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호

“안락사, 자살 아닌 ‘자사(自死)’로 불러야”

[이명현의 과학에세이] 100세 시대 부상하는 ‘잘 죽을 권리’

  • 이명현 과학콘텐츠그룹 갈다 대표

    입력2025-03-0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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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진다’는 것이 주는 죽음의 공포

    • 죽음 체념하자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 시작

    • 죽어 사라질 이웃에게 연민 싹터

    •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 행사할 수 있어야

    • 안락사는 존엄 지키며 죽음 맞는 최소한의 장치

    버튼을 누르면 수분 안에 사망에 이르러 ‘죽음의 캡슐’로 불리는 조력 자살 기기 사르코. [사르코]

    버튼을 누르면 수분 안에 사망에 이르러 ‘죽음의 캡슐’로 불리는 조력 자살 기기 사르코. [사르코]

    “죽으면 어떻게 돼?”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어느 여름날 밤으로 기억한다. 마루에 큰 모기장을 치고 온 가족이 함께 잠을 자고 있었다. 더워서인지 뒤척이다가 잠에서 깼다. 옆에서 자고 있던 어머니도 마침 눈을 떴다. 어머니가 왜 깼냐고 물어보며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느닷없이 이렇게 질문했다. 어머니는 “사람이 죽으면 하늘나라로 가는데 우리 가족 모두 그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전형적인 대답을 했다.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을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당시 죽음에 대해 구체적인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막연하게 죽으면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무섭고 두렵고 답답했었다. 죽음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우리는 별로부터 온 ‘별 먼지’

    ‘코스모스’를 쓴 천문학자 칼 세이건도 어느 날 어린 딸로부터 죽음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사샤 세이건은 아버지에게 죽으면 다시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칼 세이건은 “우리는 별로부터 만들어진 물질로 이루어졌는데 죽으면 다시 자연의 일부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죽고 나서도 계속 존재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현재까지 알고 있는 증거로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이 전부이고 사후 세계는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어린 딸에게 냉정하게 사실적으로 답한 것이다. 하지만 칼 세이건은 “죽더라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함께했던 순간들의 기억을 남긴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따뜻하고 다정한 감성을 담고 있는 말이다.

    칼 세이건을 아버지로 둔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다. 어린 시절 죽음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을 때 그의 대답을 들었다면 훨씬 빨리 죽음과 삶에 대한 태도를 완성했을지 모른다. 어머니와 대화한 그날 이후 죽는다는 것이 점점 더 무서워졌다. 자신이 그냥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어느 날 만화책을 보다가 해결책을 찾아냈다. 신라시대 인물인 최치원은 신선이 돼 경주 남산에 들어갔는데 천년에 한 번 세상에 나온다는 내용이었다. 천년에 한 번 세상에 나온다니! 나는 신선이나 도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신선이 되면 몇천 년은 산다는 것 아닌가. 결국 선생님이 장래 희망을 묻는데 도사라고 대답하는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화가 난 선생님은 부모님을 학교로 호출하기에 이르렀다. 어린아이의 공상으로 받아줬으면 좋았을 사건이었는데 어른들이 너무 민감했던 게 아닌가 한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선이나 도사가 되는 방법을 알 수 없었고, 이런 내 생각이 망상이라는 것을 깨닫자 장래 희망에서 도사도 함께 사라졌다.

    16∼17세기경 플랑드르 지방에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해골 그림.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월계관을 쓰고 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16∼17세기경 플랑드르 지방에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해골 그림.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월계관을 쓰고 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죽음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이어진 사춘기 때다. 죽음을 조금이라도 다룬 과학책은 물론이고 문학이나 철학책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종교는 애당초 관심사가 아니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결론은 이미 알고 있었다. 죽지 않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엄연한 사실 말이다. 죽어서 사라진다는 두려움 때문에 사실을 애써 외면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결론을 유보하고만 있었다. 숱한 탐구와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당연했고,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말하자면 체념한 것이다. 여전히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앞섰고, 죽음이 두려웠다. 나만은 죽음을 피할 수 있다는 망상이 헛된 희망으로 찾아오곤 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고 결국 포기했다. 체념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죽음을 받아들이자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이 달라졌다. 달라졌다는 것보다 새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죽음에 관한 고민이 체념을 통해 해결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가 화두가 됐다. ‘우리는 별로부터 온 별 먼지’라는 것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통해 알게 됐다. ‘나’라는 존재는 지구에 잠깐 존재했다가 다시 흩어지는 별 먼지로 이뤄진 생명현상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면서 우주론적 존재로서의 자신이 무척 경이롭게 느껴졌다. 이윽고 허무함이 함께 찾아왔다. 결국은 사라질 미미한 존재라는 자각이었다.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체념한 후 과학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면서 ‘유한함’이 세상을 대하는 가장 중요한 말이 됐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삶은 유한할 수밖에 없다. 죽음은 체념을 통해 포기해서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됐다. 근원적 두려움과 답답함이야 없어지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가 관심의 중심이 됐다. 유한함에 대한 성찰은 현재의 삶에 더 무게를 두는 태도를 만들었다. 유한한 삶이니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가 생겼다. 매 순간의 행위가 결과보다 더 가치 있게 여겨졌다.

    사람을 대하는 기본적 태도에 ‘연민’이 자리 잡았다. 다른 사람들 역시 유한한 삶을 살다가 결국 죽어 없어질 존재로 인식하자 연민의 감정이 싹텄다. 광활한 우주 속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서 시대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같이 사라져 버릴 존재로서의 연민이 마음속에 강하게 자리 잡았다. 나아가 유한한 시공간을 공유한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소중해지기까지 했다. 소중하지만 안타까운 존재들과 경쟁보다 협력을 원하게 됐다. 완전히 공감할 수 없더라도 공감의 반경을 넓혀서 느슨한 연대를 이루면서 유한한 삶을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죽음에 대한 체념이 결국 삶의 태도를 만들었다. 사춘기 시절은 말하자면 세상을 보는 가치관이 만들어진 시기다. 지금까지 이때 만들어진 세계관과 가치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살고 있다.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2010년 11월 말 어느 일요일 밤이었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졌고, 다행히 집에서 가까운 곳에 대학병원이 있어 이송과 시술이 골든타임 안에 이뤄져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겼다. 지금도 몇 달에 한 번씩 병원에 다니고 있다. 운동 같은 일상은 제한된다. 이듬해 3월 아내가 여러 차례 뇌 수술을 받았다. 죽음의 문턱까지 가서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계속 병원에 입원해 투병 중이다. 관념적이었던 죽음의 문제가 눈앞의 현실이 돼 나타난 것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때문인지 그 순간 어떤 체험을 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집에서 쓰러졌을 때는 너무 아파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병원 응급실에서 조치를 받고 온몸에 주삿바늘을 꽂은 채로 의식을 조금 회복했을 때도 통증이 생각을 앞섰다.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희미한 생각 정도를 할 수 있었다.

    어릴 때 느꼈던 사라짐에 대한 두려움이 다가왔다. 이게 내 마지막 의식인가 하는 생각에 이르자 몇몇의 얼굴이 떠올랐고 몇몇 장면이 스치면서 지나갔다. 환각을 봤는지 임사체험을 했는지 질문을 받기도 한다. 강렬한 색깔의 환상이 약간 있긴 했다. 산소 공급 부족에서 오는 현상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임사체험은 없었다. 흥미롭게도 평소 좋아하던 박정만 시인의 ‘종시’가 떠올랐다.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다소 시시한 죽음의 문턱 경험이었다. 살고 싶다는 욕망보다는 체념의 태도가 전체적으로 지배한 듯하다. 차분하게 자신의 처지를 지켜봤다고나 할까. 혈관에 스텐트를 넣는 시술을 받는 동안 의사가 동료들과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다소 부정적이던 의사의 말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내가 하던 일과 나와 교류하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미완성으로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이제는 살아서 다시 그 미완성의 행위에 동참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바뀌면서 안도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순간에도 기도를 하지 않았다. 그런 자신이 기특했다. 변한 것이 있느냐는 질문도 가끔 받는다. 사춘기 시절 만들어진 죽음과 삶에 대한 태도가 나와 아내가 맞이한 죽음의 순간에 자연스럽게 발휘됐을 뿐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 전과 후에 삶의 태도나 행태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큰 변화가 있었다. 죽음을 체념으로 받아들인 다음에는 삶의 문제에 집중했더랬다. 죽음 자체에 관한 생각은 별로 한 적이 없다. 어쩌면 죽음을 애써 외면하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살 것인지가 항상 화두였다. 그런데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다음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생각하게 됐다. 별 먼지로 살아가다가 우주로 돌아가면 그만인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마당에 어떻게 죽는가 하는 것이 그리 중요한 일이겠는가.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해 왔다. 죽고 나면 자신은 이를 알아차릴 의식이 없으니 죽음 후의 문제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종교가 없지만 내 장례식을 종교의식으로 치른다고 한들 반대할 생각이 없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그들 마음이 편한 대로 또 형편대로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한번 쓰러지고 났더니 죽는 순간까지는 죽어가는 사람의 몫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잘 살고 싶은 만큼 잘 죽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 것이다.

    네덜란드·벨기에·캐나다·스페인·호주 안락사 허용

    자살 예방을 위해 서울 마포대교에 설치된 ‘한번만 더’ 동상. [뉴스1]

    자살 예방을 위해 서울 마포대교에 설치된 ‘한번만 더’ 동상. [뉴스1]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에서 죽음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무척 조심스럽다. 하지만 죽음은 상수이고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필연이라면 힘들더라도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장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 잘 죽는다는 게 무엇일까. 행복하고 충만한 죽음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판타지의 영역이다. 무엇보다도 죽음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 잘 죽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음만이라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원론적 생각을 해봤다. 죽음과 관련해 자신의 의지를 반영하는 길이 있다. 장기나 시신 기증을 통해서 죽은 후의 자신의 신체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장례 절차에 대한 것을 미리 준비해 둘 수도 있다. 유산 기부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죽음 후에도 이어갈 수 있다. 연명치료 중단 동의서를 미리 작성해 둔다면 죽음의 순간에 자신이 지닌 최소한의 의지를 반영할 수도 있다.

    잘 죽는 것의 첫 번째 조건은 자기결정권에 달려 있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 최소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죽는 것이다. 자기결정권을 갖고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면서 죽는 행위를 흔히 안락사라고 한다. 조심스럽지만 안락사를 부정적 의미의 단어인 자살(自殺)이 아닌 조금 더 포괄적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자사(自死)라는 말로 바꿔서 쓰면 어떨까 한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그냥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병에 걸려서 더는 건강 수명을 유지하기 힘든 경우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나라들이 있다. 의사가 직접 약물을 투여하는 능동적 안락사와 환자가 직접 약물을 복용하는 의사 조력 자살이 있다. 두 경우 모두 안락사를 선택하는 사람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고, 치료 가망이 없다는 조건에서 허용된다. 환자가 의식이 또렷한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안락사를 요구해야 하고 의사들의 적격 판정이 있어야 한다. 능동적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 모두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네덜란드를 비롯해서 벨기에, 캐나다, 스페인, 호주가 있다. 둘 중 한 가지 경우를 허용하는 나라는 스위스, 콜롬비아, 뉴질랜드가 있다. 미국은 일부 주에서 안락사가 합법이다. 한국은 안락사가 여전히 불법이다.

    ‘인간답다’는 것의 정의를 인간의 동물적 본성에서 찾기보다 인간이 이룩한 인지적 존엄의 가치 추구에서 찾으려는 전향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 맥락에서 ‘잘 죽을 권리’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 바탕은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다.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 중 제도권 내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이 안락사다. 조심스럽지만 반걸음만 앞으로 나간다는 생각을 한다면 안락사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면서 죽음 맞이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될 것이다. 상황이 좀 더 무르익는다면 자사로서의 포괄적인 안락사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근원으로 돌아가서 인간의 존엄과 자기결정권만 염두에 두더라도 안락사는 시대적 요구다.



    댓글 1
    추천 많은 댓글
    • BEST
      2025-03-08 18:19:22
      매우 깊이있는 글을 읽게되어 격하게 공감합니다. 다시 읽어보면서 강의시 활용하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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