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호

설채현의 ‘반려견 마음 읽기’

강아지 겨울 우울증 이기는 비법

  • 설채현 수의사·동물행동전문가

    dvm.seol@gmail.com

    입력2019-01-1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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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정말 추운 계절이 왔다. 12월 초 온도가 뚝 떨어지며 출근길 자동차 핸들을 잡은 손이 덜덜 떨리고 몸도 마음도 얼어붙기 시작했다. 추위가 멈칫할 때면 불쑥불쑥 찾아오는 미세먼지까지 겹쳐 최근 목감기를 앓고 있다. 입만 열면 ‘캑캑’ 거리고 있으니 반려견의 겨울나기도 걱정이 된다.

    강아지도 사람과 같은 동물이다. 사람처럼 추위를 타고 감기에 걸리며 겨울이 되면 우울감도 느낀다. 그래서 오늘은 반려견과 함께 겨울을 날 때 주의할 내용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첫째로 강조할 것이 겨울 산책이다. 나는 겨울이 반려견에게 잔인한 계절이라고 생각한다. 큰 이유가 산책 부족이다. 보호자들이 몸과 마음이 얼어붙어 야외로 나가려 하지 않으니, 자기 의사대로 집 문을 나설 수 없는 반려견은 사실상 감금 상태에 놓이게 된다. 우리나라에 오래 거주한 외국인이 가장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겨울이 되면 그 많던 반려견이 어디로 가는가’다. 봄가을은 물론 ‘아프리카보다 덥다’는 평을 듣는 한여름 무더위에도 산책을 마다 않는 보호자들이, 겨울에는 왜 그렇게들 ‘방콕’을 택하는 걸까.

    반려견 문화 선진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나는 동물행동학을 공부하고자 미국 미네소타에 간 일이 있다. 미국에서도 춥기로 유명한 지역인데, 마침 내가 갔을 때 이례적인 한파까지 몰아닥쳤다. 학교로 걸어갈 때면 순식간에 콧속 수분이 다 얼어붙어 코 안이 따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거리는 항상 눈에 덮여 인도와 차도를 구별할 수 없었다. 어디를 걷든 발목까지 눈 속에 푹푹 빠졌다. 우리나라라면 강아지 코빼기도 보기 어려웠을 그 상황에서도, 미네소타의 반려견들은 온몸에 주렁주렁 눈송이를 매단 채 도시 곳곳을 즐거운 듯 뛰어다녔다.


    계절성 우울증 몰아내는 산책의 힘

    물론 미국과 우리나라의 반려견 문화가 다소 달라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미국 사람들은 반려견이 웬만하면 집에서 배변, 배뇨를 하지 않도록 가르친다. 아주 어릴 때부터 무조건 집 밖에서 일을 보도록 가르치니 하루에 2~3회는 밖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다. 일단 교육을 잘 받고 나면 안쓰러울 정도로 말을 잘 듣고 잘 참아내는 우리 반려견들은 주인이 산책을 시켜주지 않으면 24시간 이상 오줌을 참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신장에 무리가 가고 건강 전반에 이상이 올 수 있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반려견과 함께 밖에 나가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미국 보호자들은 산책을 ‘무조건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 덕에 반려견 대부분이 주기적으로 집 밖을 나가 산책 욕구를 풀어낸다. 반면 우리나라는 ‘몸이 힘들다’ ‘날씨가 춥다’ ‘눈이 내렸다’ 등 여러 이유를 대며 산책을 꺼리는 보호자가 많다. 핑계를 찾기 가장 좋은 계절이 바로 겨울이다.

    그러면 안 되는 이유를 이제 설명하겠다. 계절성 우울증(SAD·Seasonal Affective Disorder)이라는 질환이 있다. 많은 사람이 이미 느끼고 있겠지만 겨울이 되면 우울감을 느끼고 무기력해지는 증상을 말한다. SAD가 찾아오는 이유에 대해 조금만 검색해봐도 일조량 감소, 운동 부족 등이 원인이 되는 걸 곧 알 수 있다. 서두에 밝혔듯 반려견도 우리와 같은 동물이다. 보호자가 움츠러들고 우울감에 빠지면 반려견 역시 SAD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최근 행복호르몬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세로토닌(serotonin)도 햇빛을 받고 운동을 할 때 많이 나온다. 그렇잖아도 일조량이 줄어들어 집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줄어드는데 산책까지 안 하게 되면 사람이나 강아지나 행복호르몬이 부족해지고 우울감과 예민함, 문제행동도 늘어난다.


    노령견, 소형 단모종은 혹한 산책 시 옷 입혀야

    사실 겨울에는 해가 짧아져 산책을 한다 해도 세로토닌을 충분히 생성하기 어렵다. 많은 보호자가 퇴근 후 반려견과 산책하는데, 한겨울에는 오후 5시만 돼도 해가 넘어가기 때문이다. 일반 동물병원은 겨울에 한가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행동 상담을 주로 하는 우리 병원은 오히려 ‘아이가 평소 안 하던 행동을 해요’ 하며 진료실 문을 두드리는 보호자가 늘어난다. 나는 겨울이 되면 강아지들이 햇빛 찬란한 시간에 충분히 산책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겨울에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위험 요소가 많고 조심해야 할 것도 많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게 추위다. 몸이 털로 뒤덮여 있긴 하지만 강아지도 추위를 느낀다. 일반적으로는 사람보다 추위에 강하지만 크기, 종의 특성에 따라 편차가 크다. 일부 사람들은 강아지에게 옷을 입히는 문화에 대해 거부감을 느낀다. 외국에서는 안 그러는데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옷을 입힌다고 말하는 경우도 봤다. 나도 오직 미용 목적으로 강아지에게 옷을 입히는 데는 반대한다. 하지만 대형견에 비해 상대적으로 추위에 약한 소형견을 많이 키우는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상황에 따라 적절한 옷을 입히는 게 오히려 강아지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노령견처럼 면역력이 약한 개, 소형 단모종, 호르몬성 질병으로 털이 잘 자라지 않는 반려견 등과 겨울 산책을 나설 때는 옷을 입히는 걸 추천한다. 대신 실내 공간은 대부분 충분히 따뜻하므로 실내에서까지 옷을 입히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반려견이 계속 옷을 입고 있으면 털이 엉키고 피부 호흡을 하지 못해 피부 트러블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옷 입기 싫어하는 강아지가 있다는 것이다. 옷을 입힐 때 보호자를 물려고 하는 경우도 제법 많다. 대부분 다리에 옷을 끼울 때 거부반응을 보인다. 이런 반려견을 키우는 보호자는 다리를 끼우지 않는 형태의 옷을 장만해 다시 시도해보는 게 좋다. 끝내 실패할 경우 옷을 입히지 않고라도 산책을 나가는 게 좋다. 추위로 인한 위험보다는 산책을 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가 더 크다는 얘기다.

    우리도 겨울에 집을 나설 때 옷을 두껍게 입었다가 몸을 움직이면서 하나하나 벗어 봄여름철과 다를 바 없는 복장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산책 나온 강아지들도 계속 움직이니 몸에 열이 난다. 옷 입기를 거부한다는 핑계로 산책을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대신 산책하며 반려견 상태를 잘 관찰하자. 반려견도 추우면 몸에 열을 만들기 위해 사람처럼 벌벌 떤다. 만약 자주 다니던 산책로를 걷고 있고, 반려견이 두려워할 게 전혀 없는 상황인데도 개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게 보이면 그때는 산책을 그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다.

    겨울철 반려견과 함께 산책할 때 보호자들이 많이 하는 걱정 중 하나는 발이 시리지 않을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는 발바닥 시림을 많이 느끼지 않는다. 반려견 발바닥에서는 우리가 좋아하는 보리차 냄새가 나고 말랑말랑하다. 이 조직은 아주 두꺼운 지방층과 각화상피세포, 즉 딱딱한 각질로 이뤄져 있다고 보면 된다. 사람처럼 신발을 신도록 진화한 게 아니라서 물이고, 흙이고, 돌바닥이고 얼마든지 뛰어다닐 수 있다. 눈길보다 더 척박한 환경에서도 걸어다니는 데 불편함이 없다.

    또 일본 수의학자 니노미야 히로요시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개 발바닥에는 동맥과 정맥이 가깝게 지나간다. 동맥의 따듯한 기운을 정맥에 바로 전달할 수 있는 특별한 체온 보존 및 순환 시스템을 갖고 있어 추운 상황도 잘 견딜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요즘 도시에서 산책할 때는 신경 쓸 게 하나 있다. 사람들이 눈을 녹이려고 뿌리는 염화칼슘이다. 염화칼슘은 개의 발에 자극을 주고 트러블을 일으킬 수 있다. 더욱 위험한 일은 반려견이 염화칼슘을 먹는 것이다. 눈을 먹다가 염화칼슘을 먹을 수도 있고, 발에 묻은 염화칼슘을 보호자가 잘 씻겨주지 않은 상태에서 발을 핥다가 염화칼슘을 섭취할 수도 있다. 염화칼슘을 먹으면 구토 설사 등 소화기 이상 증상을 일으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산책 대신 간식? 반려견 망치는 행동

    만약 반려견이 신발을 신는 데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눈이 오고 염화칼슘이 뿌려진 듯 보이는 날엔 산책할 때 신발을 신기는 것을 추천한다. 신발에 거부감이 많아 신기기 어려운 반려견이라면 강아지용 풋밤 제품을 발라 발바닥을 보호해주거나, 산책 후 반려견이 발을 핥지 않도록 주의하고 따뜻한 물로 충분히 발을 씻어준 뒤 잘 말려주는 게 좋다.

    겨울철에는 반려견 식이 조절도 중요하다. 많은 이가 산책을 자주 나가지 못하는 미안함을 집 안에서 반려견에게 간식 주는 것으로 풀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보호자의 자기 위로에 불과할 뿐, 나쁜 것을 더욱 나쁘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강아지의 산책 욕구는 간식 몇 개로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가뜩이나 운동량이 줄어든 반려견에게 고열량 간식을 주면 당연히 살이 찔 수밖에 없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행동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감기와 독감에 주의해야 한다. 겨울철이 되면 강아지도 감기에 잘 걸린다. 최근에는 ‘켄넬코프(Kennel cough)’라고 하는, 예전부터 많이 걸리던 감기뿐 아니라 독감도 점점 유행하는 추세다. 사람들이 독감 예방 백신을 맞듯 반려견 백신도 신경 써야 한다.

    무엇이든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최근 개의 호흡기 질병은 쉽게 낫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번 걸리면 오래 고생한다. 집에 가습기를 틀면 감기 같은 호흡기 질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만약 반려견이 거위울음 같은 소리를 내거나 콧물이 나거나 식욕이 떨어지면 바로 동물병원에 데려가는 게 좋다.



    설채현
    ● 1985년생
    ● 건국대 수의대 졸업
    ● 미국 UC데이비스, 미네소타대 동물행동치료 연수
    ● 미국 KPA(Karen Pryor Academy) 공인 트레이너
    ● 現 ‘그녀의 동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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