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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 만나 친구로 늙어간다

남과 북의 두 戰士 김신조·이진삼

  • 이혜민 기자 | behappy@donga.com

적으로 만나 친구로 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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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군 29명 사살, 1명 생포. 아군 31명 전사, 51명 부상.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들이 청와대 기습을 노리고 일으킨 1·21사태로 많은 이가 죽고 다쳤다. 남파된 북한군 31명 중 한 명인 김신조는 삶을 택했다. 당시 국군 방첩부대 특공대장 이진삼과 북한 124군 요원 김신조는 적으로 만나 형제 같은 친구가 됐다.
“남파 루트를 찾을 때 나보다 빠른 사람이 우리 형님이었습니다.”

 6월 28일 오후 3시.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진삼(79) 장군의 자서전 ‘별처럼 또 별처럼’(황금물고기 刊) 출판기념회가 열린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 하객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백선엽 장군에 이어 김신조(74) 목사가 연단에 올라 장군과의 우정을 얘기했다.

두 사람은 어떤 사이일까. 이진삼 장군을 만나 인터뷰를 청하자 “(김신조와) 둘이 인터뷰하면 좋겠다”고 했다. 김신조 목사에게 의사를 물었더니 “이제 언론이라면 신물이 난다, 이로울 게 없다”며 딱 잘라 거절했다. 우여곡절 끝에 7월 초 이 장군의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장군이 목사를 회유했다.



“형님 처음 만났을 때…”

▼ 두 분이 지금껏 잘 지내신다니 뜻밖입니다.



이진삼 그럼! 나하고는 2주 동안 작전(적의 도주로 차단작전)을 같이 했으니 잊을 수 없는 관계지.  

김신조 제일 중요한 게 뭐냐 하면, 물 깊이는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잖아요. 우리 이진삼 총장님 만났을 때, 이분이 나를 어떻게 대하냐에 따라서 내 심정이 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형님을 만나자마자 내가 ‘협조해야 되겠다’ 그랬어요. 나는 26세, 형님은 31세 때였죠. 그런데 세월이 언제 그렇게 흘렀는지, 사건 관련자 대부분이 세상을 뜨고 이제 형님만 살아 계시거든. 형님, 우리가 오후 3시에 처음 만났나?

이진삼 아니야, 21일 밤새우면서 우당탕탕했단 말이야. 아우는 03시에 자수했지. 캄캄했었어.

김신조 맞네. 방첩부대에서 형님이 “무기 어디에다 숨겨뒀냐”고 묻고는 같이 인왕산 갔지.

이진삼 04시에 나하고 방첩대에 가서 면담하고, 05시에 특공대원 25명을 지휘해 작전 짜고, 06시에 경복고 정문으로 해서 인왕산에 갔지.


내가 김신조와 맨 처음 맞닥뜨린 것은 1968년 1월 22일 새벽 3시경, 그러니까 그가 세검정 계곡에서 군에 자수한 후 새벽 4시 15분경 내게 인도되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넘어왔던 일당들을 잡기 위한 ‘도주로(침투로 역방향) 차단작전’에 들어가면서였다. 나는 김신조를 대동하여 비봉 승가사 옆 200m 지점(1월 21일 낮에 은거했던 지점)의 드보크(dvoke, 간첩 장비 매설지)를 찾아 침투 시의 일부 장비를 회수하였으며, 공비 29명을 사살하고 1명이 월북한 것으로 1968년 2월 4일 작전을 종결하였다.

 - 이진삼 회고록 ‘별처럼 또 별처럼’ 135쪽




남북 특공대원의 동지애

▼ 이후 48년 동안 인연이 이어졌군요.   

김신조 진급하면 사귀던 사람에게도 등 돌리기가 쉽잖아요. 근데 형님은 진급할 때마다 “신조야, 와라” 그래요. 좋은 자리가 있으면 꼭 불러. 얼마나 고마워요…. 형제간에도, 부자간에도 그렇게 하기 힘듭니다. 나 같은 놈을 사랑한 분이니 형님으로 모셔야지.

이진삼 생각해봐요. 1·21사태 때 아우(김 목사)가 국가를 도와준 덕분에 작전이 빨리 끝나고, 부상자도 덜 생긴 것 아닙니까. 사람이 신의가 있어야죠. ‘명예는 상관에게, 공(功)은 부하에게, 책임은 나에게’가 내 신조예요.

▼ 김 목사께서 당시 이진삼 대위(방첩부대 특공대 장)을 신뢰한 모양입니다.

김신조 사람을 이용하는 사람과 그러지 않는 사람은 다릅니다. 대화해보면 바로 알죠. 특수부대 사람들은요, 거짓말 잘 안 해요. 형님하고 복귀로로 향하던 중에 내 동료들이 행군 중에 힘드니까 수류탄, 탄약 버리고 간 걸 형님이 보더니 “얘네들, 이래 가지고 전투하겠나, 이 따위 정신상태 가지고 내려왔어?” 그러는데, 그때 같은 특공대원으로서 동지애 같은 걸 느꼈어요.

이진삼 이 사람들은 혈서 쓰고, 죽을 각오하고 내려와요. 나도 작전하러 갈 때 유서 쓰고, 유서 쓰는 모습까지 사진으로 남겨둔 사람이니까 그 마음 잘 알지.

김신조 어느 나라나 특공대의 철학은 같습니다. 나라 지키기 위해 목숨 거는 것, 너나 나나 우리는 최고다, 그런 자부심이 있죠.



▼ 작전 중에 벌써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된 겁니까.

김신조 그런 셈이죠. 내 동료들 잡는 작전에 나를 투입한 건데, 누가 나를 감당하려나 보니까 특공대장이 오더라고. 작전을 같이 해보니 형님이 특수훈련받은 나하고 (실력이) 똑같은 거예요. 이런 악질이 남조선에도 있구나! 형님이 내 옆에 딱 달라붙어 걷는데, 수갑은 풀어주더라고.

이진삼 내가 수갑 풀어주라고 했어요. 둘 다 방탄조끼도 안 입었어. 겁이 없었지(웃음).

김신조 그때 내 심정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동료이던 사람들을 쫓는데…. 그때 형님한테 “대위님, 나를 살려줄 겁니까” 하고 물으니까 “살린다, 약속 지킨다” 하더라고요. 형님이나 되니까 수갑을 풀어준 거예요. 다른 사람 같으면 겁나서 그러지도 못했어. 형님을 믿었습니다. 자수한 마당이니 작전에 더 열심히 임했어요.



“머리 내밀고 나왔으니 自首”

▼ 자수? ‘김신조는 생포(生捕)됐다’고 들었습니다. 정부 기록에도 그렇게 돼 있고요.

 

1월 22일 ○ 02: 25, 제30사단 잠정 1개 중대와 5분대기조를 인왕산 하단에 배치, 적 퇴로차단, 제30사단 92연대가 독립가옥에 은신한 무장공비 1명 생포(김신조)

 - ‘對非正規戰史 Ⅱ 1961~1980’(국방군사연구소, 1998) 43쪽 



이진삼 30사단 걔들이 총질하고 굉장했습니다. 그때 김신조에게 “나오면 살려준다”고 했거든. 아우가 수류탄 한 발을 들고 있었으니 자폭할 수도 있었는데, 그냥 떨어뜨렸어. 그러고는 손들고 나온 겁니다. 맞지? 그러니까 자수지, 체포가 아니야.

▼ 색출작전을 해서 자수를 유도했다면 ‘체포’ 아닌가요? ‘체포’와 ‘자수’의 의미가 그렇게 다릅니까(표준국어대사전은 생포는 ‘산 채로 잡음’, 체포는 ‘형법에서, 사람의 신체에 대하여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구속을 가하여 행동의 자유를 빼앗는 일’, 자수는 ‘범인이 스스로 수사기관에 자기의 범죄 사실을 신고하고, 그 처분을 구하는 일’로 정의한다).  

이진삼 완전히 달라요. 상대를 체포했다고 해야 군인들의 공이 서지, 상대가 자수했다면 공이 안 서죠. 나는 자서전에 ‘김신조가 자수했다’고 썼잖아요. ‘자수(自首)’는 머리를 스스로 내민다는 뜻입니다. 자수했으니까 작전에 적극 협조한 거고. 덕분에 (작전이) 2주 만에 끝난 겁니다.

김신조 김일성 수령님을 위해 자폭하려고 했는데…수류탄 고리 하나 뽑으면 끝나는 건데 “나오면 살려준다”는 말에…. 손들고 나온 거예요. 명백한 자수입니다.  

▼ 그런데 정부는 왜 ‘체포’라고 발표한 겁니까.

김신조 자녀는 부모를, 국민은 정부와 군대를 믿고 삽니다. 북한에서 31명이 지령을 받아서 청와대까지 왔으니 국민이 얼마나 불안했겠어요. 더구나 그때는 우리 국력이 이북보다 약했으니까, 국민을 안정시키기 위해 그렇게 발표한 겁니다.

이진삼 나도 군인이었지만, 군인을 군인답게 보이게 하려고 ‘체포’라고 한 것 같아.  

김신조 정부가 그렇게 한 것도 이해가 돼요. 이 얘기는 평생 묻고 가려고 했는데….

▼ 사실이 아니라면 그때 왜 안 밝혔습니까.

김신조 허…참, 그때 내가 약자입니다. 협조하기로 했는데 어떻게 그럽니까.

이진삼 아우님, 입 좀 축이며 말해.



“가족까지 매도하니…”


▼ 현장을 지켜본 이 장군께서 문제를 제기하지 그랬습니까.   

이진삼 난 체포, 자수란 말이 나오는 것도 몰랐어요. 작전하느라 바빴으니까.

김신조 형님은 군인입니다. 군인은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습니다. 나중에 언론에도 몇 차례 얘기했지만 증인이 없으니 ‘주장’에 그쳤습니다. 속내를 자서전 원고에 써놨는데 정보기관에서 반대해 ‘자수’란 말이 빠졌어요(자서전에는 ‘투항’으로 표기됐다-편집자).

도면에 청와대 내부 구조와 인원 및 화력 배치 등을 그려 가며 설명했더니 경호실장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당시 남한의 경비 상태가 그 정도였으니 내가 투항한 것으로 발표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 남은 나라도 생포된 공비로 알려져야 했다.

-김신조 ‘나의 슬픈 역사를 말한다’(동아출판사, 1994) 173쪽   



이진삼 아우님이 자수해서 우리 작전을 도왔는데 체포했다고 하니까 기분이 좋을 리 없지. 지금도 군 기록에는 체포한 걸로 돼 있어요.  





1월 22일 03:00경, 홍제동에서 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하단에 배치되어 주변을 수색 중이던 제30사단 제92연대 제3중대와 5분대기조가 이 능선 기슭의 독립가옥에 은신한 무장공비 1명(김신조)을 생포했다

-‘국방사건사 제1집’(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12) 108쪽



김신조 북에 적개심을 갖게 하고 우리끼리 뭉치게 하는 것, 그게 심리전인데 정부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섭섭한 것은, 모든 잘못을 내게 돌린다는 거예요. 나야 희생돼도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가족까지 매도하니까 참….  

언론이 주선해 피해자 가족들을 만난 적도 있어요. 그런 곳에 가보면 나는 ‘죽일 놈’입니다. 그런 일이 계속되니까 자수한 것도, 나라 위해 일한 것도 후회돼 몇 번이나 죽으려고 했어요. 유족들은 내가 다 피해를 입힌 줄 압니다. 내 동료들이 한 걸 왜 내가 다 뒤집어써야 합니까. 나도 가정이 있어요. 그럼 내 아내하고 자식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애들이 반공교육 받다가 내 얘기를 들었다는데, 아버지인 날 어떻게 보겠어요. 그런 애들을 보는 아내 심정은 또 어떻고….



“나는 가해자 아니다”

이진삼 정부가 김신조한테는 아무것도 안 해줬어. 사람들이 나더러 애국자라는데, 내가 아니라 김신조가 애국자야.

김신조 그런 얘기는 하지마, 형님.

▼ 그간 생계는 어떻게 꾸렸습니까.


김신조 1970년 4월 10일에 사회에 나와 정릉에서 사글세를 살았습니다. 언론에서는 정부가 집을 마련해줬다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형님이 회사에 넣어주고, 안보 강사도 하면서 살았지요. 안보 강연을 지금까지 3000회 넘게 했습니다.

▼ 정부의 보상을…


김신조 보상을 바라는 게 아니에요. 사실관계만 확실하게 짚고 싶습니다. 당시 사상자가 많았습니다. 연대장, 경찰서장, 순경, 시민들까지. 그중에 내가 죽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갖고 온 무기를 하나도 안 썼거든. 22일 밤 교전이 시작되자마자 경복고 후문으로 빠져서 인왕산으로 올라가 수류탄 1발만 지니고 나머지는 다 바위틈에 두고 왔습니다. 검문검색을 하니 그럴 수밖에요. 숨겨둔 무기는 자수한 뒤 형님이랑 같이 가서 확인했습니다. 나를 살인자로 매도해도 처음에는 살기 위해서 참고, 그 후에는 나라를 위해 참았지만 더는….

이진삼 이 사람은 1·21 때 피해를 입힌 적이 없어요. 내가 보장합니다. 동료들이 자신들을 발견한 나무꾼 형제를 죽이자고 할 때도 만류했죠. 사람은 참는 용기가 분출하는 용기보다 큽니다. 내가 김신조에게 죄를 졌어요. 실컷 이용해 먹기만 하고….

김신조 내가 변절했다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1만 명 앞에서 공개처형당했습니다…. 형제들의 행방도 알 수가 없어요. 그리고 난 공비(共匪)가 아니에요. 공비는 6·25 때 후퇴 못 해서 지리산으로 숨어든 산적을 말하거든요. 공비가 아닌 북한 특수부대 특수요원입니다. 꼭 공비라고 불러서 난도질해야 합니까.

당시 북에서 31명이 남파돼 29명이 사살되고, 1명이 북으로 가고, 남은 게 나 하나입니다. 그 29명이 파주(북한군·중국군 묘지, 일명 ‘적군묘지’)에 묻혀 있어요. 이제는 북에서 그들의 유해를 인수해야 합니다. 29명의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겠습니까. 형님이 내게 증인이 돼줬듯이 나도 29명의 동료에게 증인이 돼줘야 합니다.



군인과 성직자

▼ 두 분은 다시 태어나도 군인이 되고 싶습니까.

이진삼 물론. 나는 지금도 이 직업이 자랑스러워요. 다시 태어나도 군인을 할 겁니다.

김신조 난…성직자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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