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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액션 영화배우 열전 ⑨

제2의 이소룡을 꿈꿨던 사나이 왕호

영화 무림을 평정한 전설의 태권 스타

  • 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제2의 이소룡을 꿈꿨던 사나이 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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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이소룡을 꿈꿨던 사나이 왕호

왕호는 2005년 한국과 중국 무술을 결합한 새 무술 ‘대한천지무예도’를 창립하는 등 무술인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묘기 대행진에 출연한 이 사나이의 발차기는 이전의 권격 액션 스타들, 챠리셸, 황인식, 황정리, 이소룡과 달랐다. 그의 발차기는 탱크를 움직이는 강력한 피스톤 엔진이었다. 이소룡의 발차기가 강하고 빠르지만 이 사나이의 발차기는 이소룡의 그것을 서너 배는 능가하는 파워와 빠르기를 지녔고, 무엇보다도 핵폭탄 같은 강함이 느껴졌다.

파워풀한 발차기로 나의 얼을 반쯤 빼놓은 사나이는 이제 격파에 들어갔다. 그의 해머 같은 주먹에 벽돌이 산산조각 났다. 뭐 벽돌쯤이야. 하는 나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사나이는 무쇠로 만든 솥뚜껑을 격파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격파했다. 그다음은 물 펌프의 무쇠 손잡이였다. 시장통의 웬만한 약장수 뒤를 따라다니며 온갖 격파를 실제로 봐온 나였지만 무쇠로 된 두께 3㎝가 넘는 물펌프의 손잡이를 격파했거나 격파하는 사람은 본적이 없었다. 저것을 격파한다면 저 사나이는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에 어마어마한 피스톤 발차기 능력을 지닌 진정한 이소룡의 후계자일 것이라 생각했다. 긴장감을 자아내는 드럼이 연주되고, 사나이의 굳은살 박인 칼보다 더 날카로운 수도(手刀)가 천천히 올라간다. 첫 번째 시도. 무쇠 펌프 손잡이는 부러지지 않고 사나이의 손이 찢어져 피가 철철 흐르기 시작했다. 사회자 변웅전 아저씨가 당황했지만, 사나이는 침착하게 손을 들어 다시 한 번 격파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두 번째 가격. 무쇠는 부러지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세 번, 네 번째의 가격. 그의 손은 살점이 떨어지고 피가 낭자했다. 다섯 번째 가격.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쇠 펌프 손잡이는 두 동강이 나버렸다.

“보라! 태권왕 왕호를”

우와! 나는 사나이 김용호의 팬이 되었고, 그가 이소룡을 능가할 최고의 권격스타가 될 것을 의심치 않았다. 게다가 홍콩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니! 김용호는 한국에서 ‘흑룡강’(김선경 감독, 1976)과 ‘밀명객’(김선경 감독, 1976) 두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이 두 편은 그저 그랬지만 ‘이것은 예고편에 불과하고, 저 사나이는 분명 홍콩에서 뭔가 일을 저지를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리고 김용호는 이름을 왕호로 고치고 홍콩으로 날아갔다.

얼마 후, 그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영화로 돌아왔다. 왕호 홍콩 진출 제1작 ‘사대문파’(김정용·황풍 감독, 1976). 당시 신문광고 문구 “보라! 태권왕 왕호의 3단 옆차기 도약격파를!”을 보고 나는 외쳤다. “꼭 보겠다, 그의 3단 옆차기를!” 광고 속에서 그의 이름은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아시아 무협 스타 진성의 바로 윗자리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의심치 않았다. 아무리 신인이라도 이소룡 정도의 실력을 지닌 자이니 홍콩에서도 당당하게 첫 영화에서 주연 자리를 꿰찼을 것이라고.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동네 친구들에게 왕호가 얼마나 대단한 자인지를 열심히 떠들어서 혹하게 만들어 모두 몰고 서대문 로터리의 화양극장으로 갔던 날이. 영화가 시작됐다. 청 왕조의 무술가 진성이 구사하는 최강의 무술 나한진을 격파하기 위해 강호의 사대문파들이 도전한다는 내용이었다. 영화 초반부터 악역인 홍콩배우 진성이 나와 중원의 사대문파들을 격파한다. 나는 시계를 봤다. 영화 시작 후 30분이 지났다. 진성은 악역이니까 조연이고, 나의 왕호는 분명 주인공. 그런데 왜 주인공이 안 나오지? 아! 악당 진성이 종횡무진 나쁜 짓을 저지르고 그의 악행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할 때 왕호가 나올 것이다. 조금만 참자. 왕호가 멋지게 나올 것이다.

30분이 40분이 되고, 나는 왕호가 나오기를 기다리느라 영화 내용이고 뭐고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영화가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왕호는 안 나온다. 이제 영화의 라스트. 악당 진성과 사대문파의 고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최후의 일전을 벌인다. 이제 왕호는 나오려야 나올 수가 없다. 아! 이게 뭔가? 또 속은 건가? 당시 한국 액션 영화 중 사기 치는 영화가 너무 많아서 나는 속았다고 생각하고 체념했다. 영화가 끝나기 10분 전. 사대문파의 고수들도 진성의 무술 앞에서는 맥을 못 추고 쩔쩔맨다. 사대문파 최고의 위기. 그때 갑자기 사대문파 중 하나인 소림파에서 구원병이 도착한다. 50여 명의 소림 무술승이 우르르 떼거리로 몰려온다. 그리고 그 맨 앞에 머리를 빡빡 깎은 왕호가 달려오고 있었다. 앗! 왕호다. 진성에게 달려드는 수많은 소림 무술승 중 왕호는 단연 시선을 끄는 탱크 엔진의 피스톤 같은 킥으로 진성을 정신 못 차리게 한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1초에 20회 이상의 번개 같은 발차기가 진성을 똥오줌 못 가리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날아차기, 뒤차기 등 온갖 발차기를 선보이는 왕호 앞에 무너지는 진성. 그러나 곧 수많은 승려 속에 왕호는 묻혀버린다. 기운을 차린 이 영화의 주인공들, 곧 사대문파의 고수들이 나서서 진성을 공격해 그의 숨통을 끊어놓는 것이다. 멋진 발차기를 선보이기는 했지만, 왕호는 주연이 아니고, 단역이었다. 아주 좋게 말하자면 3분 정도 출연한 ‘특별출연’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동네 친구들에게 액션 영화에 관한 모든 신용을 잃어버렸다.

제2의 이소룡을 꿈꿨던 사나이 왕호

왕호가 홍콩 진출 전 촬영한 영화 ‘밀명객’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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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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