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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장편소설

둔주곡 80년대

제1부 - 帝國에 비끼는 노을 | 9회. 언젠가는 가야 할 그날

  • 이문열

둔주곡 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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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용인]

[일러스트·박용인]

1. 

전화를 받은 사람은 바로 손 기자였다. 

“나요. 그냥 듣기만 하시오. 거기 내 책상 서랍에 말이요….” 

“그렇게 음모적으로 목소리 가라앉히지 마세요. 지금 우리 부서 데스크에는 아무도 없어요. 또 누가 있다고 해도 선배님과 제가 통화하는 게 무슨 들켜서는 안 되는 엄청난 음모도 아닐 거고요.” 

손 기자가 무엇 때문인지 사뭇 상냥한 후배로서만이 아닌 목소리로 그렇게 받았다. 그제야 자신의 지나친 배려를 부담스러워하는 그녀가 에둘러하는 핀잔임을 알아차리고, 얼른 말투를 가벼운 농담조로 바꾸어 받았다. 



“알겠소. 알았어요. 어쨌든 거기 내 서랍 맨 위에 흰 봉투가 하나 있을 거요.” 

“금요일 아침에 출근은 않고 밖에서 웬 사무실 서랍 속의 봉투는. 아, 여기 뭔가 얄팍한 게 하나 있네요. 왠지 사표 한 장 달랑 들어 있을 것 같은.” 

그사이 서랍을 열어보았는지 그녀가 대수롭지 않은 듯, 그러나 그에게는 뜨끔한 추측을 하게 하는 말을 보태 그렇게 받았다. 그녀가 벌써 봉투 속까지 알고 하는 소린 줄 알고 잠깐 당황한 그가 짐짓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어쨌든 이따가 부장님 돌아오시거든 그걸 좀 전해주시오.” 

“벌써 9시 반인데 출근하지 않으실 거예요? 봉투 안에 든 게 뭔지 모르지만, 출근해서 선배님이 직접 부장님께 드리시는 게 나을 텐데요.” 

“실은 여기가 동대구 고속터미널이고, 나는 지금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오.” 

“무슨 일로 상경하시는지 모르지만, 그럼 돌아와서 부장님께 드리세요. 늦어도 다음 월요일엔 출근하실 거 아니에요?” 

“아마 그 월요일에도 출근하지 못할 것 같아 그렇소.” 

그가 애써 좀 전의 뜨끔한 느낌을 드러내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잠깐 전화 수화기로도 느껴질 만큼 싸늘한 정적에 이어 손 기자가 그보다 더 메마르고 뒤틀린 어조로 대꾸했다. 

“그럼 조금 전 제가 잘 본 거네요. 지난번 서울 다녀오고 나서부터 한 주일, 왠지 여기저기 눈치 보고, 이것저것 재고 견주시는 것 같더라니. 하지만 그럴수록 여기 이 봉투는 선배님이 돌아오신 뒤 부장님이나 국장님께 직접 제출하시는 게 좋겠네요.” 



“사람의 진퇴가 그래서야 너무 궁색하지 않겠소? 소학(小學)에도 쓸고 닦고 사람 맞은(灑掃應對) 다음에는 들고 남(進退)의 예절이던데. 물러날 때가 들 때보다 더 엄중하다던가.” 

“하이고, 대책 없는 우리 라오스슝(老師兄), 문자 쓰지 마시고, 그렇다면 당장이라도 부장님이나 국장님께 바로 전화하시죠. 그런 일에 애매한 후배 끼워 넣지 마시고. 저는 애초부터 거기 끼일 필요도 없고, 또 끼고 싶지도 않아요.” 

손 기자가 이번에는 더 말할 것 없다는 듯 말투가 빠를 뿐만 아니라 문장과 문장, 구와 절 사이를 최대한 빨리 이어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까지 찰칵 끊어버렸다. 그 소리를 무슨 육중한 자물쇠 소리처럼 들으며 그는 야릇한 곤혹에 빠져 중얼거렸다. 언제부터 우리가, 아니 손 기자와 내가 ‘예’ ‘아니오’로 단순하게 끝낼 주제를 이렇게 뒤틀리고 비뚤어진 말로 길게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지…. 

얼마 뒤 9시 45분 서울행 고속버스가 들어와 차에 오른 뒤에도 그는 조금 전 그 생각을 다시 떠올렸다. 언제부터 우리가, 아니 손 기자가 내게 이런 식으로 대해도 되게 됐지. 2기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내가 직장 선배고, 나이도 대여섯은 많을 텐데, 알던 정 보던 정 없이…. 하지만 고속버스가 미처 대구 시가지를 빠져나오기도 전에 그는 그리 오래지도 않은 기억 속에서 이미 그녀에게 그 비슷한 어조와 어법을 들은 적이 있음을 퍼뜩 떠올릴 수 있었다.

2. 

지난 4월 중순 좀 늦은 사내 붕어낚시 시조회(始釣會) 때였다. 한 보름 전부터 그해따라 유난히 요란한 참가 독촉이 있어서였던지, 출발 전날 최종 점검에서 기자는 거의 전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편집국 쪽 참가 희망자만 50명에 가까웠다. 그 바람에 그 시조회는 신문사가 버스 두 대를 전세 내어 모두가 함께 떠나는 거창하고 호기로운 행사가 되었다. 

그사이에도 두어 번 사내(社內) 시조회 또는 납회(納會) 같은 게 있었으나, 입사 뒤 첫 두 해는 마음에 여유가 없어 낚시를 나가지 않을 때라 참석하지 못했고, 전해인 1979년은 늦깎이 등단의 분주함 탓에 그런 사내 행사에 참가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그 봄 시조회는 달랐다. 그는 편집국에 공고문이 나붙을 때부터 참여를 다짐하고, 오래 싸말아두어 못쓰게 된 낚시도구까지 그 무렵 쏟아지는 신형으로 개비해두었다. 

이번에도 참석하지 않으면 나는 야유회와도 같은 이런 사내 행사에 한 번도 끼어보지 못하고 이 신문사를 떠나는 꼴이 날 수도 있다. 나서 처음으로 유적(流謫)의 느낌 없이, 그리고 그동안 잠깐씩 스쳐갔던 학교나 병영에서와는 달리, 푸근한 소속감에 자못 안주까지 하며 3년이나 몸담았던 곳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런 난데없는 감상 때문이었는데, 아마도 그때 이미 그는 어떤 막연한 예감 이상으로 작별 의식을 예비하고 있었던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입사 후 처음으로 함께 야외로 나가는 셈인 그는 원래 그저 모든 것 훌훌 털고 동료 선후배들과 어울리며 그날 하루 무고한 붕어 입이나 째고 돌아올 작정이었다. 그때 이미 그해 신춘 시조회는 편집부 솜씨로 ‘새봄맞이 애먼 붕어 입 째기 모임’으로 명칭이 교정되고, 그 행사에 대한 기대도 거기 어울리는 유쾌한 집단 야유회 같은 것으로 확정되어갔다. 

하지만 그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그의 몸과 마음은 그런 유쾌한 야유회에 어울리는 상태가 아니었다. 우선 그 주일 마감해야 되는 원고가 있어, 그걸 다 쓰고 봉함한 원고봉투를 서울 잡지사에 등기 속달로 부치라고 아내에게 맡기고 집을 나선 시간부터가 그랬다. 그때가 벌써 아침 6시, 고스란히 날밤을 새운 몸이었다. 아직은 날씨가 쌀쌀한 아침 물가에서 으스스하게 낚싯대를 드리우기보다는 따뜻한 이부자리에 들어 밤새 혹사당한 몸과 마음부터 쉬게 하고 싶었다. 



거기다가 그 아침의 심사도 밤샘으로 지친 몸 못지않게 처져 내려 애초부터 유쾌한 붕어 입 째기 행사는 글러버린 일이 되어 있었다. 전날 초저녁 출판사에서 온 갑작스러운 통보 때문이었다. 

“지난 연말에 낸 중단편집에서 단편 하나 빠지고 3월에 새로 발표하신 단편 하나가 대신하게 되었어요.” 

저녁상을 물리고 담배 한 대를 느긋하게 피울 여유가 없어, 담배를 문 채 아직도 최소한 서른 매 이상은 더 써야 하는 연재 원고를 막 시작하려는데 서울의 출판사 편집부 고참 여직원이 전화를 걸어 그렇게 알려왔다. 

“아니, 무슨 일이오? 이 밤에 집으로. 또 무슨 검열 같은 것에 걸리기라도 했어요?” 

그녀의 말이 너무 난데없어 그가 되는 대로 그렇게 묻자, 평소에도 굳은 얼굴인 그녀가 자신의 표정처럼이나 억양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주간님은 거기 들어간 단편 ‘사과와 다섯 병정(兵丁)’을 빼고 지난달 월간 ‘자유문학’에 발표한 ‘알 수 없는 일들’을 대신 넣었으면 하더군요.” 

“아니, ‘사과와 다섯 병정’이 뭐 어떻다고, 그게 왜….” 

그가 그렇게 반문하다 제풀에 질려 말끝을 맺지 못했다. 아, 그거다. 맞아, 그걸 거야…. 그러는데 그 편집부원이 여전히 억양 없는 말투로 툭툭 내던지듯 말을 이었다. 

“국군이 어떻게 국군을 죽일 수 있나? 또는 국군이 어떻게 국군에게 죽을 수 있나? 대한민국 소설에서. 뭐 그러는 것 같던데요.” 

그랬다. ‘사과와 다섯 병정’에서 죽은 다섯 병사는 국군이었고, 6·25 때 치열한 낙동강 방어선에 투입돼 밤마다 거세지는 북한군의 마지막 공세를 피투성이 진지전으로 막고 있었다. 그러다가 유엔군의 공습 때문에 북한군의 공세가 뜸한 낮 시간에 잠시 전선을 빠져나와 진지 부근 과수원으로 내려갔다. 부실한 보급에 배가 고팠거나 입대 전의 장난기가 발동해 풋사과 서리를 나왔거나. 어쨌든 그렇게 해서 풋사과를 실컷 따 먹고 남은 것은 전투복 주머니와 알철모 가득 담아 과수원을 나오는데, 때마침 독전(督戰) 임무로 전선 후방을 순찰 중인 헌병 분조(分曹)에 적발돼 과수원 앞 강변 아카시아 숲속에서 전선이탈과 민폐(전시약탈)의 죄목으로 즉결처분되었다. 곧 또 다른 대한민국 국군인 헌병에게 죽었다…. 그가 후회라기보다는 무언가 엄청난 낭패를 당한 심경으로 그렇게 작품의 도입부를 떠올리고 있는데, 이제는 느긋하게까지 들리는 느린 목소리로 그 편집부 여직원이 말을 이었다. 

“계엄사 검열 쪽 지적이라는데요. 그 작품 빼지 않으면 그게 실린 선생님 중단편집 1쇄 3판은 납본 필증을 내줄 수 없다고 하더라나요.”

[일러스트·박용인]

[일러스트·박용인]

“첫 책 ‘인간의 대지’에서 합본으로 실린 중편 ‘전선의 노래’를 폐기하고 자잘한 단편 세 편으로 메우는 바람에 멀쩡하게 잘 나가던 책 반병신 만들어 놓은 게 이제 몇 달 됐다고, 또 내 책에 손을 대? 안 되겠소. 노 부장에게 그 작품은 뺄 수 없다고 그래주시오. 작품 일부를 삭제하거나 수정 보완해 국군 손에 국군이 죽지 않게 하면 되지 않소? 아, 좋아요. 방법이 생각났소. 그 헌병들 차라리 몰래 도강한 북한군 편의대(便衣隊)로 바꾸지 뭐. 그들이 우리 헌병 복장으로 그 다섯 국군 병사를 몰살시킨 것으로 바꾸겠다고 해주시오.” 

원래 그 단편의 소재는 6·25 때 심한 열병 때문에 멀리 피난을 가지 못해 금호강변의 과수원에서 불안하게 9월 반공(反攻)을 맞아야 했던 넷째 이모의 목격담에서 얻은 것이었다. 

오래전에 그 얘기를 들은 그는 국군 병사 다섯이 아군 헌병대에게 사살된 사례의 진기함에다 그 죽음의 원통함이나 한스러움의 크기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괴기성에 착안해, ‘어셔가(家)의 몰락’ 같은 단편으로 구상해보았다. 죽은 지 20년이 넘는 해 8월 하순 한낮까지 그 현장을 떠도는 그들 다섯 유령을 구식의 괴기나 환상 티를 내지 않게 불러내어 지난 6·25전쟁의 가혹함과 비정함의 일면을 돌이켜본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아군의 비정한 자해나 자학을 폭로한 검열의 대상으로 폐기될 판이라니 섬뜩하고도 황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그 편집부 직원의 느릿한 말투가 어깃장이나 놓는 것처럼 묘하게 사람의 의식을 긁어대는 데가 있어 그렇게 받았지만, 말해놓고 보니 쓸데없이 오기를 부린 듯해 슬며시 후회가 뒤따랐다. 

그 헌병들을 몰래 침투한 북한군 편의대로 바꿀 수도 있겠지만 그 변화할 상황 처리는 얼마나 궁색할까. 결국 그래서 만들어진 그들 세 북한군 특공조와 다섯 국군병사의 조우는, 비정규적이기는 하지만 교전 쌍방 간의 상전(相戰)에 지나지 않게 되고, 그 다섯 병사의 죽음은 값싼 정훈교재 이상의 교훈과 감동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그들을 20년이 넘도록 원통함이나 한스러움으로 이 세상을 떠돌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자문(自問)이 전날 밤 초입을 한 시간이나 갉아먹었고, 그 아침 밤새운 탈고의 홀가분함까지도 부질없고 무망한 작업 뒤의 피로와 탈진으로 바꿔놓았다. 아니, 그 이상 그 개고(改稿)가 그 시각 이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집필 작업이 되면서, 그의 글쓰기가 점점 더 깊이 질척한 근대적 감시와 처벌의 구조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는 느낌에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참으로 나쁜 때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어쩌면 연좌제보다 더한 새로운 감시와 처벌의 기제가 작동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런 강박에 억눌리자 더는 유쾌한 그날의 사내 원유회에 어울리는 기분일 수 없었다.

그가 신문사 뒤편 공터에 이르러 보니 아직 출발 시각까지 15분 넘게 남았는데도 버스는 두 대 모두 거지반 차 있었다. 그는 편집국 사람들에게 배당된 선두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은 히터 타령을 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썰렁했고, 그만큼 분위기도 즐거운 야유회를 앞둔 차 안 같지 않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런데 버스가 아직 떠나기도 전에 뒷좌석에 실려 있던 맥주 상자가 버스 가운데로 옮겨지고, 요령 좋은 사람들이 주머니칼에 달린 오프너로 맥주병을 따 종이컵과 함께 돌리면서 분위기는 조금씩 훈훈하게 풀려갔다. 밤샘으로 깔깔해진 입맛 때문에 아내가 끓여내 온 전복죽마저 몇 술 못 뜨고 나선 그 말고도, 반갑게 그 종이컵을 받아 드는 사람이 드문드문 생겨나더니, 한 시간 남짓 돼 버스가 크고 오래된 저수지가에 섰을 때는 벌써 목소리에 맥주 맛이 밴 사람이 여럿이었다. 

그들 가운데서도 몇몇은 낚시 가방도 풀지 않고, 시골 운동회 본부석처럼 쳐놓은 못가의 천막 한구석에 자리 잡고 앉으면서 아예 초장부터 모두에게 대놓고 선언했다. 

“마, 우리는 여다서 속부터 좀 풀고 갈란다. 초출(初出)이든 월척(越尺)이든, 상은 꾼들이나 받아가라 캐라. 우리는 여기서 술이나 낚지 머.” 

그 시조회에 꼭 참가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때와는 달리, 그도 처음부터 거기에 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이 자리 잡은 주방기구 옆 탁자 쪽으로 가는데 손 기자가 어디서 알아보고 와서 낚시 가방끈을 당겼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이 선배는 거기 끼면 안 돼요. 낚시대회에 왔으면 낚시부터 해야지.” 

그 말에 그도 퍼뜩 떠오르는 게 있어 그들 속에 끼어들지 않고 편집부 사람들이 몰려가는 못가 쪽으로 가 낚시도구를 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이 떠서인지 아니면 나누어준 지렁이 미끼가 잘못된 건지 30분이 지나도 입질 한 번 없었다. 그래서 미끼나 떡밥으로 한번 바꿔볼까 하고 떡밥가루가 담긴 비닐봉지를 꺼내는데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공무국 직원 하나가 북부 지역 사투리로 말렸다. 

“떡밥은 안 되니데이. 대회 때는 모든 참가자가 똑같이 껄깽이(지렁이)만 미끼로 써야 하는 게 규칙이씨데이.” 

그 말에 마지못해 시작하려던 떡밥 반죽을 그만두고 다시 아무렇게나 갈아 낀 지렁이 미끼를 던지고 나니 그때부터 낚시는 더욱 시들해졌다. 그런데 저만치서 따로 낚싯대를 드리우며 이따금 그가 앉은 쪽을 살피고 있던 손 기자가 갑자기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왔어요. 뭔가 찌를 끌어당기고 있어요. 에이고, 이거 어떻게 해요?” 

아버지 낚시 가방을 메고 왔다더니 그게 사실인 듯했다. 곁에서 낚시하던 선배 기자가 자신의 대를 받침대에 얹어두고 어쩔 줄 몰라하는 손 기자에게 다가갔고, 주변에 있던 몇몇 젊은 기자도 구경 삼아 몰려들었다. 그리고 월척까지는 몰라도 손바닥보다는 훨씬 커 보이는 그 붕어를 끌어내느라 작은 소동이 벌어졌는데, 그에게는 문득 그게 남의 눈에 띄지 않고 낚시터에서 빠져나갈 기회처럼 여겨졌다. 들고 있던 낚싯대를 슬그머니 받침대에 얹어놓고, 태연히 본부 천막 쪽으로 갔다. 

술 귀신이라는 게 있고, 사람이 거기 씌는 수가 있다면, 그날 그가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손 기자에게 끌려가듯 마지못해 자리를 뜬 곳으로 돌아가니, 거기 남아 있던 다섯은 벌써 벌겋게 달아 해장술의 경계를 벗어나고 있었다. 아직 풀지 않은 낚시 가방을 발밑에 그대로 둔 채 조리대 곁 의자를 차지했는데, 조리대에는 몇 접시 나물 안주까지 놓여 있었다. 그제야 한 시간 전보다 뭔가 달라져 있는 것 같아 살펴보니, 홍선루 추 마담이 낯익은 아주머니 두엇과 함께 와 있었고, 천막 곁으로는 드럼통을 잘라 만든 이동용 화덕에 적어도 50인분 들이는 될 커다란 양은솥 하나가 걸려 있었다. 

“점심을 벤또(도시락)로 하고 보니 모도 치워(추워) 떨지 싶은지, 육개장을 끓이겠다고 내한테 함 봐달라 안 카나? 그래서 아는 아주무이 둘 데리고 왔구마는.” 

추 마담이 그런 설명으로 알은체를 대신했다. 그도 대꾸 대신 물었다. 

“보니 찌께다시(쓰키다시)까지 가져오신 것 같은데 홍선명주(紅仙銘酒)는요?” 

“그것도 저기 쌍둥이 아부지가 당부해 한 서 말 따라왔으이 걱정 마소.” 

그러면서 눈짓하는 쪽을 보니 조금 전에 함께 낚시터로 나간 편집부장이 벌써 돌아와 거기 남아 있던 술꾼 속에 끼어 있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쌍둥이도 기형아의 일종이라고 기세 좋게 우기는데, ‘아이고, 내가 바로 쌍둥이 아부진데 이거 우야꼬?’ 하던. 

어쨌든 그날 그는 그 저수지를 떠날 때까지 낚싯대 곁으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못가에 풀어놓은 낚시 가방도 부서 동료가 챙겨줄 만큼 돌아보지 않고 ‘공장’ 모주꾼들 사이에서 낮술에 취해갔다. 그러다가 오후 5시 폐회식을 하고 시내로 돌아가 ‘공장’ 앞에서 해산한 다음에는 다시 ‘뭉친’ 최후의 결사대 대여섯과 부근 술집을 돌면서 차츰 유체이탈 상태로 들어갔다. 

어찌어찌 통금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억에 남은 것은 신문사 부근 이따금 들르는 큰 맥주홀과 그 한구석에 크게 틀어놓은 24인치 텔레비전 화면이었다. 키 크고 풍만한 몸매에 금발 염색을 한 화려한 얼굴의 대형 가수가 노래하고 있었는데, 그가 그 화면을 기억하게 된 것은 아마도 그녀가 성량 풍부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의 가사 때문이었던 듯하다. 언젠가 떠나야 할 그날이 빨리 왔을 뿐이네. 언젠가는 떠나야 할 그날이 빨리 왔을 뿐이네…. ‘세상의 끝’이라고 하던가, 그 무렵 유행하던 미국 노래를 번안한 가사의 한 구절로 들었다. 

어쩌면 나는 그때 이미 이 길을, 이 떠남을 예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리고 그녀도 그걸 알아차렸는지 모른다, 회상이 거기에 이르자 그는 다시 으스스한 기분으로 그 시조회 다음 날 아침을 떠올렸다.

아침 10시쯤 그가 어머니의 걱정을 들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 보니 몸 상태가 영 말이 아니었다. 온몸이 욱신거리는데 특히 등짝과 갈비뼈 부근에는 숨쉬기가 거북할 만큼 우리한 동통(疼痛)까지 남아 있었다. 신음을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욕실로 간 그는 먼저 세면대 위의 거울부터 보았다. 얼굴에도 여기저기 심상찮은 통증이 느껴져 그쪽도 알아보기 위해서였는데. 거울 속에서 마주 보고 있는 얼굴은 스스로도 보기에 놀랍고 또 민망스러울 만큼 참담했다. 


양쪽 눈두덩은 붓거나 멍들어 원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게 내려앉아 있었고, 그중에도 왼쪽 안구는 시뻘겋게 충혈까지 되어 있었다. 우선 부기라도 가라앉혀볼까 해서 찬물을 얼굴에 끼얹다가 화들짝 놀라 화장지로 물기를 닦아냈다. 얼굴 어디에 제법 깊이 있는 찰과상이 있어 물기가 닿자 찌르는 듯한 아픔으로 반응한 것 같았다. 

그때 욕실 문을 열고 들어온 아내가 욕탕 옆에 쌓인 옷가지에서 그가 전날 낚시터에 입고 나갔던 연푸른색 점퍼의 등짝을 펼쳐 보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여기 이런 게 찍혀 있었어요. 도대체 어제 밤에 어디서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등판 쪽에 큼직한 신발자국이 여러 개 찍혀 있었다. 통일화와 스펀지 운동화 자국이 섞인 것 같았다. 그걸 보자 오른쪽 갈빗대 쪽과 등짝이 갑자기 욱신거렸다. 자신도 모르게 오른쪽 갈빗대 쪽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는 그를 차가운 눈길로 보던 아내가 가만히 문을 닫고 나갔다. 

아내가 목소리 한번 높이지 못하고 욕실을 나간 것은 안방에서 그를 기다리는 어머니를 의식해서였던 듯하지만 소용없었다. 그가 수건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안방으로 돌아가 이부자리 속으로 다시 발을 들이미는데 머리맡에 앉아 허옇게 흘겨보던 어머니가 아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탄식하듯 시작했다. 

“니가 사람을 어예 이래 촉수(促壽)를 시키노? 그래 술 먹고 댕기다가 잘못 엎어지믄 늙은 에미도 에미지만, 저 눈알 새카만 처자식은 어옐래? 하이고, 참 한심타 한심해. 아무리 저잣거리 모티(모퉁이)라 카지만, 니 그래도 명색 득명(得名)한 문사 아이라? 학식도 중요하고 인품도 중요하지만, 행검(行檢)이라 카는 것도 있데이. 행검을 제대로 못 닦으믄 학식도 인품도 말캉 헛게(헛것)라는 거 정(정히) 모를라? 그런데 이게 무슨 꼬라지로?” 

어머니의 말속에 옛날 문자가 많이 섞이는 걸로 보아 밤새 별러온 훈계인 듯했다. 못 견디게 괴로운 양해서 훈계가 더 오래 계속되는 것은 피했지만, 어머니가 홧김에 끊은 곡기(穀氣)를 다시 잇게 하는 데는 그날 오후 다시 깨어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뒤늦게나마 동네 외과병원에 가서 응급가료를 받고 온 뒤였다. 

하지만 그 봄 시조회 때 일로 가장 호되고 매몰차게 그를 몰아댄 것은 이튿날 아침 겨우 출근해서 만난 손 기자였다. 붓고 멍들고 긁혔든, 쑤시고 결리고 욱신거리든, 겉으로는 찢어진 곳도 터진 곳도 부러진 곳도 없어 흔한 반창고 한 장, 안대(眼帶) 하나 덧대지 못한 얼굴로 느지막이 출근해보니 편집부 사람들이 한쪽으로는 놀라면서도 한쪽으로는 빙글거리며 그런 그를 맞았다. 

“억, 얼굴이 왜 그래요? 어디 다친 데는 없어요?” 

“그래도 용하네. 게라 판은 어지러워도 와리꼬미 하나 지대로 안 옇(넣었)구마는.” 

그런데 그때 제자리서 젖은 신문지에 머리를 박고 수성 색연필로 무언가를 그려가고 있던 손 기자가 흘끗 그를 돌아보았다. 

“선배님, 그제 낚시터에서….” 

그녀가 그러면서 그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흑, 하는 짧고 얕은 비명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갈 때는 같은 버스를 탔는데, 올 때는 차 안에서 손 기자를 본 기억이 안 나, 그 일을 묻는 줄 알고 그가 공연히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올 때는 아마도 다른 버스에 묻어 탄 모양이오. 낮술에 취해도 애비는 알아보기로 했는데, 그만.” 

그래놓고 보니 왼고개를 틀고 있는 손 기자 옆모습에 왠지 찬바람이 도는 듯했다. 머쓱하면서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들을 의식해 그가 다시 내키지 않는 너스레를 떨었다. 

“못마땅하다고 사람 말하는데 그렇게 뒤통수를 들이대면 쓰겠어요? 꼭 눈 맞추자는 것도 아니니, 고개라도 돌리고 얘기해요.” 

그러자 그녀가 낮지만 싸늘한 목소리로 쏘아붙이듯 말했다. 

“정말 선배님 얼굴 마주 보아줄 수가 없네요. 아니, 끔찍해요. 참혹해. 그 얼굴 다 나을 때까지 절 마주 볼 생각 마세요. 아니 제가 보지 않게 해주세요.” 

목소리가 낮고 속도가 빠르기는 해도 조금만 귀 기울이면 옆자리 사람들은 다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그는 먼저 주위부터 둘러보았다. 편집부 데스크에는 부장 말고도 선배가 셋이나 더 앉아 있었지만 손 기자의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굳이 변명이나 해설, 무마가 필요한 상황이 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며, 그도 그쯤에서 얘기를 멈췄다. 

손 기자는 정말로 그 뒤 그의 얼굴이 정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와 얼굴을 마주 보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열흘 가까이 지나 얼굴의 멍과 부기가 빠지고 왼쪽 눈의 터진 실핏줄까지 다 걷힌 뒤에야 겨우 그와 얼굴을 마주했다. 오랜만에 점심을 같이 먹고 들른 공장 근처 다방에서 손 기자가 하던 이야기를 이어가듯 불쑥 말했다. 

“선배는 자신이 그렇게 미우세요? 아니면 세상이 그렇게 진저리 치도록 싫은 거예요?” 

그러나 말투에는 아직도 가시가 남아 있었다. 그가 얼떨떨해하며 물었다. 

“내가 그렇게 보여요? 왜? 술 때매? 함부로 나를 내돌린다고?” 

“그렇게 빙글거리지 마세요. 다시 화가 나려고 그러네.” 

“빙글거리는 게 아니야. 나야말로 묻고 싶네. 내가 무엇으로 그렇게 손 기자 심사를 건드렸는지.” 

그제야 그도 정색을 하면서 물었다. 그러나 손 기자가 잠깐 쏘아보듯 그를 보다가 대답 대신 반문했다. 

“선배님은 혹시 사람들이 선배님을 득의와 자족감에 신나서 살 거라고 추측하리라고는 보지 않으세요?” 

“그거야,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한 1년 남짓 실속 없이 부황한 이름에다 책 권 좀 팔았다고….” 

“그럼 그들을 위해서라도 좀 신나는 척해주세요. 그렇게 오만상 찌푸리고 지내다가 술만 생기면 다시 깨어나지 않을 사람처럼 마셔대지 말고.” 

“어이쿠, 이거 만만찮은 복병을 만났네. 내가 그렇게 걱정거리 선배가 된 거요?” 

“제가 수습 시절 조사부 자료실을 몇 달 드나들었는데요, 읽을 만한 책이 있어 대출해 보면 책 뒤 도서관리 봉투의 대출자 카드의 마지막 대출자는 언제나 선배님이었어요. 하루는 신기해서 한나절 자료실에서 책은 읽지 않고 여기저기 대출카드만 뽑아보았는데, 신기하게도 그 태반에 선배님의 서명이 있었어요.”

[일러스트·박용인]

[일러스트·박용인]

“자료실 거기서 빌려다 읽어볼 만한 책은 많아야 5000~6000권을 넘지 않을 거요. 내가 이 신문사에 들어온 지는 4년이 넘었고, 거기다가 줄곧 편집부에만 처박혀 있어 하루 한 판 짜고는 달리 가 있을 만한 곳도 없었지. 또 대출카드에 서명이 돼 있다고 해서 꼭 그 책을 다 읽었다는 보장도 없고. 손 기자 선배 기수들 가운데도 그 카드 서명 보고 속은 사람 많았소.” 

“사람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세요. 사람이 저마다 소중하게 품는 인상도 존중해주시고요.” 

다시 차가워진 목소리로 그렇게 길게 말꼬리를 끌던 손 기자가 갑자기 탁, 소리 나게 문을 닫듯 말을 맺었다.
“여기 머무시는 게 못 견디게 지루할 수도 있는데, 그것도 들키지 않게 자제해주세요. 팝송 가사처럼 언젠가는 떠나야 할 그날이 올 때까지는요.”

3. 

“아이고 오셨어요? 오늘은 누굴 만나시게?” 

드나들기 시작한 지는 이제 한 해 반 남짓이지만 워낙 수다하게 다녀선지 수위가 그를 알아보고 다가와 알은체를 했다. 

“저, 인사담당하시는 분. 2층 총무국에.” 

“아, 장 부장님요? 조금 전에 점심 드시고 올라가시는 것 같았어요. 어서 올라가 보세요.” 

수위가 그러면서 2층으로 올라가는 층계 쪽으로 이끌 듯 손짓을 했다. 이 사람도 내가 앞으로 한 식구가 될지 모른다는 걸 느끼기라도 한 건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층계를 오르다 보니, 늘 지나다니는 곳이지만 그도 느낌이 새로워지는 데가 있었다. 그게 언제까지 일는지는 몰라도 이제부터는 이 신문사가 ‘우리 공장’이 되는구나. 아니, 이곳도 대구의 신문사처럼 자신들이 근무하는 곳을 굳이 ‘공장’이라고 부를까. 

그런데 2층 층계참을 지나 열려 있는 편집국 쪽으로 발을 내디디려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뒤따라오며 소리쳤다. 

“드디어 왔군. 이 작가. 같이 들어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니 문화부장이 2층 화장실 쪽에서 허리춤을 추스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어디서 낮술이라도 한잔 걸쳤는지 얼굴이 불콰했다. 

“어제 정치부 황 차장에게 들었어. 드디어 이 작가도 우리 회사로 온다며? 그래 신체검사는 했어? 고려병원 건강검진 말이야.” 

“아, 예. 지금 그것 때문에 오는 길입니다. 인사 담당하시는 장 부장님께 검진의뢰서 받아가야 한다면서요.” 

그가 그렇게 말을 받으며 문화부장과 함께 편집국으로 들어서는데, 문화부장이 무엇을 보았는지 갑자기 몸을 빼며 한 곳을 가리켰다. 

“아, 장 부장 저기 있네. 저리로 가서 의뢰서 받아 어서 병원으로 가봐요. 아무리 형식적이라지만, 그래도 검진에 두 시간은 걸릴걸. 면접이 4시라니까 서둘러야 할 거요.” 

“면접이요? 그럼 제가 오늘 면접시험을 보러 온 겁니까? 편집 경영 양쪽 어른들 한꺼번에 뵙고 인사드리려 온 게 아니고?” 

그가 후끈 달아오르는 기분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문화부장이 자기 데스크 쪽으로 가면서 선선하게 그 면접의 성격을 바꾸어주었다. 


“아, 그래요. 면접시험이 아니고 간부들과의 상견례. 뭐, 실은 그거나 저거나 마찬가집니다만.” 

그런데 그 말의 여운이 묘했다. 

그가 인사담당 부서 쪽으로 가니 장 부장이라는 사람이 건강검진 의뢰서가 든 서류 봉투를 내밀며 은근히 재촉했다. 

“좀 서두르셔야겠습니다. 택시를 잡아탄다 해도 고려병원까지 오가는 시간도 있고, 또 회장님이나 사장님이 워낙 시간에 엄격한 분들이 돼나서요. 편집국장과 주필도 곧 만만한 분들이 아니고…. 오후 4시 면담 시간은 지키시는 게 좋을 거예요.” 

그런데 그 말투가 또 그의 예상과는 달랐다. 어딘가 황 선배가 말하는 따 놓은 당상 같은 스카우트가 아니라 특별전형을 앞둔 신참 직원 대하는 듯한 데가 있었다. 그 바람에 고려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보낸 10여 분은 자신이 그렇게 서울로 올라와서 신춘문예 친정이 되는 신문사로 갑자기 마뜩잖은 느낌이 드는 상견례를 하러 오게 된 경위를 떠올려보게 했다.

지난번 ‘제대병 열차’ 일로 상경했을 때였다. 그는 출판사 사장과 보안대 권창동 씨 쪽, 그리고 이른바 고위처 출입 황 선배 모두 세 사람에게 사건 경위를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미리 해놓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도 난데없는 공수부대 하사관들이 왜 그런 방식으로 출판사를 찾았으며, 광주사태 이후 일반에게 예상되는 행태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그런 개별적 보복 위협을 하고 갔고, 그런데도 벌써 닷새가 다 돼가도록 왜 아무 후속 행위가 없는가, 따위를 알아달라는 것이었는데, 세 곳 모두 아주 막연한 예측뿐, 시원하게 경위를 알려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답답해하며 연극 ‘인간의 대지’ 리허설을 앞두고 있는 극단 ‘전위(前衛)’ 부근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황 선배가 출판사를 통해 만나자는 전갈을 보내왔다. 역시 높은 곳에 출입하는 쪽이 다르구나 하면서 신문사 옆 다방으로 가니 황 선배가 무엇 때문인가 조금 상기된 얼굴로 그를 맞았다. 

“그래, 좀 알아보셨어요? 도대체 그 친구들 어디 소속이랍디까? 왜 그랬대요? 그리고 그렇게 무섭게 엄포를 놓고 어째서 지금까지 전혀 움직임이 없답니까?” 

그가 황 선배에게 궁금하다 못해 이제는 답답하기까지 한 일의 내막부터 먼저 물었다. 황 선배가 뜻밖의 대답으로 그의 말문을 막았다. 

“그 얘기는 구중궁궐 깊은 곳에 처박힌 나로서는 알아볼 길이 없다. 그거 말고 너와 조용히 만나 할 말이 있어 왔다.” 

그래놓고 그가 무어라 대꾸할 틈도 없이 의자를 그 앞으로 바짝 끌어당겨 앉으며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야, 너 왜 아직 거기서 그러고 살아? 이제 조금씩 답답할 때도 되지 않았어?” 

“예?” 

“영남 정권이니, 대구경북 권력이니 어쩌고 하지만 대구는 아직도 이 나라의 변방이다. 그런데 거기 처박혀 심각한 세상 얘기한다며 눈치 없이 써대니 무슨 꼴을 안 당해? 전에 한번 말한 적 있지만, 너 그러지 말고 서울로 올라 와라. 뭘 해도 여기가 중앙이고 중심이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그동안 틈나는 대로 알아봤는데, 너 여기 와서 제대로 작가 노릇 해보지 않을래?” 

“어떻게 하는 게 제대로 작가 노릇 하는 건데요?” 

황 선배가 하는 말이 하도 난데없어 그가 자꾸 반문으로 받게 되었다. 그러나 황 선배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에 바빠 그걸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아무래도 원고료만으로 살아가는 게 불안하다면 너, 신문사를 서울로 옮겨보는 게 어때? 세상 구경도 다시 하고.”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뭐, 안 될 것도 없죠. 그런데 그게 그리 쉬울까요. 지방 신문사에다 나이 서른 다 돼 입사한 대학 중퇴 학력으로.” 

“그렇지만 네겐 천하의 이불휴란 후광이 있잖아? 요즘도 작가와 기자 겸하는 사람 많아. 당장 우리 신문사 주필도 그렇잖아. 아직도 대학입시 국어시험에 그 사람 소설 구절이 나온다던데.” 

“그렇게 될 수 있는 건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앞날의 일이고…. 요새는 모두 작가와 기자의 일을 별개로 치던데요.” 

“걱정 마. 내가 다 알아봤어. 너를 써주겠다는 데가 있어. 기자 경력까지 인정해주며.” 

“그런 데가, 있어요?” 

“실은 우리 신문사야. 내가 국장에게 여러 번 우겼지. 예전에 그랬듯 우리에게도 외부로부터의 새로운 수혈이 필요하다고. 보도문으로서가 아니라 새롭고 힘찬 논설로서의 필력 보충이. 네가 이리로 옮겨 먼저 학술 문화 쪽으로 얼마간 출입하다 논설실로 들어가는 길을 진지하게 의논해봤다.” 

황 선배가 그렇게 말해놓고 다시 알 수 없는 말을 보탰다. 

“실은 내게도 네가 가까이 있는 게 곧 필요하게 될지 모르겠고….”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아마도 내게 곧 신분 변동이 일어날 것 같다. 올해 안에. 하여튼, 그건 그때 가서 얘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우선 우리 신문 편집국장과 주필부터 만나봐라. 그다음에는 총무국 인사담당에게도 들렀다 가고. 우리 동네로 옮기는 데 필요한 서류나 절차는 인사담당 장 과장 그 친구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그리 번거롭지 않을 게다.” 

“그럼 공수부대 아이들 문제는요?” 

“알아낸 건 없다마는 틀림없는 것은 여태 그들이 네게 나타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아직도 그들은 외출 외박조차 자유롭지 못하다고 들었다. 지금은 숨을 죽이고 눈치를 봐야 하는 시간이란 뜻이겠지. 보안대든 안기부든 경찰국이든 그런 일로 공식적인 수사에 들어가거나 특별한 감시, 사찰, 추적을 시작한 경우도 있는 것 같지 않고.” 

황 선배는 그렇게 말하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그를 데리고 신문사로 갔다. 그리고 편집국장과 주필을 만나게 해주더니, 마지막으로 총무국 인사담당 장 과장에게 데려다주고는 다시 어디론가 총총걸음으로 나가버렸다. 인사담당과의 일은 그날부터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대구로 내려온 그는 이틀 뒤 먼저 이력서에 저서 목록, 신원보증서 따위를 첨부해 보내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날까지 받아 신문사가 정한 종합병원에서 입사 신체검사(종합건강검진)를 받는 것에 이어 신문사 간부 경영진과 상견례까지 치르러 서울로 올라온 길이었다.


4. 

고려병원은 그의 경험으로 이 나라에서 대학병원 말고는 처음 보는 대형 종합병원이었다. 3, 4층은 되는 여러 개의 병동이 웬만한 변두리 대학 건물보다 컸다. 그래도 그 병원 이름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그 병원에 소속된 고명한 의사 한 사람이 고향 출신 수재였기 때문이었다. 본관 수부에서 물어 검진 전문 병동을 찾아가니 평일인데도 분과마다 줄을 서야 할 만큼 검사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황 선배의 귀띔이나 신문사 인사담당은 그 검진이 관례적인 또는 형식적인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검사가 시작된 지 10분도 안 돼 그것도 제법 엄정한 기준이 있는 인사 절차임을 알아차렸다. 내과에서 외과, 정신과 해서 이어지는 검사 동선(動線)은 서둘러야 겨우 2시간 안에 통과할 수 있을 만큼 빡빡하게 짜여 있어, 오후 4시까지 신문사에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을 남겨놓고 검사를 마쳤을 때는 옅으나마 이마에 진땀이 흐를 정도였다. 

간신히 4시를 넘기지 않고 신문사에 도착하니 2층 층계참까지 나와 있던 인사담당이 재빨리 그를 3층 회의실로 안내했다. 10평을 크게 넘지 않을 크기였지만, 가죽을 씌운 고풍의 의자들과 두꺼운 원목 탁자가 중후한 분위기를 풍겼다. 방 안에는 그가 이미 알고 있는 편집국장과 역시 서로 얼굴은 알아볼만한 주필이 먼저 와 의자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가 그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자신의 자리로 책정된 듯한 모퉁이 의자에 앉는데, 헛기침 소리와 함께 정장을 한 두 중년이 들어왔다. 한 사람은 몸집이 있고, 머리가 조금 벗겨진 초로의 신사였다. 까맣고 좁은 넥타이나 자연스럽게 구겨진 양복에 비해 잘 닦인 구두가 파이프만 물리면 처칠 같은 영국 신사를 연상케 했는데, 아마도 창업 2세인 언론그룹 회장 같았다. 그와 같이 온 사람은 초로에 접어든 마른 몸매에 갈색 정장을 입었는데, 깡마른 얼굴이나 볼에 깊게 골진 주름살 같은 것이 공연히 까다로울 것 같은 선입관을 주는 사람이었다. 들은 대로라면 신문사 사장직을 맡고 있는 원로 언론인 같았다. 

인사담당 과장이 그 둘을 부축하듯 윗자리로 안내해 앉히고 편집국장과 주필도 각기 제자리를 찾아 앉자, 다시 인사담당이 준비해 온 서류를 그 네 사람 앞에 펼쳐놓고 회장 뒤로 가서 섰다. 

“이번에 경력직으로 보충할까 하는 이휴 기잡니다. 지방 신문사에서 4년째 근무하며 여러 면으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데, 정치부 황 차장이 특히 추천했습니다.” 

편집국장이 그렇게 그를 소개하자 자기 탁자 앞에 펼쳐진 서류를 들여다보던 사장이 깐깐한 목소리로 물었다. 

“보자, 이력서에는 편집기자로 되어 있네. 인정받는 능력이라면 편집기자로서의 능력인가?” 

“그보다는 기본 필력 쪽인 것 같습니다. 작년에 우리 신춘문예에 소설로 등단했는데, 벌써 베스트셀러에 들어간 책이 두 권입니다.” 

“잘 팔리는 책이라는 게 우리가 필요한 필력을 보증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제 개인 견해입니다만, 이불휴 씨의 경우에는 예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뭐랄까, 간단히 말해 문장만 해도 풍성하고 힘차기 그지없습니다.” 

그때 회장이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보자, 이 신문 이거 가톨릭 신문 아닌가? 해방 전 ‘남선(南鮮)일보’인가 뭔가 하는 경제지를 가톨릭 재단이 인수해 만든.” 

“맞습니다. 하지만 가톨릭 신문은 아닙니다. 경제지는 더욱 아니고. 지방신문이지만 4·19 때는 바른 소리 하다가 어용단체한테 테러까지 당한 적이 있지요.” 

이번에는 사장이 나서 그렇게 바로잡아주고 다시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정도 성과를 거뒀다면 오히려 소설에 전념해보지 그래, 우리 주필이 저기 있지만 사람마다 양쪽 모두를 겸할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아서.” 

그런데 깐깐한 그 목소리가 묘하게 그의 심사를 건드렸다. 이건 상견례가 아니고 면접이다, 나는 서울의 대신문사에 스카우트된 게 아니라 면접시험에 지원한 것 같다, 그러자 자신도 모르게 불쑥 뒤틀린 대답이 나갔다. 

“실은 서울에 올라와 소설 한번 제대로 써보고 싶어 이력서를 냈습니다. 하지만 기자로서의 본분에도 소홀하지는 않겠습니다.” 

그 말에 마주하고 있던 다섯 사람 모두가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특히 원로 소설가이기도 한 주필은 그에게 무슨 눈짓까지 보냈으나, 그는 그걸 제대로 해독할 겨를이 없었다. 

“소설 제대로 써보기 위해 우리 신문사로 옮기고 싶다, 그것 참 별난 지원 사유구먼.” 

사장이 알아보게 차가워진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며 자기 앞에 있는 그의 이력서를 다시 훑어보았다. 속으로는 이미 그를 받아들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던 편집국장과 주필은 굳은 얼굴로 말이 없었고, 회장만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가만히 그를 건너다보았다. 그때 특히 그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 편집국장이 몇 가지 기자로서의 능력이나 강점을 보증해줄 만한 이력을 물어 이상하게 꼬여가는 분위기를 바로잡아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잠시 입을 다물고 그를 바라보다 다시 자기 앞에 놓인 이력서를 훑어보던 회장이 지나가는 소리처럼 한마디 툭 던졌다. 

“어째 입학과 전학은 수다한데 졸업은 국민학교 빼면 하나도 없네. 그것 참.” 

그 말을 듣자 그는 잠깐 난감해졌다. 대답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구구하고 길어질 것 같아서였다. 그때 회장 곁에서 말없이 서류를 뒤지고 있던 사장이 방금 회장이 지적한 곳을 훑다가 눈을 번쩍 뜨듯 한 곳을 응시하더니 그를 보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학을 그만둔 게 1970년도 2월로 되어 있는데, 자퇴로 되어 있군. 보통 쓰는 중퇴와 무엇이 다르오?”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으로 자퇴서를 내고 떠났습니다. 나중에 한번 돌아가 볼까 싶어서 알아본 적이 있는데, 과연 제적이나 퇴학하고는 다르더군요.” 

“그 전해가 삼선 개헌 반대 데모가 한창이라 제적 퇴학이 많았는데, 혹시 그런 쪽과는 관련이 없소?” 

그렇게 시작되면서 그에게 한동안 그 면접은 은근히 짜증 나면서도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신문같이 되어갔다. 편집국장과 주필이 간간 끼어들어 분위기를 바꾸려고 시도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우리 해직 기자들 가운데 그 무렵 학번이 많아서, 또는 무슨 투위(鬪委) 위원장도 그 학번이지, 하며 묘하게 눈을 번쩍이는 걸 보고 마침내 참지 못한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제가 무얼 잘못 헤아린 것 같습니다. 신문기자 직업을 효율 높은 작가의 부업으로 여기거나 신문사를 전업 작가 후원기관으로 착각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 무지와 무례도 사죄드리고 이만 물러갈까 합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무언가 사뭇 민망하고 또 미안해하는 느낌으로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던 주필이 그런 그의 옷깃을 잡듯 하며 처음으로 엄한 목소리를 냈다. 

“이불휴 작가, 나도 있는데 이거 너무 기고만장한 거 아뇨? 집안에 일꾼을 하나 불러 써도 이것저것 알아보고 쓰는 법, 그래도 이만한 신문사 기자를 뽑는 일인데 오죽하겠소? 앉아요. 앉아서 이 어른들 물음마저 듣고 충분하게 답한 뒤에 일어나도록 하시오.” 

신념을 위해 화형(火刑)도 마다 않은 14세기 영국의 양복공 바드비 이야기로 1950년대 우리 사회에 섬뜩한 충격과 감동을 준 대 선배의 나무람에 퍼뜩 정신이 들었으나, 되돌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그는 한 번 더 공손하게 머리 숙여 어른들 앞을 물러나는 예를 다하고 조용히 그 회의실을 벗어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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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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