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호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변강쇠와 옹녀는 행복했을까?

  • 난임전문의 조정현

    입력2019-02-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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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모 공중파 방송에서 섹스리스(sexless) 부부가 집중 조명받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스님하고 사는 여자, 수녀하고 사는 남자’라는 글이 화제다. 그만큼 섹스리스 부부가 늘고 있다는 얘기다. ‘섹스리스 부부’는 최근 1년간 성관계 횟수가 월 1회 이하일 때를 가리킨다.

    국내 유명 설문조사 기관들에 따르면, 섹스리스 부부 중에는 30~40대도 적지 않다. 성의학연구소 조사 결과, 30~40대 부부의 36.1%가 섹스리스 부부고, 각방을 사용하는 부부의 64%가 섹스를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뜨거워도 시원찮을 나이에 섹스리스 부부가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 부부관계에 대한 강박관념, 업무 스트레스, 경쟁심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심지어 가임기 부부에게 섹스리스는 치명적이다. 이들 중에는 허송세월하다가 잠재적 난임(難妊)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섹스리스 부부는 성욕(리비도·libido)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돼 살까? 그럴 리가. 인간의 성욕이란 현실에 따른 기회의 부재(不在)로 상상 속에 머물고 있을 뿐, 호시탐탐 재도약을 꿈꾸기 마련이다. 인터넷상에서 야설과 야동이 홍수를 이루고, 꾸준히 전석 매진을 기록 중인 창극이 다름 아닌 ‘변강쇠와 옹녀’를 소재로 한 작품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촉각을 포기했을지언정 청각과 시각은 여전히 리비도를 향하며 부족한 2%를 채우고 싶어 한다.


    오르가슴 느낄 때 정자 상태도 좋아

    그렇다면 찬찬히 짚어보자. 섹스의 화신이자 하늘이 내린 커플, 변강쇠와 옹녀의 결말은 과연 어떤지. 오호! 통재라, 대단히 비극적 결말임을 알 수 있다. 유광수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가 쓴 ‘변강쇠와 옹녀의 슬픈 자화상’의 표현을 빌리자면, ‘쇠처럼 단단하고 강한 성기’를 지녔을법한 ‘강쇠’와 그런 강쇠의 성기를 한없이 조여줄 것만 같았던 ‘옹녀’의 만남이건만 이들의 짜릿한 부부관계는 아이러니하게도 비극으로 결말을 맺는다.



    먼저 이름도 맹랑한 월경촌에 사는 옹녀라는 여인의 기구한 인생을 들여다보자. 기록에 따르면 옹녀는 열다섯에 처음 얻은 서방이 첫날밤 너무 흥분한 나머지 복상사로 죽는 것으로 시작해 ‘입 한 번 맞춘 놈’ ‘젖 한 번 움켜쥔 놈’ ‘손 한 번 만져본 놈’은 물론이고 ‘눈요기한 놈’ ‘치마를 훔쳐다가 변태스럽게 자위한 놈’까지 모조리 죽어 나갔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변강쇠는 멀쩡했다. 사내란 사내는 옹녀와 연(緣)만 닿으면 줄줄이 송장이 돼 나가는 반면 변강쇠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옹녀와 속궁합까지 아주 좋았다. 천둥이 치고 몸이 오그라들 정도로 강렬하고도 짜릿한 통정(通情)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둘은 살림을 합쳤다.

    문제는 변강쇠였다. 사내가 허구한 날 낮잠만 퍼 자고, 밤에는 통정할 생각만 했다. 어느 날 옹녀는 땔감이라도 해오라며 변강쇠 등을 떠밀었는데, 버럭 성질을 내고 마지못해 나간 변강쇠는 산 어귀에 있는 장승을 쪼개 땔감으로 가져와 태워버렸다. 이 일로 변강쇠는 장승의 혼령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는 다 피가 나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옹녀는 또다시 홀로 남게 됐다.

    성욕의 최극치인 오르가슴(orgasm)을 매일 느끼고 살았을, 속궁합 만점짜리 부부에게도 불화는 있기 마련이었다. 변강쇠는 왜 그토록 무능한 가장이었을까. ‘무자식’이라는 점도 일조했으리라 생각된다. 산부인과 의사이기에 내린 결론만은 아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도 있긴 하나, 인간의 삶을 바르게 이끄는 채찍 중에서 자식을 능가할만한 존재가 또 있을까. 오죽하면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에서 옹녀는 어머니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오르가슴이란 말이 나왔으니 난임의사로서 한마디 거들겠다. 오르가슴은 성적 흥분 시 절정을 맛보며 피가 골반으로 몰려 자궁 수축이 수초 동안 지속되고, 자궁이 커지고 곧추서게 되는 극도의 신체적 흥분 상태를 말한다. 믿기 힘들겠지만 이러한 오르가슴의 최대 목적은 바로 종족 보존에 있다.


    성적 쾌감과 맞닿아 있는 산고

    오르가슴을 느끼는 순간 자궁경부는 정액을 받기 위해 살짝 문이 열리고 요도 또한 이완되며 골반 근육이 수축한다. 정액을 한껏 받아들인 자궁은 이후 30초 동안 수축한다. 오르가슴을 느끼는 여성의 자궁에 진입한 정자는 나팔관(이하 난관/난자가 기다리는 있는 곳)까지 빠르게 달려간다. 정자 도착 시간이 평균 30분이라면, 오르가슴을 느꼈을 땐 단 5분으로 충분하기도 하다. 오르가슴을 느끼면 자궁 내 내막세포들이 섬모운동을 해 정자를 강하게 위쪽(난관으로) 밀어 올려주기 때문이다. 정자를 받기 위한 자기부상 궤도를 만드는 셈이다. 남성 역시 오르가슴을 느끼며 사정(射精)할 때가, 임신에 대한 스트레스(강박관념)를 안고 사정할 때에 견주어 정자 상태가 훨씬 좋다. 한 비뇨기과 교수는 “60대 후반 노인에게 정액 검사를 해보니 형편없었는데 섹스비디오를 보여주고 다시 검사를 하니 이번에는 정자가 우글우글했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자연적인 본능에 이끌려 사정을 하면 정자 활동성이 좋을 뿐 아니라 정자 수도 더 많이 배출된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오르가슴이 성적 쾌락을 넘어서 생명의 탄생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분만 과정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쾌감 절정의 순간에 분비되는 호르몬이 옥시토신인데, 이는 분만 시 다량 분비된다. 옥시토신이 자궁 수축 호르몬이기 때문이다. 자궁근에 작용해 수축을 유발하고 분만을 유도하는, 즉 천연 분만촉진제가 바로 옥시토신이다. 성적 쾌감 그 절정의 순간과 산고(産苦)가 일맥상통하는 셈이다.

    어디 이뿐인가. 인간은 수시로 옥시토신을 분비한다. 남성의 경우 진한 우정을 느끼거나 비즈니스에서 좋은 성과를 얻었을 때가 대표적이다. 여성은 아기에게 젖을 물릴 때, 자식과 친밀해질 때 다량 분비된다. 이는 모성애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포옹을 자주 할수록 옥시토신 분비가 늘어나고 그만큼 음식 섭취량이 줄어든다는 보고도 있다. 최근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치료제로도 옥시토신을 사용한다.

    섹스리스 부부가 많은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편 부부간의 사랑은 단순한 남녀 간의 사랑을 뛰어넘는다는 걸 명심할 필요가 있다. 섹스하지 않는 부부도 일상에서 문득 옥시토신 분비를 체험하며 사랑을 쌓아갈 수 있다. 물론 부부관계를 통한 옥시토신 분비에 더욱 정성을 다하라는 충고를 하고 싶다. 덕분에 아이 울음소리가 전국에 울려 퍼지면 그것만큼 고맙고 기쁜 일이 어디 있겠나.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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