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호

“경기용으로만 생각 말고 30년 쓸 시설 지어라”

동계올림픽 개최지 현지취재-미국 솔트레이크

  • 솔트레이크·파크시티 = 조성식 기자 | mairso2@donga.com

    입력2015-10-22 17: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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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용으로만 생각 말고 30년 쓸 시설 지어라”

    설상경기가 열린 유타올림픽파크 내 스키점프대. 아래에 풀장과 암벽등반 시설을 갖춰놓았다.(왼쪽) 빙상 경기가 열린 솔트레이크 유타올림픽오벌.(오른쪽)

    한국인에게 ‘오노 반칙 사건’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미국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은 운영이나 경영, 시설 활용 면에서 성공한 올림픽의 전형이라는 평을 듣는다. 기존 시설 활용과 효율적 분산 개최, 사후 지속적 수익모델 개발 등이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솔트레이크 올림픽은 2002년 2월9~25일까지 16일간 열렸다. 솔트레이크를 비롯해 7개 도시에서 78개 종목이 개최됐다. 동계올림픽 경기는 크게 빙상경기와 설상경기로 구분한다. 솔트레이크 올림픽 설상경기는 대부분 파크시티에서 열렸다. 7월 하순 이 도시에 있는 유타올림픽파크 탐방으로 취재를 시작했다.

    파크시티 올림픽?

    인구 8000명이 채 안 되는 파크시티는 관광으로 먹고산다. 스키장, 골프장, 공원이 많아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공기가 좋고 풍광이 뛰어나 부자들의 고급 별장이 즐비하다. 선댄스영화제가 열리는 매년 1월이면 전 세계 영화 팬으로 북적인다. 올림픽 이후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 올림픽 관련 대외 홍보와 마케팅은 이곳 상공회의소가 주관한다.

    상공회의소 홍보팀 직원 제프 스와츠(Geoff Swarts)는 쾌활하고 의욕이 넘치는 청년이었다. 취재진을 반갑게 맞은 그는 여자친구가 7월 광주에서 열린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때 미국 축구팀 대표로 뛰었다며 한국에 ‘엄청난’ 호감을 표시했다.



    한여름치고는 선선한 날씨였다. 스키장 아래에 아담하고 우아한 호텔 여러 채가 자리 잡았다. 공동 소유 형태의 이 호텔들은 관광객 숙박용이지만 각종 컨벤션 시설로도 활용된다. 주말에는 음악회 따위의 콘서트도 열린다. 여름엔 스키 코스를 이용한 산악자전거가 인기다.

    산 중턱에 오르니 바람이 거세다. 일종의 스키 박물관인 퀴니웰컴센터에 도착하자 아나운서 출신 칼 뢰프케(Carl Roepke)가 반갑게 맞았다. 퀴니웰컴센터는 이 지역 스키 발전에 큰 공을 세운 사업가 조 퀴니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솔트레이크 올림픽 때 경기 중계를 맡았던 칼은 “많은 사람이 (올림픽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 이 센터를 만든 목적”이라고 말했다.

    “올림픽 개최 몇 년 전부터 홍보용 이벤트를 마련하고 모자와 마스코트 등을 팔아 자꾸 알려야 한다. 2018년 동계올림픽이 어디서 열리는지, 평창이 어딘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평창도 미리 시작해야 한다.”

    기대치 이상의 만족감

    올림픽 경기가 열린 스키점프대에 올라보니 아찔하다. 아래 설치된 풀장이 이색적이다. 선수의 착지 연습용이지만 일반인도 요금을 내면 이용할 수 있다. 풀장 한쪽에 벽을 세워 암벽등반도 할 수 있게 해놓았다.

    이 모든 일은 올림픽유산재단(Olympic Legacy Foundation)에서 기획하고 관리한다. 올림픽이 끝난 직후 발족한 이 민간재단의 업무는 올림픽 시설을 활용하고 보존하는 것이다. 주 정부나 시의 지원 없이 다양한 수익사업으로 재원을 마련해 독립적으로 운영한다. 예컨대 취재진(기자, 통역인, 가이드)이 타본 봅슬레이도 수익사업의 하나다. 누구나 75달러만 내면 올림픽 당시의 코스 그대로 탈 수 있다. 신체 허약자와 디스크 환자 등은 탈 수 없으며 사전에 간단한 안전교육을 받아야 한다.

    봅슬레이 출발 지점은 해발 2300m, 이곳에서부터 고도 125m에 경사 20도, 코너 15회인 코스를 시속 100㎞로 질주한다. 총 길이는 1335m. 취재진은 4인승 봅슬레이에 탑승했다. 앞자리엔 가이드 구실을 하는 코치가 탔다. 통이 비좁아 팔꿈치를 오므리고 무릎을 바싹 굽혀야 했다.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빨랐다. 코너 돌 때마다 헬멧이 통에 부딪히는 바람에 머리가 쾅쾅 울렸고 팔꿈치와 무릎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기록은 1분06초64. 짧은 체험이었지만, 올림픽을 즐기고 기억하는 데는 백 마디 말보다 나았다. 평창이 가야 할 길이 보이는 듯했다.

    반바지 차림의 브래드 올치(Brad Olche)는 키가 190㎝쯤 돼 보이는 거인이다. 1990~2002년까지 임기 4년의 파크시티 시장을 세 차례 연임한 그는 솔트레이크 올림픽의 산증인이다. 시장이 되기 전엔 올림픽유치위원회 위원으로 전 세계를 누볐다. 취임 후엔 올림픽 관련 예산을 늘리고 다양한 시설을 지었다. 재임 중인 1995년 올림픽 유치가 결정됐다. 인터뷰는 시청사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경기용으로만 생각 말고 30년 쓸 시설 지어라”

    시속 100km 봅슬레이에 탑승해 올림픽 경기 코스를 체험한 취재진.

    ▼ 솔트레이크 올림픽이 열리기 전 뇌물 스캔들이 터졌다. 유치 과정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에게 뇌물을 건넨 사실이 드러났는데.

    “유치위원 대부분이 국제 체육계 관행을 잘 몰랐다. 다른 나라들(역대 개최국)이 해온 걸 따라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됐다. 올림픽조직위원회는 모든 일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걸 배우게 됐다.”

    ▼ 미국이기 때문에 넘어갈 수 있었던 것 아닌가. 다른 나라에서 그런 큰 스캔들이 터졌다면 올림픽 개최가 어렵지 않았을까.

    (그가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잠시 뜸을 들인 뒤 말했다)

    “스캔들이 터진 후 조직위원회 지도부에 변화가 생겼다. 오히려 올림픽 개최에 도움이 됐고, IOC 내부를 정화하는 등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

    1억 달러 남겨

    ▼ 성공한 올림픽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요인을 꼽는다면?

    “첫째, 기존 시설물을 많이 활용한 덕분에 비용이 적게 들었다. 또한 시설들이 서로 가까이 위치해 이용하기에 편리했다. 둘째, 솔트레이크 및 파크시티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다. 필요 인원보다 많은 사람이 자원봉사자로 활약했다. 많은 외국인 선수와 관광객이 자원봉사자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기존 시설물 활용의 대표적 예는 메인 스타디움이다. 유타대학교 미식축구장을 개·폐막식 장소로 활용한 것. 기록에 따르면 솔트레이크 올림픽 자원봉사자는 약 1만 명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기대치를 뛰어넘는 만족감을 안겨야 한다”고 말했다.

    “운이 좋아 2주간 최고의 날씨가 계속됐다. 편리한 교통수단도 한몫했다. 매일 밤 시내 중심부 메달플라자에서 메달 증정식과 콘서트가 열리는 등 이벤트와 즐길 거리가 많았다.”

    ▼ 당신은 어떤 일을 했나.

    “어릴 때부터 세계 각국의 올림픽을 많이 봐 올림픽 유치에 대한 열망이 컸다. 올림픽이 얼마나 위대한지 잘 알기에 주민에게 내 경험담을 얘기하며 공감을 이끌어냈다. (1995년) 유치가 결정된 후 해마다 정부 세수에서 올림픽자금으로 32분의 1을 떼어 시설과 장비를 갖추는 데 사용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 정부에 되돌려주는 조건이었다. 다 갚고 남은 돈이 1억 달러쯤 된다. 순수익이다. 이 돈을 올림픽유산재단에 넣어두고 올림픽 시설과 장비를 유지, 보수, 관리하는 데 사용한다. 내가 알기론 올림픽이 끝난 후 우리처럼 관련 시설을 많이 활용하는 도시가 없을 것이다. 그것도 이익을 내면서.”

    “경기용으로만 생각 말고 30년 쓸 시설 지어라”

    솔트레이크 올림픽 유치에 큰 공을 세운 전 파크시티 시장 브래드 올치. 솔트레이크 올림픽 홍보책임자 마일즈 래드맨. 솔트레이크 올림픽 때 방송 아나운서로 활약한 칼 뢰프케.(왼쪽부터)

    “평창? 너무 걱정하지 말라”

    ▼ 솔트레이크 올림픽이 돋보이는 이유가 바로 그 두 가지인 듯싶다. 흑자 운영과 시설물의 사후 성공적 활용.

    “맞다. 하나 덧붙이면 지속적 기억에 따른 홍보효과다. 역대 올림픽 개최 도시 중에는 대회가 끝난 후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사라지는 도시가 많다. 하지만 우리는 지속적으로 국제대회를 유치해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찾아오게 만들었다.”

    ▼ 사후 활용의 예를 들자면?

    “유타대학교에 마련한 올림픽빌리지(선수촌)로 학생 기숙사 문제를 해결했다. 텔레커뮤니케이션, 정보, IT 관련 기반시설을 주민이 이용한다. 관광산업도 커지고, 마케팅 기법도 발전했다. 사실 솔트레이크는 미국인도 잘 알지 못하는 도시였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난 후 대기업 본사가 들어오고 관광객이 늘었다.”

    ▼ 평창에 조언을 한다면?

    “먼저 정부는 한국의 문화예술을 알리고 고유의 멋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는 주민과 자원봉사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것이 성공의 결정적 열쇠다.”

    ▼ 주의해야 할 점은?

    “없다(웃음). 잘될 것이라는 긍정적 생각이 중요하다. 올림픽을 부담으로 여기지 말고 최대한 즐겨라. 올림픽은 축배이자 특혜의 시간이다.”

    마일즈 래드맨(Myles Rademan)은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연설가다. 솔트레이크 올림픽 성화 봉송자이기도 한 그는 대회 기간에 홍보팀 책임자로 활약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올림픽이 성공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했다.

    ▼ 올림픽 때 어떤 역할을 했나.

    “전(前) 시장과 13년간 같이 일했다. 올림픽조직위 위원으로 기획과 홍보를 맡았다.”

    ▼ 7개 도시에서 분산 개최했는데, 파크시티의 비중은?

    “전체 경기의 40%가 파크시티에서 열렸다.”

    ▼ 솔트레이크 올림픽이 아니라 파크시티 올림픽 아닌가(웃음).

    “솔트레이크는 파크시티에 없는 공항이 있고, 도로와 통신망 등 기반시설이 잘 발달했다. 솔트레이크와 파크시티 둘 중 하나만 있었다면 유치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두 도시는 경쟁 아닌 협력으로 올림픽 성공을 이끌어냈다.”

    ▼ 사후 시설 활용계획은 어떻게 짰나.

    “처음부터 그걸 염두에 두고 준비했다. 그런 계획을 제대로 수립하지 않았다면 이미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실용성 없는 시설과 이벤트는 ‘하얀 코끼리’와 같은 허상일 뿐이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의 연령대는 10~30세다. 올림픽을 개최한 장소에 어린 선수들을 데려다 훈련시켜야 한다. 대회는 17~18일간 열리지만 시설물은 30년간 써먹어야 한다.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명찰에 깃든 서비스 정신

    그는 “평창이 경쟁 도시여서 2002년 이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고 했다.

    “지금 기자가 하는 것처럼 우리도 올림픽을 개최했던 5개 도시를 방문해 조사하고 배웠다. 릴레함메르(노르웨이·17회)는 배울 점이 많았다. 나가노(일본·18회)는 시설물 사후 활용 계획이 거의 없었다. 그런 점에선 소치(러시아·22회)도 마찬가지다. 캘거리(캐나다·15회)는 부적절한 장소에 시설을 지었다.”

    ▼ 평창은 IOC의 분산 개최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벤트 효과를 생각하면 한 지역에서 개최하는 게 좋다. 분산 개최는 분위기를 띄우는 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참가하는 사람은 대부분 선수와 그 가족이다. 그들의 편의도 고려해야 한다.”

    그는 “평창올림픽이 성공할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는 기자의 말에 평창이 서울에서 얼마나 떨어졌는지, 주변에 큰 대학교가 있는지 등을 물어왔다. 기자의 답변을 듣고 나서는 입지 조건이 불리하긴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미국의 레이크플래시드는 뉴욕에서 차로 3시간 거리지만 두 번이나 올림픽을 개최했다. 돈을 남기겠다는 생각에 집착해선 안 된다. 설사 손해가 나더라도 국민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높아진다면 적자가 아니다. 우리는 기존 시설을 많이 활용한 덕분에 큰돈이 안 들었다. 사후 불필요한 시설은 짓지 않았다. 올림픽 1년 후 파크시티 재정은 적자였다. 13년이 지난 지금은 세 수입만 3배로 늘었다.”

    그가 꼽은 올림픽 성공 요인 중 특히 귀에 꽂힌 것이 서비스 정신이다.

    “올림픽이 열리기 몇 해 전부터 호텔 직원을 비롯한 각종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손님 접대법을 교육했다. 날씨가 추우면 난로를 피우라는 둥 세세한 점까지 일러줬다. 자신이 손님이라면 어떤 대접을 받고 싶은지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외국어를 하는 직원은 문구가 적힌 명찰을 달게 했다. 예컨대 ‘나는 프랑스어를 한다’라는 식으로. 또한 어디든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장소 표지판을 꼼꼼하게 배치했다. 화장실을 충분히 갖추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는 홍보맨답게 언론 종사자에 대한 서비스도 강조했다.

    “올림픽이 성공하는 데는 미디어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는 주요 언론사뿐 아니라 군소 언론사 기자도 잘 대우해줬고 그들은 좋은 기사로 보답했다. 심지어 출입증을 받지 못한 기자들의 식사까지 챙겼다. 미디어는 사건·사고에 민감한 속성을 지녔다. 거기에 대비해야 한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자들에게 모든 사안에 대해 친절하고도 구체적으로 설명해줬다.”

    “경기용으로만 생각 말고 30년 쓸 시설 지어라”

    유타올림픽오벌 빙상경기장에서 연습 중인 미국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좋은 얼음에서 좋은 기록

    “경기용으로만 생각 말고 30년 쓸 시설 지어라”

    유타올림픽오벌 경기장 지하에 있는 암모니아 냉동 파이프 시설.

    그는 “중요한 건 시설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힘줘 말했다.

    “올림픽이 끝난 후 많은 젊은이가 살고 싶은 곳이 돼야 한다. 파크시티엔 올림픽에 참가했던 선수가 많이 산다. 금메달리스트만 60명이다. 꿈과 재능 있는 청소년이 몰려들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올림픽 시설을 잘 활용해야 한다.”

    솔트레이크에 있는 대표적 경기장은 유타올림픽오벌. 이곳에는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아이스하키 경기시설, 수영장 등이 있다. 체육관 입구에 미국 쇼트트랙의 영웅 안톤 오노의 모습을 담은 대형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실내 벽면에는 신기록 보유자 명단과 기록이 새겨졌다. 매년 빙상대회를 치르기 때문에 명단은 수시로 바뀐다. 이상화, 신석희, 곽윤기 등의 이름이 보였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경기장”이라고 시설관리 책임자 토드 포터(Todd Porter)가 말했다. 고도가 높고(1500m) 정제된 물을 사용하고 얼음 저항이 작은 점을 그 이유로 꼽았다.

    토드의 안내로 경기장 곳곳을 돌아봤다. 쇼트트랙 경기용 트랙에서는 마침 미국 국가대표팀이 연습 중이었다. 롱 트랙(스피드스케이팅)은 보수공사 중이었다. 아이스링크 옆에 육상경기용 트랙도 있다. 일반인도 2달러만 내면 이용할 수 있다. 겨울엔 한 달 평균 4만 명이 이 경기장을 이용한다고 한다. 선수 연습장이긴 하지만 일반인 이용객이 더 많다. 선수의 경우 1군은 무료지만, 2군은 사용료를 내야 한다. 겨울에는 국내외 대회가 자주 열린다. 스피드스케이팅 국제 대회는 매년, 쇼트트랙 대회는 2년에 한 번꼴로 열린다. 주변에 쇼핑몰과 호텔을 지어 상권을 형성했다.

    지하시설도 둘러봤다. 냉매제인 암모니아 냉동 파이프가 들어찬 대형 창고가 인상적이었다, 사고 대비 시스템이 잘 갖춰진 듯했다. 그밖에 빙판에 뜨거운 물을 뿌리는 데 필요한 보일러 시설, 녹은 얼음물을 정제 후 사용하는 필터링 시스템, 모니터 시스템 등을 살펴봤다.

    “경기용으로만 생각 말고 30년 쓸 시설 지어라”

    유타올림픽오벌 시설관리 책임자 토드 포터.(왼쪽) 스포츠 프로그램 감독인 데렉 파라는 솔트레이크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다.(오른쪽)

    이 경기장 스포츠 프로그램 감독인 데렉 파라(Derek Parra)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키가 160㎝에 지나지 않는 그는 스피드스케이팅에서는 작은 체구가 불리하다는 통설을 깨고 세계 정상에 오른 희귀한 선수다. 그는 인터뷰에서 “쇼트트랙에 맞는 체구이지만, 당시 내가 합류할 팀이 없어 스피드스케이팅을 선택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원래 인라인스케이터였다. 국제대회에서 18회나 수상하면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후 뒤늦게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전환했다. 1998년 나가노올림픽 때 대표팀 선수로 선발됐으나 행정 착오로 경기장에서 뛰지 못했다.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에 출전해 그 한을 풀었다. 1500m에서 금메달, 50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그의 나이 32세였다. 4년 뒤 그는 선수 겸 코치로 토리노 올림픽에 출전해 팀의 우수한 성적을 이끌었다.

    ▼ 솔트레이크와 토리노 대회의 경기장 시설을 비교하면 어떤가.

    “토리노는 오직 경기용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안 쓴다. 반면 솔트레이크는 다목적 경기장을 만들어 지금도 잘 활용한다. 빙상경기장 관중석은 대부분 고정식이다. 그 탓에 선수가 연습할 공간이 비좁다. 솔트레이크는 이동식으로 만들어 그런 문제점을 해소했다.”

    선수·관중 편의 고려해야

    ▼ 선수로서 솔트레이크 올림픽의 대회 운영을 평가한다면?

    “잘된 점은 얼음 상태가 좋았다는 것이다. 얼음이 깨끗해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실내온도도 적절했다. 편의시설도 가까웠다. 나가노와 토리노는 라커룸까지의 거리가 멀었다. 나쁜 점은 9·11사태(대회 6개월 전 발생) 영향으로 안전과 보안에 너무 신경을 써서 불편을 빚은 것이다. 교통체증이 심해 선수촌에서 경기장으로 이동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 이 체육관의 프로그램은 어떤 것인가.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피겨스케이팅, 아이스하키, 컬링 등 5개 종목을 단계별로 가르친다. 코치 30명이 교육하는데 일부 종목은 자원봉사자가 거들기도 한다.”

    그가 같은 인라인스케이터 출신인 안톤 오노를 잘 안다기에 물어봤다.

    ▼ 많은 한국인은 솔트레이크 올림픽에서 김동성 선수가 안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 탓에 금메달을 빼앗겼다고 여긴다. 같은 선수로서 어떻게 평가하나.

    “김동성은 반칙을 하지 않았다. 앞서 가는 사람이 어떻게 반칙을 할 수 있나. 심판 판정이야 어쩔 수 없지만, 나는 김동성이 금메달을 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평창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내가 선수 출신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얼음 상태에 관심이 많다. 좋은 얼음에서 좋은 기록이 나오기 때문이다. 시설을 지을 때 선수와 관중의 편의를 고려해야 한다. 선수와 운영위원 간 소통 채널도 필요하다. 나는 여러 올림픽 경기장을 가봤다. 늘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골조물이 무너지거나 지붕이 내려앉기도 한다. 그때 당황하지 말고 곧바로 수습할 수 있는 여유와 역량을 갖춰야 한다.”

    솔트레이크는 어떤 도시?

    미국 중서부 유타주는 드넓은 사막과 협곡, 고원이 많다. 면적은 한반도 크기지만 인구는 300만에 지나지 않는다. 공업과 광업이 발달했으며 국립공원만 3개일 정도로 주변에 볼거리가 많다. 인구의 70%가 모르몬교 신자로 알려졌다.

    기독교 소종파인 모르몬교는 1830년경 조지프 스미스가 뉴욕주 맨체스터에서 창립했다. 이단으로 낙인찍혀 박해를 받았으며, 창시자는 대통령선거에 나왔다가 폭도들에게 살해당했다. 후계자 브리검 영이 신도들을 이끌고 로키 산맥을 넘어와 건설한 도시가 바로 유타주의 주도(州都)인 솔트레이크다. 구리와 석탄 등 자연광물이 많이 나는 이곳은 대륙횡단 철도 및 도로교통의 요지로 자리 잡으면서 부자 도시로 발돋움했다. 세계 최대 노천 구리광산이 있다.

    종교도시 솔트레이크에는 유흥가나 환락가가 없다. 유난히 금욕생활을 강조하는 교리 때문이다. 올림픽 개최 이후 스포츠 도시와 관광 도시로 거듭났다. 해발고도가 높고(1330m) 눈이 많이 오는 곳이라 스키나 등산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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