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호

JP의 줄타기 ‘쇼당 정치’

  • 박성원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 swpark@donga.com

    입력2005-04-19 15: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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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필 자민련명예총재의 움직임이 경쾌하다. “마지막으로 서쪽하늘을 벌겋게 한번 물들이고 싶다”는 희망답게 그는 정치전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거론되고 있다. 도대체 JP의 희망사항은 무엇일까. 킹메이커일까. 아니면 킹이 되려는 걸까. ‘벌겋게 타오르는’ JP의 요즘을 들여다보았다.
    “운정(雲庭) 선생님의 결단이 없었다면 감히 공동정부가 출범할 수 있었겠습니까. 총리로 계실 때 대통령님과 항상 호흡을 맞추신 것처럼 앞으로도 손을 맞잡고 나라를 위해 잘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3월5일 저녁 서울 신라호텔 3층 마로니에룸에서는 한광옥(韓光玉) 비서실장을 비롯, 남궁진(南宮鎭)정무, 신광옥(辛光玉)민정, 김성재(金聖在)정책기획, 이기호(李起浩)경제, 박준영(朴晙瑩)공보수석 등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이 대거 참석한 저녁모임이 열렸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요인들이 대통령이 없는 식사자리에 이처럼 함께 모인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더욱이 대통령의 방미를 하루 앞두고 대통령비서진이 대거 청와대 밖을 나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이날 “어서들 가보라”고 흔쾌히 외출을 재가했다. 한실장 등이 김대통령 이외의 인사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까지 써가며 깍듯이 ‘모신’ 인사는 다름아닌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명예총재, 운정(雲庭)은 김명예총재의 아호다.

    이날 JP를 수행했던 자민련 변웅전(邊雄田)대변인은 “대통령비서들이 공동정권 2인자에게 진심어린 존경의 염(念)을 표하고 김명예총재는 이들을 그윽히 품어주는 훈훈한 자리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양주도 몇 순배씩 돌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요사이 정치권에서는 “JP만큼 행복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해는 총선참패로 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한 채 추락을 거듭한 JP였지만 올 들어 민주당의 ‘의원 꿔주기’로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DJP공조를 복원한 이후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JP의 동선은 자민련이라는 좁은 울타리에 머물지 않는다. 2월23일에는 여야 국회의원 50여 명을 대동하고 서울 상암동 월드컵 주경기장을 ‘순시(자민련 변대변인 표현)’하며 월드컵조직위 공동위원장인 무소속 정몽준(鄭夢準)의원의 안내로 경기장시설 등 준비상황을 점검했다. 행사가 끝난 뒤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여야 의원들과 만찬을 가진 JP는 시종 ‘진한 농담’을 섞어가며 좌중을 압도하는 좌장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 이틀 전에는 정치권 내 진보·개혁파의 상징격인 김근태(金槿泰)최고위원을 비롯한 민주당의원 9명에게 저녁을 사는 자리에서 김최고위원으로부터 ‘선배님’으로 대접받으며 노선과 세대를 초월한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처럼 정치권에서 새삼 JP의 주가가 치솟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종횡무진하는 JP의 목표지점은 어디일까.

    JP의 행보에 힘이 실리는 데에는 우선 김대통령의 강력한 후원이 있다. JP의 한 측근은 “공조복원을 선언한 올 1월8일 DJP 회동에서 정치문제는 김명예총재에게 주로 맡긴다는 김대통령의 얘기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후 주요 정치현안에서 누구보다 JP의 의견에 비중을 두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김대통령이 그토록 중시했던 국가보안법 개정문제도 ‘지금은 때가 아니다’는 JP의 분명한 태도표명이 있자 “국민의 여론을 충분히 들은 뒤에 결정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JP가 3월7일 일본을 급거 방문한 것도 3월2일 김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에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에 관한 국민의 우려와 정부의 불만을 일본측에 비중있게 전달해야겠다는 두 사람의 논의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통령이 미국을 방문, 부시 행정부와 대북공조 문제를 조율하던 이 기간에 JP는 일본으로 날아가 일본의 역사왜곡 움직임에 시정을 촉구하는, 일종의 역할분담이 이뤄진 것이다. 공동여당 내에서 JP가 부동(不動)의 2인자이며 김대통령을 대리할 수 있는 유일한 실권자라는 점을 국내는 물론 대외적으로도 과시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대장정의 시작에 불과”

    그러나 JP의 행보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앞으로 예상되는 정계개편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 때문이다. 측근들은 갈수록 왕성해지는 JP의 행보를 ‘대장정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JP는 민국당 김윤환(金潤煥) 대표와 2월21일 회동한 다음날 동아일보에 민주당-자민련-민국당의 ‘3당 정책연합’ 추진이 보도되자 “뭘 그런 걸 갖고 난리야. 앞으로 더 큰 일이 얼마나 많은데”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사실 정책연합 구상은 민국당 김대표가 지난해부터 당의 활로모색 차원에서 주장해온 것으로 그리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아이디어 수준을 넘어 하나의 구체적 실행프로그램으로 가시화된 것은 JP가 김대표와 만나 여권의 비중 있는 의사를 전달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DJP공조 복원 이후 JP가 강조해온 ‘정치안정’과 이를 위한 정치구도의 변화, 즉 정계개편 조짐이 JP를 기축 삼아 일부 단초를 내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JP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내년 봄에는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해온 터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에서는 여권이 DJP공조 복원을 계기로 ‘야당의원 빼내기’ 또는 야당분열책을 통한 정계개편을 시도하고 있다고 경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실제 일부 한나라당 의원의 탈당설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김대통령과 김명예총재가 3월2일 청와대 회동에서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현행 20석에서 14석으로 낮추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 처리를 다짐한 것도 한나라당 지도부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한 대목이다. 자민련이 제출한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한나라당에서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지도력과 노선에 불만을 가진 일부 의원이 독자적인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최악의 상황이 전개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자민련 고위관계자들은 지난해 국회법 개정을 통해 자민련이 교섭단체로 인정받는 길을 끝내 가로막은 한나라당 이총재에 대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연초부터 경고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자민련 김종호(金宗鎬) 총재대행은 “한나라당이 지난해 자민련 와해와 JP무력화 공작 차원에서 교섭단체 구성을 차단하고 심지어 우리 당 일부 의원을 접촉한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민련을 적으로 돌려버린 이총재에 대해 한나라당내에서도 불만이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당장 큰 틀의 정치적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여권 일각에서 ‘민주+자민련=합당설’, 또는 ‘민주+자민련+α=통합신당 창당설’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막연히 거론되고 있을 뿐이다. 특히 JP의 의중에 충실한 김종호 대행은 합당 얘기만 나오면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다만 김대행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각 정파가 자신들의 생각과 방향을 정해야 할 테니까 정계개편을 유발하는 요인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JP 자신은 정계개편 문제에 대해 함구하고 있으나 자민련 안팎에서는 정계개편의 폭과 시기 문제는 무엇보다 JP의 의중에 달려 있다고들 말한다. 합당이든 신당창당이든 JP의 역할과 포지션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문제가 해결돼야 구체적인 골격이 그려진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당권 및 차기문제를 둘러싼 DJ와 JP 간 권한배분의 문제라 할 수 있다. JP의 마음속에는 90년 민정 민주 공화당의 3당 합당 이후에 겪은 쓰린 기억이 선연하게 남아 있다. 민자당을 함께 만들었지만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당선 이후 YS측근에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결국 못 견디고 탈당했던 전철(前轍)을 다시 밟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 측근인사는 “JP가 명색이 대표인데도 YS 측근이라는 사람들이 당대표의 방을 절반으로 줄이려 들고, 옆방과 아랫방에서 지도체제 개편을 운운하는 등 못볼 꼴 많이 봤다”면서 “JP는 앞으로 새 당이 만들어진다 해도 고용사장(대표) 노릇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통합당의 당권, 즉 정권창출의 주도권을 쥔 총재직 등이 보장되지 않는 한 JP가 합당이나 신당 창당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JP가 비록 “어려움에 빠진 나라를 구해서 유종지미(有終之美)를 거두는 게 공동정부를 함께 만든 사람의 도리”라며 공조복원에는 응했지만 그의 머리 속에는 ‘집권 2년 안에 내각제를 시행한다(임기 후반부는 자민련이 국정을 주도한다)’는 97년 대선 합의가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게 이 측근의 시각이다.

    청와대와 민주당 고위관계자들도 이런 분위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가 별로 없다. 3월6일 민주당과 자민련 대변인단이 함께한 오찬 자리에서도 같은 분위기가 자연스레 표출됐다.

    ▲김영환(金榮煥) 민주당대변인= 다음에는 김종필 총재님께서 큰일을 하시는 게 순리인데….

    ▲변웅전(邊雄田) 자민련대변인=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글쎄 말입니다. 그게 순리이긴 한데….

    ▲김대변인= 합당하면 변선배님을 대변인으로 모시고 제가 수석부대변인 하겠습니다.

    ▲변대변인= (허허 웃으며) 무슨 말씀을. 제가 부대변인 할게요.

    그러나 여권이 통합여당의 ‘김종필 총재님’을 수용하려면 김대통령의 결심은 물론, 차기 주자군 등 민주당 내 다수의 동의가 필요하다. 당 주도권을 누가 갖느냐 여부는 정권 재창출 및 차기정권에서의 영향력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는 이 문제에 대한 합의점을 도출한다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김정일(金正日) 북한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경제회복노력 등 시급한 국정현안을 위해서도, 김대통령의 레임덕 방지를 위해서도 차기와 관계되는 논의는 적어도 올 하반기까지는 억제돼야 한다는 게 여권 내의 암묵적 합의사항이다. 하지만 올해 말부터는 다시 ‘큰 틀의 정계개편’ 및 이를 위한 JP의 위상 문제가 다시 부각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느슨한 연합’과 ‘불안정한 다수’로는 이회창이라는 단일후보와 영남지역의 반DJ정서를 압도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DJP공조를 ‘시드 머니’삼아 다수의석 확보를 기본으로 어떤 형태로든 강력한 범여권의 틀을 구축하는 정계개편이 불가피하다는 게 여권 일반의 공감대다. DJP공조는 정계개편을 향한 예비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 3월2일 청와대 회동에서도 거듭 확인됐듯 DJP간에는 ‘임기 말까지 유종의 미’ ‘각종 선거에서 공조’라는 표현으로 차기 대선에서의 공조를 논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논의가 진전될수록 JP의 비중은 커질 수밖에 없다.

    JP 마음잡기 나선 여권 주자들

    이런 까닭에 여권의 차기주자군은 저마다 JP의 마음잡기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재야 출신인 민주당 김근태 최고위원이 동료의원들을 대동하고 ‘유신본당’인 JP에게 깍듯이 예를 표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지난 1월 방미 중에 ‘JP 외교성과 뻥튀기’ 논란을 빚었던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최고위원은 김포공항 귀국장에서 진땀을 흘려가며 이를 해명하고도 모자라 JP를 별도로 만나 “오해를 푸시라”고 극진히 모셨다는 후문이다.

    JP와의 관계 구축에 누구보다 애쓰는 이는 여권의 차기주자군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이인제(李仁濟) 최고위원이다. 이최고위원은 지난해 4·13 총선 과정에 ‘충남권 대권주자’를 자임하면서 당시 공조파기 상태에 있던 자민련의 JP를 ‘서산에 지는 해’로 비유, ‘미운 털’ 신세가 됐다. 그러나 DJP공조 회복 이후 여권 내 위상이 점증하는 JP와의 관계개선은 이최고위원으로서는 대권가도에서 반드시 돌파해야 할 관문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이최고위원은 공조복원 이후 JP에 대해 “해는 졌다가 다시 떠오는 것”이라며 과거의 ‘지는 해’ 발언을 발빠르게 수정하기도 했다.

    나아가 이최고위원은 기회 있을 때마다 JP를 ‘찾아뵙고’ 지난 일을 사과할 계기를 만들려고 눈물겹도록(?) 노력해왔다. 그는 미국을 방문중이던 1월22일(현지시각) 역시 방미중이던 JP가 같은 뉴욕 인터콘티넨탈호텔에 머물다가 새벽 6시에 먼저 떠나려 하자 시간 맞춰 기다리다가 “안녕히 가십시오. 저도 곧 떠납니다. 서울 가서 찾아뵙겠습니다”고 예를 갖췄다.

    하지만 열리는 듯하던 JP의 마음은 양당의 4·26 재·보선 연합공천과 관련, 논산시장 후보공천 문제로 다시 싸늘하게 식었다. 자민련측이 “공조정신을 살려 충남권에 기반을 가진 자민련이 후보를 내는 게 당연하다”고 선수를 친 가운데 이최고위원이 자신의 지역구인데다 전임 시장도 민주당 소속이었다는 점 등을 내세우며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이최고위원은 JP의 불쾌한 반응과 모처럼 시작된 양당공조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을 꺼리는 당내 일각의 시선 등을 의식, “당지도부가 해결할 문제”라고 목소리를 낮췄으나 JP의 굳어진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JP의 핵심측근인 자민련 변대변인은 “소위 대권을 하겠다는 이최고위원이 소탐대실하려는 자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데 실망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JP의 심기를 건드릴까 우려하는 이최고위원과 민주당 지도부는 ‘대승적 차원의 양보’ 문제를 논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하지만 JP가 내년 대선정국에서 이최고위원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끝까지 불가능할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충청권의 새 희망’을 자처하는 이최고위원의 등극은 곧 전통적인 ‘충청맹주’ JP의 역할종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최고위원측에서는 “무슨 소리냐. 대선배님으로 존경하며 잘 모실 것”이라며 구애에 열을 올리지만 이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는 자민련 인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자민련에서는 JP가 이최고위원보다는 당총재인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를 여권후보로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민주당에서 대통령을 냈으니까 이제는 자민련 차례라는 당위론을 주된 근거로 하고 있다.

    자민련에서는 이와 함께 ‘영남주자론’에 관심을 보이는 인사들도 있다. 영남주자론은 ‘3당 정책연합’에 의기투합한 민국당 김윤환 대표는 물론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의 협력도 가능하게 만드는 고리라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민국당 김대표는 “민주당도 JP도 YS도 독자적으로는 정권창출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며 영남후보를 매개로 한 ‘반(反) 이회창 연대’의 형성을 위해 JP가 거중 조정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평가한다. 이 가운데 DJ와 이회창 총재를 싸잡아 독설을 퍼붓는 YS는 2월22일 JP와 만나 밀담을 나누며 “또 만날 것”을 예고한 바 있다. 자민련 내에서는 TK출신인 민주당 김중권(金重權) 대표의 상승세에 관심을 보이는 인사도 없지 않고, 일부에서는 이수성(李壽成) 전총리의 역할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당내 일각에서 “언제까지 킹 메이커만 할 것이냐”는 ‘JP대망론’이 제기되고 있어 주목된다. 이는 여권에 당선 가능성이 높으면서도 흔쾌히 지지할 만한 주자가 마땅히 없다는 JP의 고민을 반영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사실 ‘JP대통령론’은 일반인의 인식과는 별도로 자민련에서는 단순한 희망사항 이상으로 진지하게 거론될 조짐이다. 2월10일 대전 유성호텔에서 열린 자민련 대전·충남 신년교례회에서 김종호 총재대행은 “민족의 지도자 김종필 명예총재와 함께 정치안정 경제회복, 그리고 정권창출에 앞장서자”고 운을 띄웠다. 참가자들의 연호 속에 등단한 JP 자신도 “오늘은 자민련 역사를 새로 기록하는 날”이라고 선언한 뒤 일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會根康弘) 전총리 얘기를 꺼냈다.

    “옆나라 일본에 20개의 정치사단 중 가장 적은 사단장으로 도저히 총리가 될 정치기반을 못 가진 분이 인고의 노력과 불굴의 정신으로 급기야 총리가 돼 5년간 손꼽히는 업적을 이루었다. 그분이 나한테 그러더라.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뜻을 가진다면 길은 열린다고. 나도 그 말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행사장인 유성호텔 8층 연회장이 6년 전인 95년 1월15일 민자당에서 내쫓긴 JP가 자민련 창당을 선언했던 곳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날 내비친 ‘JP정권 창출론’은 JP의 최대목표치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관찰포인트였다.

    JP의 측근중진인 자민련 조부영(趙富英) 부총재는 이에 대해 “JP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려는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한 뒤 “다만 YS나 DJ는 2년 뒤면 정치생명이 다하지만 JP는 가장 오래 남을 사람”이라고만 말했다. 그는 이어 “DJP가 내막적으로 합의하고 YS가 묵시적으로 인정하는 후보를 통해 무혈을 전제로 3김 청산을 이루는 데 JP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이양희(李良熙) 원내총무는 ‘JP대권론’에 의미를 부여했다.

    “명예총재(JP)가 내색하거나 우리가 그 문제를 조직적으로 논의한 적은 아직 없다. 그러나 여권이 길만 열어준다면 이분은 정치력과 경륜이 있기 때문에 국민의 지지도는 금방 달라질 수 있다. 이 양반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높지 않은 것은 전두환(全斗煥)정권 때부터 이미지를 매도당해온 탓이 크다. 최근 JP가 두루 접촉한 여야 인사들은 하나같이 ‘합리적이고 친화력있고 경륜 있는 선배님’이라고 호평하고 있다. 만일 지금 내각제라면 총리를 누가 하고 있겠는가.”

    JP의 ‘쇼당 정치’

    의석수 때문에 당장 ‘비상(飛上)’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공동여당의 명실상부한 2인자인 JP를 얻지 못하면 누구도 대권을 얻기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적(敵)이 없는 JP의 국민통합 역할론이 부각되면 ‘JP 다시 보기’ 움직임이 급속히 확산된다는 게 이총무의 희망 섞인 관측이다. 이총무는 “다만 JP는 앞서나가거나 욕심내지 않는 스타일이며 그것은 장점이자 단점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월 JP가 오찬간담회에서 기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서쪽하늘을 벌겋게 한번 물들이고 싶다”고 의욕을 보인 이후 JP의 행보가 적극적으로 변한 점을 들며 아예 ‘JP 대권론’을 기정사실화하는 인사도 있다.

    소수이긴 하지만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극적으로 협력할 가능성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다. 여권이 이인제 최고위원이나 영남후보론 등의 난립 속에 레임덕 현상을 보이면서 방향성과 구심력을 잃을 경우 상대적으로 컬러가 비슷한 한나라당 이총재와 연대하는 것이 충청권과 보수층의 지지를 유지할 수 있는 불가피한 선택이 되리라는 게 논거로 제시되고 있다. 현재 여권의 2인자로 자리를 굳혀가는 와중에도 2월1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총재의 어깨를 주무르는가 하면 한나라당 김진재(金鎭載) 부총재와 만나 이총재와 회동을 검토하는 등 협력의 여지는 남겨두고 있다는 것이다. 고스톱판으로 치자면 ‘쇼당(스스로 점수를 낼 가능성이 없을 때 좌우의 다른 주자에게 조건을 걸어 수용 여부를 타진하는 플레이)식 정치’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재 분위기는 JP가 이총재에 대한 미련은 거의 버렸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2월27일 주한 일본 특파원들을 초청한 만찬에서 “지난해 이총재가 자민련의 교섭단체 구성을 위한 국회법 개정을 약속해놓고 딴소리와 거짓말을 했다”고 맹비난한 것도 그렇다. 여권에서는 JP가 최근에도 교섭단체 요건을 갖추기 위한 국회법 개정안에 이총재가 동의해달라는 메시지를 김진재 부총재를 통해 타진했으나 이총재가 부정적 반응을 보이자 묻어뒀던 ‘지난 일’을 끄집어내며 서운한 감정을 토로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자민련 오장섭(吳長燮) 사무총장은 “이총재가 마음을 닫고 모든 이를 적으로 돌리는 속좁은 정치를 하는 한 JP정치와 접목될 소지가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변웅전 대변인은 “JP는 누구와도 척진 이가 없는 반면 이총재는 정치권에 척지지 않은 이가 없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 밖에 JP는 여야를 통틀어 누구를 지지할지, 본인이 (대선에) 나가야 할지는 본인도 모르는 것 같다고 분석하는 자민련 인사들도 있다. 일각에서는, 성사 가능성이 낮아 보이기는 하지만, 내각제 개헌에 대한 미련도 갖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남북관계 진전으로 동서화해와 국민통합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여권 내에 마땅한 차기주자 옹립이 쉽지 않을 경우 한나라당의 비(非)이회창 성향 의원까지 망라하는 내각제 개헌, 또는 정·부통령제와 대통령중임제 개헌, 이원집정부제 개헌론 등이 다시 불거질 소지가 남아 있다는 얘기다.

    숱한 해석을 아는 듯 모르는 듯 JP는 특유의 선문답식 정치를 반복하면서 종횡무진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 당내 일각에서 “DJP공조를 실질화하기 위해 JP가 총리에 복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데 대해서도 JP는 “서두를 것 없어”라고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지고는 유유자적이다. 내년 대선을 향해 요동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의 흐름을 관망하면서 결정적인 열쇠를 움켜잡기 위해서는 당분간 ‘이대로’가 좋다는 생각 같다고 한 측근은 분석했다. 이 측근은 “80년에는 강제로 정계에서 은퇴당하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처지였다면 2001년은 JP에게 사방에 햇볕이 드는 봄이 오는 것 같다”고 요즘 JP의 심상(心象)을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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