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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접점 |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마지막회

‘오리엔트 + 옥시덴트’ 터키 돌이킬 수 없는 세속주의로!

  • 안성찬|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 story@snu.ac.kr

‘오리엔트 + 옥시덴트’ 터키 돌이킬 수 없는 세속주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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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말 시작된 탁심광장 시위가 진압경찰과의 충돌로 격화되자, 언론은 이슬람주의 대 세속주의라는 전형적인 프레임에서 사태를 보려고 했다. 이는 피상적인 관찰이었다. 그들은 터키의 정치 프레임이 여타 이슬람 국가와 다르다는 것을 간과했다.

시위는, 이스탄불 시당국이 탁심광장에 인접한 게지 공원을 쇼핑몰로 재개발하기 위해 나무 다섯 그루를 뽑아내자 환경운동가가 수십 명이 녹지 보존을 요구한 작은 사건에서 촉발됐다. 이 사건 직후 여러 단체에 속한 활동가들이 공원으로 몰려와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SNS로 지원을 호소했다. 그러자 다음 날 아침 더 많은 시민단체 대표들이 몰려왔다.

몸싸움이 벌어지고,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 기동대가 출동해 물대포와 최루탄을 쏘다가 충돌이 격화했다. 그때 빨간 원피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 최루액을 분사하는 경찰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정면으로 버티는 사진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됐다. 이 사진이 ‘가치 있는 것을 지키려는 평화로운 시위대에게 부당한 폭력을 가하는 공권력’의 상징이 되어 터키 국민과 국제사회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이스탄불 아시아 지역의 주민 수만 명이 보스포루스 대교를 건너 탁심 광장으로 행진하는 장엄한 광경이 전 세계로 전해졌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과 문화계 인사, 연예인, 지식인들이 동참하거나 시위대에 지지를 표명했다. 국제사회도 평화시위에 대한 지지와 경찰의 강경진압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에르도안 총리의 오판



이스탄불 행정법원은 공사를 중단하라는 행정조치 결정을 내렸다. 이어 대통령이 “민주주의, 다원주의,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발전하는 터키에서 다양한 의견과 의제로 대립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자 민주사회의 풍요로움”이라는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사태는 진정되는 듯했다. 그러나 집권당 총리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의 오만과 오판으로 다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장기 시위가 일어났다.

이스탄불 시장을 지낸 에르도안은 2001년 이슬람계 정의개발당을 창당하고 2002년 선거에서 압승하며 총리가 됐다. 에르도안은 10년 넘게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뤄내고, 국제무대에서도 터키의 위상을 드높이는 등 성공 가도를 달려왔다. 시위가 일어나기 직전까지는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개헌을 통해 직선제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다. 이러한 자신감에서 그는 시위대의 요구를 무시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보스포루스 제3대교 기공식에 참석한 그는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천명해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의 수가 급증하고,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그는 시위대를 “약탈자” “사회주의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했다.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녹지를 지키려는 환경운동은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로 확대돼 90여 개 도시에서 에르도안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에르도안 총리는 시위를 자신의 권력과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간주하고, “그들이 10만 명을 동원한다면 나는 100만 명을 동원할 수 있다”고 공언하면서, 친정부 시위를 조직해 반정부 시위에 맞섰다. 친정부 세력과 반정부 세력은 극심한 갈등과 분열로 빠져들었다. 인명피해가 늘어나자 에르도안 총리를 향한 국내외의 비난이 높아졌다.

터키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오르한 파묵이 정부의 시위진압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평화적 시위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유럽연합과 미국 국무성도 터키 당국의 폭력적 대응에 우려를 표명했다. 독일은 ‘시위진압이 계속된다면 터키의 EU 가입에 제동을 걸 수도 있다’고 해, 두 나라 사이에 외교적 마찰이 빚어졌다.

결국 정부 측은 게지 공원 재개발 조치를 법원의 최종판결과 주민투표에 맡기겠다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그리고 경찰력을 동원해 광장 시위대를 해산하면서 소강 국면을 맞았다. 에르도안 총리는 심각한 손상을 입어 대권 도전은 힘들게 됐다는 전망이 나왔다.

이 시위를 세속주의의 반발로 보는 것은 정의개발당이 친이슬람계라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터키의 정치 구도는 단순하지 않다. 정의개발당을 이슬람주의 세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이 정당이 추진하는 정책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정의개발당이라는 당명에서 ‘정의’는 이슬람 윤리의 근본정신과 세속주의적 경제개발을 결합한 것이다. 모순돼 보이는 이 두 가지를 결합함으로써 정의개발당은 창당 1년 만에 집권에 성공했다. 그리고 11년 연속 과반 의석을 확보해 안정된 정부를 운영하는 신화를 일궈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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