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선거 개입 시나리오 3가지
대북정책 악용해 살아남은 북한 체제
화전양면전술 이용할 듯
不知不識 스며드는 심리전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장(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뉴스1, 뉴시스, 동아DB,Gettyimage]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의 주장이다. 북한 당국이 한국 대선에 얼마나 관심이 많고 개입하려 드는지 절절히 표현한 말이다. 제도적 관점에서 보면 통전부는 한국의 청와대 안보실장·통일부 장관 역할을 수행한다. 현재 통전부 부장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김영철이다.
한국의 직선제 대통령 시대가 막을 연 1988년 이후 북한은 한국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 어느 정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체제 내구력 확보에 상당한 영향을 받아왔다. 북한 당국이 역대 한국 정부의 선의로 행해진 대북정책을 얼마나 잘 활용해 체제를 지켜왔는지 감안하면 그들이 왜 한국 대통령선거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다. 역대 북한 당국이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따져보면 북한이 대선에 어떻게 개입할지 예측이 가능하다.
대북정책 악용한 北 생존전략 실체
먼저 북한이 대북정책을 악용해 살아남은 방법을 살펴보자. 1989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옛 소련이 해체되며 동유럽은 공산체제의 소멸과 자유화라는 세계사의 해일 속에 놓였다. 이 시기 북한은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북방정책을 방파제로 삼았다. 남북기본합의서 체결과 유엔 동시 가입으로 체제를 지켜냈다.1994년 북한은 핵 확산을 우려한 미국 클린턴 정부의 영변 폭격 계획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북한에 보내 영변 폭격 계획을 전달하며 김일성을 압박했다. 김일성은 감성적 민족주의에 의탁해 제네바 북·미 합의로 위기를 타파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천명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선의의 민족주의를 악용한 것. 김대중 대통령 때엔 남북 정상회담에 합의해 국제사회로부터 중유를 지원받아 고난의 시기를 근근이 버텨냈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미국 내외의 북한 관련 정보기관들은 북한 체제가 자원 공급 능력 소진으로 인해 단계적으로 소멸되리라고 판단했다. 1996년 한미연합사령부 국제관계 담당이었던 로버트 콜린스의 ‘북한 붕괴 7단계 시나리오(자원고갈, 자원분배 우선순위화, 독자노선, 탄압, 저항, 분열, 정권교체)’가 대표적이다. 당시 북한 내에선 수백만 인민이 굶주려 죽는 경제위기에 주민들의 대규모 탈북이 벌어졌다. 북한 김정은 체제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 정책을 악용하며 이러한 난관을 극복했을 뿐 아니라 핵무기 개발을 통해 공세적 대남전략을 구사할 자신감을 회복했다. 북한은 2006년 첫 핵실험을 마치고부터 유엔(UN)과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압박 정책을 ‘시간 끌기 전술’로 버텼다. 2017년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부터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철저히 이용하며 한반도 정세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북한 인민들은 1990년대 후반 감당해야 했던 고통을 다시 겪게 됐다.
북측 대남정책 설계자들은 역대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해부하고 또 해부해 유리한 것은 취하고 불리한 것은 피하는 기만전술을 통해 체제를 유지했다. 2000년대 이후 북한 당국은 대한민국 지도자의 성향이 북한 체제 유지를 용이하게 할 수도 있고, 커다란 고통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게 됐다. 또 대선에 개입해 영향을 미치고 싶은 욕망까지 가졌다. 이는 한국의 역대 대선 직전에 보였던 북한의 공식 입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역대 대선 개입 사례
북한은 1988년 대선 직전엔 평화 공세를 펼쳤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 3자 대결 구도하에서 북한은 1987년 11월 11일 ‘민족단합방안 5개항’을 발표했고, 12월 14일에는 북한군 병력 10만 명 감축 방안을 발표했다. 평화 공세로 긴장을 완화시켜 야당 후보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려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1992년 김영삼·김대중의 치열한 경쟁 국면에선 팀 스피리트(1976년부터 1992년을 제외하고 1993년까지 이뤄진 주한미군과 국군의 합동 군사훈련) 중단 시 남북대화를 재개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김대중·이회창이 박빙의 승부를 펼치던 1997년엔 화학무기금지기구 대표회담을 거부하며 미국의 대북제재를 비난했다. 2002년 노무현·이회창이 경합하던 시기엔 ‘미국의 선(先)핵포기, 후(後)대화’의 부당함을 비난하며 사실상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 2007년 이명박·정동영의 기울어진 대결 구도에선 2차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남북철도운영공동위원회를 개최하는 등 정동영 후보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2012년 박근혜·문재인 대선 국면에선 11월 3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보도문을 통해 “남조선의 각 계층은 새누리당의 재집권 기도를 절대로 허용하지 말아야 하며 정권교체를 기어이 실현해야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아울러 12월 1일에는 북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장거리미사일 발사계획을 발표했다. 문재인 후보를 돕기 위해 한국의 혁명역량(이른바 남조선혁명역량)의 궐기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군사적 도발을 벌이는 등 화전양면전술(和戰兩面戰術)을 통해 대선에 개입했다. 19대 대선에선 집단탈북 여종업원 송환을 요구하는 등 문재인 후보를 간접 지원하는 모습 이외에는 침묵을 보였다.
북한의 대선 개입을 위한 공식 입장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대선 결과에 영향을 주기 위해 선호하는 후보에 유리한 입장을 내놓는다. 둘째, 선호하지 않는 후보가 당선에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가 보일 때 도발적인 공식 입장을 노골적으로 내놓는다. 셋째는 군사적 도발보다는 평화 공세를 통해 대선에 개입하려 한다. 18대 대선 때 미사일 도발을 예고한 사실 이후론 북한은 군사 도발보다는 평화 공세에 중점을 두고 있다.
20대 대선 개입 시나리오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판문점 도보다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DB]
20대 대선에서 북한은 정권교체보다 정권 재창출에 체제의 명운을 걸 가능성이 더 높다. 북한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지난해 11월 23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내비쳤다. 윤 후보가 “문재인 정부하 남북의 주종관계를 바로잡겠다”는 발언을 비판하는 형식을 빌렸지만 윤 후보와 국민의힘에 대한 적개심을 논리적으로 제시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윤 후보는 분단적폐 국민의힘의 대선후보답다. 둘째, 윤 후보가 당선되면 남북관계는 파탄된다. 셋째, 윤 후보는 한미관계를 굴종관계로 만들 것이다. 넷째, 윤 후보를 단죄하고 국민의힘을 심판하기 위해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야 한다. 다섯째, 윤 후보의 대외·안보 공약은 무지를 보여주는 ‘아마추어 공약’이다. ‘우리민족끼리’의 논평은 사실상 대선 정국에서 윤 후보에 대한 북한의 공식 입장으로 봐야 한다.
북한의 대남정책은 통전부가 기획한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홍보 담당으로 통전부의 결정 내용을 전파한다. 필요시 군사적 도발은 총정찰국이 담당한다. ‘우리민족끼리’는 조평통이 운영하는 인터넷 선전 매체다. 조평통이 직접 나서지 않고 인터넷 매체를 이용해 입장을 밝히는 까닭은 ‘내정간섭’이라는 비난 등 후폭풍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 선양 소재 ‘우리민족끼리’는 북한의 사이버사령부 및 해커 활동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근래 북한의 행보를 더 살펴보자면 올해 1월 5일 사거리 700㎞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성공 사실을 공개했다. 1월 7일엔 베이징 동계올림픽 불참을 선언했다. 이는 올림픽을 이용해 북한과의 종전 선언을 꾀하려던 문재인 정부의 노력을 좌절시켰다. 북한의 두 가지 조치는 임기 종료를 앞둔 문재인 정부와 더는 의미 있는 합의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보인다. 오로지 북한 당국이 원하는 차기 대한민국 정부 출범에 ‘올인’하겠다는 메시지인 것.
지난해 11월과 12월, 올해 1월에 걸친 북한 당국의 메시지를 보면 김영철이 이끄는 통전부의 대선 개입 시나리오가 보인다. 중요 요소는 윤석열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다. 크게 세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해 볼 수 있다.
첫째, 윤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을 경우다. 그의 당선을 막기 위한 북한의 강도 높은 개입이 예상된다. 지난해 11월 23일 밝힌 북한의 입장이 반복될 수 있다. 조평통과 휘하 통제 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윤 후보와 국민의힘을 공격하는 메시지를 만들어 ‘반(反)윤 전선’을 강화할 것이다. 필요에 따라 정찰총국을 통한 테러 등 도발 수단도 활용하리라고 본다. 사이버 전력을 이용해 여론 형성에도 적극 개입할 것이다.
둘째, 윤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 경우다. 19대 대선 문재인·홍준표 대결 국면에서 보인 태도와 같이 공개적 도발은 하지 않으리라 예상되지만 사이버 전력을 활용한 개입은 강화할 것이다.
셋째, 윤 후보와 타 후보의 박빙 대결 양상이 지속될 경우다. 도발보다 평화 공세를 진행할 가능성이 더 높다.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프레임으로 대북정책 대결이 진행될 경우 대담한 북핵 폐기 공약, 미국과의 파격적 접촉 재개를 통해 윤 후보와 그의 안보정책을 고립시키는 ‘영향공작’을 벌일 공산이 크다.
지난해 11월 22일 조평통 산하 북한의 또 다른 선전 매체인 ‘메아리’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푹 썩은 술’, 윤석열 후보를 ‘덜 익은 술’,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를 ‘막 섞은 술’에 비유했다. 메아리의 비유는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이 세 후보에 대해 각각 ‘썩은 술’ ‘덜 익은 술’ ‘잘 숙성된 술’이라고 평가한 것을 변용해 심리전 소재로 활용한 것이다.
대선후보들에 대한 조평통의 조롱 섞인 평가를 어떻게 봐야 할까. 첫째, 통전부가 한국 정치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깊이 연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군소정당 국민의당 의원의 발언조차 놓치지 않고 살피는 점은 소름이 끼치는 대목이다. 둘째, 11월 하순 당시 어느 후보가 승리할지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소속인 이재명 후보를 ‘푹 썩은 술’이라고 평가한 것은 그의 당선을 확신하지 못함을 반영한 것으로 사료된다. 셋째, 북한 선전 매체들이 시대에 맞게 진화하고 있다. 한국의 젊은 유권자들이 딱딱한 논리보다 유머러스한 표현에 반응하는 현실을 파악하고 있다. 한국 유권자들은 메아리의 논평이 통전부 산하 매체의 심리전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듯하다.
북한의 심리전 용어 중 ‘영향공작’이라는 말이 있다. ‘영향공작전술’이라고도 하는 이 말은 원래 옛 소련의 심리전 용어다. 여론을 활용해 경쟁 국가의 지도자를 실각시키거나 타격을 주는 전술을 의미한다. 다양한 형태의 영향공작 방법이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공작 대상의 경계심을 무너뜨리는 데 있다. 공작 대상의 습관·식성·취미·기호 등을 고려하고, 공작의 출처가 어디인지 모르게 한다. 술을 인용한 북한 통전부의 조롱이 한국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지만 이것이 조평통 대선 개입 작업이라고 느낀 국민은 거의 없다. 최민희 전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22일 페이스북에 “술은 썩지 않기 때문에 술이 썩었다는 것은 잘 익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잘 익은 술은 이재명 후보”라고 쓰며 아전인수격 각주까지 달아줬다. 북한이 조평통 매체를 이용한 영향공작으로 대선에 개입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1992년 대학생들이 ‘조국은 하나다’라고 쓰인 한반도 지도 모양 코트에서 족구를 즐기고 있다.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은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를 조성했다. [동아DB]
‘간택’ 대선 막아야 한다
지난해 11월 23일 북한 매체가 윤석열 후보를 맹렬히 공격하자 안찬일 소장은 북한 당국이 윤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높게 보는 것으로 평가했다. 2012년 18대 대선을 50일 앞둔 시점에 북한 매체가 박근혜 후보를 극렬히 비판하던 것과 시기가 유사하다는 점에서 안 소장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북한은 잠시 관망하면서 영향공작으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판단된다. 조평통 산하 매체들을 활용해 친근한 용어와 방법으로 대선 개입에 나설 것이다. ‘무지와 아마추어’라는 키워드를 녹여내 윤석열 후보를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 ‘덜 익은 술’이라는 표현 속에는 이미 북한의 방식이 녹아들어 있다. 얼마 남지 않은 대선까지 지금의 대선 국면이 유지될 경우 북한은 파장이 큰 이벤트 대신 심리전 중심의 영향공작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북한이 대선에 개입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한반도 질서를 쥐락펴락하기 위해서다. 한국 정부와 정당, 사회단체, 언론은 북한의 영향공작을 경계해야 한다. 북한의 영향공작을 받으면 북한이 ‘간택’한 대선이 된다. 그렇게 돼서는 안 된다. 오영훈 민주당 대변인은 메아리가 대선후보들을 술에 빗대어 조롱하자 “내정간섭이자 대선 개입”이라고 일갈했다. 유·불리를 떠나 북한의 대선 개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정치 지도자들의 결기가 필요하다. 북한을 끌어들여 대선에 이용한다면 이는 대한민국에 대한 배신이다.
백승주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現 국민대 석좌교수
● 前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前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중국 베이징대 방문교수
● 前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