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호

‘재명학’ 일군 이재명의 15년 팬덤 관리술

[강준만의 회색지대] 文과 달리 李는 팬덤 CEO…손가락혁명군의 유산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입력2022-01-2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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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가 직접 밝힌 ‘손가혁’ 모집 요강

    • 8개의 계급 설정한 ‘손가혁 앱’

    • 이낙연 공격한 ‘이재명 SNS 봉사팀’

    • 넘보기 힘든 ‘포노사피엔스’의 지존

    • 무수히 많은 ‘모순 실언’의 사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021년 12월 10일 대구 동성로에서 즉석 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021년 12월 10일 대구 동성로에서 즉석 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국회의원을 움직이는 최고 단위 정치 행위는 팬클럽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청래의 명언이다. 실제로 그가 2016년 20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했을 때 그의 팬클럽이 전화, 문자 폭탄, 탈당계 팩스 등의 공세를 퍼부어 거의 일주일 내내 중앙당과 17개 시·도당의 업무가 마비됐다고 한다.

    정치학자들은 정당 등과 같은 공식 조직을 연구하는 데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그들이 번지수를 잘못 짚고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한국 정치에선 팬덤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상위 조직이며, 정당은 그 하부 기구에 불과하다. 의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공천과 더불어 후원금인데, 이 두 가지는 사실상 팬덤의 규모와 열정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재명학’의 가장 중요한 질문

    의원들이 가끔 “(국정감사 준비를 위한) 군자금이 부족하다. 저랑 의원실 보좌진이 밥을 굶고 있다. 매일 김밥이 지겹다. 염치없지만 후원금 팍팍 부탁드린다”거나 “통장이 텅 비어 마음마저 쓸쓸하다. 한푼 줍쇼”라는 이른바 ‘앵벌이성 후원금 모집 글’을 올려 성과를 얻는 것도 팬덤의 힘을 잘 말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환호하는 팬덤이 있는 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정치인이며, 이를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실천해 보인 인물이 바로 문재인이다.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어찌 실망시킬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이재명은 어떤가. 문재인보다 한 수 위인가, 아래인가. 그런 식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스타일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팬덤의 창업자는 아니다. 그는 모든 걸 노무현으로부터 물려받았다. 그는 팬덤의 비위를 맞추는 데에 급급했을 뿐 팬덤의 구성과 운영에 개입하지 않았다. 반면 이재명은 팬덤의 창업자다. 팬덤의 구성과 운영에 직접 개입한 ‘팬덤의 CEO(최고경영자)’다. 매우 독특하고 희귀한 유형이다.

    한동안 민주당에 불어닥친 ‘재명학(學) 열풍’은 야당으로부터 “1980년대 운동권의 주체사상 교육을 보는 것 같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한 편의 신파극으로 보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 민주당 의원들은 ‘재명학’ 교재인 ‘인간 이재명’(2021)을 읽은 독후감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리기 바빴는데, 다음 독후감에 1등상을 주어도 무방할 것이다.

    “인간 이재명 책을 단숨에 읽었다. 이토록 처절한 서사가 있을까? 이토록 극적인 반전의 드라마가 또 있을까? 유능한 소설가라도 이 같은 삶을 엮어낼 수 있을까?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인간 이재명과 심리적 일체감을 느끼며 아니 흐느끼며 읽었다.”(정청래)

    정치판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50대 후반의 정치인을 흐느끼게 만들 수 있는 이재명의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가. 나는 이게 ‘재명학’의 가장 중요한 질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이재명을 지지하는 열성 팬덤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전에 작살을 좀 내야죠”

    이재명은 2007년 대선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정동영의 비서실장이자 팬카페인 ‘정통들(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의 공동대표를 맡아 활동했다. 그는 “노사모가 분기탱천한 농민군이라면 정통들은 정예 기병부대”라며 특히 경선 과정에서 이른바 ‘천지인 운동’을 펼쳐 큰 성과를 냈다. 천지인 운동은 “아는 사람 1000명을 찾아내자”는 것으로 이 운동을 통해 정동영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는 데에 일조한 것이다.

    이재명은 꾀 또는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다. 천지인 운동은 이재명의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이후 보여준 그의 팬덤 관리술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팬덤 CEO’ 역할에 날개를 달아준 건 바로 SNS였다. ‘2021·2022 이재명론’(2021)의 공동 저자인 장동훈은 “이재명은 ‘SNS 대통령’이라는 별칭을 들을 정도로 온라인상에서 많은 지지자를 확보하고 있다”며 “어쩌면 SNS 시대의 개막과 함께 정치를 시작한 이재명은 행운아다. 그는 SNS 시대에 최적화된 정치지도자인 까닭이다”라고 했다.

    실제로 이재명은 ‘SNS 정치’로 전국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 지명도를 업고 2015년 3월 27일 ‘김어준의 파파이스’ 43화에 출연해 성남시의 복지 사업에 관한 자신의 철학과 비전을 설명해 나갔다. 이에 나꼼수 김용민이 “대통령이 되면 전국적인 무상 산후조리원 하실 겁니까?”라고 묻자, 이재명은 “산후조리원뿐만 아니라요. 그전에 작살을 좀 내야죠”라고 말해 녹화장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이재명의 발언에 김용민·김어준은 한동안 멍하니 이재명만을 바라보았고,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박수가 쏟아졌다. 이는 이재명의 여러 별명 중 하나인 ‘작살’이 생겨나게 된 사건이었지만, 열성적인 팬덤을 구축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한 지지자는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며 환호했는데, 이렇게 전율한 지지자가 적지 않았다.

    2017년 1월 15일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손가락혁명군’ 출정식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뉴스1]

    2017년 1월 15일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손가락혁명군’ 출정식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뉴스1]

    이렇게 속 시원한 말을 거침없이 해대는 정치인을 본 적이 있었는가. ‘손가락혁명군(손가혁)’이라는 이재명 팬덤이 탄생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재명은 이런 식으로 축적한 자신의 ‘명성 자본’을 ‘정치적 자본’으로 활용했다. 예컨대 그는 2015년 9월 29일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손가락혁명’ 동지들의 도움이 필요해요. 기사에 욕설 댓글 난무. 응원댓글 좀 부탁합니다^^ (중략) 얼마나 효과가 크면 국가공무원인 국정원 직원, 군인까지 목숨 걸고 하겠습니까? 기사를 보면 꼭 공감 누르고 댓글 달고 댓글 추천해 주세요. 그게 바로 손가락으로 대한민국을 바꾸는 손가락 혁명입니다.”

    좀 더 체계적인 활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재명은 같은 해 12월 25일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려 손가혁의 모집 요강을 밝혔다. 본격적인 팬덤 CEO로 등극한 셈이었다. 이재명이 밝힌 모집 요강은 “첫째, 손가락이 건강하고 건전할 것. 둘째, 옳은 말과 글에는 마구 흥분할 것. 셋째,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있을 것. 넷째, 새누리당·일베 요원이 절대 아닐 것. 다섯째, 비록 적이라도 욕은 하지 말 것”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후 손가혁의 숫자가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최초로 박근혜 하야 주장한 대권주자’ 타이틀

    2016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손가혁도 바빠졌다. 같은 해 10월 23일 이재명은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손가혁을 위한 ‘작당모의’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행사장에 몰려온 시민 약 3000명은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 구호를 외치며 이재명을 향해 환호를 보냈다. 일부 지지자들은 “이제는 이재명이다, 나라를 구할 이재명이다”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흔들기도 했다.

    이재명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는 우리의 동지들 손가락 혁명 동지들한테 큰절을 드리겠다. 제가 먼저 두려움을 뚫고 혁명적 변화, 국민 변화의 폭풍 속으로 뛰어들겠다”고 화답했다. 토크 콘서트에 참석했던 손가혁은 “지지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전국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왔고 미국 뉴욕에서도 지지자들이 왔다”고 알렸다.

    바로 다음 날인 10월 24일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특종 보도가 나온 이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본격적인 발동이 걸렸다. 10월 29일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사이에 있는 청계광장에 2만 명이 모여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 촛불집회의 주인공은 단연 이재명이었다. 그는 이 집회에서 한 연설로 ‘최초로 박근혜 하야를 주장한 대권주자’라는 타이틀을 얻으면서 대선후보로서 탄력을 받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는 이 집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근혜는 국민이 맡긴 무한 책임의 권력을 근본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에게 던져주고 말았습니다. 박근혜는 이미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잃었습니다. 박근혜는 이미 이 나라를 지도할 기본적인 소양과 자질조차도 전혀 없다는 사실을 국민 앞에 스스로 자백했습니다. 박근혜는 이미 대통령이 아닙니다. 즉각 형식적 권력을 버리고 하야해야 합니다. 아니 사퇴해야 합니다. 탄핵이 아니라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현장에서 이 연설에 깊은 감명을 받은 백승대는 훗날 ‘이재명, 한다면 한다’(2021)라는 책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촛불광장에서 수많은 사람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을 때 문재인 당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떼라’ 팻말을 들고 앉아 있던 모습은 지금까지(대통령이 된 지금까지) 내가 본 문재인 모습 중 가장 비루했던 모습이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2017년 2월 11일 당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촛불집회에 참가해 조기탄핵과 특검연장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2017년 2월 11일 당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촛불집회에 참가해 조기탄핵과 특검연장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2016년 12월 3일 열린 6차 촛불 집회에서 이재명은 “여러분의 손으로 박근혜의 무덤을 파, 우리 손으로 역사 속으로, 박정희의 유해 곁으로 보내줍시다”라고 외쳤다. 또한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 법률상 권한을 행사하고 있지만 이미 대통령이 아닙니다”라며 박근혜를 ‘전 대통령’이라고 불렀다. 이 발언에 청중은 열광했다.

    이날 서울 종로구 내자동의 카페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던 300여 명의 촛불 시민들이 입을 모아 한 정치인의 이름을 연호했다. “이재명!” “사이다!” “한마디 해주세요!” 집회 뒤 늦은 저녁 식사를 하던 이재명은 시민들의 요청에 따라 거리에서 30여 분간 즉흥 연설을 펼쳤다. 이재명은 “재벌체제 해체하고 재벌총수 구속하라!”라고 외치기도 했는데, 이게 또 지지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재명의 과격한 발언은 ‘사이다 발언’으로 불리면서 동영상을 통해 널리 유포됐다. 당시 손가혁을 감동시킨 발언 중 하나는 이런 내용이었다.

    “내가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서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배운 게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너무 착해서 상대 진영도 나처럼 인간이겠거니 하며 믿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어설픈 관용과 용서는 참극을 부른다.”

    문재인 팬덤이 SNS에서 이재명이 형수에게 욕설한 내용을 퍼뜨리는 등 공세를 강화하자 손가혁은 이재명을 위한 앱을 출시했다. ‘손가혁 앱’은 이병부터 4성 장군까지의 승급 기준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손가혁 앱 회원은 가입 즉시 ‘전사’ 계급을 받고 백인장(손가혁 앱 설치 추천인 10명 또는 공유 100회)부터 대장(손가혁 앱 설치 추천인 1000명 또는 공유 1만 회)까지 8개의 계급으로 승급할 수 있었다. 회원이 SNS에 이재명이 올린 글을 공유한 횟수에 따라 1점씩 점수가 쌓이는 방식이었다. 점수가 올라가면 승급이 가능했다.

    손가혁은 ‘싸움꾼’ 이재명을 사랑했고, 이재명은 그런 사랑에 부응했다. 그는 2017년 1월 7일 “지난 대선은 3·15 부정선거를 능가하는 부정선거” “세월호 참사는 제2의 광주학살” 등과 같은 과격한 발언을 난사했다. 그는 1월 15일 ‘손가락혁명군 출정식’에서 이렇게 외쳤다.

    “여러분, 진실과 정의가 승리하는 세상을 위해 손가락을 많이 써야 합니다. 뜻이 같은 사람과 소통을 자주 하고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함께 행동하면 부패한 대한민국은 결국 엎어질 것입니다.”

    “나는 ‘만독불침(萬毒不侵)’의 경지”

    이재명은 2017년 2월 출간한 ‘이재명은 합니다’에서 “나는 하루에도 수십만 명과 대화를 나눈다. 대화 창구도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카카오톡, 밴드,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유튜브, 인스타그램, 인터넷 카페, 게시판, 블록, 댓글 등 수많은 채널을 통해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친구를 맺고 정보 공유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SNS 세계에서는 하루에 30분씩만 손가락을 움직여도 충분하다. 그런 사람이 1만 명만 넘어도 대한민국에는 변화의 태풍이 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손가락 혁명’이다. 나는 일찌감치 SNS 세계에서 ‘이재명의 손가락 혁명군’을 만났다. 나를 지지하는 팔로어들이 ‘이재명의 손가락 혁명군’을 자처하며 위대한 집단지성을 형성한 것에 한없는 행복을 느낀다. (…) 단언컨대 이제 대한민국의 진정한 변화는 손가락 끝에서 나올 것이다.”

    그러나 어이하랴. 손가락은 혁명을 먹고사는 것을! 손가락의 힘은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선고와 함께 안정 국면이 조성되면서 약화됐고, 4월 3일 민주당 경선은 문재인의 승리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대로 주저앉을 이재명은 아니었다. 그는 경선 패배 후 경기도지사 자리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 5월 9일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은 더는 공격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이재명이 거칠었던 문재인 비판을 멈추고 오히려 찬양조로 돌아서자, 일부 팬덤은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한때 이재명 지지했는데, 내가 손가혁이었는데 왜 (이재명이) ‘문빠가 됐냐?”고 비판한 손가혁이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재명은 “이런 극렬 지지자는 부담스럽다”고 했지만, 이 말은 절반의 진실만 담고 있을 뿐이었다. 달라진 건 이재명이지, 손가혁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이재명은 ‘문재민(문재인+이재명+민주당)’이란 표현을 만들어 유세장에서 틈날 때마다 “문 대통령과 이재명은 문재인 정부를 함께 만든 동지다. 문재인과 이재명은 한몸”이라고 강조했다. 그 덕분에 이재명은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고, 2개월 후 민주당의 ‘대통령후보 감별사’를 자처하는 김어준으로부터 ‘포스트 문재인’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러나 ‘포스트 문재인’에겐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그간 제기된 의혹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정면 돌파 의지를 강조하는 취지로 2018년 11월 1일 기자간담회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명언을 남겼다. 그는 “무협지 화법으로 말하자면 난 ‘만독불침(萬毒不侵)’의 경지”라며 “포지티브가 아니라 네거티브 환경에서 성장했다. 적진에서 날아온 탄환과 포탄을 모아 부자가 되고 이긴 사람”이라고 했다.

    ‘만독불침’의 시험대를 여러 차례 돌파해 낸 이재명에게 가장 큰 시련은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인한 당선 무효 위기였다. 그는 대법원 판결을 5개월 앞둔 2020년 2월 “지사직을 잃고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정치적 사형은 두렵지 않다. 그러나 이제 인생의 황혼녘에서 경제적 사형은 두렵다”는 글을 올릴 정도로 벌벌 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그간 법조계 전관예우를 뿌리 뽑겠다고 공언했던 그는 전관예우를 노린 게 분명한 ‘호화 변호인단’을 꾸렸다. ‘경기도지사 이재명지키기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이재명의 무죄 선처를 구하는 시민 13만여 명의 탄원서를 대법원에 제출했고, 유명 인사 팬덤이 대거 가세했다. 그 규모가 어찌나 대단했는지, 한 야당 의원은 “팬덤이 있는 정치인은 무죄를 호소하고 평범한 서민은 아무리 옳아도 지원을 못 받는다면 ‘팬덤 무죄, 무팬덤 유죄’인가”라고 비판했을 정도였다.

    이재명은 ‘유튜브 대통령’

    2020년 7월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재명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다수의견으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함으로써 이재명의 ‘만독불침’을 다시 입증해 보였다. 당시 이 판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대법관 권순일에 대한 로비 의혹이 1년여 후 대장동 사태가 터지면서 불거지지만, ‘방탄검찰’이라는 방패가 더해지면서 이재명의 ‘만독불침’을 뚫진 못했다. 물론 앞으로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2021년 7월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이재명 SNS 봉사팀’이 이재명의 경쟁자인 이낙연을 ‘기레기’로 부르고, ‘친일’로 규정한 게시물도 공유하는 등의 활동을 벌여 쟁점으로 부각됐다. 그러나 이 또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재명 SNS 봉사팀’의 실체가 무엇이었건, SNS를 통한 이재명 홍보에 관한 한 최고의 선수는 단연 이재명이었다. 하루 종일 틈틈이, 그리고 새벽까지 지지자들의 댓글·문자를 탐독하곤 했으니 말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 후보에게 ‘SNS를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나는 침대 위에서 SNS를 보다가 굴러떨어지기도 할 정도로 많이 본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이재명은 ‘SNS 대통령’일 뿐만 아니라 ‘유튜브 대통령’이기도 했다. 유튜브 공간은 이낙연과 비교해 볼 때 이재명의 독무대였다. ‘경향신문’(2021년 9월 2일)의 취재 결과, 유튜브 구독자 수 기준 ‘친이재명 283만 대 친이낙연 10만’으로, 친이재명 쪽이 28배나 넘는 화력 우세를 보이는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당시 이낙연 캠프는 ‘이낙연 때리기’에 앞장선 친이재명 유튜브에 대해 경기도의 금전적 지원 의혹을 제기했지만, 이미 확 기울어버린 유튜브 운동장을 바로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재명을 지지하는 유튜브에선 “드루킹 잔당은 지금 다 이낙연 쪽에 가 있다. 이낙연은 그걸 활용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이나, “생계형 기자 이낙연의 전두환 찬양 굴욕기” 같은 자극적인 내용이 나오고 있었지만, 이낙연 캠프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미디어 마인드와 인플루언서(influencer·영향력 있는 인사) 관리에 쏟는 에너지와 정성의 차이도 있었다. 2021년 6월 경기 이천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사고로 고(故) 김동식 구조대장이 현장에 고립돼 연락이 두절된 시각에 이재명이 황교익의 ‘먹방 유튜브’를 촬영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화재 발생 후 20시간 만에 현장을 찾았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가. 이건 뒤늦게 문제가 되긴 했지만, 이게 알려지면 맹비난이 쏟아지리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을까. 이재명의 유튜브 홍보에 대한 집착 이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사건이었다.

    2016년 12월 9일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무한 릴레이 탄핵버스터’(탄핵+필리버스터)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2016년 12월 9일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무한 릴레이 탄핵버스터’(탄핵+필리버스터)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우리가 언론사가 돼야 한다”

    민주당 대선후보 자리를 쟁취한 이재명은 지지자들을 향해 “우리가 언론사가 돼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손가락 혁명을 다시 해보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메신저, 댓글, 커뮤니티에서 유리한 내용으로 도배를 하라는 지령”이라고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팬덤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토로일 수도 있겠다.

    게다가 이재명은 ‘팬덤 CEO’로서 침대 위에서 굴러떨어질 정도로 스마트폰에 중독된 역전의 용사가 아닌가. 한 이재명 선대위 고위 관계자는 ‘중앙일보’(2022년 1월 2일) 인터뷰에서 “내가 지켜본 이재명은 ‘포노사피엔스’(휴대폰을 신체 일부처럼 사용하는 새로운 세대)”라며 “마치 스마트폰을 들고 태어난 것처럼 온라인을 통한 여론 파악이나 업무 지시에 능숙하다”고 말했다.

    사실 이재명은 ‘포노사피엔스’의 지존이며, 이건 감히 누구도 넘보기 어려운 이재명만의 강점이다. 일반인들이 보낸 문자들도 챙겨 보고 때론 전화를 거는 정치인이 얼마나 있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이재명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산타 복장으로 친문 커뮤니티 성지인 ‘클리앙’을 찾아 “본진에 인사드리러 왔다”고 한 걸 보라. 그는 이곳에만 인사를 드린 게 아니다. 이재명 이외에 어떤 후보가 이런 성지 순례에 그토록 지극한 열성을 보일 수 있겠는가.

    우리는 정파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정보에만 둘러싸인 ‘필터 버블’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게 좋건 좋지 않건 사실상 테크놀로지가 강요한 현실이다. 도올 김용옥은 이재명을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고 했다지만, 내가 보기엔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사람”이다. 물론 세상의 변화를 읽어낸 이재명의 탁월한 감각과 능력을 빼놓을 순 없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재명의 이런 ‘팬덤 정치’가 초래할 사회적 비용은 무엇일까. ‘팬덤의, 팬덤에 의한, 팬덤을 위한’ 국정 운영을 해온 문재인 정권의 경험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팬덤 관리의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두 개로 쪼개진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건 같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우려를 눈치챈 이재명은 ‘진영 논리’를 넘어서는 ‘실용 내각’을 구성하겠다고 했지만, 그는 불과 5개월 전 민주당에 “민생 법안은 과감하게 날치기해 줘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았던가.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이야말로 대표적인 민생 법안일진대, 취지만 좋을 뿐인 그런 엉터리 실험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키는 게 ‘실용’이란 말인가. 아니면 5개월 만에 생각을 바꾼 것인가.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러나 수개월 또는 수십 일의 시차를 둔 이런 ‘모순 실언’은 언론의 그물망에 걸리지 않는다. 언론은 1주일만 지나면 과거를 까맣게 잊고 ‘오직 현재’의 발언에만 집착해 문제를 삼는 체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문재인은 ‘팬덤의, 팬덤에 의한, 팬덤을 위한’ 국정 운영을 해온 덕분에 이른바 ‘집토끼’는 지켜냄으로써 “임기 말 레임덕이 없는 유일한 대통령”이라는 여권의 찬사를 받고 있다. 물론 그게 잘한 일이라고 박수 치기는 어렵다.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다면 “극렬 지지자는 부담스럽다”며 문재인과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까.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고 생각”(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창윤, ‘월간조선’ 2021년 9월호 인터뷰)하는 그의 성향이 그런 변신을 허용할지는 의문이다. 눈에 보이는 자신의 이익을 넘어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국익을 위해 그럴 수 있을지, 그것이 알고 싶다.


    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現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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