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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전상 통해 자금 세탁… ‘요지경’ 증여 백태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환전상 통해 자금 세탁… ‘요지경’ 증여 백태

  • ● 증여를 차입으로 꾸며 증여세 면탈
    ● 토지는 父 보유, 건물은 子에 분할 증여
    ● 허술한 국세청 감시망, 부정 증여 양산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 아파트값이 급등하면서 부동산을 증여하는 이가 늘고 있다. [동아DB, GettyImages]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 아파트값이 급등하면서 부동산을 증여하는 이가 늘고 있다. [동아DB, GettyImages]

직장인 안다혜(31) 씨는 얼마 전 대학 동기 A의 얘기를 들으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A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서라도 부모 재산을 물려받는 게 중요하다. 과세 당국이 전 국민의 금융거래를 꼼꼼하게 확인하는 건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으니 운 좋게 발각되지 않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석 달간 편법 증여 의심 454건 적발

A는 증여세 탈루 성공담도 당당하게 늘어놓았다. 안씨에 따르면 A는 아버지에게 돈을 빌렸다는 내용의 차용증을 작성하고 나서 아버지 통장 계좌에 넣은 이자를 아버지가 다시 현금자동인출기(ATM)로 출금해 A에게 되돌려주도록 했다. 이 돈은 A가 구입한 아파트의 대출금 상환에 고스란히 쓰였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는 성인 자녀에 대한 증여세 면제 한도가 10년간 5000만 원(미성년자는 2000만 원)으로 규정돼 있다. 한도를 초과하면 증여 금액의 10~50%를 증여세로 물어야 한다. A는 아버지로부터 2년 가까이 매달 250만 원가량을 보조받으면서 증여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그사이 A의 집값은 1억8000만 원 가까이 올랐다.

안씨는 “서민이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고도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사이, 자산가들은 아예 처음부터 증여세 면탈을 목적으로 부모가 자녀에게 자금을 빌려준 것처럼 꾸며 과세 당국 조사에 대응하고 있다. 법을 지키는 사람만 바보인가 싶어 속이 끓는다”며 격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최근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상속세 등 과세 기준이 크게 강화되면서 세금 부담이 늘어나자 불법 혹은 편법 증여를 시도하는 이가 늘고 있다.

 1월 4일 국세청은 자금 여력이 부족한 연소자 등의 주택 취득, 소득 대비 고액 자산 취득 등 세금 탈루 혐의가 있는 828명을 대상으로 세무조사에 착수해 탈루 세금 2000억 원을 추징했다고 밝혔다. [국세청 제공]

1월 4일 국세청은 자금 여력이 부족한 연소자 등의 주택 취득, 소득 대비 고액 자산 취득 등 세금 탈루 혐의가 있는 828명을 대상으로 세무조사에 착수해 탈루 세금 2000억 원을 추징했다고 밝혔다. [국세청 제공]

2021년 6월 2일 국세청은 그해 3월 구성한 ‘개발지역 부동산탈세 특별조사단’의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국세청이 관계기관에 수사를 의뢰한 의심 사례는 454건이다. 유형별로는 △자금 출처 불분명 321건 △법인자금 유출 통한 토지 매입 61건 △토지 취득 과정에서 탈세 28건 △농업법인 및 기획부동산 판매수익 누락 26건 △중개업자 수수료 신고 누락 18건이다. 국세청은 또 토지 취득자금 편법 증여 및 명의신탁 여부, 사업자의 소득·법인세 신고 적정 여부를 정밀 검증하는 등 360건에 대한 세무조사도 착수했다.



정부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증여세 탈루 물색에 총력을 기울이는 사이 자산가들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탈세까지 하며 자산 불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김형석 더 프라임 세무회계사무소 대표 세무사는 “통상 보유 재산이 20억 원대를 넘어서면 미리 증여하거나 처분해서 재산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서울 중심지에 아파트 한 채만 보유해도 20억 원을 웃도니, 어떻게든 자식 명의로 자산을 이전하려고 하는 중산층 이상 부모가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우회 입금에 환치기까지?

증여세 탈루의 전형적인 수법은 ‘ATM을 이용한 현금 분산 증여’다. 부모가 수차례에 걸쳐 은행 창구 또는 ATM을 통해 계좌에서 현금을 빼낸 뒤 자녀 계좌에 다시 입금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은행 전산에 거래 내역이 남지 않아 증여 사실을 숨길 여지가 있다. 실제로 B씨는 ATM과 은행 창구를 통해 자기 계좌에 있는 자금을 수백 차례 인출하고, 이 현금을 아들 계좌에 무통장 입금했다가 2021년 과세 당국에 덜미가 잡혔다. 아들이 이 자금으로 부동산을 사들인 것이 적발돼 증여세 수억 원을 추징당한 것이다.

ATM에 의한 현금 지원 수법은 그나마 단순한 편에 속한다. 고가 아파트 또는 상가 취득을 노리는 사람들은 타인 명의로 무통장 입금, 우회 입금 등을 통한 국내 송금 등 온갖 수법을 동원한다. 임대업자인 부모가 임대료 수익금을 현금으로 관리하면서 무통장 입금과 지인 계좌를 통한 우회 입금 등의 방식으로 자녀에게 현금을 건네주는 식이다.

최근 성행하는 편법 증여 수법 가운데는 ‘환치기’도 있다. 환치기는 통화가 다른 두 나라에 각각 계좌를 만든 후 한 국가의 계좌에 입금한 다음 다른 국가에서 해당 국가의 환율에 따라 입금한 금액을 현지 화폐로 인출하는 불법 외환거래 방식이다. 구체적인 수법을 보자. 자산가는 무자료(無資料·세금계산서 없이 상거래를 하는 행위) 거래로 사들인 물건을 외국에 몰래 수출한다. 일당인 해외 사업체가 현지 화폐로 판매대금을 외국인 환전상에게 지급하고, 이 판매대금은 외국인 환전상과 한국인 환전상을 각각 거쳐 자산가의 계좌로 입금된다. 이후 자산가는 은행 ATM을 통해 현금을 인출해 자녀에게 분산 증여하고, 자녀는 이를 부동산 구입에 사용한다.

은행 등을 통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내외 환전상을 통해 환치기하는 행위는 불법행위다. 현행 외국환거래법에는 거짓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외환을 거래하는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부정 외환거래로 얻은 이익이 3억 원을 초과하면 이익의 3배까지 벌금을 물 수 있다.

자금출처조사 대응 요령 공유

최근 국세청은 자금 여력이 부족한 미성년자가 부동산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편법 증여가 자주 일어난다는 점에 주목해 고액 주택 취득자에 대한 자금출처 조사를 강화하고 있다. [국세청 제공]

최근 국세청은 자금 여력이 부족한 미성년자가 부동산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편법 증여가 자주 일어난다는 점에 주목해 고액 주택 취득자에 대한 자금출처 조사를 강화하고 있다. [국세청 제공]

국세청은 행정안전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과 공조해 자금 출처와 변제 능력이 불분명한 탈루 혐의자에 대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소득지출분석시스템(PCI)과 고액현금거래보고제도(CTR) 등의 자료를 토대로 자금조달계획서와 비교하며 자금 출처 의심 사례를 걸러내는 방식이다. PCI는 신고한 소득에 비해 과도하게 소비하는 경우 정당한 수입이 있었는지 파악하는 시스템으로 2009년 말 도입됐다. CTR은 금융회사가 고객과 일정 기준 이상 현금으로 거래할 경우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하는 제도다. 2006년 1월 도입 당시는 기준액이 5000만 원이었는데 2019년 4월 이후 1000만 원으로 조정됐다. 이를 통해 불법 또는 편법 증여가 의심되는 사람은 국세청에서 자금출처조사를 받는다. 자금출처조사는 자산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자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국세청은 납세자가 자금조달계획서에 기재한 항목 중 차입금 등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본다. 자금 출처가 명확하지 않으면 그 자금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중여받은 것으로 보고 증여세를 과세한다.

최근엔 자금출처조사에 대응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히 나타나는 상황이다. 부동산 정보를 공유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국세청이 자금출처조사서를 보내왔는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고 묻는 게시물이 자주 올라온다. 회원들 사이에서는 “부모자식 간 증여를 차입으로 가장하라. 부동산 등기를 신청하는 날 법무사를 찾아가 부모에게 자식이 돈을 빌렸다는 것을 증빙하는 차용증을 작성해 공증을 받으라”는 내용의 게시물이 인기다. “차용증에 상환 시기, 상환 방법, 이자율, 이자 지급 시기 및 방법 등 구체적인 내용을 기재하라” “차용증 내용과 동일하게 원리금을 상환하라” “국세청에서 자금출처조사서가 나오면 차용증과 통장 내역서를 제출하라” 같은 구체적 조언이 담긴 게시물이 ‘증여세 회피 방법’이란 제목으로 버젓이 공유되고 있다. 심지어 회원끼리 국세청 자금출처조사 대처 요령을 일러주기도 한다.

이상웅 세무사는 “국세청은 채무자 나이, 재산 규모, 상환 능력, 상환 시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므로 위의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반드시 차용증으로 인정되는 건 아니다. 더욱이 납세자가 증여를 차입으로 가장한 사실을 숨기고 소명한다 한들 사후관리 점검 과정에서 탄로 날 가능성이 크다. 증여세를 조금 아끼려다 가족은 물론 사업체까지 세무조사를 받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엔 자녀가 자금 출처를 의심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건물 지분 또는 건물만’ 증여하는 수법도 활용된다. 연식 높은 상업용 부동산을 보유한 자산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방법이다. 상업용 부동산은 토지 가격에 비해 건물 가격이 매우 낮은 편이다. 바로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자산가들은 자녀에게 건물만 분할 증여하는 방안을 택한다. 상업용 부동산 중 토지는 자신이 그대로 보유하고 건물은 자녀에게 일정 지분을 분할 증여해 증여세 재원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인력 부족 탓에 누락되기도

최근 들어 자산가들 사이에서 증여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고강도 부동산 규제 정책의 영향이 크다.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따라 종합부동산세 또는 양도소득세 등 다주택자의 세금 부담이 커졌다. 또한 향후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도 영향을 미쳤다. 경제난 장기화로 풀 죽은 자녀가 증여로 재산을 갖도록 도와주자는 분위기가 확산하는 것.

국세청에 따르면 2020년 1~12월 증여세 신고 건수는 21만4603건으로, 2019년(15만1399건) 대비 41.7%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증여재산가액은 43조6134억 원으로, 전년도(28조2502억 원)에 비하면 54.4% 증가했다. 증여 자산의 상당수는 부동산이다. 전체 증여 재산 중 부동산(건물) 증여재산가액이 19조8696억 원(45.6%)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어 토지 7조8614억 원(18.0%), 금융자산 6조990억 원(16.0%) 순이다.

이처럼 증여 거래가 늘어날수록 불법 또는 편법으로 증여하는 건수가 늘어난다. 그 이유는 “국세청의 감시망이 촘촘하지 못한 탓”이라는 지적이 많다. 시중은행이 금융정보분석원에 1000만 원 이상 현금거래 자료를 전송하고 있지만 이를 들여다보는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 때문에 분석 단계에서 자료가 누락돼 자금출처조사 대상으로 분류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세무사고시회장을 지낸 이동기 조이 세무회계사무실 대표 세무사는 “똑같이 부정한 행위를 일삼아도 누구는 출처자금 조사 대상이 되고 누구는 빠져나가니, 국세청 조사를 비웃는 편법 증여 거래가 만연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국세청의 감시 체계를 검토한 뒤 허점을 찾아내고 어떠한 부정행위라도 법망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감시, 확인하는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동아 2022년 2월호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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