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호

金正男의 일본내 거점 ‘마루낑 비즈니스호텔’의 비밀

  • 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yj@donga.com

    입력2005-01-11 14: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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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빠찡꼬·마약·매춘·총기거래 수익금을 둘러싼 조총련과 야쿠자, 북한의 검은 커넥션 내막. 김정남과 북한 고위층 2세들의 집결지인 도쿄 외곽 비밀스런 호텔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놀라운 이야기들!
    《 ‘신동아’는 지난 5월1일∼4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이 일본 나리타(成田)공항 출입국사무소에 구금돼 있을 때, 도쿄 현지에서 그 내막을 취재, 6월호에 보도했다. 7월호에는 미국 워싱턴에서 그와 관련된 주요 사안을 취재해 후속 기사를 내보냈다. 이후 김정남 사건은 한국민과 언론의 관심사에서 잊혀졌다.

    그러나 나리타공항에서 김정남의 지문을 채취한 일본 공안조사청은 조사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김정남의 일본 내 조직이었다. 실제로 지난 8월 말, 공안조사청은 파괴활동방지법을 근거로 재일 한국인 300여명의 신원을 뒷조사해 물의를 빚었다.

    ‘아사히신문’은 김정남이 위조여권으로 밀입국하려다 적발된 이후 공안조사청이 이 법을 근거로 각 구청에 재일한국인의 자료를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당국이 파괴활동방지법으로 수사활동을 펴기는 오옴 진리교 사건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는 김정남과 연결되는 일본 내 조직에 관한 결정적인 정보를 얻었다. 정보를 제공한 이는 A씨. 1990년 일본에 밀입국해 1999년까지 조총련과 야쿠자 조직에서 일했던 그는 야쿠자와 조총련, 북한의 검은 커넥션을 털어놓았다.

    그는 1997년과 98년 두 차례 김정남을 만났다고 증언했다. 취재 과정에서 1998년 12월 말, 김정남을 술자리에서 접대하고 하룻밤을 지샌 여인도 만날 수 있었다. A씨와 이 여인은 둘 다 “1998년 연말에 자신들이 본 젊은이가 누구인지 몰랐다가, 지난 5월 김정남이 국내외 언론에 공개된 뒤에야 알아차렸다”고 말했다. 》





    일본 도쿄 신주쿠(新宿)역에서 미나미구찌(南口)쪽으로 나와 오다큐센(小田急線)을 타고 1시간 정도 달리면 야마토(大和)역이 나온다. 야마토역사에서 나와 5분 정도만 걸어가면 6층 규모의 아담한 호텔이 나온다. 1층에 빠찡꼬가 있는 이 호텔의 이름은 마루낑(丸金) 비즈니스호텔. 옥상에 ‘金’자를 새긴 커다란 네온사인이 있어 누구라도 금방 찾을 수 있다.

    김정남이 이 호텔에 나타난 것은 1998년 12월27일 일요일이었다. 그가 나타나기 일주일 전부터 이 호텔은 은밀하지만 치밀하게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물론 김정남이 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호텔 주인인 K회장 한 사람밖에 없었다.

    1998년 12월27일 일요일

    K회장은 우선 이 호텔 1층에 있는 빠찡꼬 머신의 키를 조절했다. 빠찡꼬는 평일에는 기계 내부의 키를 풀어 손님들이 돈을 따게 한다. 빠찡꼬는 대부분 야쿠자가 관리하는데, 조직원에게 돈을 상납할 때 쓰는 방법이 바로 키를 푸는 것이다. 조직원이 방문하면, 그가 앉는 특정 기계의 키를 풀어 돈을 따게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손님이 몰리는 주말이나, 자금이 필요할 때는 무조건 키를 잠근다. 이를 ‘시메’한다고 말한다. K회장은 손님이 오기 한주일 전부터 종업원에게 무조건 ‘시메’하라고 지시했다.

    K회장은 또 호텔의 모든 카페트를 세탁하고 벽지를 새로 도배하라고 지시했다. 손님이 나타나기 사흘 전에는 아예 “이번 주말에는 빠찡꼬와 호텔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빠찡꼬는 원래 주 중에 풀어주었다가 주말에 걷어들이는 형태로 영업하기 때문에 직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김정남이 나타나기 하루전인 토요일, K회장은 개인 비서 A씨(사건을 최초로 기자에게 제보한 취재원)를 불러 “내일은 할 일이 많으니 시간을 비워놓게”라고 말했다. 일요일 아침. K회장은 일어나자마자 A씨에게 요코하마에 가자고 했다.

    요코하마는 서울의 성북동처럼 대저택이 많은 곳으로 K회장의 별장이 있고, 조총련의 안가(安家)가 많은 곳이다. 그는 평소 이 별장에서 한덕수 전 조총련 의장(2001년 사망) 등 조총련 주요 간부들과 회합을 가졌다.

    이 날 K회장은 가장 좋은 양복을 차려 입고, 머리에 기름을 발랐다. K회장의 목적지는 별장이 아니라, 이 곳에 있는 조총련의 안가였다. A씨가 K회장의 차를 몰고 안가에 도착하니, 담장 밖에 벤츠와 프레지던트 등 고급 승용차 10여대가 모여있었다. K회장은 집 안으로 들어가고 A씨는 밖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 20여명의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나왔다. 그 무리 가운데 검정색 무스탕을 입은 젊은이(김정남)가 눈에 들어왔다. 나이 많은 조총련 간부들이 그 젊은이에게 굽신거리는 모습에서, 한 눈에 그가 북한의 실력자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A씨는 그 젊은이를 전에도 한 번 본 기억이 있었다. 1년 6개월 전인 1997년 5월경, 그 때도 K회장의 차를 운전해 이곳에 왔다가 먼 발치에서 이 짧은 머리의 젊은이를 보았던 것이다. 당시에도 이 젊은이는 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있었는데, 오늘 보니 똑같은 사람이었다.

    짧은 머리의 젊은이는 대기하던 검정색 벤츠560에 올라탔다. 이 승용차를 중간에 놓고 앞뒤로 10여대의 승용차가 무리지어 움직였다. 목적지는 K회장의 마루낑 호텔.

    A씨와 K회장은 꼬리 부분에서 벤츠560을 뒤따라갔다. 마루낑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 매서운 겨울 날씨였다. 젊은이와 조총련 간부 일행 20여명은 이 호텔 2층 야키니쿠(불고기집)에서 전어회로 식사를 한 뒤, 무슨 회의가 있는지 두툼한 서류봉투를 들고 윗층으로 사라졌다.

    이날 저녁 7시 경, K회장은 마루낑 호텔 5층에 있는 VIP룸으로 A씨를 불렀다. VIP룸에는 낮에 본 무스탕을 입은 김정남과 K회장, 조총련 주오구(中央區) 김종민 회장(가명·65세 전후), 60∼70세 정도의 조총련 간부 1명,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2명(야쿠자로 추정), 일본 게이샤 4명과 K회장의 여비서 이은경(가명·당시 25세)이 술시중을 들고 있었다.

    문밖에는 낮에 본 김정남의 경호원 2명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술상 위에는 코냑 ‘헤네시’와 전어회, 카라케(통닭튀김)가 깔끔하게 차려져 있었다. 김정남은 전어회를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낮에도 전어회를 먹었는데, 저녁 술상에도 전어회가 올라와 있었다. 이은경(가명·28)은 술을 잘 못하는데, 몇 잔을 마셨는지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A씨가 들어서자 K회장은 “통일 일꾼이고 마루낑의 인재입니다”라고 일행에게 소개했다. A씨는 술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돌아가며 인사를 했다. 김정남은 “제가 누구인 줄 잘 모르겠지요. 곧 알게 될 겁니다. 조국통일 빨리 돼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는 차례가 왔다. 김정남은 일본 가수 나가부찌 찌요시의 노래만 서너곡을 불렀는데, 일본 억양이 아주 좋았다.

    술이 약한 A씨는 10∼11시 사이에 숙소로 내려왔다. 다음날 아침 그는 이은경을 만나, 이후 상황을 물었다. 이은경은 “새벽 2시 넘어까지 마셨다. 그 일본 아가씨들은 영감들하고 잤다”고 말했다. 이은경은 웃으면서 “나는 그 젊은 친구하고 갈 때까지 갔다”며, 김정남의 신체 특성을 떠올렸다.(자세한 내용은 이 기사 뒤 이은경 인터뷰 참조) 짐작이 간 A씨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일본 도쿄 근교 야마토(大和)시 마루낑 비즈니스호텔에서 조총련과 야쿠자 조직의 하부 일을 하다가 1997년 5월과 1998년 12월 김정남을 두 번 만난 A씨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 것이다. 그는 당시 상황을 노트에 빼곡이 기록해 놓았으며 자연히 세밀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 5월 일본 수사 당국은 김정남이 ‘팡시옹’이라는 중국인 이름으로 2000년 10월과 12월, 두차례 일본에 밀입국했다고 발표했다. A씨의 증언대로라면 김정남은 그 이전에도 일본을 제집 드나들 듯 누빈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김정남이 아니라, 조총련과 야쿠자의 검은 커넥션과 이들이 저지르는 범죄, 또 여기서 생기는 수익이 북한으로 송금되는 구조다. 김정남은 오히려 이 연결 구조에서 잠깐 등장한 인물일 수도 있다.

    여기서 마루낑 호텔의 K회장은 김정남과 조총련, 야쿠자의 검은 커넥션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인물이다. 조총련 소속인 그는 야쿠자와 직접 관계를 맺은 조직원이기도 하다.

    그는 1924년 제주 성산포에서 출생해 1999년 10월에 사망했다. 자세한 학력은 알 수 없으나 해방 전후 일본으로 밀항 탄광과 철공소에서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60년대 후반 도쿄 나까노역 근처에 야끼니꾸(불고기집)인 ‘아리랑’을 개업하고 재산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개업 3년 만에 5층 건물을 소유하게 된 그는 1970년대 후반에, 요꼬하마 근교 가와사끼市 요쯔야 부근에 400여평 규모의 불고기집 ‘압록강’을 개업했다. 현재는 K회장의 본처인 이아무개씨가 ‘압록강’과, 이 식당이 들어 있는 7층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K회장은 또 1990년 경 문제의 마루낑 비즈니스호텔을 개업했다.

    K회장은 이 호텔에 살면서 1층에 있는 빠찡꼬와 2층 불고기집, 단란주점과 호텔을 직접 운영했다.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는 가와사끼시의 불고기집 ‘압록강’ 부근에 개인 임대아파트 5∼6개 동을 소유하면서 건축 및 부동산 임대업으로 사업을 더욱 확장했다.

    K회장은 처 이아무개(73세)와의 사이에 3남 2녀를 두었다. 이중 큰아들인 김일남(가명·51세)은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2000년 현재 김일성종합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둘째아들 김이남(가명·48세)도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시멘트공장 공장장을 거쳐 2000년 현재 김일성 종합대학 교수로 재직중인데 전공과목은 명확치 않다.

    셋째 아들 김삼남(가명·44세)은 도쿄 근교 야마또(大和)시에 살고 있는데, 조총련계 대학인 조선대학교를 졸업했다. 김삼남은 2년 정도 초급학교 교직에 있다가 현재는 마루낑 호텔과 빠찡꼬, 불고기집 ‘압록강’을 모친과 함께 경영하고 있다. 그는 또 부친인 K회장과 함께 1년에 한 번 정도 북한을 오갔다. K회장은 생전에 한 해 평균 다섯 번 정도 북한을 방문했다. 김삼남의 처 최숙자(가명·42세)는 전 조총련 요꼬하마 지부장 최길수(가명)의 딸로 마루낑 호텔의 전반적인 자금을 관리했다.

    K회장은 처 이아무개씨 이외에 다른 여자에게서 얻은 아들도 있다. 야마또시에 사는 김사남(가명·37세)으로 약간의 정신 이상 증세가 있으며, 정신병원에서 요양 치료를 받기도 했다.

    K회장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그대로 흉내내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철거되고 없지만, 그가 사망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 호텔 2층에는 1000만엔을 들여서 만든 K회장의 동상(높이 2m)이 있었다. 또 3층 호텔 프런트 바로 옆에는 가로 5m, 세로 3m 크기로 김일성 김정일 부자와 자신이 함께있는 사진을 걸어놓았다. 이 사진도 현재는 교체되고 없다. 야마또시와 도쿄 근교에 부동산과 여러 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그는 생전에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조국통일되면 서울에 내 호텔을 짓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K회장은 사망한 한덕수 전조총련의장과 밀접한 관계였다. 한덕수 의장은 1990년 마루낑 호텔 준공식에 참여하고, 매년 북한에 갈 때마다 반드시 K회장을 대동했다. K회장은 K회장대로 한덕수 의장의 조총련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범민련 해외본부 회원이기도 한 그는 북측이 매년 8·15 축전 때 판문점에서 시위를 벌일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또 1989년 평양에서 열린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당시에도 이 대회에 참석했으며 임수경씨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는 주체사상을 맹렬히 신봉해 북한 당국으로부터 영웅 칭호를 받았다.

    K회장은 거만불손하여 조총련 내부에서 평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로 재직하는 두 아들의 영향력과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조총련 간부 직함을 여러개 가지고 있었다. 금강산 가극단(일본 조선대학교 학생과 조총련 조직원으로 구성되며, 매년 한 번 조총련 각 지부 순회공연을 한다)의 각 지부 공연 후원회장 및 추진위원장, 조총련 상공회의소 야마또(大和) 지부 위원장, 조총련 상공회의소 감사 등을 역임했다. 범민련 해외본부 위원 직함도 갖고 있던 K회장은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생일과 9·9절 행사 및 북한의 주요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마루낑 호텔과 북한 고위층 2세들

    이처럼 조총련 간부로 위세등등했던 K회장은 사생활과 관련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많다.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저녁에 뱀장어를 먹어, ‘우나기(일본말로 뱀장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뱀장어를 먹는 이유는 다름 아닌 정력보강 때문. 그만큼 정력이 절륜했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 내 한국여성들이 대부분 불법 체류자라는 사실을 교묘히 이용했다고 한다. 호텔 사장 비서직(실제로는 가정부 역할)이라는 이름으로, 채용기준을 25~30세로 한정했다. 또 가급적 미혼이어야 하고, 기혼자일 경우 일본 현지에 남편이 없어야 할 것을 못박았다. 또 피부 색깔이 부드러워야 한다는 것 등을 내세웠다. 이런 식으로 여성을 채용해 주변에 ‘근무’시켰다는 것이다.

    이혼녀 최00씨(32세 부산 출신, 전 조흥은행 직원)는 1997년에 일본에 와서 신주쿠 근처 신오꾸보 식당에서 일하던 중 1998년 신주쿠 근교 다까다노바바의 한인 순복음교회 유학생 선교센터의 소개로 마루낑 호텔 프런트에 취직했다. 그녀는 키가 크고 미인이며, 일본어에 능통하다는 이유로 K회장의 개인 비서가 됐다. K회장 은 금전 제공, 해고 협박 등 갖은 방법으로 잠자리를 요구했다. 참다 못한 최씨가 강력히 항의하자, 바로 이튿날 최씨를 가와사키시에 있는 자신의 식당 ‘압록강’에서 식당일을 하게 만들었다.

    K회장은 김정남과 하룻밤을 지샌 한국 여인 이은경(가명)과도 깊은 관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 K회장은 하꼬네 온천 부근에 있는 개인 임대 아파트 중 일부를 이씨에게 증여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K회장이 경영한 마루낑 호텔은 만경봉호를 타고 일본 니가타항으로 입국한 북한 고위층 2세들이 집결하는 거점이었다. 이들은 일단 니가타항에 내리면 니가타 다이이치(第一)호텔에서 간단한 교육을 받는다. 그런 다음 도쿄 근교의 마루낑호텔로 와서 묵고 일본 곳곳으로 흩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1998년 9월 중순, 북송 재일교포(조총련 간부 및 조직원)와 일본에 연고 및 가족관계가 있는 북한 최고위층 2세(친지 방문 조건의 3개월 체류 비자였지만, 이들의 실제 목적은 외화벌이다. 북한에서는 최고위층 가족이 아니면 해외여행 불가능)그룹 300여명이 아침 10시에 니가타 다이이치(第一)호텔에서 교육을 받은 후, 각 지역으로 흩어졌다.

    이 때 K회장의 손자 김국성(가명)을 포함한 최영렬(27세 전후, 평양시 거주, 노동당 간부의 자제라고 함), 임기복(27세 전후, 평양시 거주, 북한군부 대령급 자제라고 함), 조철(30세 전후, 평양시 거주, 부친은 노동당 고위 간부, 큰아버지가 북한 군부 실세라고 함) 등은 일행 20여명과 함께 신간센으로 도쿄에 도착해서 마루낑 호텔에 숙박했다. 그 뒤 친구 사이인 김국성과 임기복은 마루낑 호텔에 남고 조철 등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김국성과 임기복은 그 뒤 호텔 종업원숙소에서 생활했다.

    이렇게 들어온 300여명은 일본 출국 하루 전인 1999년 1월10일경 니가타항에 다시 모였다. 이들은 다시 총련교포와 최고위층 2세 그룹으로 나뉘어 교육을 받았다. K회장의 손자 김국성을 포함한 일부는 다이이찌(제일)호텔에, 일부는 다른 호텔에 분산해서 집합했다. 일정 시간의 교육이 끝난 뒤, 단체로 승선해 북한 원산항으로 되돌아갔다. 호텔과 집합 장소에서는 개인 행동이 절대 허용되지 않았다.

    K회장은 일본 폭력조직 야쿠자와 연결된 인물이었다. 일본 야쿠자의 양대산맥은 야마구찌구미(山口會)와 스미요시구미(住吉會)인데, K회장이 관계된 조직은 스미요시구미였다. 조직원이 가장 많은 야마구찌구미(山口會)는 오사까 및 야마구찌현(오까야마, 히로시마 부근)에서 일어섰고, 조직원은 대략 3만명에서 3만5000명으로 추산된다.

    야마구찌구미는 일본 전국에 80여개 지방 계열조직과 조(組) 단위로 편성되어 있다. 이 조직은 한달에 한 번 꼴로 도쿄 신주쿠의 가부키조와 오사카, 고베 등지에서 조장급 이상 간부들이 회동하고 있다.

    조총련과 직접 관련된 스미요시구미는 도쿄 신주쿠에서 탄생했다. 조직원수는 대략 1만6000∼1만7000명으로 파악된다. 이 조직은 야마구찌 계열에서 탈퇴한 조직원과 지방의 소규모 야쿠자 조직(마스바까이, 이나가와, 마쓰이, 마쓰모도 등)을 통합하며 성장했다.

    회장인 스미요시(65세 전후) 휘하에 하야시(58세 전후), 마쓰이(60세 전후), 마쓰모도(60세 전후)등 조장급 간부로 구성되어 있다. 스미요시구미는 도쿄의 신주쿠 가부키조, 우에노, 요코하마, 이다바시, 아사쿠사 등 도쿄 지역 3분의 1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신주쿠 가부키조의 경우 한국인 관련 술집의 80% 이상은 스미요시구미 세력 아래 있다.

    이들은 한국인 등 외국인 술집접대부를 상대로 여권을 담보로 하는 사채업, ‘반스(선불)’를 조건으로 하는 매춘업을 한다. 또 술집에 술을 공급하고 외국인 접대부(쇼걸)를 거느리며 매춘업(일명 쇼 프란도)을 하기도 한다. 이 스미요시구미는 재일교포 2세, 3세를 비롯해서 한국의 폭력조직(부산 칠성파, 전주 월드컵파, 부산 21세기파) 등이 하부 조직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스미요시구미는 각 지역에 계열사격인 지회를 갖고 있다. 스미요시구미의 지회 가운데 선두 주자는 도쿄 이다바시 지역을 무대로 하야시(58세)가 이끄는 하야시조(林組)로, 사채업 및 부동산 임대업 등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있다. 특히 골프장 건설과 관련한 이권과 마약거래, 주류 공급, 접대부 공급 등으로 마련한 탄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1990년대 이후 신흥세력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하야시조는 조직원의 80% 정도가 조선인으로 상당수가 조총련 조직의 간부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다.

    하야시조의 중간 보스급으로 하세가와(40세 전후, 한국 이름은 드러나지 않았음)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조총련 소속의 재일교포 2세로 K회장의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그는 김정남이 1997년과 1998년 K회장 주위에 나타났을 때도 김정남을 바로 곁에서 따랐다.

    하야시조는 특히 스미요시 계열조직의 마약 거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 스미요시구미는 1990년대 후반 들어서는 필리핀 등 동남아를 무대로 총기류 밀수입 등 무기거래도 하고 있다.

    일본은 5월 초에‘오봉기간’이라고 부르는 일주일간의 휴가 시즌이 있다. 이 때 하야시 조직의 중간보스급 간부들은 단합을 꾀한다는 명분 아래 태국과 필리핀 등지로 여행을 간다. 이 휴가 기간 동안 조직원들은 하야시 회장의 지침 아래 필리핀 마닐라 근교의 총기 밀매업자들과 회동한다.

    또 태국 등지에서 마약거래업자들과 거래를 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A씨는 “1998년 8월20일경 하세가와와 애인 민경숙이 필리핀 여행을 다녀온 뒤, 하세가와의 사무실에서 필리핀에서 구입한 것으로 보이는 38구경 소형권총과 실탄(탄창 포함)을 조직원에게 전달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이 하야시조가 마약을 들여와 판매하는 곳은 가나가와현의 요코스카항이다. 도쿄에서 직통 전철로 약 1시간30분 거리인 이곳에는 미군 기지가 있다. 미군을 상대로 하는 매매춘 업소가 즐비한 이 항구는 야쿠자 조직원들의 마약 거래가 흔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이곳은 하야시 조직원들의 한국인 애인(대부분 술집 접대부)들이 많고, 필리핀 등 동남아 여성들이 미군을 상대로 매춘과 마약 거래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주말에는 하야시 조직의 하세가와를 비롯한 간부급 조직원들이 나고야 근교에 있는 하야시의 별장에서 보낸 뒤, 월요일이나 화요일쯤에 요코스까항을 방문한다. 그 과정에 마약 거래가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K회장의 손자 김국성도 이 요코스카항을 자주 방문했다.

    스미요시구미의 하야시조는 도쿄에서 일하는 한국인 술집 접대부를 상대로 고리대금업과 인신매매 같은 악질 범죄도 저지르고 있다. 앞서 언급한 조총련 조직원 하세가와는 애인 민경숙(38세, 가명)이 운영하는 ‘민 기획’을 통해 한국인 술집 여성 접대부의 여권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사채업을 하고 있다. 이 사채업의 돈줄은 하야시조의 자금. 그 수법이 악질인데, 가령 100만엔을 빌려줄 경우, 한달 선이자 20만엔을 공제한 뒤 80만엔을 주는 식이다. 이들은 도쿄 신주쿠 가부키조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신주쿠 아께보노바시역 부근에 있는 데니즈 레스토랑이 민경숙의 거점이다.

    하세가와와 민경숙은 매우 잔혹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가령 한국인 술집 접대부들이 약속한 날짜에 돈을 갚지 못할 경우 ‘선불’ 조건을 내세워 타지역의 매춘업소로 팔아넘긴다. 이마저 여의치 않을 경우 한국내 가족으로부터 대신 돈을 받아낸다.

    이런 일은 하야시 조직 내에 따로 구성된 ‘진상 처리반’이 도맡으며, 한국인 여성 접대부들을 폭행하고 야쿠자 사무실에 감금해서 성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조총련 조직원 하세가와와 민경숙이 있고, 배후에는 K회장과 친분관계가 두터운 하야시조장이 있다.

    하야시조는 위조여권도 취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담당하는 사람은 조총련 주오구(中央區) 임형수(가명) 회장이다. 그는 마루낑 호텔의 홍보 팜플렛과 빠찡꼬 선전 광고 홍보물을 제작하는 인쇄업 전문가다. 위조여권이 유통되는 경로는 이렇다. 하세가와의 애인 민경숙이 의뢰인으로부터 사진과 대금의 일부(거래 금액의 50%, 1건당 금액은 대략 150만엔)를 받고 서류를 하세가와에게 넘기면 하세가와는 K회장 혹은 K회장의 아들 김삼남을 통해 곧바로 임형수 회장에게 서류를 전달한다.

    하야시 조직이 취급하는 마약과 위조여권(위조지폐 포함), 사채업, 빠찡꼬 등의 수익금은 K회장과 하세가와가 돈세탁 과정을 거쳐 북한으로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어떤 형태로든 그 자금 중 일부는 김정남에게도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위조여권을 만드는 임형수의 배후에는 K회장이 있고, 하세가와의 배후에는 하야시조장이 있기 때문이다.

    야쿠자 부분은 제외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사망한 K회장이 자신의 개인 소득중 상당 부분을 북한으로 보냈다는 사실이다. 그는 사망하기 직전까지 빠찡코, 호텔, 불고기집 두 곳, 단란주점, 부동산 임대업 등에서 종업원 급여를 공제하고도 대략 매달 2억엔(22억원 선) 정도를 벌어들였다.

    K회장은 이 자금을 ‘조은신용금고’와 요꼬하마은행 야마토 지점, 스미모토은행 야마토 지점을 통해 관리했다. 1998년 12월 말, 김정남이 방문했을 당시, 그는 4억엔을 요꼬하마은행과 조은신용금고에서 인출했다.

    물론 이 자금이 김정남에게 모두 전해졌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는 매년 분기별로(1년에 3회 정도) 3억엔에서 4억엔 정도를 북한으로 송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은 K회장의 셋째 아들인 김삼남이 A씨에게 전한 내용으로, 자금의 지출 내역 서류는 김삼남의 처 최숙자(가명)가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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