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 저녁. 삿포로 동계 아시아경기대회 여자 피겨 싱글에서 한국 피겨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따낸 최다빈(17·수리고)이 이날 실수 없는 연기를 마치고 난 뒤 기자에게 풀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4분여의 연기에 ‘허기’를 느낄 만큼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던 것.
대회 최종 엔트리 마감 전까지 출전 명단에도 없던 최다빈은 박소연(20·단국대)의 부상으로 찾아온 기회를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 아시아경기대회 직전 열린 4대륙 피겨선수권대회에서 자신의 최고 기록인 182.41점을 받은 그는 내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상승세를 이어가고 싶었다.
언제까지 2인자, 3인자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회 직전 ‘우상’이자 같은 소속사인 ‘피겨여왕’ 김연아로부터 표정 연기 ‘족집게 과외’까지 받았다.쇼트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며 대표팀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 최다빈은 프리스케이팅을 앞두고 평소 안 하던 ‘짓’을 했다.
보통 선수 대기실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지만 이날은 경기장 3층 기자석 뒤 공간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머릿속 리허설을 펼쳤다. 그 ‘이미지 트레이닝’ 그대로 원하던 지점에서 7가지 점프를 모두 성공시킨 최다빈은 4대륙 피겨선수권에서 기록한 자신의 최고기록보다 5점이 많은 187.54점을 받았다.
김연아도 못 이룬 아시아경기대회 첫 여자 피겨 금메달의 주인공이 된 순간이었다. 최다빈 스스로도 “후회 없다”는 말을 반복할 만큼 ‘인생 연기’였다. “몇 점을 받았는지보다는 오늘처럼 곡이 끝나서도 활짝 웃을 수 있는 경기, 머릿속으로 그린 대로 연기가 나오는 경기가 앞으로 계속 이어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