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호

트럼프식 ‘매드맨 전략’, 공포 관리하고 TF로 대응해야

[총력분석 | ‘성동격서’ 트럼프의 노림수] 1기 때보다 한층 독해진 트럼프의 압박

  •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국민대 석좌교수

    입력2025-03-28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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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드맨 전략 쓰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미치광이 제안처럼 보이는 고도의 ‘협상 과학’

    • 공포가 사회 전체로 확대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 트럼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지 않아야

    • 경제부처와 민간, 한시적 TF 구성·운영 필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앞)이 2025년 3월 4일 워싱턴 미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J D 밴스 부통령(뒷줄 왼쪽)과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듣는 가운데 그린란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앞)이 2025년 3월 4일 워싱턴 미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J D 밴스 부통령(뒷줄 왼쪽)과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듣는 가운데 그린란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뉴시스

    매드맨(Madman)을 직역하면 ‘미치광이’다. 매드맨 이론(Madman Theory)을 두고 일부 전략가는 ‘미치광이 전략’이라고 직역한다. 이는 명백한 오역이다. 미치광이의 전략이 아니다. 미치광이의 제안처럼 보이도록 해 고도로 계산된 전략적 의도를 달성하려는 ‘협상 과학’이다. 미치광이 이미지를 활용한 고강도 압박 전략인 셈이다. 오역과 의역을 절충하면 ‘광인 이미지 전략’으로 번역하는 것이 합당하다.

    매드맨 전략은 국제정치학계에서 쓰이는 전문용어다. ‘미치광이가 아니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공포스러운 내용의 제안을 해 상대의 정상적 대응 의지를 무력화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의도한 바를 수용하게 만드는 전략’을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후를 중심으로 게임이론(Thmas C. Schelling, the Strategy of conflict)이 대외 전략·정책을 설명하는 데 자주 사용됐는데, 매드맨 전략은 그 일부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위)은 베트남전쟁 기간에 핵무기 사용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방식으로 ‘매드맨 전략’을 구사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6·25전쟁 기간에 구사한 ‘북진통일정책’도 일종의 매드맨 전략이다. Gettyimage, 동아DB

    닉슨 전 미국 대통령(위)은 베트남전쟁 기간에 핵무기 사용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방식으로 ‘매드맨 전략’을 구사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6·25전쟁 기간에 구사한 ‘북진통일정책’도 일종의 매드맨 전략이다. Gettyimage, 동아DB

    베트남전쟁 기간에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은 실제 핵무기 사용 의지가 없으면서도 핵무기 사용을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이러한 대외 전략을 매드맨 전략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닉슨 대통령이 매드맨 전략을 구사한다고 해서 그를 미치광이로 생각하는 학자는 없다.

    6·25전쟁 기간 중에 이승만 대통령이 구사한 북진통일정책, 남북 분단 시기 북측이 사용한 ‘서울 불바다론’ 등도 일종의 매드맨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단독으로 북진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가장 잘 알면서도 국군 단독 북진을 주창해 미국의 조기 정전을 저지하려 했다. 북측도 1990년대 초 ‘서울 불바다’ 발언을 통해 우리 사회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대북 굴종 정책을 펼치려 했다.

    미국 터프대의 저명한 학자인 대니얼 드레즈너(Daniel W. Drezner) 국제관계학 교수는 마키아벨리의 저서 ‘로마사 논고(Discourses on Livy)’에 나오는 “때때로 광기를 흉내 내는 것은 매우 지혜로운 일”이라는 대목을 매드맨 전략과 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다. ‘손자병법’의 “먼저 이겨놓고 전쟁을 시작한다(先勝求戰)”는 구절도 마찬가지다.

    드레즈너 교수는 2025년 1월 ‘트럼프의 매드 전략은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트럼프식 매드맨 전략의 강점과 약점을 평가했다. 특히 그는 트럼프 집권 1기 때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데 매드맨 전략이 활용됐다고 분석했다.


    트럼프식 매드 전략의 네 가지 성공 조건

    2015년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에 지명됐을 때, 드레즈너 교수는 “트럼프 스스로 매드 전략주의자임을 밝혔다”면서 세 가지 팩트를 근거로 “트럼프가 대통령선거 기간에 매드 전략가임을 셀프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또 트럼프에 대해 “약간 미쳤고, 약간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 될 각오가 돼 있다. 당선된다면 전임 대통령과는 다른 유형의 미국 대통령이 될 것이다. 이에 미국은 국가로서 더 예측 불가능해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드레즈너 교수는 집권 1기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매드맨 전략을 통해 남북한을 다뤘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트럼프는 북한 지도자 김정은에 대해 2017년 8월까지 “극도의 분노를 보여주고, 로켓맨이라고 조롱하면서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고 천명했다. 초기에 김정은에게 ‘멘붕(멘털 붕괴)’에 가까운 분위기를 조성한 이후 극적으로 성사된 김정은과의 세 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추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유예시켰다.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해 일정 부분 관철했다.

    트럼프식 매드맨 전략은 네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성공한다. 첫째, 매드맨 전략의 대상국과 국가지도자가 트럼프가 선언한 고강도의 위협적 제안을 실제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둘째, 제안이 이행됐을 때 표적 국가에 회복 불가능한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공포의 확산이다. 셋째, 고강도 제안을 표적 국가가 수용하면 제안한 내용이 실질적으로 철회되거나 조정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둔다. 넷째, 모든 협상 과정이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의 위엄이 손상되지 않도록 관리돼야 한다.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트럼프의 협상 전략을 이 네 가지 조건을 통해 걸러보면 트럼프가 구사하는 매드맨 전략의 진행 방식과 효과를 평가해 볼 수 있다. 첫 단계에서 트럼프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대놓고 고강도로 압박했다. 대통령 자격론 등 젠렌스키의 국내 정치 정통성을 흔들었고, 빈손으로 종전하는 조건을 수용하도록 압박했다. 전쟁 기간 중 군사지원을 3000억 달러로 자의적으로 계산하고, 이를 우크라이나의 장기 채무로 전환하는 데 동의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양국 간 ‘자원협정’을 압박했다. 그 압박이 실제 진행될 수 있다는 믿음을 만드는 차원에서 푸틴과 대화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젤렌스키 정부는 트럼프가 고강도 위협을 실제로 이행할 힘을 갖고 있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게 됐다.

    두 번째 단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국민들은 트럼프의 고강도 위협이 실행됐을 때 국가가 패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공포감을 갖게 됐다. 투항적 양보를 통해서라도 트럼프의 제안이 실제로 이행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젤렌스키는 미국이 요구한 ‘자원협정 초안’을 들고 백악관을 방문했다.

    세 번째 단계, 젤렌스키는 자원협정을 통해 고강도 압박에 순응하면 우크라이나 미래 안보가 보장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종전 협정의 전권을 트럼프에 위임하라는 한층 강화된 매드맨 전략을 정상회담에서 구사했다. 회담 결렬도 매드맨 전략 시나리오 중 일부로 판단된다.

    네 번째 단계, 트럼프에게 불리한 국내외 여론이 조성되자, 회담 결렬 이후 “젤렌스키가 트럼프에게 정중하게 모든 조건을 충족할 준비가 돼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략 메시지를 통해 알려 트럼프와 미국의 권위를 유지했다.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트럼프의 매드맨 전략이 성공했는지를 현 단계에서 평가하기 힘들다. 트럼프가 원하는 방식과 내용대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조기에 종식시키는지를 지켜봐야 한다. 이후 미국의 위상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 전 세계에서 높아지는지, 낮아지는지가 전략 성공의 궁극적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현재 전쟁하고 있는 데다 위상이 가장 낮은 우크라이나를 다루는 방식이 다른 나라에 통할지도 지켜봐야 한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 파병을 거론하면서 트럼프의 매드맨 전략에 상당한 타격을 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24년 9월 27일 미국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24년 9월 27일 미국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예상되는’ 한반도 겨냥한 매드맨 전략

    트럼프는 3월 4일 미 의회 연설을 통해 우리 정부에 대해 “미국이 손해 보는 동맹”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군사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한국의 관세는 미국의 4배”라고 지적했다. 한미 FTA에 기반한 양국의 관세를 비교하면 한국이 미국보다 4배 높은 관세를 물린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2024년 기준, 미국산 제품에 대한 우리 정부의 평균 관세율은 0.79%에 불과하다. 미국산 제품 대부분은 무관세로 한국에 들어온다. 미국 의회, 미국 시민, 전 세계 여론 주도층에 트럼프는 이미 한미 경제 관계에 대해 매드맨 전략을 구사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하게 드러냈다. 이를 앞서 언급한 4단계 매드맨 전략 조건에 대입해 분석해 보자.

    첫째, 트럼프는 한국에 대해 미국이 좀 이득을 보는 경제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한다. 미국이 이득을 보려면 자연히 우리 기업, 우리 정부가 손해를 봐야 한다. 한국 상품에 대해 고율 관세를 부가하면 자연히 우리 기업은 관세를 피해 미국에 대한 직접 투자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한국은 바이든 정부 때도 미국에 투자하는 세계 두 번째 ‘큰손’ 국가였다. 알래스카 송유관 투자 요청도 예고된 고율 관세 부과와 동전의 양면 같은 정책이다. 캐나다, 멕시코 등 미국의 핵심 우방국에 이미 실행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도 고강도 압박 정책을 그대로 실행할 것으로 예측한다.

    둘째, 한국 정부가 미국의 새로운 대(對)한국 경제정책을 수용하지 않을 때 어떤 재앙이 초래될 것인지에 대한 국내 공포 분위기 형성 여부다. 미국 시장에 의존하는 자동차, 반도체 등 제조업 경기에 된서리가 내릴 것이다. 미국 시장에서 거부당하면 한국 제조업, 한국 경제는 재앙에 가까운 곤경에 처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셋째, 한미FTA,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세율 등을 기반으로 트럼프 정부의 조치에 저항하면 트럼프는 방위비 분담, 주한미군 철수 또는 규모 조정의 문제와 연계할 것이다. 넷째, 어떠한 경우에도 트럼프 정부는 한국 정부에 의해 권위나 힘의 행사가 타격받지 않도록 모든 자원을 동원할 것이다.

    트럼프식 매드맨 전략이 우리 정부를 우회하지 않을 것이다. NATO와 연계된 우크라이나, 그린란드, 파나마운하 이슈와 캐나다·멕시코에 불붙은 관세 전쟁이 모두 트럼프식 매드맨 전략과 관련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드맨 전략은 진영 대결 구도에서 피아(彼我) 구분 없이 적용되고 있다. 드레즈너 교수는 “트럼프식 매드맨 전략이 진영 대결 구도에서 적대 진영 국가보다 우방 진영 국가에 더 쉽게 먹혀들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를 증명하듯 트럼프의 종전 발언이 러시아보다 우크라이나에 치명적 충격을 가한 현실을 생생하게 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일희일비하지 말고 의연해야

    첫째, 매드맨 전략 내용에 일희일비하면서 사회 전체의 공포심이 확대, 재생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트럼프의 전략적 압박에 대한 사회 전반의 두려움 수준이 잘 관리돼야 한다. 여야 정치권, 기업, 인플루언서들이 앞장서 국익 차원에서 두려움이 증폭되지 않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의연해야 한다. 둘째, 매드맨 전략의 마지막 단계에서 트럼프가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트럼프 정부와 미국의 권위다. 협상 과정에서 주요 정책 결정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지 않도록 전략 메시지를 관리해야 한다. 셋째, 한국에 대한 트럼프의 1차적 관심이 경제에 집중된 만큼 정부 경제 관련 부처와 민간 경제가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한시적 태스크포스(TF)를 구성, 운영할 필요가 있다.

    거듭 강조하자면, 트럼프의 매드맨 전략을 결코 미치광이의 전략으로 오역해서는 안 된다. 매드맨 전략은 트럼프식 광인 이미지 전략이다. 중상주의와 강대국 정치가 결합한 트럼프 정치의 본질이다. 트럼프의 매드맨 전략은 1기 트럼프 시대 전략에서 많이 경험했다. 전 세계가 잘 알고 있다.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말자.



    백승주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 現 전쟁기념사업회 회장, 국민대 석좌교수, 한중안보평화포럼 회장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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