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사람들이 육식을 즐기면서도 심장병 사망률이 낮은 것은
- 포도주 소비량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 것과 관련 있다.
- 이것을 프렌치 패러독스라고 한다. 요즘 한국 사람들도 삼겹살 등
- 고기를 많이 먹지만 장수하는 것은 소주를 곁들여 마시기 때문이고,
- 이것을 코리안 패러독스라고 할 수 있다는데….
육식에 대한 노스탤지어
12월 30일이 토요일이었고, 신년연휴가 여러 날 계속돼 나는 물가가 비싼 도쿄를 잠시 벗어나려고 서울로 갔다. 일정을 갑작스럽게 바꿨기에 연휴를 즐기는 친척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연락도 하지 않고 서울의 한 호텔에 머물며 연구 결과를 점검하면서 세밑을 보냈다. 생각해보면 쉬는 날 하루 편히 갖지 못한 내 인생이었다. 한탄이 절로 나왔다. 일하기 위해 살아가는 인생인 것 같았다.저녁이 되자 공복감이 적지 않아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호텔을 나서 입김을 내뿜으며 식당을 찾았다. 유럽 생활이 40년 넘었으니 나물이 많은 한식보다는 건강식이 아닌 육류요리에 무의식중에 젓가락이 가는 식성이 되고 말았다. 옛날에는 그렇게 좋아하던 일본식 생선회도 일본에서 세 번 정도 먹고 나면 육식에 대한 노스탤지어에 휩쓸린다.
나는 이날 저녁 7시가 넘도록 호텔 주변의 여러 골목을 우왕좌왕했는데, 역시 휴업하는 식당이 많았다. 한국의 경제 사정이 좋아지니 음력 설 때만 아니라 양력 설 때도 가족과 동반휴가를 떠나고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 많았다.
한 30분을 헤매다 나는 한 식당 앞에 섰다. ‘○○숯불갈비’란 간판이 눈에 띄었다. 신장개업을 했는지 전등불이 아주 밝은 식당에 30대 주인 부부가 초조하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날 저녁 끼니를 돼지갈비로 때웠다.
밝은 식당에 혼자 앉아 숯불에 구운 갈비를 한국식으로 상추에 싸서 쌈장을 얹어 입에 넣고, 소주를 한 잔씩 마셨다. 역시 이 갈비구이에 알맞은 술은 한국의 소주다. 식사를 끝내고 나는 주인 부부에게 덕담을 건넸다.
“내가 세밑에 와서 먹었으니 내년에는 가게가 대성할 것입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사실 그날은 불가피하게 갈비를 먹었지만, 나는 60세가 넘어서부터는 갈비를 먹지 않았다. 소갈비건 돼지갈비건 동물성지방이 상당량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동물성지방은 콜레스테롤이 많아 40세 이상 성인에게는 동맥경화증의 주원인이 된다는 것은 오늘날 모르는 사람이 없다. 동맥경화증이란 우리 몸의 각처에 혈액을 공급해주는 혈관인 동맥의 안벽이 손상돼 굳어지는 현상이다. 이것으로 노년에 많은 사람이 심근경색증 또는 뇌졸중이 발병해 급사하게 된다.
그러나 동물성지방은 음식의 맛을 좋게 해주는 최고의 요소이니 미식가들의 애호를 받고 있다. 맛있게 먹고 빨리 죽을 것이냐, 맛없이 먹고 장수할 것이냐는 문제는 애식가들의 햄릿형 고민이다.
콜레스테롤과 건강
나는 30세가 넘어서부터 60세까지 약 30년간 금주생활을 했다. 독일에 의사가 부족한 1960년대 전반에는 연이은 야간 당직에 음주를 할 수 없었다. 1960년대 후반에는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병동일을 보고 저녁 9시 이후부터 오전 2, 3시까지 연구해야 했다. 1970년대 초부터는 간이식 수술이 많아져 어느 때든지 수술에 임할 수 있도록 음주를 하지 않았다.그러나 회갑을 넘기고 초집중해야 하는 수술과 야간근무 등을 피하면서 술을 즐긴다. 유럽 생활에서는 주로 포도주와 맥주를 마신다. 소주나 위스키 종류는 음미할 기회가 없다. 선물로 받은 위스키는 때에 따라서는 몇 년이고 장 안에서 잠자고 있다. 독일 사람과의 사교에는 위스키가 팔리지 않는다.
간혹 서울에서 손님이 올 때만 잠자고 있던 것이 비워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청주도 일본 식당에서만 음미해본다. 6·25전쟁 후 서울 밤거리에선 청주 대포가 유일하게 우리를 위안해주었으나 이것도 쳐다볼 흥미가 없다. 반면 서울에서 갈비를 즐길 때는 편견일지 모르나 역시 우리 소주나 동동주와 같은 민속주가 어느 양주보다 적합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후 나는 서울을 찾을 때 비교적 위생적인, 그리고 음식이 맛있는 이 ‘○○숯불갈비’집을 찾아갔다. 식당 안에 네온불을 아주 밝게 켰으니 방에서 기어다니는 개미 한 마리도 다볼 수 있었다. 그러니 식당 주인이 청결에 주력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원조 ○○’집이 있지만, 등이 어두워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2년 뒤인 2003년 봄 나는 그 집을 또 찾아갔다. 그런데 ‘○○삼겹살전문’으로 간판이 바뀌었고, 벽에 붙은 식단에도 여러 가지 삼겹살 이름이 보였다. 그 순간 콜레스테롤이 연상돼 거부감이 앞을 막아 주춤하고 서 있었다. 혹 집을 잘못 찾아왔나 생각했다.
간질환을 전공한 의사인 나는 40년 이상 “간 환자는 돼지비계 같은 지방질은 피해야 해요”라는 설교를 환자들에게 앵무새처럼 해왔고, 건강 강좌 때마다 콜레스테롤이 많은 삼겹살 같은 식품은 식단에서 빼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랬던 내가 삼겹살을 꼭 먹어야 하나,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주인이 나를 알아봤다.
한국은 삼겹살 왕국
“박사님, 왜 간판만 보고 계세요? 들어가세요. 언제 독일에서 오셨어요? 삼겹살 한번 들어보세요. 한국의 진미입니다.”문전에서 망설이던 나는 식당 주인의 인사에 이끌려 들어갔다. ‘삼겹살은 콜레스테롤이 많은데’ 생각하면서도 한 번쯤 건강에 죄를 짓는다고 별문제 없겠지 하고 자위하며 소주와 같이 참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하는 그 순간 나는 정말 건강식 문제는 완전히 잊어버렸다. 내가 좌담 때 프랑스 음식을 즐길 때는 건강 문제는 무시하고 혀로 즐기라고 권한 것이 새삼 떠올랐다.
“요즘 많은 사람이 갈비보다는 삼겹살을 찾아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삼겹살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작년 말부터 삼겹살전문집으로 바꾸었어요. 갈비전문집일 때보다 매상이 훨씬 더 많아요.”
여주인은 간판을 바꾼 이유를 설명하며 내게 소주 한 잔을 권했다.
2006년 가을 추석을 전후해 다시 서울에 갔다. 이해에는 윤달이 끼어 추석이 10월에 있었다. 10월 9일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해 한국의 언론 그리고 세계의 보도망이 화산이 폭발한 것처럼 들끓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서울의 골목에서 한 집 건너 하나씩 들어선 삼겹살집에 사람들이 빈틈없이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테이블 위로는 소주잔이 바쁘게 오가고 기름진 삼겹살덩이가 상추 위에 오르고 크게 벌린 입속으로 들어간다. ‘한국은 삼겹살 왕국’임을 새삼 깨달았다. 10월 28일 토요일 오전 7시 반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데 TV 방송에서 누군가 “걱정된다”고 하는 말이 들렸다. 긴장된 남북관계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생각하고 귀를 기울였더니 그게 아니다.
“우리나라가 급속도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평균수명이 77세입니다. 고령화 사회를 맞이할 국가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걱정입니다.”
그런데 앵커는 콜레스테롤이 많은 갈비와 삼겹살을 수십 년간 그렇게 많이 먹어도 평균수명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갈비와 삼겹살은 국내산이 부족해 해외에서 대량 수입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 이것은 엄청난 패러독스가 아닐 수 없다.
리옹의 포도주
아시아인인 내가 리더로 이끌고 있는 그룹에서는 이탈리아 부레시아대학병원의 B교수를 회장으로 밀었고, 우리와 경쟁한 곳은 호주 시드니대 A교수 그룹이었다. 그래서 나는 런던학회에서 권위가 있는 몇 명의 교수를 대동하고 리옹으로 갔다.
생각해보면 학자들의 세계도 어린애 같은 패싸움이 적지 않다. 권력을 잡으려는 의지는 유전자를 통해 자고로부터 전수돼온 생물의 본질이다. 나는 유럽 의학계의 대립을 목격하며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그래서 몇몇 학자는 내게 “빅 보스”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리옹의 호텔에서 나는 B교수를 만났다. 부레시아에서 밀라노로 나와서 비행기로 왔다며 ‘부대장’인 나를 위시해 우리 일행을 자기가 잘 아는 리옹의 한 전통음식점에 초대했다.
“이 교수님, 프랑스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이 리옹이라는 걸 아시죠? 내가 자랑하고 싶은 식당이 있는데, 함께 가시지요.”
골목 안 고풍스러운 건물에 있는 식당은 어두웠고 주인은 좀 나이가 든 할머니였다. 리옹에서 유명하다는 양고기, 닭고기요리, 치즈, 푸아그라 등에 생크림과 버터를 넣어서 맛있게 조리한 음식들이 나왔다. 참으로 ‘애식가들의 도시’ 리옹의 이름값을 하는 음식들이었다.
“이 교수, 의사들은 식탁에서 콜레스테롤을 생각하며 맛있는 음식을 저주하는데, 프랑스에 오시면 포도주 몇 잔을 마셔봐야 합니다. 그 포도주가 콜레스테롤의 위험성을 제거하며 심장병을 예방해줍니다. 이 리옹 지방에서 유명한 포도주 코트 뒤 론을 몇 잔 드시면 돼요. 2000년 전의 로마 군사들처럼요.”
프렌치 패러독스
“아니 이 교수, 내 말 믿지 못하겠소? 3년 전에 ‘란세트’(영국에서 발간되는 유명한 의학지)에 상트 리저 박사가 발표한 그 유명한 논문 못 읽으셨어요? 프랑스 사람들이 동물성지방인 치즈, 버터, 생크림 등을 세계에서 제일 많이 먹어도, 그리고 양고기, 소고기 등을 세계에서 제일 많이 먹어도 심장병에 의한 사망률이 제일 낮아요. 그 이유는 프랑스 포도주 소비량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 데 있다고 했어요. 이것을 오늘날 프렌치 패러독스라고 하잖아요.”
금주생활을 하고 있던 내겐 B교수의 말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나는 내심 부끄러웠다. 간을 전공하고 있는 나는 심장병에 관한 논문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술과 간은 관계가 깊고, 본대학은 술과 간에 관한 연구가 세계에서 유명하니 술과 건강에 관한 이야기라면 최신 연구까지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상식도 몰랐다니 나는 스스로를 꾸짖었다.
리옹에서 독일로 돌아와 술과 심장병에 관한 연구논문을 조사해봤다. 1980년대부터 프랑스 사람들의 식생활 문제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돼 있었다. 프랑스의 레노 박사 등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동물성지방을 많이 섭취할수록 심장병에 의한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 그런데 프랑스 사람만은 상당히 많은 동물성지방을 먹어도 사망자 수는 아주 적었다.
역시 프랑스인이 포도주를 가장 많이 마시기 때문에 심장병 사망자가 감소했다고 의학자들은 해석했다. 이 현상과 관련해 세계보건기구에서 제일 먼저 조사한 곳이 이 리옹 지방이었다. 프랑스 내에서도 리옹지방이 심장병에 의한 사망자 수가 제일 적었다.
이런 조사 결과로 전 세계인은 장수하기 위해 붉은 포도주를 마셔야 한다고 믿게 됐고, 유럽의 붉은 포도주 가격은 나날이 상승했다.
그리고 독일의 모젤, 라인 강가에서는 전통적으로 흰 포도주만을 생산했는데 이것이 점점 줄어들고 붉은 포도의 경작이 눈에 띄게 증가해갔다. 서울의 백화점에도 붉은 포도주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오늘날 세계의 후진국에서 온 손님을 접대할 때도 무슨 술을 들겠냐고 물어보면 모두가 붉은 포도주를 원한다. 그만큼 세계인의 건강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장수의 보약
삼겹살엔 치즈나 버터, 생크림과 같은 동물성지방이 많다. 그 삼겹살에 포도주가 아닌 소주를 마시는데 왜 한국인은 평균수명이 길어지느냐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적당량의 소주 덕분에 한국인이 삼겹살을 많이 먹어도, 즉 프랑스 사람처럼 많은 동물성지방을 섭취해도 심장병, 뇌졸중에 의해 사망하는 사람이 적어진다.이것이 삼겹살에 소주를 즐기는 한국에서 발생하는 기적이니 코리안 패러독스(Korean Paradox)라는 말을 만들어봤다. 그러면 왜 코리안 패러독스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지 따져보자.
유럽, 특히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같은 지중해 연안국은 포도주 생산국이다. 그러나 독일은 포도 경작도 많이 하지만 맥주를 즐기기로 유명한 나라다. 독일 울름대의 조사에 따르면 동맥경화증 예방, 다시 말해서 심근경색증과 뇌졸중 예방과 관련해서는 맥주를 많이 마시고 있는 지역에서는 맥주의 효과가 포도주의 효과보다 컸다.
또 미국 하버드대의 림 박사 팀은 보스턴 지역의 의사를 상대로 조사했는데 보스턴에서 근무하는 의사에게서는 위스키가 포도주에 비해 그 효과가 더 컸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 점으로 볼 때 그 지역에서 많이 마시는 술이 그 지역 사람들의 심장병, 뇌졸중 예방에 제일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자주 많이 마시는 것은 소주다. 삼겹살을 아무리 먹어도 적당량의 소주를 마셨을 때(적당량이라는 것이 아주 중요함) 소주의 작용으로 동맥경화증이 감소되고 장수보약의 효과가 있어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증가한다고 나는 본다.
말젖으로 술을 만들어 마시는 몽골인은 역시 이 술이 장수의 보약이 될 것이다. 여기서 꼭 잊어서는 안 될 것은 과음하지 말고 매일 적당량의 술을 마시는 것이다. 2006년 가을 베를린대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하는 동포 여학생이 찾아왔다. 세계적 학자가 되기를 꿈꾼다며 주야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일확천금의 꿈을 꾸는 한국적 생리를 피하라고 하며, 너무도 흔한 얘기지만 토끼와 거북이 경주를 했는데 열심히 꾸준히 간 거북이 이겼다는 우리나라 동화의 교훈을 말해줬다. 말하자면 중국 마오쩌둥의 대장정을 모방하라고 했다. 나는 어릴 때 일할 때는 열심히 하고 놀 때는 노는 절도 있는 생활을 하라는 교훈을 스승으로부터 받았다.
그런데 그보다는 피곤하면 쉬고, 쉬고 나면 다시 일하며 오늘도 내일도 공백 기간을 두지 않고 10년이고 20년이고 꾸준히 해가는 것이 역시 경쟁이 심한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금주보다 적당량이 중요
한자리에서 많이 마시지 말고 하루도 빼지 말고 적당량을 마셔야 술이 장수의 보약이 된다. 마실 때는 5~6잔 이상 실컷 마시고 쉴 때는 쉬자는 음주법은 술을 독약으로 변화시킨다. 이것을 의학에서는 통음(痛飮, binge drinking)이라고 한다. 이런 음주법은 스칸디나비아,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심한 곳은 러시아다.
어느 날 내가 서울에서 부인들의 모임에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애 아빠를 금주하게 할 수 있을까요?”
한 40대 후반의 부인이 질문했다.
“금주시키려고 하지 말고 매일 적당량을 마시게 하세요. 그래야 금주한 사람보다 장수합니다.”
그러자 강당 안이 웃음바다로 변했다. 여러 해 전에는 “마실 때 많이 마시고 며칠 쉬면 간을 쉬게 만드니 그것이 건강에 좋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청중 한 분이 반문했다. 즉 술을 마시더라도 간이 쉴 수 있는 휴간일(休肝日)을 두라고 내가 말했다는 것이다. 사실 30년 전 까지만 해도 강연할 때 그렇게 말했고 책에도 그렇게 썼다.
그러나 오늘날은 간을 술로부터 보호하는 것보다는 술로 장수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 또 의학계에선 몇 년 전에 이야기한 말이 잘못된 경우가 허다하다. 의학의 연구가 눈부시게 진행돼 새로운 사실이 끊임없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술에 취하는 것의 기준
최근의 연구 결과를 보면 적당량의 술을 매일 마신 사람이 금주하는 사람보다 또는 일주일에 1회, 또는 3회 마시는 사람보다 장수한다. 몇 년 전에 한 방송국 작가와 같이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음주에 관해서도 다년간 연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우리 아버지는 술을 마시려면 친구와 같이 술잔을 돌려가며 마음이 후련해지게 실컷 마셔야만 술 마신 기분이 난다고 하셔요. 그러지 않으면 술을 입에 대지 않으셔요.”
이것이 통음이다. 이런 음주습관은 잘못된 것이다. 보통 사람이면 매일 통음하기는 어렵고, 일주일에 한두 번 마시면 그다음엔 안 마시거나 적게 마시게 된다. 이와 같은 음주습관은 비록 일주일에 마신 전체 알코올 양은 적어도 건강을 크게 해친다. 그러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과음하지 않고 적당량 마시면 술은 장수의 보약이 될 것이다.
예의 그 강연에서 30대 후반의 주부는 “선생님, 우리 남편은 매일 술에 취하는데요. 적당한 음주량이란 어느 정도인지요”라고 물었다. 술에 취하고 취하지 않는 것으로 음주의 적당량을 정할 수는 없다. 의학에서 말하는 주량은 하루 마시는 전체량을 가지고 계산한다. 어떤 사람이 조금씩 하루 종일 많은 양을 마셔도 간이 끊임없이 처리해버리면 비록 많은 양을 하루에 마셨지만 취기가 없다. 그러나 취기가 없어도 마신 알코올 양이 많으니 건강을 해친다.
낮술을 조심하라!
반면 어떤 사람은 종일토록 마시지 않다가 저녁 퇴근길에 공복에 좀 마셨다고 하자. 이 사람은 금방 취기가 돌 수 있다. 그러나 술 취한 것으로 보이는 이 사람이 하루에 마신 주량은 많지 않다. 그래서 종일 많이 마시고 취하지 않은 사람보다 적게 마시고도 취한 사람에게 술은 장수의 보약이 된다.1990년대 초 어느 날 50대 부인이 60이 다 된 남편을 데리고 병원 외래에 왔다. 눈에 황달기가 있고 복수가 찼으며 손바닥은 유독 빨갰다. 간경화증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교수님 우리 남편은 술을 좋아하나 술에 취해본 적이 없어요. 일도 열심히 하고 살았지요.”
“직업이 무엇이지요?”
“우린 식당업을 하니 우리 애 아빠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만 해왔지요.”
“아침부터 일하는 도중에 피곤하면 와인 한 잔씩 마시는데 하루 포도주 2병을 마시지만 간이 단단해서 술에 강해요. 한 번도 취해본 적이 없어요.”
이것이 문제다. 유럽인의 간은 한 시간에 9g의 알코올을 분해한다. 포도주 한 병은 알코올이 보통 70g이니 8시간이면 분해해버린다. 그래서 이 환자는 술 취한 적이 없다. 그러나 하루 마시는 술은 독으로 변할 정도로 많다.
오늘날 유럽에는 비즈니스 런치(business lunch) 족이 많다. 여자 권리가 강한 유럽 가정에서는 남편이 퇴근 후 제시간에 집에 오지 않으면 이혼감이다. 그러니 회사에서 여러 회합은 점심시간에 주로 한다. 즉 비즈니스 런치가 빈번하다. 강짜가 심한 부인을 둔 남편은 점심시간에 술을 많이 마신다.
점심은 대부분 회사 경비로 처리되니 돈 들지 않고 술을 즐길 수 있고 게다가 점심 때 마신 술은 퇴근할 때까지 간에서 처리되어 집에 갈 때는 술기가 사라진다. 어떤 부인은 취기가 없는 남편을 안타깝게 생각해 저녁상에 술을 준비한다. 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일거양득이다. 그러나 점심과 저녁에 마신 술을 합산하면 하루 음주량이 너무 많아 건강을 해칠 수밖에 없다.
삼겹살은 유럽에서는 돼지고기 중 가장 싼 고기다. 소고기, 돼지고기의 왕이라 하는 필레(안심) 1kg의 가격으로 4kg을 살 수 있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식당을 가보면 삼겹살 1인분이나 갈비 1인분의 가격이 비슷하다. 유럽에서 살다 한국을 방문한 우리 눈에는 삼겹살의 승격에 마음이 불편하다. 매일같이 언론의 건강강좌에서 콜레스테롤을 주의하라고 하지만 콜레스테롤이 많은 삼겹살 애호에는 대책이 없다.
술을 지배해야
그러니 장수하기 위해서 반드시 적당량의 소주와 같이 들어 코리안 패러독스에 기대를 걸자. 순한 소주 한 병은 53~56g의 알코올이니 친구와 둘이서 한 병 비우면 하루 마신 술 양이 27~28g이다. 우리나라에서 술 한 잔에 알코올이 10g 정도 된다. 미국의 경우 12~15g 정도 된다. 그러니 소주 반 병은 두 잔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 정도는 장수의 보약이 되는 양이다. 소주만이 아니라 맥주나 다른 술도 마찬가지다. 적당량을 매일 마시면 장수의 보약이다.이와 같이 하루도 쉬지 말고 적당량을 마시라고 ‘간 박사’가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공격하는 사람이 많다. 매스미디어에서는 어떻게 하면 술의 중독에서, 음주운전 교통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가 관심사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인류가 1만 년 이상 마셔온 술을 지구상에서 일소하기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오히려 각 나라마다 주류 소비량은 늘어난다.
그러니 음주량에 따르는 술의 나쁜 점 좋은 점을 정확히 파악해 자신이 그 한계를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자. 자기 스스로 술을 지배해야 한다. 이것만이 우리가 술을 애용하는 길이다. 우리나라도 주류의 전체 소비량은 감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의 평균수명은 증가해가며 노령화 사회가 걱정된다는 중론이다. 콜레스테롤이 많은 갈비, 삼겹살을 그렇게 많이 소비해도 평균수명은 증가한다. 소주의 덕이다. 다시 말하자면 코리안 패러독스의 덕이다.
이종수
● 1929년생
● 1964년 독일 뒤셀도르프대 의학박사
● 1969년 유럽대륙 최초 간 이식 성공
● 1975년 본대 의대 이식과 과장
● 1994년 간질환연구소장
● 저서: ‘새로 쓰는 간 다스리는 법’ ‘간이 두 개인 남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