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호

“실력으로 증명할 테니 외모 얘기는 그만!”

‘역전 女神’으로 부활 안신애

  • 글 | 엄상현 기자|gangpen@donga.com

    입력2015-10-22 14: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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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력으로 증명할 테니 외모 얘기는 그만!”
    5년 만의 우승답게 화끈했다. 시즌 3번째 메이저 대회 이수그룹 KLPGA챔피언십(9월 10~13일). 안신애(25)는 2라운드까지 이븐파로 공동 60위, 맨 꼴찌였다. 10언더파를 친 이민영, 조윤지 등 선두와 무려 10타 차. 간신히 컷오프를 통과했다. 3라운드에서도 3언더파를 줄이는 데 그쳐 23위. 올해 3승을 올린 이정민이 9언더파로 선두에 1타 차로 따라붙었다.

    마지막 4라운드. 대역전극이 펼쳐졌다. 안신애는 전반에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몰아치며 8언더파로 끌어내렸다. 부담이 된 걸까. 선두를 달리던 이민영이 3타를 잃어 7언더파로 주저앉고, 이정민도 11번 홀까지 2타를 잃어 7언더파가 됐다.

    단독 선두에 오른 안신애는 후반에도 보기 없이 모두 파로 마무리했다. 이민영과 이정민이 후반에 1타씩을 줄여 공동 선두로 복귀했고, 8언더파로 시작한 서연정도 가세해 공동 선두는 4명이 됐다. 이어진 연장 4차전. 안신애는 3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3명을 차례로 따돌리고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KLPGA 대회 사상 연장전에서 3연속 버디가 나온 것도, 최하위로 컷오프를 통과한 선수가 우승한 것도 처음이다.

    누구보다 기뻐한 이는 늘 그를 따라다니던 아버지다. 대회 이틀 전 발을 다쳐 딸의 우승 현장을 지켜보진 못했다. 안신애는 “아버지와 시상식 직전에 통화를 했는데, 전화 너머로 우셨다. 우시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고 했다.

    안신애는 그다음 경기에서 팔꿈치 통증을 느껴 대회 출전을 잠시 뒤로 미루고 치료에 들어갔다. 올해 초엔 무릎 부상으로 고생했다. 그의 몸 상태부터 물어봤다.



    ‘참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

    “다행히 많이 좋아졌어요. 팔꿈치 통증이 전혀 없는 건 아닌데, 남은 4경기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무릎도 좀 시리지만 많이 쓰면 아플 정도예요.”

    ▼ 요즘 어떻게 지냅니까.

    “다시 연습량을 좀 늘리면서 시즌 중에 고치고 싶었던 문제점을 보완하고 있어요. 피곤하면 무릎 부상 여파로 하체가 움직임을 멈추는 현상이 좀 나타나요. 힘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면 비거리도 줄어 이런 점을 바로잡는 연습을 합니다. 스윙이며 테크닉도 교정하고요.”

    ▼ 우승한 후 달라진 게 있나요.

    “먼저 마음이 좀 편안해진 것 같아요. 전에는 내년 시드(출전권) 걱정 때문에 시합 나갈 때면 초조했거든요. 걱정도 됐고. 이젠 그럴 필요 없잖아요(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면 4년간 출전권을 보장받는다). 또 많은 분이 저를 ‘여성스러운 골퍼’라고만 생각하는데, 이번 우승으로 ‘참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란 걸 증명한 것 같아 정말 좋았어요. 골프도 잘 안될 때가 있는 건데,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것 같아서 힘들었거든요.”

    ▼ 우승 후에도 경기에 대한 기사보다 외모와 관련된 기사가 더 많이 나오더군요.

    “기분이 좋을 리 없죠. 그런 기사 때문에 늘 외모에만 신경 쓰는 선수로 비쳐져 속상해요. 결국 실력으로 보여주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 초등학교 3학년 때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죠.

    “겨울방학 때 온 가족이 두 달 정도 작은아버지 집에 놀러갔는데, 골프 치기도 좋고 영어 배우기도 좋은 환경이어서 저와 어머니는 남고 아버지만 들어오셨어요. 2년 동안 떨어져 지내다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을 접고 뉴질랜드로 오시면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골프를 배웠죠. 1년 만에 시니어 국가대표가 됐어요. 대회에 나가 유명한 선수들과 함께 경기하면서 좋은 경험을 많이 했어요. 그때 정말 빠르게 성장한 것 같아요.”

    ▼ 성적이 어땠나요.

    “국가대표를 4년 정도 했는데, 매년 두세 차례 이상 우승한 것 같아요.”

    “비거리 위해 몸매 포기할 수야”

    ▼ 그러다 고교 2학년 때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프로의 길을 선택해야 할 시기였어요. 한국에서 국가대표를 할 만한 실력인지도 궁금했고요. 1년쯤 아마추어 생활을 했는데, 국가대표까지는 아니고 상비군 정도의 성적은 됐어요. 아마 국가대표 실력이 됐더라도 바로 프로로 전향했을 거예요.”

    ▼ 첫해 신인왕을 차지하고 그다음 해 2승을 올렸습니다.

    “꿈에 그리던 나날이었죠. 많은 이에게 기쁨을 주고, 또 그들로부터 축하를 받았으니까.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았죠. 그런데 나중에 슬럼프에 빠졌을 때 그런 기억들 때문에 오히려 더 힘들고 쓸쓸했던 것 같기도 해요.”

    ▼ 왜 갑자기 슬럼프에 빠졌나요.

    “귀국 이듬해 2월에 어머니가 유방암 판정을 받으셨어요. 그 스트레스 때문인지, 저도 그해 5월에 장출혈로 수술을 받았어요.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죠. 골프에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이번에 배운 건데, 작은 부상이라도 무리하지 않고 쉬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조금만 쉬면 금방 회복되거든요. 대회에 안 빠지려고 무리하면 나중에 더 심하게 아프더라고요.”

    ▼ 어떤 성격인가요.

    “보기보다 털털해요. 제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애교도 많아요.”

    ▼ 슬럼프가 길었는데,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올해 초 부상 때문인지 평소 쓰던 클럽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어요. 시즌 중반에 과감히 아이언을 바꾼 게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지난겨울 전지훈련의 도움도 컸죠. 이번에는 팀이 아니라 혼자서 훈련하다보니 제가 하고 싶은 것, 제게 필요한 훈련을 집중적으로 하면서 실력이 많이 는 것 같아요. 비거리를 늘리고 싶어서 살도 조금 찌웠죠.”

    ▼ 비거리를 늘리려면 하체가 튼튼해야 한다고 하던데.

    “비거리가 는다고 무조건 성적이 좋아지는 건 아니에요. 저는 올해 초 부상으로 비거리가 줄었는데, 아이언 샷 감각이 살아나면서 숏 게임에서 충분히 커버가 됐어요. 물론 비거리가 길면 좋지만, 그걸 위해 몸매를 포기할 순 없죠. 저도 여자거든요(웃음).”

    ▼ 멘털 때문에 상담도 받았다던데, 달라진 게 있어요?

    이전에는 무슨 문제가 생기면 원인에 집착하면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미 문제는 생긴 거니 어떻게 해결해갈까’를 먼저 생각해요. 골프 할 때도 예전엔 버디 퍼트 기회를 놓쳐 파 퍼트도 어렵게 되면 ‘왜 잘못 쳤을까’ 자책하기 일쑤였는데, 이젠 ‘어떻게 잘 처리할까’를 먼저 생각하죠.”

    ▼ 지난해에 “30세 이전에 은퇴하겠다”고 했는데, 아직 유효한가요.

    “아뇨, 생각이 바뀌었어요. 몇 년간 골프가 잘 안 풀리면서 힘이 들어 그런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최대한 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 ‘언제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어요.”

    “짧은 치마 입어도 잘 쳐요”

    ▼ 결혼 생각은 없어요? 이상형은?

    “제가 빨리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하겠죠. 이상형은 듬직한 남자? 키가 컸으면 좋겠고, 운동한 몸매에, 애교가 많고, 눈은 좀 처지고…. 그런 남자 있을까요, 하하.”

    ▼ 어떤 골프 선수가 되고 싶은가요.

    “우리나라엔 골프를 그저 강인한 스포츠로 인식하는 분이 많은데, 사실은 굉장히 부드럽고 우아한 스포츠예요. 피겨의 김연아, 테니스 선수 마리아 샤라포바의 여성미는 인정하면서 왜 골프 선수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지…. 골프는 품격과 여성미가 넘치고, 짧은 치마를 입어도 잘 칠 수 있고, 그러니 여성들이 우아하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어요.”



    Lady 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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