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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는 내 인생의 기초공사”

‘영원한 농구인’ 최·희·암 고려용접봉 사장

  • 이영미 | 스포츠 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농구는 내 인생의 기초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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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스미스, 도널드 휴스턴

스토리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과거에는 삼성 대 현대, 연세대 대 고려대, 한국화장품 대 태평양 등 붐업을 일으킬 요소가 많았다. 더욱이 고등학교, 대학교, 실업팀 등으로 팬들의 관심이 분산됐다. 지금은 모두들 프로의 화려한 꽃만 보려 하지, 줄기나 뿌리는 외면하지 않나. 프로라면 시스템적으로 운영해야 하는데 지금은 10개 프로팀이 다들 비슷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는 “현장을 떠나면 그곳을 잊어야 하는데, 아직도 농구 얘기를 하며 흥분하는 걸 보면 농구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는 모양”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시스템적으로 문제가 있는 농구를 보면 열 받기도 한다. 왜 저렇게밖에 못하나 싶어서. 내가 다시 하면 더 잘할 것 같기도 하고(웃음). 사실 회장님으로부터 회사로 들어오라는 제의를 받고 일주일쯤 고민했다. 만약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난 여기서 은퇴할 때까지 버티고 있을 각오를 해야 했다. 조금 하다가 안 된다고 해서 다시 농구판으로 돌아가는 짓은 안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주일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능력이 안돼 도태되거나 잘리면 ‘고향집’을 찾아가야겠지만 나이 50이 넘어 선택한 새로운 분야에 대해 나도 책임의식을 갖고 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 오며 농구를 잊으려 했는데, 지금의 농구는 내게 잊지 말라고 신호를 보낸다. 문제점들을 노출하면서.”
최희암은 휘문고를 졸업하고 농구 실력으로 연세대 입학을 못하게 되자 예비고사를 보고 대학에 입학한 특이한 케이스이다.
“중·고등학교 때 농구를 하면서도 공부를 놓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시험 치르고 연대 들어가는 내가 대견했던지 휘문고 감독님은 물론 교장선생님까지 연세대 농구부를 찾아가 최희암이란 애가 입학하면 농구부로 받아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제자가 농구로 대학 진학을 못하게 된 데 대한 미안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선생님들의 도움 덕에 74학번으로 농구부에 입단했다.
그런데 체육특기자로 뽑힌 선수들의 실력은 대단했다. ‘불멸의 가드’로 불린 인창고 박수교, 고교 최고 센터인 용산고 신선우가 내 동기였다. 실력이 뛰어난 동기가 많다 보니 내겐 출전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았다. 2학년 때 반짝 활약했지만 1학년 후배들로 신동찬, 박인규 등이 입단하면서 다시 벤치로 물러났다. 당시 국가대표 선수 12명 중 연세대 출신이 6명이나 됐을 정도로 다들 실력이 좋았다.
6명 모두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아마추어 농구지도자로 명성을 날린 딘 스미스 감독으로부터 직접 농구를 배운 도널드 휴스턴이란 사람이 연세대 농구부를 찾았다. 이화여대 교환교수로 오신 분인데 학교 측의 주선으로 우리 학교에서 농구를 가르치게 된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딘 스미스의 농구가 무엇인지, 그가 어떤 기술을 전파하고 있는지 알게 됐다. 그 시간이 향후 지도자 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동기생 신선우, 박수교, 장봉학과 1년 후배 신동찬, 박인규 등이 모두 대표팀에 나가 있는 동안 학교에 남은 최희암은 딘 스미스에게 농구를 배운 도널드 휴스턴을 만났고, 그로부터 프리징 플레이(freezing play), 페이크 스위치(fake switch), 트래핑 디펜스(trapping defense) 등의 기술을 배우게 됐다.



패턴 농구

“그때 농구부에서 통역 가능한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그분의 말을 통역하고, 그분이 가르치는 새로운 기술의 농구를 배우면서 농구에 푹 빠져 지냈다. 그때 김영기 감독(현 KBL 회장)과 김인건 코치가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있었는데, 연세대 농구부와 세 차례 연습 경기를 했다. 우리로선 주전 멤버들이 모두 대표팀에 나가 있던 터라 2진 선수들을 데리고 연습경기를 치렀는데 휴스턴이 알려준 기술로 경기를 풀어가면서 대표팀을 상대로 한 번 지고, 두 번을 이겨버렸다. 김영기 감독이 얼마나 화가 나고 창피했겠나. 주전도 아닌 후보들이 뛰는 상대한테 두 번이나 졌으니. 나중에 우리한테 다가와선 ‘도대체 그 기술이 뭐야?’라고 물으시더라. 김영기 감독도 그때 처음으로 ‘프리징 게임’ ‘런 앤 점프’ 같은 용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대학 졸업 후 현대전자에 입단한 최희암은 당시 팀을 이끌던 방열 감독에게 휴스턴으로부터 배운 전술 노트를 모두 건넸다고 한다.
“방열 감독이 연세대 경기를 지켜보신 터라 그 전술에 대해 매우 궁금해하셨다. 그래서 내가 기록해놓은 노트를 모두 드렸다. 딘 스미스 감독이 한국 농구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셈이다.”
최 사장 옆에서 조용히 얘기를 듣고 있던 고려용접봉 박휘철 관리부장이 말했다.
“우리 사장님이 농구 얘기를 하시니까 표정이 확 밝아졌네요.”
이어진 최희암의 곁들임.
“농구는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속 고향처럼 남아 있을 수밖에 없어.”
최희암은 연세대 감독 시절, 열린 사고로 팀을 운영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연세대가 농구대잔치에서 우승할 때 내가 고려대 출신의 이우재 선생을 코치로 모셔왔다. 학교 측에선 라이벌 고려대 출신을 연세대 코치로 임명하는 데 반대했지만 나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선수들에게 다양한 농구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겨울휴가 때면 선수들을 용산고, 휘문고 등으로 ‘단기 유학’을 보냈다. 서장훈, 문경은 등 핵심 선수들을 모두 고등학교로 보냈다. 나보다 더 훌륭한 지도법을 가진 선생님으로부터 실전 농구를 배워 오라는 의미였다. 농구를 배울 수만 있다면 어떤 상황도 다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내 철학이었다. 배우는 걸 부끄러워해서도 안 된다고 믿었다.”
최희암을 설명하는 데 빠질 수 없는 게 ‘패턴 농구’다. 그가 패턴 농구에 빠진 계기는 인디애나대 농구감독 보비 나이트의 농구이론 서적이다. 이 책에 나오는 농구 기술을 연세대에 맞는 훈련으로 접목하면서 팀워크를 중요시하는 패턴 농구를 실행에 옮기게 된다. 공격하는 상황에서 패스를 주고받다가 완벽한 슛 기회를 만들어 성공률이 가장 높은 슛을 던지는 작전이다. 서장훈이라는 ‘빅맨’. 문경은 우지원 김훈의 막강 공격력, 팀을 진두지휘하는 이상민의 영리함이 최희암의 패턴 농구를 완성시켰고, 성적으로 결과를 증명했다.
인터뷰 말미에 최희암의 농구 인생에 소중한 존재로 남은 선수들의 얘기를 꺼냈다. 먼저 문경은.



최희암의 아이들

“경은이는 연세대 시절 최고의 슈터였다. 아무리 작전이나 팀워크가 좋으면 뭐하나. 슛을 제대로 못 쏘면 말짱 도루묵인 걸. 경은이는 그 ‘점’을 찍을 줄 아는 선수였다. 그런 실력을 발휘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나한테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그걸 꾹 참고 살아난 덕분에 프로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 거다.”
최희암은 어느 인터뷰에서 ‘우지원은 얼굴, 서장훈은 실력’이라는 말로 두 선수를 평가한 적이 있다.
“맞는 얘기 아닌가. 지원이는 스스로 ‘황태자’가 된 선수고, 장훈이는 센터로서 최고의 실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난 상민이나 지원이가 여자들한테 인기 있는 게 신기했다. 걔네들이 뭐 아주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 않나(웃음).”
최희암은 이상민, 서장훈 때문에 ‘감독 최희암’이 인정받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내가 대학 팀 시절 우승을 밥 먹듯 한 데에는 상민이와 장훈이가 큰 역할을 했다. 두 선수가 연세대에 오지 않았다면 그런 성적을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장훈이가 상민이를 무척 좋아했다. 상민이 따라서 연세대에 온 것도 사실이고. 상민이가 심지가 깊어 장훈이를 살뜰하게 챙겼다. 상민이는 대학 4년 동안 한 번도 속을 썩이지 않았다. 때리면 맞고, 욕하면 받아들였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마디로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아이였다. 반면에 장훈이는 개성이 강한 만큼 논리적인 설명을 들이대며 접근해야 했다. 평소 책을 많이 읽는 터라, 감독이 우격다짐으로 몰아쳐도 절대 수긍하지 않았다.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면 쉽게 받아들였다.”
현재 방송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서장훈에 대해 스승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난 장훈이가 연세대에서 교수를 하기 바랐다. 워낙 머리가 비상한 아이라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방송도 장훈이에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수입도 좋고, 인기도 누리면서 많은 걸 얻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농구판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본인도 그러고 싶어 하는 것 같고.”
대학에서 화려한 시절을 보낸 그가 프로에선 유독 많은 부침을 겪었다.
“자존심 상했냐고? 전혀 그렇지 않았다. 프로에선 트레이드가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내 의지대로 선수를 스카우트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시간을 갖고 차분히 기다렸어야 했는데, 빨리 뭔가를 보여주려고 무리수를 뒀다. 사람은 세월을 잘 만나야 하는데, 나로선 그때 프로 감독이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세월이 날 배반한 거나 마찬가지다.”





“농구가 있어 행복했다”

유재학(모비스), 유도훈(전자랜드), 문경은(SK), 이상민(삼성), 조동현(kt) 등은 감독 최희암과 사제의 인연을 맺은 지도자들이다. 그중에서 유재학 감독은 최희암 밑에서 연세대 코치로 활약했다.
“많은 제자가 현역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흐뭇하고 자랑스럽다. 그만큼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감독이란 자리는 직업의 특성상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모두 건강하게 자기 역할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최희암은 창원에 농구 경기가 있을 땐 농구장에 가 후배들을 응원하기도 한다. 그가 말했듯 농구는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고향의 정을 느끼고 싶을 때면 농구장을 찾는 것이다.
“최희암에게 농구란 무엇이냐”고 우문(愚問)을 던졌다. 현답(賢答)은 이랬다.
“내 인생의 기초공사를 해준 게 농구다. 우연한 기회에 농구를 접했고, 선수생활을 통해 성장했고, 연세대 진학과 졸업, 실업팀 입단과 회사 입사, 그리고 연세대 감독으로 지도자로서 전성기를 보낼 수 있게 해줬다. 농구로 인해 아픈 시간도 많았지만, 농구를 통해 행복한 시간이 더 많았다. 그래서 농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신동아 201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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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 스포츠 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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