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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인터뷰

“박근혜 게이트는 61·87·97년 체제의 중층 모순”

촛불혁명을 정치체제론으로 풀어낸 손호철 서강대 교수

  • 글 권재현 기자 | confetti@donga.com, 사진 박해윤 기자 | land6@donga.com

“박근혜 게이트는 61·87·97년 체제의 중층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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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신화는 허구다”

▼ 61년 체제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은 ‘박정희 신화’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학생들에게 ‘때문에론(論)’하고 ‘불구하고론(論)’을 비교하라는 과제를 즐겨 낸다. 박정희 신화론도 ‘박정희 때문에 경제발전을 이뤘다’는 시각과 ‘박정희에도 불구하고 경제발전을 이뤘다’는 2개의 인식 축에 기대고 있다. 시기적으로 박정희 시대 이후 잘 살게 됐으니 ‘박정희 때문에’라고 생각하기 쉽다. 한편으론 개발독재로 인해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화에 성공했기에 높게 평가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두 번째 시각은 주관적 가치판단의 문제이지만 첫 번째 시각은 객관적 사실의 문제다. 그래서 첫 번째 시각을 파고들었다. 우리나라가 1945년 이후 신생국 중에서 유일하게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이뤘다는 주장부터 살펴봤다. 이 가운데 민주주의는 박정희와 무관하기 때문에 경제발전에만 초점을 맞춰봤다. 중동의 산유국을 빼고 경제발전에 성공한 나라는 ‘아시아의 4마리 용’이라 불리는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이 있다. 이 중 홍콩은 영국 통치하에 민주주의와 개방경제를 구가하면서, 즉 박정희식 개발독재 없이도 경제성장에 성공했다. 박정희 때문에론의 허점이다. 그럼 네 나라 경제발전의 공통점이 뭘까를 조사했더니 2가지 공통분모를 찾았다. 개발독재나 유교자본주의가 아니다. ‘농지개혁의 성공’과 ‘냉전’이다.”



‘농지개혁’과 ‘냉전’

▼ 산업화를 위해선 전통적 토지자본을 산업자본으로 전환해야 하고 그런 점에서 농지개혁이 필수적이다.

“제3세계 경제발전의 최대 걸림돌이 농업자본인 지주다. 현재 필리핀의 최대 지주 가문이 대통령을 배출한 아키노 가문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라. 지주를 하면 1년에 20%의 수익이 발생하는데 기업을 경영해봤자 5%의 수익만 발생하는데 누가 산업자본으로 전환하겠는가. 한국에서 가장 급진적 정책을 도입하려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가. 노 대통령이다. 노무현이 아니라 노태우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추진했던 토지공개념 제도다. 결국 무산됐지만 기업의 비업무용 토지 소유를 금지하려는 제도였다. 요즘 논란이 된 잠실 제2롯데월드 부지도 비업무용이라고 해서 다 팔라고 했고 세종시 개발처럼 부동산 개발로 땅값이 오르면 수익의 3분의 1을 환수하는 법이었다. ‘빨갱이법’이란 소리 듣기 좋은 이런 법을 왜 추진했겠는가. 간단하다. 10여 년간 조사해보니 똑같은 돈으로 기업 하는 것과 땅 사놓은 것을 비교해보니 땅 사놓은 게 기업 하는 것의 6배 이익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산업화를 위해선 지주권력을 무너뜨려야 한다. 한국과 대만은 제3세계 국가에서 거의 유이하게 농지개혁에 성공했고 싱가포르와 홍콩은 도시국가니까 지주가 없었다.”



▼ 그에 반해 냉전은 정치적 요소다. 냉전의 경계선상에 위치한 반공국가들을 체제우위 선전용 쇼윈도로 삼으려는 미국의 전략적 원조 때문이란 분석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니다.

“이를 실감하려면 숫자만 뒤집힌 1979년과 1997년의 상황을 비교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98년 미국에서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를 만났을 때 IMF 경제위기 발생의 원인을 물으니 ‘소련 동구가 망해서 그런 거다’고 하는 거다. 처음엔 ‘저 사람이 돌았나’ 하고 생각했으나 설명을 듣고는 ‘역시 대가는 대가다’ 하고 무릎을 탁 쳤다. ‘동아시아 국가의 경제발전은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할 만큼 강해져서도 안 되지만 공산주의에 맞설 수 있을 정도로 자율적 발전을 허용해줘서다. 만일 한국이 라틴아메리카에 위치했으면 농업국가로 방치했을 것이다. 하지만 1989~90년 소련과 동구의 붕괴로 이제 그 필요성이 사라졌기에 손을 본 것이다’라는 설명이었다.”

▼ 그런 1997년 상황이 1979년과 어떻게 다르다는 소리인가.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1979년에도 IMF에서 구제금융을 받았다. 당시 나는 한국일보 기자로 한국은행을 출입하고 있어 그때 상황을 또렷이 기억한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중화학공업을 육성한다면서 과잉 중복투자를 벌이다 2차 오일쇼크가 닥쳤다. 외채를 엄청나게 들여다가 공장을 짓고 거기서 나온 제품을 세계에 팔아 갚으려 했는데 오일쇼크로 하나도 안 팔리는 거다. 그래서 IMF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경제안정화정책’이란 긴축정책을 펼쳤다. 한은이 펴낸 책에도 나오지만 ‘대한민국 최초의 신자유주의 정책’이었다. 1997년 부도가 난 한보와 삼성자동차를 보면 똑같이 중화학 과잉중복투자가 문제가 됐다. 여기에 동남아 외환위기가 (1979년의 2차 오일쇼크처럼)겹쳐서 발생하며 문제가 커진 거다. 1979년 상황과 똑같다. 그런데 1997년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한국을 완전히 거덜냈지만 1979년엔 냉전기였기에 부드러운 긴축정책만 요구한 것이다. 그 타격을 대기업은 피해갔지만 중소기업은 피해갈 수 없었다. 그중 하나가 YH무역이었다. 그 회사 여공들이 못살겠다고 들고 일어난 게 YH사건이고 부마항쟁으로 이어져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기 시작한 거다.”



“87년 체제는 위임민주주의”

“박근혜 게이트는 61·87·97년 체제의 중층 모순”

한국의 보수정부뿐 아니라 진보정부도 함께 비판한 손호철 교수.

▼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찾아든 ‘박정희 향수’에 대해 “위기 때문에 위기의 원인 제공자를 추앙하는, 비극적이다 못해 희극적인 코미디 같은 현상”이라고 일갈했다.

“한국 경제성장에 냉전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박정희 시대가 아니라 이승만 시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50년대에 한국에 대한 미국의 원조액수를 1인당 평균액수로 보면 제3세계국가 평균의 10배에 이른다. 이승만 정권 말기 미국의 원조가 줄면서 경제상황이 어려워지긴 했지만 국제비교의 시각에서 보면 이승만 때가 박정희 때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세계은행 자료를 뽑아보면 박정희 때 제조업 성장률이 제3세계 평균과 비교해 3.07배가 높았지만 이승만 때는 3.36배로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 그렇다고 이승만 때가 더 빨리 발전했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이승만 때는 정체고 박정희 때는 발전이라는 게 신화라는 말이다. 그럼 박정희는 왜 비극적 죽음을 맞아야 했는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1979년 경제위기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 전두환이 국보위를 통해 재벌 구조조정에 나선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럼 박정희는 왜 되살아났나. 1997년 IMF경제위기 때문이다. 김영삼, 김대중 민주화 정부가 들어선 뒤 못살게 됐다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IMF위기가 왜 왔는가. 여러 원인 중 하나가 관치경제다. 관치경제가 뭔가. 국가주도 산업화고 재벌 위주 경제정책으로 정경유착을 초래하는 것이다. 바로 박정희 모델이다.”

▼ ‘박정희가 위대하다면 스탈린은 더 위대하다고 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박정희 모델은 스탈린 모델의 변형이다. 고도성장을 위해 국가가 나서서 강압적 총량투입주의에 나섰다는 점에서 그렇다. 박정희가 후진국을 중진국으로 올려놨다면 스탈린은 유럽 변방의 낙후된 농업국을 미국과 맞서는 강대국 반열에 올려놨다. 결과만 놓고 보면 스탈린의 업적이 더 대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대런 애스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이 연구에 지적했듯이 민주적 정치체제만이 포용적 경제체제를 가능하게 하고 지속적 발전과 번영을 보장한다. 스탈린 모델이나 박정희 모델 모두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니다. 특히 박정희 모델은 냉전이란 특수한 상황에서 미국의 원조로 가능했던 모델이기에 다른 제3세계 국가의 역할모델이 될 수도 없다.”

▼ 불완전한 민주화로서 87년 체제의 문제점으로 넘어가보자.

“87년 체제가 불완전한 민주화가 된 핵심에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있다. 박근혜 게이트는 민주화 이후 견제받지 않는 권력으로서 제왕적 대통령의 폐단을 모두 모은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이를 견제해야 할 정당들은 ‘내시정당’으로 전락해 국회도 제 기능을 못했다. 대의민주주의가 실패한 것이다.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설 수밖에 없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87년 체제는 (아르헨티나의 정치학자 기예르모 오도넬이 말한) ‘위임민주주의’에 가깝다. 대통령이 민주선거로 선출되긴 하지만 대의민주주의를 무시하고 모든 권력을 위임받은 것처럼 무소불위로 행사하는 왜곡된 민주주의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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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재현 기자 | confetti@donga.com, 사진 박해윤 기자 | land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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