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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세계관 넓히고 싶다면 ‘드루와드루와’

[김민경 맛 이야기] 허브, 향신료 품속으로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맛의 세계관 넓히고 싶다면 ‘드루와드루와’

바질이 들어간 페스토. 바질은 향신료처럼 쓰이는 허브다.[게티이미지]

바질이 들어간 페스토. 바질은 향신료처럼 쓰이는 허브다.[게티이미지]

내가 고수를 처음 먹은 것은 1997년 쌀국수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다. 아침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주방 이모와 나란히 앉아 고수를 다듬었다. 손가락 한 마디보다 작은 이파리가 나의 한 시간 ‘알바비’보다 비싸게 치인다는 말을 내내 들었다. 점심 장사를 마치고 나면 직원들은 주로 쌀국수로 끼니를 해결했다. 우리는 주방장 허락 하에 금쪽같은 고수를 몇 잎 넣어 먹을 수 있었다. 하늘거리는 얄팍한 잎사귀에서는 늘 낯선 향이 났다. 식물의 정기를 끌어 모은 것 같은 기름기 같은 게 느껴지는 냄새다. 스쳐 휘발하는 게 아니라 입에 착 달라붙어 머무는 무거운 향에 홀딱 빠졌다.

고수는 쌀국수 풍미를 특별하게 만든다.[게티이미지]

고수는 쌀국수 풍미를 특별하게 만든다.[게티이미지]

지구인 사로잡은 향미

마라를 처음 먹은 건 첫 직장 회식 때, 서울 가리봉동에서였다. 마치 중국에 온 것 같은 야릇한 재래시장 가운데 있던 식당에서 마라가 들어간 고기볶음을 먹었다. 유리잔에 캔 뚜껑이 달려 있는 컵 고량주를 신나게 따 먹으며 안주를 싹 먹어치웠다. 다음날 회사에 가서는 일하는 시간보다 화장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하지만 증기기관차처럼 뜨겁게 지나가는 매운 풍미가 다시 먹는 날까지 그립기만 했다.

부모님이 한 번도 식탁에 올려주신 적 없는 낯선 향신료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설렌다. 방아잎과는 친해지지 못했지만, 산초와 제피는 익숙해졌다. 커민(cumin)은 입이 배릿할 때 생각나고, 펜넬(fennel)과는 사랑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빨간 통후추의 사이다 같은 매운맛, 레몬그라스(lemongrass)의 질기도록 오래 가는 향은 무척 반갑고, 별처럼 생긴 팔각(staranise)의 강건함은 여전히 버겁지만 작은 못처럼 생긴 정향(clove)의 따뜻한 풍미는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이렇게 향신료를 하나씩 알 때마다 지구 반대편, 평생 단 한 번도 가보지 못 할, 만나보지 못 할 이들의 식탁에 초대받은 영광을 누리는 기분이다. 물론 알지 못하는 누군가는 우리의 고춧가루, 마늘, 생강, 양파, 깻잎. 미나리, 갓 등의 놀라운 활용법을 즐기며 나 같은 기쁨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팬데믹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이 우리의 식탁도 크게 요동쳤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단순한 전염병이 아니라 아픈 지구가 보내는 구조 신호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는 우리는 배달음식과 포장음식으로 한 걸음 다가갔지만, 다른 곳에서는 향신료를 향해 발을 내딛는 사람들이 늘었다.



물론, 우리 음식에는 매일 허브와 향신료가 섞여 있으니 서로 출발점이 다르긴 하다. 유럽의 사람들이 ‘감칠맛(umami)’에 빠져 미소와 고추장, 피시 소스를 집 주방에 가져다 놓고 있다. 우리도 로즈메리, 이탈리안 파슬리, 민트, 바질, 고수, 후추, 강황, 커리, 시나몬, 고추냉이, 페페론치노, 마라 같은 것에는 이미 익숙하다. 그럼 다음으로는 무엇이 좋을까.

알아두면 좋은 향신료 궁합

앞서 말한 향기로운 펜넬은 한국에서도 재배된다. 구근은 잘게 썰어 산뜻하게 샐러드로 즐기고, 잎은 허브로 쓰며, 씨앗 역시 풍미 재료로 요리에 넣으면 된다. 정향은 달콤한 향이 아주 좋기 때문에 후식이나 차에 활용하기 알맞다. 알코올과도 무척 잘 어울려 따뜻하게 데워 먹는 술이나 독주에 넣고 우려 향을 즐기기 좋다.

빨간 통후추는 고운 고기나 생선과 어울린다(왼쪽). 홀그레인 머스터드는 육류부터 해물까지 두루 곁들이기 좋다. [오허브 제공, 게티이미지]

빨간 통후추는 고운 고기나 생선과 어울린다(왼쪽). 홀그레인 머스터드는 육류부터 해물까지 두루 곁들이기 좋다. [오허브 제공, 게티이미지]

통째로 씹어 먹어도 맵지 않은 빨간 후추는 구운 고기나 생선에 몇 알 뿌리면 보석처럼 예쁘고 입도 즐거워진다. 순하고 둥근 매운맛과 무색의 향이 필요할 땐 흰 후추를 갈아 써보길 바란다. 감자나 콩으로 만든 수프나 아이들과 함께 먹을 달걀이나 고기 요리 등에 사용하기 좋다. 양겨자로 불리는 머스터드의 폭도 넓혀보면 좋겠다. 겨자 알이 톡톡 터지는 홀그레인 머스터드는 새콤함부터 알싸함까지 모두 갖고 있어 육류부터 해물까지 두루 곁들이기 좋다. 생굴에 홀그레인 머스터드를 조금 얹고 레몬즙 살짝 뿌려 먹으면 전혀 새로운 굴맛을 만날 수 있다. 디종 머스터드는 빵에 듬뿍 바르는 것만으로도 늘 먹는 샌드위치 맛을 바꿔준다. 외국에서 수입한 머스터드는 맛이 센 것, 부드러운 것, 달콤한 것 등으로 여러 가지가 있으니 다양하게 경험해보면 좋겠다.

병에 든 것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케이퍼는 대체로 연어에만 곁들이는데, 토마토소스 파스타에 넣으면 산뜻함과 짭조름함을 선사하고, 샐러드에 넣으면 식초 같은 새콤한 역할을 하며, 치즈와 먹으면 유제품의 고소함을 살려준다. 꽃봉오리 절임인 케이퍼가 마음에 들었다면 그 열매인 오동통한 케이퍼 베리도 좋아할 것이다. 기름진 요리를 먹을 때 피클처럼 케이퍼 베리를 곁들여 먹으면 된다. 새콤하면서도 녹진한 맛이 나므로 반으로 잘라 내면 먹기에 더 좋다. 무엇보다 견과류와 함께 가벼운 술안주로 내면 케이퍼 베리의 매력적인 제 맛을 보기에 더없이 좋다.



신동아 2022년 2월호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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