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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제는 대선이다 - 안희정의 안보관·신상 검증

전대협 의장 指導한 주사파 막후… ‘남로당 박정희’처럼 조직원 불어

보수가 못 미더워하는 ‘반미청년회 이력’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전대협 의장 指導한 주사파 막후… ‘남로당 박정희’처럼 조직원 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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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한 옛 동지들

전대협 의장 指導한 주사파 막후…   ‘남로당 박정희’처럼 조직원 불어

안희정 충남지사가 2월 26일 서울 영등포구 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안희정을 지지하는 사람들 대번개’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반미청년회 중심의 학생운동은 6월 항쟁에서 승리한 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노선 혼란을 겪는다. 김대중(DJ) 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와 야권 후보 단일화를 두고 견해가 갈렸으나 지도부는 비판적 지지를 서둘러 선언했다. 2000년 총선에서 이인영 의원을 비롯한 86세대 운동권이 정치권에 들어간 데는 DJ가 가진 부채의식도 영향을 미쳤다. 동교동 구파의 최재승 전 의원이 반미청년회의 세례를 받은 86세대 운동권의 정치권 입성을 도왔다.   

안희정 지사는 1988년 2월 국가안전기획부에 검거됐다. 법원은 “반미청년회는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확정적 인식하에 김일성의 소위 주체사상과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노선을 한 점의 의문 없이 그들 자신의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이념을 펴기 위해 구성됐다”고 판시했다. 안 지사와 조혁, 김태원 씨 등이 검거된 후 반미청년회는 학생운동의 헤게모니를 잃기 시작했다.  

주사파 학생운동의 주도권은 자민통으로 넘어갔다. 자민통은 1992년 상반기까지 전대협을 지도했다. 1990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이던 윤진호 씨, 자민통에 의해 전대협 의장(전남대 총학생회장)이 된 송갑석 씨 등이 자민통 지도 아래 활동했다.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하는 김경수 의원, 양정철 씨와 정청래 전 의원 등이 자민통 계열이다.

1992년 자민통이 와해하면서 사상운동이 도태하고 합법적 대중운동 중심으로 NL이 개편된다. 사상운동을 지속한 세력 중 일부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검사 시절 수사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등으로 와해된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민혁당 잔존파가 최근까지 주체사상을 고수한 독특한 그룹이다.

안희정 지사는 반미청년회가 와해될 때도 역할을 했다. 안기부 조사에서 비합법조직 지도부의 전례대로 묵비하지 않고 조직 구성과 동지들의 이름을 털어놓은 것이다. 안 지사가 이 일에 트라우마를 가졌다는 얘기가 있으며, 자신이 직접 지도한 이인영 의원과의 관계도 이 일 탓에 매끄럽지 않다는 말도 있으나 30년 전을 회고하는 후일담일 뿐일 것이다. 남로당원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향을 통해 동지들의 이름을 밝히며 목숨을 구한 것과 비교하는 시각도 있으나 전후 관계가 다르다. 안 지사가 강조하는 진보-보수 대연정이 북한의 통일전선전술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으나 이 또한 억지스러워 보인다.



안희정 지사는 1989년 김영삼(YS)계의 김덕룡 의원 비서로 정치에 입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주군 격으로 선택했으나 반미청년회의 지도를 받은 이인영·우상호 의원, 오영식, 임종석 전 의원 등은 재야에서 활동하다 DJ가 만든 정당에 들어갔다. ‘문재인의 복심’으로 불린 최재성 전 의원과 김현 전 의원도 반미청년회의 영향력 아래에서 학생운동을 했으나 정치적 행로는 안 지사와 다르다. 안 지사를 포함한 86세대 정치인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각자도생한 것이다.



“전작권 환수” 등 自强 성향

안 지사가 ‘우클릭’ 한 것을 두고 다른 86세대 정치인과 달리 1989년부터 정치권에 입문한 것과 반미청년회가 와해되는 과정에서 역할을 한 게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으나 1980년대의 시점에서 오늘을 들여다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반미청년회 주류는 SKY대(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중심의 엘리트 의식이 강했다. 정청래(건국대), 최재성(동국대) 전 의원 등은 전대협에서 비주류였다.

반미청년회 리더이던 조혁 씨는 1998년 ‘강철서신’ 김영환 씨와 손잡고 북한민주화네트워크를 꾸린다. 조씨가 노선 전환에 나섰을 때 안 지사는 지방자치실무연구소(소장 노무현)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조씨는 노선을 전환한 후에도 “나는 ‘관계형 좌파’(인맥이 좌파에 있다는 뜻)”라면서 옛 동지들과 교유했다. 조씨는 2002년 대선 때 안 지사 쪽 일을 도왔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안 지사 측근들은 조씨를 경계했으며 안 지사는 측근들 편을 들어줬다. 조씨가 라오스로 떠난 것은 이때 안희정 그룹에 받은 상처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안다고 복수의 주사파 출신 인사가 말했다.

주사파 출신 인사들은 우파이건, 좌파이건 대체로 ‘민족주의’와 ‘자주자강’을 강조하고 남북통일 의지가 강한 경우가 많다. 우파로 이동한 이들은 ‘공동체주의자’인 예가 많다. 안 지사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는 자주국가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강조하는데, 전작권 환수는 자주국방과 관련한 것이다.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는 “상대를 ‘악마화’ 함으로써 서로가 얻는 게 무엇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유지해야 우리의 발언력을 확대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이 세계평화와 공동 발전을 위해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힘써야 한다”는 식의 대미관을 가졌으며 중국과 관련해서는 “조공을 바치면 그들이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득세한 적이 있다”면서 민족주의 의식을 드러낸다. 노동관, 복지관, 행복론 등은 우파 공동체주의자의 그것과 비슷하다.





신동아 201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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