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왕’ ‘쿠데타’ 말 듣고 판단했다면 실망
尹, 경제민주화 실시할 능력은 있어
安과 단일화 언급할수록 尹 지지도에 부정적
이제 정치 때려치우고 청년 교육하려 해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거책위원장이 1월 5일 서울 광화문 대한발전전략연구원에서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1월 3일 오전 그는 선대위 회의에서 전격적으로 선대위 전면 개편 방침을 밝혔다. 언론은 “김종인이 승부수를 띄웠다”고 평했다. 이날 오후 그에게 전화를 걸어 만날 시간과 장소를 묻자 “수요일(1월 5일) 오후 2시 30분쯤 국민의힘 당사로 오라”고 했다. 그렇다. 애초 만나기로 한 곳은 당사 6층에 있던 총괄선대위원장실이었다.
상황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1월 4일 늦은 밤부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그와 결별한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이튿날 오전 그는 먼저 물러나겠다고 밝히며 사태의 종지부를 찍었다. 인터뷰 약속이 취소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장소만 서울 광화문에 있는 그의 사무실(대한발전전략연구원)로 바꾸자고 했다.
이날 대화는 그가 대선 국면에서 느낀 소회가 주를 이뤘다. 그는 “아내(김미경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정권교체를 못 하면 책임을 어떻게 모면할 거냐’며 여러 날을 압박해 선대위에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김 교수와 윤 후보의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한두 차례 만났다는 말도 건넸다. “선대위를 그만두니 김 교수가 뭐라 하던가”라는 물음에는 “당사자(윤 후보)가 딴생각을 하니 결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윤 후보가 입당 전인 지난해 7월 사무실로 찾아와 ‘김종인계’로 불리는 모 인사를 데려가고 싶다고 했고, 이 인사가 캠프에서 맡게 될 직책까지 거론한 사실도 공개했다. 윤 후보의 이 공언은 지켜지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이런 뒷이야기를 풀어놓는 그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마치 거대한 돌덩이를 내려놓은 것 같았다. 그는 “아침 7시 회의에 안 나가도 되니 육체적으로 편안하다”고 했다. 이날 그가 꺼낸 “미련이 없다”는 말이 허언은 아닌 듯싶었다. 얘기는 다시 선대위로 돌아간다.
1월 5일 오전 11시 윤 후보가 선대위를 해산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발표를 봤나.
“봤다. 선대위 해산이 별 의미가 없다.”
의미가 없다면….
“1월 말까지 지지율을 회복하지 않으면 (선거가) 힘들다. 그래서 선대위를 전체적으로 개편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윤 후보) 주변의 인간들이 내가 후보를 무시했느니 쿠데타를 했느니 이런 소리를 한 것 아닌가.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윤 후보에게) 말했다. 실무적이고 효율적인 기능을 하는 선대위를 만들자고 했는데, 그땐 그 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엄청나게 거대한 선대위를 만든 게 아닌가.”
그래서 매머드급이라고 불린다.
“(윤 후보) 자기 입으로도 매머드급이라는 말을 했더라. 그래서 결국은 오늘날과 같이 선대위를 해체하는 상황에까지 이른 거다. 시간을 놓치면 안 되는데, 뭐 열심히 잘 하리라고 믿는다.”
“내가 무슨 목적 이루려 쿠데타하나?”
쿠데타라는 표현까지 나왔다.“내가 무슨 목적을 이루려고 쿠데타를 하나? 내가 선대위에서 개인적 이해관계 없이 도와주는 유일한 사람일 거다.”
윤 후보 당선을 통해 얻는 게 없이 말인가.
“그렇다. 그런데 자기 당선을 위해 한 행동을 쿠데타라고 한다면 다른 할 말이 없다.”
김 전 위원장을 두고 상왕이라는 표현도 많이 쓰는데.
“상왕은 무슨 놈의 상왕인가. (윤 후보가) 그런 어리석은 얘기를 듣고 판단했다면 매우 실망스러운 거지.”
오늘 아침에 윤 후보가 김 전 위원장에게 전화를 했다던데.
“형식적인 대화를 했다. 고맙다는 얘기하고 앞으로 조언해 달라는 식으로.”
조언해 줄 건가.
“선대위도 있고 자기들 나름대로 방법을 많이 강구할 텐데 내가 특별히 조언할 수 있겠나?”
어제 임태희 전 총괄상황본부장이 구기동(서울 종로구) 집에 찾아왔나.
“어젯밤에 왔다. 와서는 이것(선대위 해산)과는 관계없는 딴 얘기만 하고 갔다.”
그러면 윤 후보가 전화하기 전까지 선대위 해산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었다는 얘기인가.
“그렇지 뭐. 생각이 맞지 않는데 같이 할 수가 있나? 헤어지는 거지.”
윤 후보 측근들이 “후보는 연기만 해달라”고 했던 김 전 위원장의 발언이 윤 후보의 권위를 손상했다는 말을 내놨는데.
“대체 측근이라고 하는 인간들이 이해가 안 간다. 그 사람들은 윤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보다 자기 개인들의 이해관계가 더 앞서 있는 사람들이다. 연기해 달라는 건 후보와 선대위가 일치된 목소리를 내자는 뜻이다. 말실수는 선거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느 나라 선거에서나 그런 소리(연기) 한다. 새삼스러운 소리가 아닌데, 그런 걸 끄집어내서 후보한테 기분 나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 거지.”
“이것들이 자기 멋대로 해가지고”
1월 2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왼쪽)와 김종인 당시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에서 ‘윤석열의 정부혁신-디지털플랫폼정부’ 공약을 발표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후보의 메시지가 나가면 국민에게 감흥을 줘서 지지도가 높아져야 하는데, 후보가 지방에 다니면서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메시지를 많이 냈다. 내가 그걸 시정하기 위해 비서실에서 메시지 써주는 기능을 총괄상황실로 이전하려 했는데, 그렇게 해도 (제대로) 작동이 안 됐다. 그래서 조직개편을 얘기한 것이었다.”
윤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두고 확정적 중범죄자라고 해서 논란이 됐다. 이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도 그 발언은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윤 후보가 검찰 출신으로서 스스로 판단한 바를 얘기한 것 같다. 대선후보로 나와 있는데 상대에 대해 자극적으로 얘기하니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
그의 발언을 곱씹다 보면 그가 윤 후보에 대한 비판을 삼가려 애쓴 점을 알게 된다. 윤 후보의 패착을 꼬집긴 했어도 후보로서의 자질까지 폄훼하지는 않았다. 대신 측근들, 즉 ‘윤핵관(윤석열 후보 측 핵심관계자)’에 대해선 강한 날을 세웠다. “○○○(윤핵관으로 꼽히는 모 중진 의원) 이것들이 자기 멋대로 해가지고”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다.
윤핵관이라고 불리는 그룹이 조직적으로 김 전 위원장을 비토한 건가.
“이 사람들이 윤 후보 측근을 자처한다면 윤 후보가 당선되는 데 지장이 가는 일은 절대 해선 안 된다. 당장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행동하려고 하니까 잡음이 날 수밖에 없다. (선대위에) 가서 한 달쯤 경과를 보니까 이렇게 해서는 절대로 효율적인 선거를 할 수가 없다. (윤 후보) 주변 인간들이 내가 뭐 전략도 없고 정책도 없다고 입놀림을 하는 것 같은데, 그 조직으로는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비서실은 비서실대로 자기들이 잘났다고 떠들어댄다. 정책실에 ‘왜 정책이 빨리 안 나오느냐’고 물으면 자기들이 만들어서 후보에게 갖고 가면 비서실 단계에서 제대로 진행이 안 돼 발표를 못 한다고 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윤석열 선대위의 현실이다.”
그러면 총괄의 권한은 행사하지 못한 셈 아닌가.
“총괄이라고 하는 단어만 붙여놓은 거지. 원체 기구가 많아 선대위가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니 문제 제기했던 거다.”
기시감이 든다. 2016년 1월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합류한 그는 ‘우클릭’ 개혁과 이해찬·정청래 의원 공천 배제 등을 밀어붙여 당내 주류인 친문(親文) 진영과 갈등을 빚었다. 이후 친문 측에서 그가 비례대표 2번에 공천된 것을 문제 삼자 ‘당무 거부’라는 초강수를 뒀다.
물러나는 과정을 보면 2016년 친문 진영이 비례대표 순번 파동을 일으켜 김 전 위원장과 맞섰던 게 생각난다.
“당시 비례대표에 자기들(친문)이 넣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그런 사태가 벌어졌는데, 그때도 그랬다. ‘당신네들이 나한테 전권을 줘서 맡겼으면 내가 공천하는 대로 따라올 수 있어야지, 지금 같은 작태를 보이면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한창 옥신각신했지만, 내가 지역구에 공천한 사람들을 생각해 선거를 그냥 이끌어간 거지.”
6년 전과 다른 점이라면 이번에는 그의 측근으로 꼽히는 정태근 정무대응실장, 금태섭 전략기획실장, 김근식 정세분석실장도 함께 선대위를 떠났다는 점이다. 그의 복귀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당에 빨리 들어갈 생각 말라 했는데”
일각에서는 윤후보 측이 김 전 위원장을 몰아내고 이준석 대표를 따돌린다고 했다.“나는 (윤 후보가) 몰아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의견이 맞지 않으면 하루도 같이 있지 않는다. 내가 오죽하면 서울시장 보궐선거 끝난 뒷날 (국민의힘을) 나와 버렸겠나. 그때도 국민의힘이 대선을 치러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그래서 윤 후보에게도 당에 빨리 들어갈 생각을 말라고 했던 거야.”
그가 보기에 국민의힘 조기 입당은 윤 후보의 실책이다. 외연 확장에 실패해 버린 결과로 이어졌다는 이유에서다.
“윤 후보는 국민이 불러낸 사람이다. 정치에 깊이 들어가지 말고 밖에서 지지도를 확대했어야 했다. 원래는 젊은 세대나 중도층이 윤 후보를 많이 지지했다. 그 지지도가 당에 들어간 뒤 쪼그라든 것이다.”
윤 후보가 경선 전에도 찾아왔고, 경선 과정에서도 김 전 위원장을 찾았다고 들었는데.
“여러 번 찾아왔지. 정치인들을 관찰해 보면, 경선할 때의 자세와 막상 후보가 되고 나서의 자세가 달라진다. 일관성이 없다. 후보가 되면 거의 대통령이 된 것처럼 착각한다. 50%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사람을 여럿 경험해 봤다.”
그래서 윤 후보가 경선 과정에서 약속한 것도 지키지 않았다고 표현한 것인가.
“경선 과정에서 선대위를 (실무형으로) 구성하면 거기에 맞춰 행동하겠다고 (윤 후보에게) 말했다. 그렇게 약속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선대위를 구성했다고 해서 안을 가지고 왔다. 내가 ‘이런 선대위 가지고는 참여 못 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12일 CBS 라디오에서 “내가 허수아비 노릇을 할 수 없잖아”라고 했다. 당일 오후 ‘신동아’가 윤 후보를 인터뷰하면서 이 말을 전하니 “김 전 위원장을 모신다면 어떻게 허수아비가 되겠는가. 그분의 경륜과 의견을 존중해 (캠프 운영을) 하게 될 텐데”라고 답했다. 윤 후보의 공언이 결론적으로 지켜지지 않은 셈인가.
“윤 후보가 안 지켰다기보다는 (선대위) 기구 자체가 돌아가질 않은 것이다. 기구가 안 돌아가는 데 총괄선대위원장 자리가 무슨 의미가 있나.”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선대위 명함을 파서 다니는 것이 영광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했다. [지호영 기자]
“이런 얘기하면 또 욕 얻어먹겠지만, 선대위 명함을 파서 다니는 것이 영광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러니 기능은 없고 직함만 많은 거지.”
이준석 대표는 세대포위론을 내걸고 있다.
“50·60대에 20·30대를 합치겠다는 건데,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얘기다. (여당 지지 성향이 강한) 40대가 가장 뚫고 들어가기 힘들다. 50·60대에 20·30대를 합해야 선거에 이길 수 있다.”
지지도가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 세대)에서 많이 빠졌다고 보나.
“MZ세대와 중도층에서 표심이 빠졌다고 봐야지.”
그렇기 때문에 이 대표가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려던 건가.
“선거를 총괄하는 선대위원장으로서 득표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뭐든지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이 대표에게 대표로서 책무를 다하라고 계속 강조했다. 그걸 두고 내가 무슨 이 대표 편을 든다느니, 심지어 어떤 언론에서는 내가 이 대표하고 짜고 쿠데타를 일으켰다느니 그런 엉터리 같은 소리를 하더라. 그런 소리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내가 더는 할 얘기가 없다.”
필요에 의해 이 대표의 역할을 만들려 했는데, 김 전 위원장과 이 대표가 서로 짜고 행동했다는 식의 흑색선전이 당 안팎에서 있었다는 건가.
“지난해 12월 31일에 이 대표와 점심을 했다. 그날 이 대표에게 선대위로 돌아오라는 얘기를 한마디도 한 게 없다. 나는 이 대표에게 윤 후보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당신의 정치 생명도 살아난다고 했다. 그런데 윤 후보 측근이라는 인간들이 뭐라고 얘기했나? 내가 이 대표와 결탁했다고 그러는 거야. 판단이 그 정도 수준이라면 더 할 얘기가 없다.”
윤 후보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의미인가.
“주변에서 하도 그렇게 얘기하니까 일부 그런 생각을 한 게 사실인 것 같다.”
“측근 의심하고 멀리하려 애써야”
선대위 합류 전에 윤 후보에게 “사람에 너무나 집착할 것 같으면 성공을 못 한다”고 했다.“사람에 너무 집착하면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이라는 사람에 대해 너무 집착하다 보니까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나. 대선후보도 마찬가지다. 측근이라고 하는 한 사람에게 너무 집착하면 전체를 볼 수가 없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 시절 ‘문고리 3인방’을 언급했는데.
“문고리 같은 사람들을 너무 믿지 말라는 얘기였다. 윤 후보는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은 검증된 사람이니 검증되지 않은 (박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과는) 다르다고 하던데, 검증됐건 아니건 하는 행위가 똑같으면 똑같은 것이다.”
세간에서는 권성동·윤한홍·장제원 세 사람을 3인방으로 거론한다.
“그 사람들이 뭐 다 후퇴하겠다고 그러대.”
1월 6일 권 의원은 사무총장과 선대위 종합지원총괄본부장에서, 윤 의원은 전략기획부총장과 선대위 당무지원본부장에서 물러났다. 장 의원은 지난해 11월 23일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과연 후퇴할까.
“그러니까 그게 문제라고. 밖에는 공식적으로는 후퇴한 것처럼 돼 있지만 내부적으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 같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보기에 그 사람들의 영향력은 아직도 존재한다.”
영향력이라는 게 의사결정에 개입한다는 건가.
“비서실이다 뭐다 이 사람들이 다 자기 사람들을 박아놨다고. 그 사람들을 통해 평소에도 얼마든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지.”
권성동·윤한홍·장제원 세 사람의 영향력을 없애려면 이른바 심어놨다고 하는 사람들까지 윤 후보가 다 물러나게 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을 (윤 후보가) 어떻게 알고 물러나게 하겠나. 나는 윤 후보가 그런 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면 더 심각한 문제 아닌가.
“허허허.”
윤 후보를 두고 ‘남자 박근혜’ 아니냐는 표현까지 나온다.
“모르겠다. 그러니까 대통령 되는 사람은 측근이 있으면 안 된다. 측근을 항상 의심하고 멀리하려고 애를 써야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측근이 옆에 있어서 자꾸 그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일 것 같으면 성공할 수가 없다.”
윤 후보가 조기 입당을 택하면서 측근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 셈 아닌가.
“그런 거지.”
야권에는 윤 후보가 헛발질을 해도 이재명 후보가 ‘대장동 게이트’라는 약점을 안고 있어 절대 40% 지지율을 넘기지 못하리라는 낙관론이 있다.
“희망 사항이다. 1월 말에 (윤 후보가) 잃어버린 지지율을 회복하면 이 후보와 비슷한 수준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면 2월에 누가 40% 선에 먼저 올라가느냐 다투는 시기가 온다. 나는 11월 말과 12월 말에 지지율이 (하락세로) 조정되리라 생각했다. 구정을 계기로 지지율에 또 한 번 변화가 나타날 거다. 그때를 위해 빨리 선대위를 개편해서 효과적인 선거운동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재명도 돈 준다는 얘기만”
야권이 ‘반(反)문재인’ 구도로만 대선을 치르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지금 유권자는 많은 정보를 갖고 있고 수준도 높다. 야당이 (정부 상대로) 극한투쟁을 해서 효과가 나는 것도 아니고 과장된 얘기를 한다고 유권자가 따라오지도 않는다. 국민이 ‘실행할 수 있다’ 생각하는 어젠다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그래서 윤 후보가 공시지가를 2020년 수준으로 환원하고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합치겠다는 공약을 내놨는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반복해서 설명하고 또 설명해야 한다.”
1월 4일 정태근·금태섭·김근식 전 실장과 만찬하며 “대한민국 국운이 다했다”는 표현을 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국운이 다했다’가 아니라, ‘국운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지난해 7월 유엔(UN)에서 선진국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런데 자살률, 출산율, 빈곤율 등 각종 사회지표를 보면 과연 선진국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미·중 간 신기술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가 직면한 환경도 ‘잃어버린 30년’의 초입에 있는 것 같다. 아주 획기적인 쇄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지금 보면 그런 개념(획기적 쇄신)을 갖고 이야기하는 대선후보가 하나도 없다.”
그렇지 않아도 윤 후보가 명확한 미래 공약을 내세운 기억이 없다.
“윤 후보뿐 아니라 이재명 후보도 마찬가지다. 이 후보도 돈 많이 준다는 얘기만 하고 앉았지,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비전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정직성을 꼽아왔다. 윤 후보는 정직한 사람인가.
“정직이란 건 여러 가지 의미로 판단할 수 있다. 약속한 것을 일관되게 지켜나가는 것도 정직함의 기준이다. 예를 들어 후보가 되기 전에 생각했던 것과 후보가 된 뒤에 생각한 내용이 달라지면 안 되는 거지.”
윤 후보가 정직하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고도 ‘아니다’라고도 답하지 않았다. 그는 앞서 결별한 박근혜·문재인 두 사람에 대해서는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러 번 강조해 왔다. 윤 후보에게 실망은 했으나 척을 지지는 않겠다는 뉘앙스로 읽힌다. 뒤이어 나오는 문답에서도 같은 뉘앙스가 드러난다.
대선 슬로건으로 경제민주화와 맥이 통하는 ‘공정경제’를 언급했었다. 윤 후보는 검사 시절 대기업 수사에 적극적이어서 경제민주화도 잘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다.
“(윤 후보) 얘기를 들어 보면 검찰에 있을 때부터 독과점 문제 등에 대해 관심이 있다. 경제민주화를 위해 제도적으로 어떤 뒷받침이 있어야 하는지 잘 설명해 주면 실시할 능력은 있다고 본다.”
윤 후보의 ‘별의 순간’은 끝났나.
“하하. 별의 순간을 잡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평가받는 정치인이 몇 명 있다. 독일 아데나워 총리, 영국 대처 총리, 프랑스 드골 대통령이다. 아데나워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 정치인으로서 당시 사회현상을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별의 순간이라는 게, 그 순간만 도래했다고 해서 잡는 게 아니다.”
윤 후보가 남은 기간 노력하면 별의 순간을 잡을 가능성은 남았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나.
“1월에 선대위 개편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선거에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노력을 엄청나게 해야 한다.”
윤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단일화라고 하는 것은 나중에 후보끼리 서로 의견이 맞아야 가능한 거다.”
윤 후보 지지율이 낮아지고 안 후보 지지율이 높아지면 단일화에 동력이 생기는 셈 아닌가.
“나는 윤 후보 선거캠프에서 단일화라는 표현은 삼갔으면 좋겠다. 윤 후보 쪽에서 자꾸 단일화를 언급하면 윤 후보의 지지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윤 후보가 단일화 프레임에 말려버리기 때문인가.
“그렇다.”
안 후보 지지율 상승의 원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분석하나.
“윤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니 그쪽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20·30대에서 안 후보 지지율 상승세가 높은 편이다.
“오늘 아침 여론조사를 보니 1%포인트 정도 (윤 후보보다) 앞섰더라. 윤 후보 선거캠프가 제대로 정신을 차려 시정해 나가면 (20·30대 지지율이) 윤 후보 쪽으로 다시 회귀할 수도 있다.”
“할아버지 그거 봐, 내가 뭐라 그랬어?”
그는 김미경 이화여대 명예교수와의 슬하에 1녀를 뒀고, 그의 딸 역시 외동아들을 뒀다. 외국어고에 재학 중인 손자는 애당초 그의 선대위 참여를 만류했다고 한다.이번 겨울에 손자와 독일 여행을 가려 했다고 들었다.
“손자가 독일이나 다녀오자고 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대위에 참여하면서 못 하게 됐다.”
손자가 실망했겠다.
“이제 선대위와 관계를 끝냈으니 우리 손자가 그럴 거야. ‘할아버지 그거 봐, 내가 뭐라 그랬어?’라고.(웃음)”
어떤 의미인가.
“걔들(10대)도 신문과 뉴스를 다 본다. 쓸데없이 ‘상왕이다’ ‘몽니 부린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무엇 하러 (선대위 참여를) 하느냐는 얘기지.”
손자 얘기를 할 때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이제 정치 때려치우고 청년 정치 교육하는 일이나 하려 한다”고 했다. ‘청년들과 함께 책을 읽고 직접 강의도 하는 형태냐’ 물으니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인터뷰는 어쩌면 그가 남긴 ‘마지막 대선 경험담’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