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질이 들어간 페스토. 바질은 향신료처럼 쓰이는 허브다.[게티이미지]
고수는 쌀국수 풍미를 특별하게 만든다.[게티이미지]
지구인 사로잡은 향미
마라를 처음 먹은 건 첫 직장 회식 때, 서울 가리봉동에서였다. 마치 중국에 온 것 같은 야릇한 재래시장 가운데 있던 식당에서 마라가 들어간 고기볶음을 먹었다. 유리잔에 캔 뚜껑이 달려 있는 컵 고량주를 신나게 따 먹으며 안주를 싹 먹어치웠다. 다음날 회사에 가서는 일하는 시간보다 화장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하지만 증기기관차처럼 뜨겁게 지나가는 매운 풍미가 다시 먹는 날까지 그립기만 했다.부모님이 한 번도 식탁에 올려주신 적 없는 낯선 향신료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설렌다. 방아잎과는 친해지지 못했지만, 산초와 제피는 익숙해졌다. 커민(cumin)은 입이 배릿할 때 생각나고, 펜넬(fennel)과는 사랑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빨간 통후추의 사이다 같은 매운맛, 레몬그라스(lemongrass)의 질기도록 오래 가는 향은 무척 반갑고, 별처럼 생긴 팔각(staranise)의 강건함은 여전히 버겁지만 작은 못처럼 생긴 정향(clove)의 따뜻한 풍미는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이렇게 향신료를 하나씩 알 때마다 지구 반대편, 평생 단 한 번도 가보지 못 할, 만나보지 못 할 이들의 식탁에 초대받은 영광을 누리는 기분이다. 물론 알지 못하는 누군가는 우리의 고춧가루, 마늘, 생강, 양파, 깻잎. 미나리, 갓 등의 놀라운 활용법을 즐기며 나 같은 기쁨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팬데믹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이 우리의 식탁도 크게 요동쳤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단순한 전염병이 아니라 아픈 지구가 보내는 구조 신호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는 우리는 배달음식과 포장음식으로 한 걸음 다가갔지만, 다른 곳에서는 향신료를 향해 발을 내딛는 사람들이 늘었다.
물론, 우리 음식에는 매일 허브와 향신료가 섞여 있으니 서로 출발점이 다르긴 하다. 유럽의 사람들이 ‘감칠맛(umami)’에 빠져 미소와 고추장, 피시 소스를 집 주방에 가져다 놓고 있다. 우리도 로즈메리, 이탈리안 파슬리, 민트, 바질, 고수, 후추, 강황, 커리, 시나몬, 고추냉이, 페페론치노, 마라 같은 것에는 이미 익숙하다. 그럼 다음으로는 무엇이 좋을까.
알아두면 좋은 향신료 궁합
앞서 말한 향기로운 펜넬은 한국에서도 재배된다. 구근은 잘게 썰어 산뜻하게 샐러드로 즐기고, 잎은 허브로 쓰며, 씨앗 역시 풍미 재료로 요리에 넣으면 된다. 정향은 달콤한 향이 아주 좋기 때문에 후식이나 차에 활용하기 알맞다. 알코올과도 무척 잘 어울려 따뜻하게 데워 먹는 술이나 독주에 넣고 우려 향을 즐기기 좋다.빨간 통후추는 고운 고기나 생선과 어울린다(왼쪽). 홀그레인 머스터드는 육류부터 해물까지 두루 곁들이기 좋다. [오허브 제공, 게티이미지]
병에 든 것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케이퍼는 대체로 연어에만 곁들이는데, 토마토소스 파스타에 넣으면 산뜻함과 짭조름함을 선사하고, 샐러드에 넣으면 식초 같은 새콤한 역할을 하며, 치즈와 먹으면 유제품의 고소함을 살려준다. 꽃봉오리 절임인 케이퍼가 마음에 들었다면 그 열매인 오동통한 케이퍼 베리도 좋아할 것이다. 기름진 요리를 먹을 때 피클처럼 케이퍼 베리를 곁들여 먹으면 된다. 새콤하면서도 녹진한 맛이 나므로 반으로 잘라 내면 먹기에 더 좋다. 무엇보다 견과류와 함께 가벼운 술안주로 내면 케이퍼 베리의 매력적인 제 맛을 보기에 더없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