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대리모 출산을 법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GettyImage]
MRKH 증후군은 5000명 가운데 한 명꼴로 생기는 질환이다. 초기 태아의 생식기관인 뮬러관 발달에 이상이 생겨 나타난다. 성인이 되면 자궁이 없거나 자궁·난관의 흔적만 있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여러 형태의 질강 이상을 동반할 수 있는데, 대체로 난소 기능은 정상적이어서 질강에 이상이 있으면 본인의 피부나 복막, 장의 일부를 잘라 질강 내벽을 만들어줌으로써 성생활을 유지하게 해준다.
그의 친정어머니는 “딸에게 씨(난자)가 있다면 내가 대신 낳아주고 싶다”면서 “사위와 딸의 정자와 난자로 수정된 배아를 자신의 자궁에 이식하고 열 달간 품은 후 낳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딸을 위해 대리모가 돼 손주를 출산한다? 글쎄다. 해외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긴 해도 필자는 유교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인지, 거부감이 없진 않다. MRKH 증후군을 앓는 딸을 위해 친정엄마가 대리 출산했다는 외신을 접하며 “50대니 가능했지, 60대라면 힘들다”고 딱 잘라 말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되면 할머니가 엄마가 되고, 생모가 언니나 누나가 되는 거다. 족보가 꼬여도 유분수지, 가당치 않은 일이다. 구시대 유물 같은 생각이라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다.
대리모냐, 자궁 이식이냐
이런 생각을 내려놔도 법이 허용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대리모(자궁 공여) 출산이 불법이다. 수년 전 소송 한 건이 의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소송 쟁점은 대리모가 낳은 자식을 출산을 의뢰한 부부의 친자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소송을 제기한 부부는 해외에서 대리모 출산에 성공했다. 한국에서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려고 했지만 거부(불수리 처분)당했다. 해외 병원에서 발행한 출생증명서에 아기 낳은 사람(대리모)의 이름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불복신청 소송을 벌인 부부는 “우리 정자와 난자로 수정된 배아를 대리모의 자궁에서 키워 아이를 낳았다”며 “생물학적으로 우리가 친부모가 맞지 않느냐”고 법에 호소했다. 법원은 “모자 관계는 법률관계에 그치지 않고 임신·출산의 고통과 오랜 시간을 거쳐 형성된 정서적 유대 관계”라며 “정자와 난자를 제공한 사람은 민법상 친양자 ‘입양’에 해당되는 법적 부모”라고 결론을 내렸다.
대리모 계약 허용 여부는 나라마다 다르다. 영국은 1990년 이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미국은 주마다 허용 여부가 다르다. 독일에서는 대리모 계약을 무효로 친다. 대리모를 중개할 수도 없다. 프랑스도 ‘타인을 위한 출산은 무효’로 규정한다. 그럼에도 대리모가 사라지지 않는다. 대리모 도움이 절실한 불임 여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스라엘은 동성 커플과 비혼 남성에게 대리모 출산을 허용했다. 전 세계적으로 동성 커플이 느는 시대 상황을 반영한 듯하다. 유대인의 종족 보존을 위한 불굴의 의지는 실로 대단하다. 유대인 남성(본인)의 정자와 유대인 여성의 난자를 수정한 배아를 대리모 몸에서 길러 출산할 수 있도록 했으니 말이다.
선천적으로 자궁이 없는 여성이 대리모 출산을 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자궁이 버젓이 있는데 대리모 출산을 고민하는 불임 여성이 얼마나 될까 싶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MRKH 증후군이 아니더라도 자궁 내 질환 악화로 후천적 불임에 이르러 임신(출산)을 포기하는 여성이 적지 않다.
대리모 출산을 고민하는 여성은 자궁을 가진 여성과 자궁이 없는 여성으로 나눌 수 있다. 자궁이 있지만 근종이나 심한 선근증을 앓아 기형이 생기고 골반 방사선 조사를 받은 여성은 자궁과 다른 장기의 유착이 극심해 도저히 생명을 잉태(착상과 임신 유지)할 수 없다. 또 자궁이 없는 여성에는 MRKH 증후군, 트랜스젠더(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가 해당될 것이다. 산후출혈로 자궁을 제거했거나, 암이나 양성종양으로 자궁을 적출한 경우도 포함될 것이다.
최근에는 대리모 출산에 대한 거부감과 한계를 극복하려고 자궁 이식에서 인공 자궁 개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자궁 이식을 시도한 건 2000년 4월의 일이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기를 낳다가 과다출혈로 자궁을 적출한 여성이 자궁을 이식받았다. 하지만 수술 후 99일 만에 자궁에 혈전이 생겨 이식된 자궁을 다시 제거했다. 이후에도 세계 곳곳에서 자궁 이식 수술을 시도한 끝에 2014년 스웨덴에서 성공해 최초로 아기가 태어났다. 지난해 보고에 의하면 자궁 이식은 세계적으로 70례 이상 시행됐으며 23명의 아기가 탄생했다.
최근에는 브라질에서 뇌사자 자궁을 이식해 출산한 일이 화제가 됐다. 한마디로 사체 장기를 받아 출산한 것인데, 이 경우 수술이 매우 어렵고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이식 자궁에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체 자궁 공여는 냉장 보관 기간이 5시간 42분(생체 자궁 공여 기간 2시간 50분)으로 시간 내 이식이 이뤄져야 한다.
생체 자궁 이식이든 사체 자궁 이식이든 너무나 힘든 수술이다. 해외 토픽에 소개되는 기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좋지 않다. 지금까지 행해진 자궁 이식 수술의 실패율은 30% 정도로 보고된다. 한 연구 보고에 따르면 사체 자궁이식을 시도한 13명 가운데 7명이 15일 이내 응급 자궁 재적출을 시행했다. 또 자궁 이식 후에는 면역치료제 사용, 호르몬 복용, 자궁 기능 유지 등 다양한 측면에서 세심한 관리와 관찰이 필요하다. 임신을 시도하는 방법으로도 자연임신보다 시험관아기시술을 권한다.
인류의 대서사, 생존
자궁 이식의 가장 큰 난점은 누가 자궁을 공여해 줄 수 있느냐다. 자궁공여자는 건강한 자궁을 가진 건강한 여성이어야 하며, 성병질환(STD)이 없고 생식기관이나 몸에 여러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 없어야 한다. 또 질 초음파상 자궁 모양이 정상이어야 공여가 가능하다는 점도 기억하자.한국 대형 병원에서도 자궁 이식에 대한 연구와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 자궁 이식은 법적·재정적·문화적·윤리적·종교적 문제를 가진 시술이긴 해도, 종족 보존이라는 본능을 떠나 ‘생존’이라는 인류의 대서사를 위해 끊임없이 도전할 분야라고 본다. 또한 대리모 출산을 해야만 자식을 낳을 수 있는 불임부부들의 권리도 일정 부분 인정한 제한적 보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서도 입법을 통해 제한적으로나마 대리모 허용 범위와 절차를 규정할 때가 된 것 같다.
조 정 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