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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경동1960’엔 ‘제기동 경동극장’ 來歷이 없다

[명작의 비밀]

  • 이광표 서원대 휴머니티교양대학 교수

    kpleedonga@hanmail.net

    입력2023-08-15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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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드주얼리센터 들어선 단성사

    • 건물주가 부숴버린 스카라

    • 영화 상영 단관 극장은 광주극장만 남아

    • 철거 위기 원주 아카데미극장

    • 오래된 단관 극장은 문화재거늘

    경동극장을 개조해 만든 스타벅스의 이색 카페 ‘경동1960’. [뉴스1]

    경동극장을 개조해 만든 스타벅스의 이색 카페 ‘경동1960’. [뉴스1]

    스크린이 하나만 있는 극장인 단관 극장(單館劇場).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 시대에 단관 극장은 희귀한 존재이고 오래돼 불편한 공간이다. 그런데도 단관극장을 찾는 이들이 있다. 누군가는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보러 가고,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러 간다. 또 다른 누군가는 무언가를 외치기 위해 단관극장에 간다.

    광주의 광주극장, 서울의 경동극장, 강원 원주시의 아카데미극장 이야기다. 광주극장은 지금도 영화를 상영하는 국내 유일의 단관 극장이다. 경동극장은 영화는 상영하지 않고 극장 분위기를 살려 ‘경동1960’이란 이름의 스타벅스 카페가 됐다.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내외부 모두 영화관 형태를 그대로 갖추고 있지만 영화 상영은 17년째 중단된 상태다.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보존과 활용을 놓고 요즘 논란이 일고 있다. 어쩌면 곧 철거될지 모른다.

    1960년대에 머물러 있는 광주극장

    광주극장은 광주 동구 충장로에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이던 옛 전남도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다. 광주극장은 1935년 10월 문을 열었다. 당시 “조선 제일의 대극장”이란 찬사를 받으며 호남 지역 최고의 극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런데 1968년 화재가 발생했다. 절도범이 전기모터를 훔치는 과정에서 불이 나 건물이 대부분 타버렸다. 지금의 건물은 그때 다시 지은 것이다.

    광주 충장로 광주극장 내부 풍경. [동아DB]

    광주 충장로 광주극장 내부 풍경. [동아DB]

    3층짜리 건물에 스크린은 하나이고 좌석은 856석. 극장 건물 안팎 곳곳에선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물씬 풍긴다. 외벽에는 손으로 그린 간판이 걸려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영화는 광고 없이 정시에 시작합니다. 상영관은 하나입니다. 지정좌석제가 아닙니다”라고 쓰인 안내판이 보인다. 지정좌석제가 아니어서 표를 끊어 아무 자리에 앉으면 된다.

    1,2,3층에 출입문이 13개나 있다. 1층 중앙 출입문 옆엔 비밀스러운 문이 하나 더 있고 그 위에 ‘임검석(臨檢席)’이라고 쓰여 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1층 관람석 뒤쪽으로 연결돼 1층이 한눈에 들어온다. 임검석 좌석은 모두 6개다. 1960~80년대 이곳에선 학생주임 교사나 경찰들이 청소년들의 영화 관람을 지도·단속했다.



    운치 넘치는 돌계단을 따라 2층에 올라가면 큼지막한 영사기 두 대가 눈에 들어온다. 1950~60년대에 사용하던 것들이다. 그 옆에 자그마한 전시공간이 마련돼 있다. 영화 티켓에 찍었던 각종 도장, 오래된 초대권, 여성 아나운서의 영화 안내 멘트를 적어놓은 노트, ‘만축(滿祝)’이란 글씨가 인쇄된 흰 봉투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특히 ‘만축 봉투’가 이채롭다. 이것은 객석 매진 시 사례금을 담아 관객에게 선물하는 데 사용하던 봉투라고 한다.

    광주극장에 전시된 1950~60년대 사용하던 영사기. [동아DB]

    광주극장에 전시된 1950~60년대 사용하던 영사기. [동아DB]

    극장 복도에는 다양한 사진과 옛날 영화 포스터가 걸려 있다. 1955년 영화 간판을 그리는 모습, 1970년대 출입구를 지키는 청년들의 모습, 영화 개봉을 기념해 광주극장을 찾은 배우 복혜숙과 전태이의 모습 등. 광주극장은 그 자체로 근대 영화 박물관이라고 해도 충분하다.

    멀티플렉스 시대에 광주극장은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 광주극장도 위기가 많았다. 멀티플렉스가 밀려들고 정부 지원도 끊기자 광주극장은 2016년 시민후원 회원제를 도입했다. 극장 운영 방침도 개봉관이 아니라 독립영화 공간으로 바꾸었다. 현재 후원회원은 1만3000여 명이며 극장에서는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상영한다. 요즘엔 광주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영화 마니아들이 찾아온다. 극장 건물은 낡았고 관람객은 많지 않지만, 시민들과 함께 광주극장의 역사와 가치를 지켜내고 있는 셈이다.

    광주극장은 매년 10월 ‘광주극장 영화제’를 연다. 이 영화제의 개막식에선 영화 손간판(사람 손으로 그린 간판) 상판식이 펼쳐진다. 광주극장의 손간판을 그렸던 최후의 간판쟁이 박태규 씨와 시민들이 함께 그린 영화 간판을 선보이는 행사다. 멋진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대기업 복합상영관이 지배하는 시대에 광주극장의 존재는 기적 같은 일이다.

    MZ세대 성지 경동극장

    서울의 그 많던 단관 극장은 모두 사라지고 딱 하나 남았다. 딱 하나 남았다고 했지만, 실은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적잖이 훼손된 극장이었다. 동대문구 제기동의 경동시장 건물 3,4층에 있는 옛 경동극장. 1960년 경동시장의 등장과 함께 문을 연 경동극장은 1994년까지 영화를 상영했고 이후엔 방치됐다.

    이곳은 2022년 12월 ‘경동1960’이란 이름의 스타벅스 매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경동1960은 1960년 출범한 경동시장과 경동극장을 의미한다. 경동1960은 극장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고자 했다. 천장의 목재 트러스(직선봉을 삼각형으로 연결한 골조 구조)를 그대로 노출했고 계단식 객석의 경사를 살리면서 이런저런 인테리어를 가미했다.

    스크린이 있던 아래쪽은 주문 카운터로 꾸몄고, 뒤쪽 맨 위쪽엔 영사실 같은 분위기로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음료가 준비되면 빔 프로젝트를 이용해 스크린 쪽이나 측면의 벽에 주문자 번호나 별명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이 장소가 영화관이었음을 상기시키기 위한 하나의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다.

    개장 직후부터 이곳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몰렸다. SNS 덕에 MZ세대 성지로 떠올랐다. 이러한 인기는 모두 이색적 분위기 덕분일 것이다. 산업유산 건축물을 문화공간이나 카페 등으로 활용하는 트렌드의 하나이기도 하다.

    경동1960은 지금 영화관은 아니다. 영화관의 흔적을 살린, 극장 요소가 담긴 카페다. 그래도 많은 사람은 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곳이 옛날에 단관 극장이었다는 사실을 되새길 것이다. 그러면서 옛 단관 극장의 분위기와 공간 특징, 문화적 의미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볼 것이다.

    아쉬움도 남는다. 경동1960 어느 곳에서도 경동극장의 내력에 대한 설명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곳이 단관 극장 경동극장이 아니었다면 경동1960은 생기기 않았을 것이고, 지금처럼 많은 손님을 모으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경동극장에 대한 내력 한 줄 기록해 놓지 않았다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원주 원도심 한복판에 있다. 지학순 주교로 유명한 원동성당, 원주가톨릭회관, 중앙시장, C도로(평원로), 강원감영, 민속풍물시장 등 낭만의 공간이 모여 있는 그곳에 있다. 아카데미극장이 문을 연 때는 1963년이다. 당시 원주 도심엔 극장이 많았다. 1950~60년대 원주극장, 군인극장, 시공관, 문화극장, 아카데미극장이 잇달아 들어섰다. 이 단관 극장들은 오랜 세월 원주시민의 사랑을 받으면서 애환을 함께했다.

    2005년 원주에 멀티플렉스가 들어왔다. 관객은 모두 멀티플렉스로 몰려갔고, 이듬해인 2006년 단관 극장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극장 건물마저 철거되기 시작했다. 아카데미극장은 건물 소유주가 창고 건물로 사용한 덕분에 다행히 헐리지는 않았다.

    철거 앞둔 아카데미 극장

    그렇게 10년이 흘러 2016년경, 원주시민들은 아카데미극장의 존재 의미를 되새기고자 했다. 방치된 아카데미극장 건물을 되살려 문화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아카데미극장은 노후했지만 영화관의 면모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일부 공간이 물류 창고처럼 다른 용도로 활용됐지만 객석, 영사실, 매표소, 간판 거치대, 광고판 등 시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벽에 걸려 있는 달력도 극장이 문을 닫은 2006년 4월에 멈춰 있었다.

    강원 원주시 아카데미극장. 2006년 문을 닫은 이후 영화관으로서의 기능은 멈췄지만 내부에는 객석과 영사실, 매표구 등 옛 시설이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원주 아카데미극장 보존추진위원회]

    강원 원주시 아카데미극장. 2006년 문을 닫은 이후 영화관으로서의 기능은 멈췄지만 내부에는 객석과 영사실, 매표구 등 옛 시설이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원주 아카데미극장 보존추진위원회]

    시민들은 뜻을 모았고, 그 일환으로 2017년 ‘먼지 쌓인 극장에 불을 켜다’라는 이름의 전시를 열었다. 원주 지역 단관 극장들의 역사 자료를 선보이는 자리였다. 2020년 11월엔 소유주의 동의를 얻어 내부를 정리하고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카데미극장을 되살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유주와의 생각 차이, 매입 예산 확보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원주시는 2022년 초 32억 원에 극장을 매입했다. 획기적 사건이었다. 원주시민들의 아카데미극장 살리기 프로젝트는 성공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원주시는 2022년 하반기부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리모델링 비용, 유지관리비, 위탁운영비 등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인근 풍물시장과 청년 상인들을 위해 주차시설이 시급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원주시의 태도가 왜 이렇게 급변한 것일까.

    2022년 6월 1일 지방선거에서 원주시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전임 원창묵 시장과 신임 원강수 시장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지만 새 시장의 판단에 따라 2023년 4월 원주시는 아카데미극장 보존 활용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건물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원주시는 5월 말 철거 예산을 책정했다. 7월 중 철거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상황이 180도 급변하면서 원주에서는 아카데미극장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단성사와 스카라, 그 쓸쓸한 추억

    서울의 종로3가와 을지로3가 일대는 영화의 거리였다. 단성사(團成社), 스카라극장, 피카디리극장, 서울극장, 명보극장 등 유서 깊은 극장이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관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흥망성쇠는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흔적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다른 문제다.

    특히나 단성사와 스카라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1907년 문을 연 단성사는 1919년 국내 최초의 영화 ‘의리적구토(義理的仇討)’를 상영한 이래 영화관으로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멀티플렉스의 위세를 이겨내지 못했다. 생존을 위한 변신을 거듭했지만 결국 2012년 영화 상영을 종료했고, 2016년 ‘단성골드주얼리센터’로 바뀌었다.

    지금 단성골드주얼리센터 간판 옆에 ‘영화, 그리고 추억 구 단성사’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건물 앞의 낮은 벽에 ‘단성사 터 역사 전시장’이 있고, 건물 내부에 단성사 전시관이 있지만 단성사 100년의 역사에 비하면 옹색하기만 하다. 옹색하다는 느낌은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그 역사와 흔적에 대한 성의의 문제다.

    1935년 문을 연 스카라극장은 국내 최초의 전용 영화관이었다. 특히 반원형 현관 부분이 앞쪽으로 튀어나온 독특한 외관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스카라극장은 그 자체로 서울의 상징이었고 영화계의 자존심이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1990년대 말부터 멀티플렉스로 인해 고전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영화 상영을 이어가던 2005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당시는 근대 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2005년 11월 문화재청은 스카라극장을 근대문화유산인 등록문화재로 지정한다고 예고했다. 그러자 한 달 뒤인 12월 초, 건물주가 극장을 그만 철거해 버렸다. 멋진 이름, 독특한 건물, 스카라의 추억은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다. 아쉽고 또 아쉬운 일이다.

    1960년대 서울 중구 퇴계로에 있던 스카라극장 모습. [동아DB]

    1960년대 서울 중구 퇴계로에 있던 스카라극장 모습. [동아DB]

    단성사와 스카라극장이 사라진 것도 옛일이 됐다. 인천의 애관극장처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극장이 더러 있지만 모두 적잖이 변형된 데다 멀티플렉스로 운영되고 있다. 이제 국내에 단관극장은 거의 없다. 1960년생 경동극장, 1963년생 원주아카데미극장, 1968년생 광주극장뿐이다. 그런데 옛 경동극장은 지금 극장이 아니라 카페다. 단관 극장의 공간임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경동극장의 역사는 하나도 보여주지 않는 모순적 공간이기도 하다.

    단관 극장의 면모를 제대로 갖춘 곳은 광주극장과 원주 아카데미극장뿐이다. 광주극장은 시민들이 힘을 합쳐 영화관의 기능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아카데미극장은 철거 운명에 처했다.

    아카데미극장은 단관 극장으로서의 면모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건물로 치면 1963년에 생겼으니 1968년에 지은 광주극장보다 오래됐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단관 극장이라고 할 수 있다. 건물 외관도 매력적이다. 1980년대 사진을 보면, 특히 정면 모습에서 영화관으로서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지금 상태는 오랫동안 방치된 탓에 낡고 어수선하지만, 정면 외관을 보수하고 원래 모습으로 되살린다면 그 자체로 멋진 건축물이 될 것이다. 1960년대풍 건물이어서 오히려 더 신선한 분위기를 연출할 것이다.

    미래의 명작을 위해

    지금 원주는 아카데미극장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보존론과 철거론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철거론자들은 “극장 건물을 통째로 철거하고 주차장을 만들고 공연 공간을 마련해야 원주의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철거가 과연 능사일까. 극장을 헐고 주차장을 지어야 풍물시장을 찾는 사람이 더 늘어나고 청년 상인들의 수익이 늘어날 것이라고 하는데, 극장을 그대로 두면 왜 돈을 벌지 못한다는 건가. 경동1960의 상업적 성공을 참고할 수는 없을까.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서둘러 철거해 버리기에 너무 아까운 건축물이다. 세월이 좀 더 흐르면 원주에서 가장 멋진 건축물로 대접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멋진 단관 극장 건물, 원주 아카데미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다. 서로 견해가 다르다고 해도, 당장 철거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보존론자와 철거론자 모두 건물을 보존한다는 전제 아래 전향적이고 현실적이며 창의적 논의를 해야 한다. 아카데미극장 건물도 살리고 동시에 돈도 벌 수 있는 아이디어를 논의해야 한다. 두 마리 토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이광표
    ● 1965년 충남 예산 출생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 고려대 대학원 문화유산학협동과정 졸업(박사)
    ● 前 동아일보 논설위원
    ● 저서 : ‘그림에 나를 담다’ ‘손 안의 박물관’ ‘한국의 국보’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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