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마당 가장자리, 이른 시각부터 산그늘이 드리우는 곳에 굵고 짧은 참나무 기둥이 줄지어 서 있었다. 표고버섯은 그 나무 기둥에 송이송이 맺힌다. 둥근 갈색의 갓이 도톰하고 봉긋해지면 부엌으로 갈 때가 된 것이다.
버섯을 따서 바로 요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갓의 안쪽이 하늘을 보도록 평상에 널어 햇살에 말렸다. 마른 버섯은 다시 불려 여러 요리에 두루 사용한다. 진한 풍미 덕에 밑국물 재료로 자주 쓰고, 쫄깃한 식감은 어떻게 조리해도 생생하게 살아나 입을 즐겁게 한다. 비단 표고가 아니라도 대부분의 버섯은 자신만의 식감과 풍미라는 비장의 무기를 지니고 있다. 동물성 식품을 사용하지 않는 식단에서 버섯은 고기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풍부한 단백질에서 감칠맛이 나고, 은근한 향을 주며, 색도 내어 준다. 게다가 그 쫄깃한 맛이 어느 고기보다 못할까. 대체육 시장에서 버섯이 중요한 재료가 된 건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나 그저 고기 대용품으로 보기에 버섯은 너무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
고급스러운 풍미의 무한한 친화력
백화고는 표고버섯 한 종류다. 갓 표면에 팝콘처럼 올라온 흰 부분이 잘고 많을수록 상품으로 친다. [뉴시스]
겨울을 이겨낸 표고는 그 자체가 요리와 같다. 밥을 안칠 때 표고를 섞어 넣고 향과 맛을 음미하거나, 불에 슬쩍 구워 쫄깃하게 즐기기도 한다. 국물을 내더라도 버섯이 주인공이 될 수 있게 다른 향신재료는 적게 쓴다.
송이 시리즈가 있다. 소나무 자생지에서 채취하는 귀하디 귀한 송이버섯이 유명하지만 우리 식탁에는 양송이나 새송이가 흔히 오른다. 몸통이 통통하고 듬직해 먹을 게 많은 데 값은 저렴한 새송이는 도화지처럼 순한 버섯이다. 어느 요리에 넣어도 잘 어우러져 조리하기도 정말 쉽다. 제일 좋아하는 방법은 통째로 굽기다. 큰 기둥을 어슷하게 2~3등분해 불에 천천히 굽는다. 새송이 표면이 촉촉해지고 말랑해지는 게 보이면 불에서 드러내 충분히 식혔다가 한입에 먹는다. 스펀지랑 닮은 식감은 사라지고 쫄깃한 통통함에서 구수한 버섯 물이 줄줄 나온다. 새송이랑 똑같이 생겼지만 손가락 한 마디만한, 앙증맞은 미니새송이도 있다. 양송이는 은은하더라도 자신만의 풍미를 확실하게 지녔다. 열십자로 썰어 큼직하게 볶아 먹으면 씹는 맛이 좋다. 기둥 째로 얇게 썰어 보들보들하게 조리해 녹진하게 익히면 향이 더욱 진해진다. 재미난 것은 아무리 한식으로 조리해도 양식의 풍미가 양송이버섯으로부터 스며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점이 요리의 재미를 더한다.
씹을수록 빠져드는 식감
영지버섯은 약으로도 쓰인다. [게티이미지]
이름에는 송이라는 말이 들어가지만 느타리의 유형인 백만송이버섯이 있다. 길고 가느다란 기둥에 둥근 갓을 쓴 버섯이 촘촘하게 모여 자란다. 재배 기간이 길어 쫄깃한 맛이 아주 좋고, 향도 꽤 풍긴다. 풍성한 꽃 같은 버섯 뭉치를 굵직하게 몇 덩어리로 나눠 구운 다음 소금, 후추만 조금 뿌려 먹어도 아주 맛있다. 느타리와 참타리는 잡채부터 불고기, 나물부터 샐러드까지 어디에나 두어 줌씩 집어넣기에 부담이 없는 버섯이다. 색도, 맛도, 씹는 맛도 모난 데가 없이 무난하다.
해조류처럼 생긴 목이버섯은 검은 것과 흰 것이 있다. 흰 것(은이버섯)이 비싸고, 귀하지만 영양은 검은 것이 더 많고 값은 싸다. 주로 마른 상태로 유통돼 물에 불려 요리한다. 최근에는 생목이버섯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데 보관이 쉽지 않아 바로바로 조리해 먹는 게 좋다. 목이버섯은 미끈하면서도 탱글탱글 씹는 맛이 독특하다.
이뿐이랴. 보드라운 털로 가득 덮인 것 같은 토실토실 노루궁뎅이버섯, 탐스러운 수국모양의 꽃송이버섯, 송이보다 한 수 위에 있다는 능이버섯, 약이 되는 동충하초와 차가버섯, 영지버섯, 상황버섯, 값으로 치면 천장이 없는 송로버섯과 향이 좋은 포르치니, 맛이 좋은 포토벨로까지 이름만 불러도 끝이 없는 게 버섯의 계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