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국민의힘, 기껏 키운 청년 인재 내쫓다

[이동수의 투시경]

  •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입력2023-12-18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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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윤 청년 정치인? 2030정서와 거리 멀어

    • ‘역대 최고령 국회’에 대한 반작용

    • 득보다 실 많은 ‘이벤트성 인재 영입’

    [Gettyimage]

    [Gettyimage]

    4년 전 이맘때, 21대 총선 화두는 ‘청년’이었다. 2019년 하반기를 뜨겁게 달군 조국 사태로 말미암아 ‘공정’이라는 가치가 시대적 과제로 부상한 시기였다. 나중엔 서울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세를 과시하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긴 했지만, 조국 사태가 정치권과 언론이 청년 여론에 귀 기울이게 하는 계기가 된 건 틀림없다. 당시 청년들이 보여준 분노는 다양한 세대를 대표하지 못하는 ‘역대 최고령 국회’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졌다.

    20대 국회의원 300명 중 30대 이하는 단 세 명(당선일 기준) 뿐이었다. ‘미만’이 아니라 ‘이하’였다.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할 청년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대두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은 청년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전면에 내세웠다. 더불어민주당 타깃은 20대 남성이었다. 2030 남성들의 문재인 정부 지지율은 젠더 갈등이 격화한 2018년 전후로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민주당은 20대 남성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이런 상황을 돌파하고자 했다. 주인공은 과거 MBC 예능 프로그램 ‘느낌표’에 나와 큰 화제가 됐던 원종건 씨. 실력보다 스토리에 치중한 인재 영입이라는 비판은 있었지만 그의 영입은 화제성 측면에서 그 나름대로 성공한 듯 보였다. 그런데 얼마 뒤 데이트 폭력 논란이 불거졌다. 그는 영입 인재 자격을 반납하고 탈당했다.

    ‘참여정부’ 잇는 참여연대 정부

    반대로 보수정당의 아킬레스건은 20대 여성이었다. 민주당에 대한 청년 남성들의 지지가 낮다고는 하나 보수정당의 청년 여성 지지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 맥락에서 미래통합당은 30대 여성 사업가 김미균 시지온 대표를 서울 강남구병 지역구에 전략 공천했다. 당선이 보장되는 지역에 내보낸 뒤 간판으로 활용할 심산이었을 터다. 하지만 청년 당원들을 중심으로 엄청난 반발이 터져나왔다. 강남구 공천이라는 확실한 보상을 그동안 당에 기여한 바 없는 인물에게 주는 게 타당하냐는 주장이었다. 논란은 김 대표가 민주당과도 공천을 논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문재인 대통령이나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호감을 표시한 게시 글이 추가로 드러나며 사실상 종결됐다. 전례 없는 ‘친문 논란’에 그의 공천은 철회됐다.

    이벤트성 인재 영입은 득보다 실이 많다. 기억에 남는 논란은 많으나 성공 사례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더러는 불분명한 과거 행적이 발목을 잡기도 한다. 청년 사업가라는데 사업한 흔적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부지기수다. 유권자들이 납득할 만한 인물을 데려오는 건 대단히 중요하다. 어쩌면 그게 대통령 측근 공천 여부만큼 중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치 전문성이 결여된 이들을 인맥으로, 혹은 스토리만 보고 영입해 전면에 내세우는 정치권의 못된 버릇은 이번 선거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각 당은 인재 영입에 전통적으로 선호해 온 인력풀이 있다. 학생운동권과 시민단체는 민주당에 인물을 공급하는 핵심 원천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제16대 총선을 앞두고 우상호·이인영·임종석 등 1980년대 학생운동권 대표주자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들을 필두로 한 386세대는 4년 뒤인 2004년 총선에 대거 국회에 입성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 불며 열린우리당이 152석 대승을 한 덕분이었다. 당시 열린우리당 내 초선의원만 108명에 달해 ‘108번뇌’라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만큼 많은 인물이 국회에 진출하면서 386세대는 어렵지 않게 ‘밀어주고 끌어주는’ 정치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었다.

    운동권 그룹에서 추가로 데려올 인물이 부족해질 즈음엔 시민사회가 새로운 인력풀로 기능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만든 참여연대는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 조직이었다. 이들은 특히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대적으로 정·관계에 진출했다. 각종 요직에서 국정을 이끌었던 조국·장하성·김상조·김수현·김기식 등이 모두 참여연대에서 활동한 바 있다. 오죽하면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를 잇는 ‘참여연대 정부’”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민주당 청년 인재풀=86세대+시민단체

    2019년 12월 29일 더불어민주당 당시 이해찬 대표와 윤호중 사무총장이 ‘영입인재 2호’ 원종건 씨(가운데)와 기념 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2019년 12월 29일 더불어민주당 당시 이해찬 대표와 윤호중 사무총장이 ‘영입인재 2호’ 원종건 씨(가운데)와 기념 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86세대와 시민단체는 비유하자면 수도권에 물을 공급하는 소양강댐과 같았다. 이들이 있었기에 민주당은 큰 힘 안 들이고 인재를 수혈받을 수 있었다. 정서적 이질감이 없고, 비슷한 인적 네트워크를 공유해 왔으며, 정치와 정책에 대한 감각도 두루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20여 년간 인물을 공급받던 이 상수원이 이제 말라버렸다. 86세대는 어느덧 환갑이 넘거나 바라보고 있어 참신함이나 개혁성을 더는 보여주지 못한다. 시민단체들은 윤미향 의원 사건을 비롯한 각종 구설로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향후 민주당이 직면할 난관도 이 지점에 있다.

    물론 민주당은 대대로 젊은 층에 인기 있는 정당인 까닭에 유능한 청년 자원이 많다. 이미 당에 들어와 지방의원으로 활동하는 인물도 제법 된다. 하지만 너무 흔한 이유에서인지 민주당은 청년 자원을 육성하는 데 지나치게 소홀했다.

    민주당이 2014년부터 진행해 온 ‘청년정치스쿨’은 그런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0년 동안 13기수나 배출한 청년정치스쿨은 외형적으로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듯 보이지만 내용은 매우 부실하다. 하루 두세 개의 정치인 특강을 사나흘 몰아서 듣는 게 전부다. 역량을 키우기보다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공천 신청에 필요한 수료증을 나눠주는 정도에 그친다.

    인재를 육성하는 일엔 많은 수고와 비용이 소요된다. 반면 성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민주당은 단기적으로 가성비가 높은 방식을 택했다. 이벤트성 인재 영입이다. 앞선 사례처럼 20대 남성 지지율이 떨어졌다 싶으면 20대 남성을 영입하고, 민식이법이 화제가 된다 싶으면 교통사고로 자녀를 잃은 부모를 영입하는 식이다. 대선 직전 국민의힘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으로 청년 남성 여론이 출렁이자 황급히 반대표를 끌어모으기 위해 N번방 사건으로 유명한 박지현을 영입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당내 갈등 국면에서 그는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럴 거면 왜 비대위원장에 앉혀놨냐”고 따진 적이 있는데, 사실 민주당이 그러려고 앉혀놓았다는 걸 몰랐던 사람은 거의 없다.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 연달아 패하면서 민주당은 비상대책위원회에 재선 전주시의원 서난이 의원(30대)을 임명하는가 하면, 김은경 혁신위에도 정치권에서 오래 활동한 인물을 영입하는 등 기존과 달리 정치권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인물 영입을 경계하는 모양새다. 다만 민주당이 이런 자세를 얼마나 오랫동안 견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 말마따나 오늘날의 민주당은 “그때그때 인기나 여론에 포획된 정당”이 됐기 때문이다.

    학생운동권과 시민단체에서 인물을 충원해 온 민주당과 달리 보수정당은 전통적으로 법조인·관료·교수 등 이른바 사회지도층으로 불리는 집단에서 인물을 영입해 왔다. 유승민·오세훈·원희룡·남경필·나경원 등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시절 영입된 인물들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들이 공천을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로 논란이 뜨거운데 사실 법조인 출신을 데려다 쓰는 게 보수정당의 기존 방식에서 크게 벗어난 일은 아니다.

    당장 전·현직 지도부만 봐도 판·검사 출신이 여럿 있다. 이들 직업군이 국민의 보편적 정서를 온전히 대변하지 못한다는 단점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인력풀의 지속가능성에서만큼은 민주당보다 유리한 게 사실이다.

    시민단체처럼 ‘정치적으로 준비된’ 인력 공급처가 부족하다는 건 보수 진영의 약점이다. 물론 보수 진영 시민사회도 2000년대 중반 뉴라이트 운동 활성화와 이들이 지지한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으로 전성기를 누릴 뻔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뉴라이트는 규모나 세력에 비해 국회에 많이 진출하지 못했다. 그나마도 반대편에 섰던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하며 사실상 동력을 상실했다.

    이벤트성 인재 영입하는 당, 외면당할 것

    2020년 1월 8일 21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자유한국당에 입당한 탈북민 인권운동가 지성호(왼쪽) 씨와 체육계 미투1호로 알려진 김은희 전 테니스 선수. 가운데는 당시 황교안 대표. [뉴스1]

    2020년 1월 8일 21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자유한국당에 입당한 탈북민 인권운동가 지성호(왼쪽) 씨와 체육계 미투1호로 알려진 김은희 전 테니스 선수. 가운데는 당시 황교안 대표. [뉴스1]

    주목해야 할 건 청년층이다. 보수정당은 원래 청년층의 지지가 높지 않았다. 그만큼 투자도 적었다. 그러던 중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당시 비박계 의원들이 새누리당에서 탈당해 바른정당을 만들었는데, 6070세대의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지지가 확고한 상황에서 새로운 지지 기반을 창출해 내고자 청년에 대한 투자를 확대한 것이다. 바른정당은 창당 초부터 5∼6개월 과정의 청년정치학교를 설립해 국정감사·언론 홍보·토론 등 정치 전반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는 한편, 지방선거학교·목민관학교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유승민·정병국·김세연 의원 등을 비롯한 ‘개혁보수’에 매료된 청년들이 합류했다. 이때 처음 정치에 발을 들인 이들 중 여럿이 국민의힘에 이준석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청년 정치 영역에서 압도적으로 열세였던 보수정당은 불과 몇 년 만에 민주당을 앞서게 됐다.

    문제는 그 청년들이 2022년 여름 이준석 사태를 거치며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대거 이탈했다는 점이다. 국민의힘은 기껏 키운 인재를 내쫓은 꼴이 됐다. 그 결과 당내 청년 정치인은 사실상 친윤계만 남았다. ‘친윤 청년 정치인’이 보편적 청년들의 정서와 거리가 멀다는 건 지금 국민의힘의 청년층 지지율로 충분히 알 수 있다. 이준석계 청년들을 어떻게 다시 끌어안을지는 추후 국민의힘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밉지만 정치 경험이 있는 청년들을 내세울 것인가, 불확실성을 껴안고서라도 말 잘 듣는 청년들을 정치권 밖에서 데려올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국민의힘의 총선 결과도 달라질 것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국민의힘은 혁신위원회를 꾸리면서 정치권 밖에 있던 인물 다수를 영입했다. 아니나 다를까 박소연·이젬마·임장미 등 외부에서 영입한 인사들이 “더 이상의 활동은 무의미하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가 “사의라는 표현을 혼동해서 잘못 사용한 것”이라며 이를 철회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최안나 위원은 처음엔 ‘4인방’으로 함께 거론되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중엔 언론에서 이름이 빠졌다. 진짜 이유가 뭔진 몰라도 결국 국민의힘은 사의 뜻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당의 혁신을 맡겼던 셈이다.

    우스워 보여도 정치는 전문 영역이다. 오랜 기간 축적돼 온 역사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고 높은 수준의 정무적 판단력도 갖춰야 한다. 앞서 언급한 혁신위 사례는 기본적인 정무적 판단도 되지 않는 이들이 패기만 갖고 정치에 참여했다가 만든 해프닝이다.

    정당들은 항상 새로움을 추구한다. ‘정치 때’가 묻지 않은 신선한 인물을 데려와 앞에 내세우려 한다. 그게 당을 쇄신하고 시스템을 손보는 것보다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인재 영입은 대부분 실패로 귀결됐다. 검증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논란이 튀어나오거나, 정치적 훈련이 안 된 까닭에 터무니없는 말실수로 일을 그르친 경우가 그동안 너무 많았다. 외부에서 영입했다고 국민이 신선하게 보는 시대도 지났다.

    장담컨대 이번 총선에서 이벤트성 인재 영입에 목매는 정당일수록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중소기획사의 이름 모를 아이돌 그룹도 수년간의 연습생 생활을 거친 뒤 완성된 상태로 무대 위에 서는데, 국가를 이끌 정치인을 길바닥에서 캐스팅해 방송에 내보내던 1990년대 방식으로 등용하는 건 문제가 있지 않은가. 지금 우리 정치에 필요한 건 참신함이나 신선함 따위의 껍데기가 아니라 안정감과 사명감 같은 알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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