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대로 하면 필패… ‘틀’ 깨고 업 재정의하라
레고, 장남감 회사에서 ‘어린이 콘텐츠 회사’로 변신
하네다 공항, 사용자 관점에서 서비스 질 높여
‘데이터 리터러시’ 역량은 생존 필수조건
조용민 구글 커스터머 솔루션 매니저. [홍태식 객원기자]
코로나19로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일상이 급속히 변화하면서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DT)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적응해 성과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파괴적 혁신이 일상이 돼야 한다. 지금껏 오프라인에서 해왔던 일을 온라인에서 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해서 그것을 DT라고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업의 본질을 재정의하고 사용자 관점에서 다시 접근하는 것이다.”
사용자 관점에서 업을 재정의하라
조 매니저는 “공급자 관점이 아닌 사용자 관점에서 업을 재정의할 때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며 어린이 완구 회사 ‘레고’를 성공 사례로 들었다.“레고는 원래 어린이들이 즐겨 놀던 장난감 제품을 만들던 회사다. 어느 순간 주 고객인 어린이들이 ‘닌텐도’를 하느라 레고를 갖고 노는 시간이 크게 줄어든 것을 보고, 업을 ‘어린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도록 하는 회사’ ‘어린이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라고 재정의했다. 이후에는 온라인게임 마인크래프트 제품을 통해 어린아이들의 시간을 지속적으로 붙잡아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레고가 자신들의 업을 ‘장난감’이란 틀에 가두지 않고, 시대 변화에 맞춰 ‘어린아이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콘텐츠 회사’로 재정의한 덕에 여러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다. 산업마다 업종마다 다를 수 있지만 DT 시대에는 기존의 틀을 해체해 시대 변화에 걸맞게 업을 재정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조 매니저는 “업을 재정의하는 것은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을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기존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며 하네다 공항에서의 경험담을 얘기했다.
“공항을 이용하는 분은 누구나 공항에 도착해 출구로 빨리 나가는 것을 원한다. 공항마다 그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경쟁을 벌인다. 하네다 공항에서는 짐 찾는 곳에 한 분이 서서 승객의 캐리어 손잡이를 바깥쪽으로 가지런히 정렬해 준다. 승객들이 자신의 가방을 꺼내기 편하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그 덕에 승객들은 배기지 클레임에서 가방을 찾는 시간이 크게 줄었고, 그 덕에 공항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올라갔다. 하네다 공항이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이어 승객 만족도가 높은 공항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이 같은 작은 변화 덕이다. 공급자 관점에 머물지 않고 사용자 관점으로 업을 재정의해 서비스 질을 획기적으로 높인 덕에 승객 만족도가 높은 공항이 된 것이다.”
연결의 시대에 걸맞은 ‘업무 재정의’ 필요
조 매니저는 “업에 대한 재정의는 서비스업뿐 아니라 마케팅 분야에서도 크게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몇몇 기업에서는 신제품을 알리기 위한 마케팅 기법이 2000년대 초중반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프라인 이벤트 몇 번, 온라인 이벤트 몇 회 이런 식의 마케팅 횟수로 역할을 했다고 규정하는 것이다. 2022년 소비자는 기업이 주도하는 온·오프라인 이벤트에서 신제품 정보를 접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인스타그램 같은 온라인 플랫폼 사용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또 기업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어떤 액션을 취했을 때 자발적 참여가 활발한지 파악해 마케팅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어느 회사, 어느 부서의 업무를 평가하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역할에 따라 분업하더라도 다시 업무를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드리는 거다.”
업무를 어떻게 재정의해야 할까.
“산업화 시기에는 분업을 통해 각자 맡은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크게 바뀌고 있기에 분업만으로는 밸류를 끝까지 만들어낼 수가 없다. 과거에는 제조업이면 제조업, 서비스업이면 서비스업 이렇게 구분이 명확했지만 지금은 제조와 서비스가 서로 연결되는 추세다.”
제조와 서비스업이 서로 연결됐다?
“에어컨을 예로 들어보자. 과거의 비즈니스는 성능 좋은 에어컨을 만들고 A/S 잘하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지금은 ‘에어 솔루션’으로 한 단계 진화했고, 최근에는 2년이 지나면 새로운 에어컨으로 바꿔주는 메인터넌스(유지, 관리)로까지 확대됐다. 이렇게 비즈니스 모델이 발전하다 보니 부서 간 협업과 융합의 필요성은 그만큼 더 높아졌다. 과거에는 품질 좋은 제품 생산, 신속한 A/S 제공이면 충분했지만 지금은 사용자가 지속적으로 제품을 선택하도록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커스터머 케어 센터와의 협업도 중요한 시대다.”
조 매니저는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사용자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공급자에서 사용자로 비즈니스 무게중심을 바꾸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사용자의 이용 패턴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거기서 니즈가 무엇인지 알아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유튜브 댓글창의 경우도 사용자의 니즈를 꾸준히 공부한 덕에 바뀐 것이다. 처음 유튜브 댓글창은 화면 하단에 있었다. 그런데 유튜브를 시청하는 사용자 가운데 댓글 쓰는 것을 선호하는 분이 굉장히 많았고 댓글을 쓰기 위해 화면 하단으로 스크롤하는 시그널이 많이 잡혔다. 그래서 편리하게 댓글을 쓰고 볼 수 있도록 화면 옆으로 댓글 창을 옮겼다. 사용자 공부는 서비스가 공급자 관점에 머물지 않게 하려면 반드시 해야 한다.”
조 매니저는 “사용자 관점으로 업을 재정의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은 비즈니스 환경을 좀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고, 어떤 영역에 집중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나갈지 비전과 전략을 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관장’은 홍삼 제품 가운데 국내 시장점유율이 88%로 가장 높다. 그런데 정관장의 경쟁 제품이 다른 회사 홍삼 제품일까. 검색어를 분석해 보면 정관장을 검색했던 분이 고민하는 것은 다른 홍삼 제품이 아니라 한우나 비타민 같은 선물세트, 아르기닌 같은 건강 관련 제품을 대신 구입할지다. 시장점유율 88%는 홍삼 제품에서는 유효할 수 있지만 건강 관련 제품이나 선물세트같이 사용자 관점으로 재정의하면 시장에서 포지션이 달라질 수 있다.”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으려면 데이터를 어떤 관점에서 분석하는 게 필요하다고 보나.
“지금은 누구나 데이터를 생산하는 시대다. 문제는 수많은 데이터 가운데 어떤 인사이트를 찾아내느냐는 것이다. 데이터 자체보다 중요한 것이 의미를 읽어내는 능력, 즉 데이터 리터러시다. 과거에는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 자체가 힘들었기에 하나의 데이터를 놓고 여러 가지 판단을 하는 능력을 중시했다. 지금은 기술 발달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됐다. 중요한 것은 여러 데이터를 연결해 그 안에 담긴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다. 주어진 데이터를 넓고 깊게 보려면 자신의 생각을 한 번 더 의심하고 새로운 각도에서 고민해 보는 데이터 리터러시 역량을 키우는 것이 필수적이다.”
데이터에 담긴 ‘새로운 가치’ 찾으라
조 매니저는 책 ‘언바운드’에서 ‘데이터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한 바 있다.“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숨겨진 의미’를 찾는 것은 기존의 관점을 고집하지 않고, 여러 각도에서 한 번 더 생각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하고 눈앞의 정보를 관찰하기 시작해야 새로운 접근법,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 속도의 시대에는 무수한 데이터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질 것이다.”
조 매니저는 새로운 관점으로 사안을 바라봄으로써 일의 효율을 크게 높인 사례로 강원 강릉시의 소머리국밥 전문점 ‘광덕식당’을 예로 들었다. 이 식당은 맛집으로 소문나면서 대기 줄이 크게 늘자 주차장에 CCTV를 설치해 모니터 화면으로 손님 수를 미리 파악해 다음 손님이 식당 안에 들어오기 전에 국밥을 미리 준비해 음식을 내놓는 시간을 크게 줄였다.
“광덕식당 사장님은 손님의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서비스 영역을 식당 내부에서 주차장으로 확대했고, CCTV라는 보안 도구를 고객의 시간을 줄여주기 위한 도구로 창의적으로 사용했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도태되지 않고 꾸준히 성장하려면 이 사장님처럼 끊임없이 사용자 관점에서 고민하고 일하는 방식을 지속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지금까지 해온 대로 한다면 이미 얻은 것도 놓치게 된다.”
조용민 구글 매니저는 “디지털 시대에는 여러 데이터를 연결해 그 안에 담긴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는 데이터 리터러시 역량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홍태식 객원기자]
구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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