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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안보에 희생된 경기북부의 오늘

포천·연천·동두천에 흐르는 눈물

  • 최창근 객원기자 caesare21@hanmail.net

〈르포〉 안보에 희생된 경기북부의 오늘

  • 경기도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시를 둘러싸고 있다. 그중 북부지역은 명실상부 ‘수도권’이지만 6·25전쟁 후 중첩 규제에 시달리면서 발전 속도가 뒤처졌다. 군부대가 모여 있는 포천, 연천, 동두천 등 이른바 경기북부 3천 지역 주민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크다. 이들 세 지역을 찾아 현장 목소리를 들어봤다.
1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포천시 전철 7호선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촉구 1만명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1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포천시 전철 7호선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촉구 1만명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1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경기 포천시민 1만3000명이 모였다. 군 사격장 이전 및 지역 개발을 위한 국책사업 시행을 요구하는 ‘실력 행사’였다. 이들은 특히 지하철 7호선 양주 옥정-포천 구간 19.3㎞ 건설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관내 로드리게스 사격장 등 모든 군 시설의 상·하수시설, 분뇨 및 쓰레기 처리에 대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공사 금액 1조391억 원이 예상되는 7호선 연장 사업은 이용객 부족을 이유로 사업 승인이 불투명한 상태였다. 포천 주민의 염원이 반영된 결과인지 1월 29일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에 이 구간 건설이 포함됐다. 이로써 포천시는 지역 개발의 전기를 맞았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의견이다.


군부대에 발목 잡힌 지역 발전

포천시는 산세가 수려하다. 연간 7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산정호수도 자리하고 있다. 다만 곳곳에 군(軍)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다. 서울시의 1.4배에 달하는 시 면적 중 24%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상태. 특히 지역 주민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것은 해당 군 시설의 용도다. 포천시 관내에는 미군시설 4개소, 한국군 시설 5개소 등 모두 9개의 군부대 사격훈련장이 있다. 군사보호시설이라 주변 지역 주민이 건축 등 개발에 제약을 받는 것은 물론 소음공해에도 시달린다. 설상가상으로 사격장에서 날아드는 도비탄(跳飛彈·돌과 나무 등에 맞고 굴절돼 날아온 총탄), 불발탄 등으로 인한 위협도 받는다.

사고가 잦은 곳은 ‘영평훈련장’으로 불리는 로드리게스 사격장이다. 1950년부터 운영 중인 미 8군 관할 훈련장으로, 포천시 영중면 영북면 창수면 등 3개 면에 걸쳐 있다. 아시아 최대 규모 미군 훈련장이다. 이곳에서는 연평균 300일간 사격훈련이 진행된다. 영중면 영평리 주민 박득기 씨 말이다.

“사격 소음은 말로 다 못 하죠. 그나마 낮에 사격 연습을 해서 소음이 발생하는 것은 견딘다 칩시다. 문제는 밤이에요. 밤에는 좀 쉬어야 할 것 아닙니까? 견디다 못해 사격장 입구에 몰려가 소리 지르고 꽹과리 치고 하면 며칠 좀 잠잠합니다만 그때뿐이죠.”

그는 안보를 위해서라며 70년 가까이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는 정부와, 주민의 고통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언론에도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웃 주민 이범모 씨도 고통을 호소했다. 그는 “도비탄과 소음 문제는 주민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항의하니 그나마 요즘 좀 나아진 편”이라며 “이제는 불발탄이 가장 큰 걱정”이라고 했다. 사격장 건너편 산을 가리키며 “불발탄이 날아들어 산불이 시도 때도 없이 난다”고도 했다.



1월 18일에도 로드리게스 사격장 훈련 중 산불이 발생했다. 인근 불무산에서 발화한 불은 21일까지 사흘 밤낮으로 이어졌고, 산림청 소방헬기 5대, 군 헬기 2대 등을 동원한 끝에 꺼졌다. 인근 주민들은 “거주지 근처에서 발생하는 산불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게 일상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포천시 영북면과 창수면 일대에는 미군 2사단 관할 건트레이닝 사격장, 폭파훈련장, 소총사격장 등이 더 있다. 2015년 4월에는 포천시 영북면 김태봉씨 자택 옥상에 인근 사격장에서 날아든 105mm 대전차 연습탄이 떨어졌다. 도비탄으로 지붕에 지름 40cm 구멍이 났고, 콘크리트 내부 철골 구조물이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2017년 4월에도 포천시 성동리 민가에 도비탄이 떨어지는 등 유사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포천시 영중면 영평리에는 로드리게스 사격장 주 출입문이 있다. 4m 높이의 방호벽에 둘러싸인 사격장 입구에는 ‘포천 군관련 시설 범시민대책위원회’ 농성 천막이 세워져 있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안전 대책 강구, 사격장 이전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다.

영평리를 취재하던 도중 정체를 알 수 없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영중면 영평리, 영송리에 산재한 분뇨처리장 및 하수종말처리장,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음식물쓰레기처리장 등에서 발생하는 악취였다. 일대에는 관련 시설이 밀집해 있다. 이를 두고 이용주 영평리 이장은 “사람들이 포천을 떠나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군 사격장도 모자라 온갖 혐오시설이 밀집해 있는데 누가 이곳에서 살겠나”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사격장이 주민 건강을 위협한다는 주장도 했다. “포탄에 있는 각종 중금속과 발암 물질이 수십 년간 땅에 누적돼 지하수를 오염시켰고, 그 영향으로 지역 주민들의 암 발병 비율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용주 이장도 지난해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성장이 외면한 경기북부의 한숨

평일 일과가 끝나면 병사가 부대 밖으로 외출할 수 있는 ‘병사 평일 일과 이후 외출제’가 전국적으로 시행된 2월 1일, 육군 장병들이 외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1]

평일 일과가 끝나면 병사가 부대 밖으로 외출할 수 있는 ‘병사 평일 일과 이후 외출제’가 전국적으로 시행된 2월 1일, 육군 장병들이 외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1]

군 시설 영향으로 고통받는 건 포천 시민만이 아니다. 6·25전쟁 후 경기도는 강원도와 더불어 접경지대이자 분단의 비극을 상징하는 지역이 됐다. 의정부시, 고양시, 구리시, 남양주시, 동두천시, 양주시, 파주시, 포천시, 연천군, 가평군 등 한강 이북 8개 시, 2개 군 등 이른바 ‘경기북부’가 직·간접 영향을 받고 있다.

경기북부 지역은 서울에 인접한 수도권이지만 도로, 철도, 상·하수도 등 사회간접자본(SOC)은 이 명칭이 무색할 만큼 낙후돼 있다. 2017년 기준 경기도 재정 규모는 15.3조 원으로 19.3조 원의 서울시에 이은 전국 2위다. 그러나 경기도내 시·군 단위 지역내총생산(GRDP) 합계는 남부가 북부보다 3배가량 많다. 경기남부 21개 시·군 재정자립도는 평균 51.5%로, 경기북부 10개 시·군 평균 36.0%보다 훨씬 높다.

사회간접자본 투자율 면에서도 경기북부의 낙후성은 두드러진다. 2015년 7월 기준, 경기북부 도로보급률은 0.94로 전국 최하위를 기록했다. 인접한 서울(3.33), 인천(1.59) 등과 비교할 때 격차가 크다. 경기북부 주택보급률, 상·하수도 보급률 등도 전국 하위권이다. 경기북부가 이처럼 낙후성을 면치 못하게 된 근본 원인은 중첩된 규제다. ‘수도권정비계획법’ 적용을 받을 뿐 아니라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지역도 적잖다. 경기북부에서도 포천시, 동두천시와 연천군 등 지명에 ‘내 천(川)’자가 들어가는 3개 시·군은 가장 낙후된 지역에 속한다. 분단과 안보라는 현실 속에서 발전의 뒤안길에 남은 대표적 지역이기도 하다.

용산역에서 출발한 서울 지하철 1호선 경원선 구간 전철은 북쪽 끝 소요산역에서 멈춰 선다. 이곳에서 휴전선 이남 최북단역 강원도 철원군 백마고지역까지 가려면 동두천역에서 출발하는 통근열차를 이용해야 한다. 동두천역을 출발해 소요산역, 초성리역, 한탄강역, 전곡역을 거친 열차는 29분 후 연천군청 소재지 연천역에 도착했다.

연천군은 남쪽으로 동두천시, 양주시, 파주시, 포천시와 접하며 서쪽으로는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북한 황해북도 장풍군, 동쪽으로 강원도 철원군과 마주한다. 경기도 내 31개 시·군 중 인구가 가장 적은 기초자치단체다. 연천역에서 도보 10분 반경에 펼쳐진 연천읍내는 시간이 멈춰버린 도시로 보였다. 1970~80년대 시대극 세트를 방불케 하는 낡고 우중충한 건물로 가득했다. 그나마 신식 건물은 역에서 도보 1분여 거리에 있는 연천군청과 군의회 청사 정도가 전부다. 황량한 읍내에는 인적마저 드물었다. 간간이 군인용품점에 드나드는 군인들이 눈에 띄었다.

연천군은 대표적 군사도시로, 전체 면적의 94.75%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다. 지역 발전의 유일한 돌파구는 이의 해제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국방개혁 2.0과제 중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군사시설 조성 추진계획에 따라 전국적으로 군사시설보호구역을 해제했다. 연천군 전곡읍 간파리, 늘목리, 양원리 일대 2107만㎡도 이에 포함됐다. 이로 인해 주택 신·개축은 물론 소소한 개·보수 때도 관할 부대와 관청 허가를 받아야만 했던 불편이 일부나마 해소됐다.

국방부는 다른 희소식도 발표했다. 2월 1일부터 실시된 장병 평일 일과 후 외출 제도다. 이 제도 시행으로 연천군 상주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군 장병이 일과 후 외출을 통해 소비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연천 지역 경기 활성화가 기대된다. 1월 18일 연천군은 관내 주둔 부대 인사담당 장교, 관내 상인협의회 대표 등과 함께 평일 장병 외출 전면 시행계획에 따른 민·관·군 합동 간담회를 개최했다. 간담회를 주관한 박성남 부군수는 “그동안 접경지역 특성상 유동 인구가 적어 상인들의 고충이 컸다. 장병 평일 외출제도가 시행되면 지역 경제 활성화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연천군 관내 군 장병은 약 3만 명. 그중 3000~5000명에게 평일 외출이 허락될 것으로 예상된다.


동두천에도 봄이 올까

경기 동두천시 캠프케이시 인근 미군 클럽 거리. [동아DB]

경기 동두천시 캠프케이시 인근 미군 클럽 거리. [동아DB]

‘경기북부 3천’ 중 남은 하나는 동두천시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7월, 미군 2보병사단이 주둔하면서 동두천 구(舊)도심이 형성됐다. 당시 원주민들은 동두천 남단으로 소개됐다. 소요산 자락 요지는 미군 부대가 차지했다. 미군 기지는 동두천에 ‘양날의 칼’이었다. ‘기지촌’이라는 오명을 가져다 준 존재이자 지역 경제의 버팀목이었다. 캠프 케이시(미 제2보병사단 본부) 인근 보산동 외국인 관광특구에는 전성기 때 500개에 달하는 업소가 불야성을 이뤘다. 반면 동두천시 전체 면적의 42%를 차지하는 미군기지들로 인한 도시개발 지연, 지역 발전 정체로 인한 손실액은 1952~2009년까지 17조4511억 원, 연간 3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계된다(경기연구원 2010년 보고서).

시내 요지를 점한 미군기지들로 인해 기형적으로 성장한 동두천시는 최근 미군으로 인해 다시금 복구 불능의 손실을 입고 있다. 미군 철수와 기지 이전 때문이다. 2004년 동두천시 주둔 미군 병력의 50%가 이라크에 파병됐다. 미군 관련 업소 40%가 휴·폐업을 하는 타격을 입었다. 이후 미군기지 평택 통·폐합 이전으로 한때 2만 명에 달하던 미군 병력은 2000명 선으로 줄었다. 동두천시 보산동 일대 미군 상대 업소는 현재 150곳 수준이다. 그나마 대부분 개점 휴업 상태다. 캠프 케이시 정문 앞에서 음식점을 하는 이인숙 씨는 “미군기지 이전으로 지역 상권이 다 죽었다. 대책 없이 나가라고 하면 어찌하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미군기지 부지 반환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도 문제다. 미군 공여지 중 반환된 토지는 현재 전체 면적의 절반 수준이다. 문제는 캠프 님블과 짐볼스 훈련장, 캠프 캐슬 일부 등 3곳의 반환 공여지가 산악지대이거나 변두리여서 경제적 가치가 없다는 점이다. 캠프 캐슬 부지만 동양대 북서울캠퍼스로 재활용되는 실정이다. 구도심 노른자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캠프 케이시와 캠프 호비는 2020년에나 기지 이전 및 반환 절차를 시작할 예정이다. 반환 후 기지 오염 정화에도 최소 몇 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동두천시가 ‘기형적’인 도시에서 벗어나기 위한 청사진을 그리기에는 세월이 요원한 셈이다. 이 속에서 동두천시 경제는 끝 모를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동두천시는 재정자립도(14%)와 고용률(49.5%), 실업률(5.1%) 등 경기 지표 면에서 경기도 최하위를 기록했다. 취재 중 만난 한 상인은 “자족 능력이 없는 동두천의 특성상 산업 단지 유치 등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도시 공동화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첩된 규제에 묶여 낙후된 경기북부, 그중 연천·포천·동두천은 지난 70년간 ‘안보’라는 대한민국 전체를 위한 ‘공익’적 가치를 위해 희생당했다. 이들의 희생을 어떻게 보상해야 할까? 이제 대한민국 전체가 답할 차례다.




신동아 2019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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