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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뤽 고다르·빔 벤더스·페드로 알모도바르·라스 폰 트리에

영혼으로 만나는 세상

  • 글: 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

장 뤽 고다르·빔 벤더스·페드로 알모도바르·라스 폰 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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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폰 트리에가 다분히 나르시시즘적인 테크니션의 면모로부터 탈피하기 시작한 것은 ‘킹덤’(1994), 그리고 무엇보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1996)를 내놓으면서부터다. 흔들리는 핸드 헬드(들고 찍기) 카메라의 현장성에 의존하는 ‘브레이킹 더 웨이브’는, 마치 도그마 영화의 발아기(發芽期)를 보여주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폰 트리에는 이후 ‘백치들’에 와서 본격적인 도그마 영화를 선보이게 된다.

도그마 원칙에 따라 만들어진 영화란 외형상으로는 현장성을 중시해 만들어진 누벨 바그 영화와 유사하지만 그 기본 개념에서는 누벨 바그 영화의 정반대에 위치한 것이다. 예컨대 고다르는 ‘네 멋대로 해라’에 대해 “이것은 규칙 없이 만들어진 영화이고 이 영화에 어떤 규칙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규칙이거나 잘못 적용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시 말해 고다르의 경우는 규칙이란 걸 무시함으로써 창조적 자유를 얻으려 한 것이다. 반면 도그마 영화는 스스로 오히려 규칙을 부과함으로써 그 자유를 획득하려 한다. 폰 트리에는 “창조성이란 속박되지 않은 자유와 관련 있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명확하게 정의된 과제, 그리고 명백히 정의된 제한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이 전혀 그럴 듯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사실 어떤 규칙을 계속 염두에 두고 카메라 앞에 일어나는 사건의 자발성과 현장성을 포착한다는 것은 올바른 태도로 보이지 않는다. 심하게 말해 결과보다는 룰 준수에 더 집착하는 일종의 ‘게임’에 골몰하는 태도처럼 비치기도 한다.



폰 트리에의 도그마 영화 ‘백치들’은 백치야말로 미래의 인간이라며 지체아임을 ‘가장’하는 부르주아들에 대한 영화인데, 영화 속의 그 상황은 고스란히 폰 트리에의 작업 태도를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일부러 헐벗은 체하는 도그마 영화가 미래의 영화라며 인위성이 배제된 영화 만들기를 애써 가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렇듯 ‘순결한 영화’를 만들다가 또 금방 ‘어둠 속의 댄서’처럼 교리에서 이탈한 ‘오염된 영화’를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도그마 선언에 입각한 영화 만들기란 더 이상의 영화적 ‘모험’이 불가능한 유럽영화계에서 어떻게든 모험을 해보이려는 수고로운 시도 혹은 해프닝은 아니었을까.

신동아 200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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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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