하는데, 1885년에 본사를 뉴욕으로 옮겼을 뿐이다. 록펠러는 소년 시절 클리블랜드에서 조그만 상점의 경리 보조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고, 당시 막 발견된 석유사업 투자에 ‘올인’해 돈으로 성을 쌓았다. 한때 미국 전역 석유 공급의 90%를 록펠러가 장악했다. 이처럼 당시 ‘사통팔달’ 클리블랜드는 사업가들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그래서 이 도시는 많은 부자를 배출했다. 이들은 1800년대 산업혁명기에 철도, 광산, 철강, 석유, 금융 등 새 산업에 뛰어들어 돈을 벌었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문화사업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클리블랜드 미술관도 그 결과물 중 하나다. 1913년 재단을 만들 때 자금을 출연하며 참여한 재벌로는 히만 헐버트(Himan Hulbut·1819~1884), 존 헌팅턴(John Huntington· 1832~1893), 호러스 켈리(Horace Kelley·1819~1890) 등이 있다.
개인 미술관 대신 공공미술관
헐버트는 변호사로 금융업에 진출해 큰돈을 벌었다. 나중에는 철도사업에까지 손을 대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즐겨 수집하던 예술품을 사후에 클리블랜드 미술관에 기증해 이것이 미술관의 초석이 됐다. 발명가 헌팅턴은 석유산업 관련 특허를 많이 따내 거액을 벌었다. 그는 자선사업에 많은 돈을 기부했으며 미술관에도 큰돈을 쾌척했다. 켈리는 클리블랜드 토박이로 할아버지 때부터 유명한 집안이었다. 주로 부동산으로 부를 쌓았다. 예술과 자선사업에 관심이 많았고 해외여행을 즐겼다.
이 재벌들의 기부금은 당시 화폐가치로는 어마어마한 액수인 125만 달러나 됐다. 이 자금으로 웨이드 공원에 아름다운 대리석 건물을 지었다. 웨이드 공원 역시 클리블랜드의 대재벌 제프타 웨이드 1세(Jephta Wade I·1811~1890)가 기증한 10만여 평의 땅에 지어졌다. 웨이드 1세는 전보(telegraph) 통신을 개발한 사람으로 당시 전보는 최첨단 통신수단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