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호

부자와 미술관

오슬로 부두에 정박한 현대미술의 최고봉

아스트룹 피언리 현대미술관

  • 최정표|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입력2017-08-1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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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대가 같은 이름을 쓰는 토마스 피언리 집안에서 만든 피언리 미술관은 외관부터 관람객을 사로잡는다. 우리 시대 최고 건축가 렌조 피아노(Renzo Piano·1937~ )가 설계했다. 안에는 제프 쿤스, 안셀름 키퍼 등 가장 잘나가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미술관은 늘 놀라움을 안겨준다. 관람객은 밖에서 놀랄 때도 있고 안에서 놀랄 때도 있다. 바깥 모습은 전혀 미술관 같지 않은데 안에는 세계적인 명품이 즐비한 곳이 있다. 또 안에 뭐가 있든 상관없이 건물 외관에서부터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하는 미술관도 있다.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부둣가에 자리 잡은 아스트룹 피언리 현대미술관(Astrup Fearnley Museum of Modern Art)은 밖에서부터 관람객을 매료시키는 미술관이다.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건물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s)은 대부분 초현대식 건물이고 우리 시대 최고의 건축가가 설계한다. 따라서 건물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이다. 아스트룹 피언리 미술관은 이 시대 최고의 건축가로 칭송받는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건물이다. 렌조는 일본 간사이 국제공항, 파리 퐁피두센터, 뉴욕타임스빌딩, 뉴욕 첼시의 휘트니미술관 등 수많은 유명 건물을 창조해낸 건축의 마술사다. 세계의 많은 유명 건축이 그의 머리와 손을 거쳐 태어났다.

    이 미술관의 겉모습은 건물이라기보다 하나의 대형 목선이다. 선박을 형상화했다는 작가의 의도가 겉모습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오슬로 항에 예쁘게 몸을 의탁해 있는 뚜껑 덮인 목선이다. 그 모습은 마치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을 연상케 했다.

    렌조는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태어나 밀라노에서 건축대학을 다녔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Pritzker Architectural Prize)을 비롯해 그가 받은 상은 세계적 수준의 것만 쳐도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시사 주간 ‘타임’은 2006년 그를 세계의 100대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했는데, 예술 분야에서는 10대 인물 중 한 명으로 꼽았다. 이탈리아 총리는 2013년 그를 종신 상원의원으로 임명했다. 이탈리아의 명예를 빛낸 최고의 인물이라는 이유에서다.



    렌조 피아노의 건축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스트룹 피언리 미술관에 온 보람을 느낄 수 있다. 미술관은 두 채의 건물로 구성됐는데 두 건물 사이에는 바닷물이 넘실거린다. 작은 다리를 건너 두 건물을 오갈 수 있다. 건물 주위를 걸어 다니는 것만 해도 미술품 이상의 작품 감상이다.

    미술관 정원에서는 조각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오슬로 항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 항구에는 연안 여객선도 들락거리고 대형 크루즈선도 정박해 있다. 부둣가에는 맛있는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여름의 오슬로 항은 밤 12시가 되어도 훤하고 사람들로 붐빈다.

    2020년이면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이 이곳 부둣가로 옮겨 온다. 시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전시실을 통합해 완전히 새로운 국립미술관을 만드는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아스트룹 피언리 미술관은 국립미술관과 더불어 오슬로의 예술 성지가 된다.


    기상천외한 것들의 향연

    아스트룹 피언리 미술관은 컨템퍼러리 미술관이다. 컨템퍼러리 미술관은 ‘우리 시대의 작가들(contemporary artists)’이 자기를 알릴 수 있는 무대이자 활동할 수 있는 운동장이다. 그리고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우리가 보고 느끼고 평가할 수 있는 마당이다.

    예술가들은 자기의 고유 상표를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것은 경쟁이고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승자로 우뚝 서기 위해 인생을 건다. 끝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마침내 뭔가를 만들어낸다. 컨템퍼러리 미술관은 이런 것들을 선보이는 곳이다. 그리고 평가받는 곳이다.

    그래서 컨템퍼러리 미술관에는 기상천외한 것이 많다. 그런 것을 왜 만드는지, 그런 것이 왜 예술인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물건과 행위들이 있다. 이 일에 성공하는 자는 유명 예술가로 등극하지만 그러지 못한 예술가는 고달픈 인생을 살아간다. 성공해 빛을 보는 예술가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예술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고 예술가는 자기 자신과 싸우는 사람이다. 항상 새로운 작품을 내놓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예술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예술가가 얼마나 많은 작품을 내놓았는가. 그리고 이 시대에는 또 얼마나 많은 작가가 활동하고 있는가. 이들이 했고, 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작품을 내놓는 일이 쉬울 리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것은 예술가의 임무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예술가는 창조해야 하고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없었던 무언가를 내놓아야 한다. 이것이 예술가의 운명이다. 그런 고달픈 예술가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곳이 컨템퍼러리 미술관이다.

    성공한 자는 환호를 받는다. 컨템퍼러리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거나 전시되는 작가는 적어도 이 시대에는 환호받는 작가다. 그렇지만 지금만 환호 받는 작가일지도 모른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도 계속해서 환호를 받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래는 누구도 모른다.

    아스트룹 피언리 미술관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작가는 적어도 지금은 성공한 작가들이다.  제프 쿤스(Jeff Koons·1955~), 안셀름 키퍼(Anselm Kiefer·1945~), 리처드 프린스(Richard Prince·1949~), 신디 셔먼(Cindy Sherman·1954~), 매튜 바니(Matthew Barney·1967~), 톰 삭스(Tom Sachs·1966~), 더그 에이컨(Doug Aitken·1968~) 등은 아스트룹 피언리 미술관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대표적 작가들이다. 모두 현재 활동하는 작가 중에서는 나름대로 명성이 자자한 사람들이다.

    미술관은 소장 작품의 일부를 상설 전시하면서 1년에 6~7회 기획전도 개최한다. 아스트룹 피언리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여는 작가도 성공한 작가로 인정받는다. 아스트룹 피언리 미술관이 미술관끼리의 경쟁에서 이미 성공한 미술관으로 대접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스트룹 피언리 미술관은 노르웨이의 동시대 작품을 중시한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알려진 해외 작가들의 동시대 작품도 소장한다. 노르웨이에 국한하지 않고 국제적으로 그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이 미술관은 30여 년 전부터 작품을 수집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작품 선별의 기준과 요건은 변화해 왔다. 시대의 변화와 시대정신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미술관이 다루는 작품은 1960년대 이후 작품이다. 미술관의 주된 관심 영역은 팝아트와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국제적인 동시대 작품이다.



    컬렉션의 기준

    독일의 추상표현주의와 영국의 모더니즘 작품도 다수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미술관은 YBA(Young British Artists·영국의 젊은 작가) 작품에도 관심을 보여 이들의 전시회도 여러 번 개최했고 작품도 구입했다. 지금은 미국의 신세대 작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예술의 중심도 이제 미국으로 옮겨갔음을 의미한다.

    미술관마다 작품 소장의 기준은 각양각색이다. 대부분의 미술관이 시대별, 사조별로 작품을 수집한다. 미술사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하기 위한 목적이다. 큰 미술관일수록, 전통적인 미술관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컨템퍼러리 미술관은 지금 이 시대의 작품에 집중한다. 따라서 시대별이나 사조별로 수집할 이유가 없다. 아스트룹 피언리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아스트룹 피언리 미술관은 개별 작가 중심으로 또 개별 작품 중심으로 수집하고 있다. 유명 컨템퍼러리 작가의 작품을 모두 소장할 필요는 없다. 대신 특정 장르에서 주도적 위치에 있는 작가의 작품에는 관심을 기울인다. 독창성, 창의성, 작품성을 중시한다. 그러다 보면 미술관은 특정 작가에 집중할 수도 있다. 아스트룹 피언리 미술관은 이런 작가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미술관은 미국의 젊은 작가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최근에는 유럽, 브라질, 일본, 중국, 인도 작가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전시회를 많이 기획하고 있다. 미술관은 이들의 핵심 작품에 집중하면서 이들과 노르웨이 작가를 연결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아스트룹 피언리 미술관은 2002년 제프 쿤스의 조각품 ‘마이클 잭슨과 버블스(Michael Jackson and Bubbles)’를 510만 달러에 구입하면서 세계 예술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쿤스는 1988년 이 작품을 3개 만들었는데 이 중 하나가 이 미술관에 들어온 것이다.


    팝 아티스트 제프 쿤스

    마이클 잭슨은 팝의 황제라고 불릴 만큼 팝송의 아이콘이다. 그는 또 침팬지를 아주 좋아했다. 쿤스는 마이클 잭슨의 이런 배경을 절묘하게 활용해 이 조각을 내놓으면서 작가로서의 위치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 작품은 도자기 기법으로 침팬지(버블스)를 안고 있는 잭슨을 만들어 하얀 색과 금색을 입혔다. 지금은 이런 조각 기법이 보편화되고 대량생산도 가능해졌지만 옛날에는 왕이나 귀족들만 향유할 수 있었던 조각 기법이었다. 아스트룹 피언리 미술관은 거금을 들여 이 작품을 사들일 정도로 매우 공격적인 경영을 하기 시작했다.

    쿤스는 그림보다 조각으로 더 잘 알려진 예술가다. 대중적 인기도 매우 높아 그의 작품은 아주 비싼데도 세계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한국에도 여러 점 들어와 있는데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6층에 설치된 ‘신성한 마음(Sacred Heart)’은 한번 감상해볼 만한 작품이다. 작품 가격은 300억 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쿤스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태생이고 뉴욕 시에서 활동하는 미국인 예술가이다. 그는 10대 때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1904~1989)에 매료되어 그가 뉴욕에 왔을 때 다짜고짜 호텔로 찾아가 그를 만난 일화가 유명하다. 달리로부터 많은 용기를 받았다고 그는 술회한 바 있다. 쿤스는 달리를 흉내 내어 연필로 콧수염을 그리고 다니기도 했다.

    앤디 워홀이 그림의 팝 아티스트라고 하면 쿤스는 조각의 팝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조각은 풍선, 개, 보자기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것들을 소재로 하고 있어서 매우 친근감이 간다. 그의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인 ‘풍선 개(Balloon Dog)’는 반짝이는 스테인리스에 색깔을 넣어 풍선 모양을 만들고 이들을 조합해 개 형상을 만든 조각이다. 전 세계 미술관이나 백화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다른 조각들도 소재만 바꾸어 이런 스타일을 응용하고 있다. 그래선지 그의 작품은 특히 아이들이 좋아한다.

    쿤스의 작품은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한쪽 비평가들은 재치가 빛나는 새로운 영역이라고 칭찬하는가 하면, 다른 쪽 비평가들은 아주 저속하고 예술성이 없다고 비난한다. 쿤스는 이들의 비난에 개의치 않으면서 자기 작품에는 아무런 의미가 들어 있지 않고 그냥 보이는 그대로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수요는 많고 가격도 높다. 

    2013년 11월 뉴욕 크리스티에서 그의 작품 ‘풍선 개(Orange)’는 무려 5840만 달러(600억 원)에 팔렸다. 생존 작가의 작품으로는 최고 가격이었다. 이 가격은 독일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그해 5월에 세운 최고가 기록 3710만 달러(400억 원)를 거뜬히 넘어선 것이었다. 쿤스는 현재 최고의 컨템퍼러리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많은 예술가가 그렇듯 그의 사생활은 다소 복잡하다. 대학 시절에 딸을 낳았는데 아기 엄마는 자기가 너무 어리다면서 결혼을 거부하고 아기를 입양시켜 버렸다. 이 딸은 1995년에야 쿤스에게로 돌아왔다. 1991년에는 이탈리아의 포르노 배우와 결혼해서 아들을 얻었지만, 100만 달러를 들이며 10년여를 끈 이혼 소송 끝에 갈라섰다. 그 이후 작업실 조수였던 여자 예술가와 결혼해 여섯 아이를 낳았다. 이제 쿤스는 돈방석에 앉은 작가가 돼 시가 4000만 달러가 넘는 뉴욕의 대저택에서 살고 있다.


    안셀름 키퍼

    아스트룹 피언리 미술관은 안셀름 키퍼의 ‘고위 여사제(The High Priestess/Zweistromland)’도 소장하고 있다. 키퍼는 독일인이지만 1992년부터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키퍼는 역사에서 터부로 여겨온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나치 시대 사건들도 주제로 등장한다.

    ‘고위 여사제’는 두 개의 커다란 책장으로 구성된 하나의 조각 작품이다. 높이는 3.7m이고, 길이는 7.8m이다. 폭은 50cm이다. 책장에는 200권의 책이 얹혀 있다. 책은 모두 납으로 만들어졌고 한 권의 무게가 100kg에서 300kg이니 작품의 크기와 책장의 스케일을 짐작할 수 있다. 각 책은 모두 유일본이고 같은 책은 없다. 책장은 4m 높이의 유리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작품은 1985~89년 작이다. 작품 제목은 영어와 독일어로 두 개가 붙어 있다. 독일어 제목 ‘즈바이스트롬란트’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 있는 지역 명칭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킨 곳이다. 문명의 요람이라는 의미다. 책들은 바빌론 도서관을 뜻한다. 전체적으로 현대 문명의 기원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도서관과 책이 문명의 기원이라는 의미다.

    영어 제목 ‘고위 여사제’는 타로 카드에 나오는 인물인데 지혜를 상징한다. 지식은 책에 들어 있지만 이 작품 속의 책은 사용되지 않는 지식만 보존하고 있다. 창고에 들어앉은 지식이라는 의미다. 책과 도서관에서 현대 문명이 발전했지만 그런 지식도 이제는 무의미하거나 잘못 사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식을 제대로 활용하는 지혜가 그립다는 뜻이다.

    키퍼는 법대를 3학기 다니다가 늦게 예술로 전향했다. 그러나 게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1932~),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1938~)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독일 컨템퍼러리 작가의 선두주자다. 2011년에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의 작품이 360만 달러(40억 원)에 낙찰될 정도로 미술시장에서도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


    해운왕 피언리 가문

    아스트룹 피언리 미술관은 오슬로 시내의 한 오피스 건물에서 초라하게 시작했지만 2012년 새 건물을 지어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명실 공히 최첨단 컨템퍼러리 미술관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그 뒤에는 화가의 후손과 사업가의 후손이 있었다.

    아스트룹 피언리 미술관은 피언리 가문의 후손들이 만들었다. 피언리 가문은 노르웨이의 ‘해운왕’이라고 일컬어지는 토마스 피언리(Thomas Fearnley·1841~1927)와 그 후손을 의미한다. 그런데 해운왕 토마스 피언리의 아버지도 이름이 토마스 피언리(1802~1842)이고, 그 아들도 토마스 피언리(1880~1961)다. 3대가 모두 토마스 피언리인 것이다. 서양에서는 가족이 이렇게 똑같은 이름을 쓰기도 한다. 이들의 조상은 1753년 영국에서 노르웨이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

    해운왕의 아버지인 첫 번째  토마스 피언리는 노르웨이의 유명한 화가였다. 그래서인지 화가 피언리에서 시작해 그 후손들을 ‘피언리 가문’이라 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1대는 화가 토마스 피언리, 2대는 해운왕 토마스 피언리, 3대는 해운 상속자 토마스 피언리다. 

    화가 피언리는 노르웨이 국수주의 낭만파 미술의 리더였다. 노르웨이 회화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요한 다알(Johan Christian Dahl·1788~1857)의 제자이기도 하다. 그는 거상의 아들로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고, 부인은 그 당시 노르웨이에서 가장 큰 은행가의 딸이었다. 아들 피언리는 1869년 해운회사 핀리앤에거(Fearnley&Eger)를 만들어 억만장자가 되었고 노르웨이의 ‘해운왕(shipping magnate)’으로 불리고 있다.

    손자 토마스 피언리는 아버지의 해운 사업을 이어받아 사업을 더욱 번창시켰고 많은 자선사업을 펼쳤다. 그리고 1927년부터 1950년까지 23년 동안 노르웨이 IOC위원을 지냈다. 또 한 명의 손자인 영 피언리(N. O. Young Fearnley·1881~1961)는 독자적인 사업으로 부동산 재벌이 되었다. 영 피언리도 사업 재능을 타고났는지 여러 가지 사업에 손을 대 큰돈을 벌었고 부동산 재벌로 불리고 있다. 이들의 후손들이 1993년 아스트룹 피언리 미술관을 만든 것이다.



    피보다 예술

    미술관에는 토마스 피언리 재단(Thomas Fearnley Foundation)과 아스트룹재단(Heddy and Astrup Foundation)이 돈을 댔다. 피언리 재단은 해운왕 피언리의 아들인 3대 토마스 피언리(1880~1961)가 1939년에 만들었고, 아스트룹 재단은 해운왕 피언리의 외손자 닐스 아스트룹이 만들었다. 두 재단은 아스트룹 피언리 미술관을 만든 뒤 1995년 합병해 새 재단(Thomas Fearnley, Heddy and Nils Astrup Foundation)으로 재탄생했다.
     
    화가의 후손이 재벌이 됐고 그 후손들이 미술관을 만들었지만 아스트룹 피언리 미술관은 화가 피언리를 위한 미술관이 아니다. 할아버지가 섭섭해할지 모르지만 이 미술관은 지금 이 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취급하는 컨템퍼러리 미술관이다.

    사업가들은 미래를 내다보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다. 후손들은 신세대를 위한 미술관이 할아버지의 미술관을 만드는 것보다 더 값진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작품은 이미 지나간 작품이지만 컨템퍼러리 작품은 앞으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최정표
    ● 1953년 경남 하동 출생
    ● 미국 뉴욕주립대 박사(경제학)
    ●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
    ● 저서 : ‘경제민주화, 정치인에게 맡길 수 있을까’‘한국 재벌사 연구’ ‘공정거래정책 허와 실’ ‘한국의 그림가격지수’ 등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前 경실련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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