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어의 사례는 김태호 총리후보 낙마와 매우 닮았다. 김태호 후보는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과의 관련성에 대해 검찰조사 결과 아무 문제가 없어 검찰이 내사 종결했다는 간단한 답변만 되풀이했고, 각종 의혹을 덮기 위해 앞뒤가 안 맞는 거짓말로 일관했다. 경남도지사를 지낸 40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차기 대통령후보군에 거론되던 참신하고 깨끗한 이미지의 그는 이 여파로 그만 추락해버렸다. 도덕적 문제가 있을 경우 거짓말을 하거나 회피할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직분을 사양했어야 했다.
문제 드러나면 자진 사퇴
미국에서는 물의를 일으킨 장관후보가 스스로 사퇴하는 경우가 흔하다. 미국 의회에서 함께 일한 동료 의원 가운데 빌 리처드슨이 있다. 그는 민주당 소속이면서도 공화당원인 내게 와서 항상 농담을 건네고 인간성도 좋았다. 남미 계통 미남으로 한때 공화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았던 탁월한 정치인이다. 클린턴 정부 때 유엔대사와 에너지부 장관도 지냈다. 그 뒤 뉴멕시코 주지사로 당선됐고 민주당 안에서는 ‘뜨는 별’로 평가받으며 2008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그를 상공장관으로 지명했다. 그러나 지역구 내 기업과의 유착 의혹이 불거지면서 리처드슨은 청문회 시작 전 스스로 후보직을 사퇴했다. 자신의 스캔들이 오바마 행정부에 누가 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미국 상원 민주당 원내총무를 지낸 거물 정치인 톰 대슐도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자진 사퇴했다. 대슐은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운 선거전략가이자 가까운 친구로, 오바마는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08년 12월11일 그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내정하고 이를 상원 법사위에 제출했다. 대슐 자신이 20년간 상원의원으로 활동한 터라 쉽게 인준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뜻밖의 세금 문제가 튀어나왔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운전기사를 고용하면서 세금 신고를 전혀 안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대슐은 이를 안 뒤 벌금까지 합쳐 12만8000달러를 국세청에 납부하고 부랴부랴 무마하려 했지만 국민의 거센 비난을 인식한 뒤, 청문회를 불과 며칠 앞두고 사퇴했다. 그 역시 새로 출발하는 오바마 행정부에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사퇴 이유로 들었다. 오바마는 성명을 통해 “대슐 의원은 실수를 저질렀고 대슐 본인도 그 잘못을 인정했다. 그는 잘못을 변명하지 않았으며 나 역시 모든 것을 인정한다”며 그의 사표를 받아들였다.
한때 ‘뜨는 별’로 불리던 히스패닉계 여성 정치인 린다 차베스는 2001년 부시 대통령에 의해 노동부 장관에 지명됐다. 하지만 이후 남미 과테말라에서 온 불법 이민 여성을 가정부로 고용한 사실이 밝혀져 자진 사퇴했다. 줄리아니 뉴욕시장 재임 당시 뉴욕 경찰 커미셔너를 지낸 버나드 케릭도 2004년 부시 대통령에 의해 국토안보부 장관에 지명됐다가 불법 이민자 채용 경력이 드러난 뒤 자진 사퇴했다.
인준 요청 거부하는 의회의 힘
미국의 인사청문회는 상원 법사위원회에서 한다. 미국 의회에는 상원 하원 양 의회가 있다. 하원의원은 전부 435명, 인구 약 62만명당 한 사람을 뽑는다. 그래서 435명에 62만명을 곱하면 미국의 전체 인구 수가 나온다. 지역구가 없는 의원은 없다. 상원은 인구가 많은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욕, 일리노이 주 같은 몇 개 큰 주가 단합하면 의회를 쥐고 흔들 우려가 있어 생겨난 것이다. 크든 작든 무조건 한 주에 2명씩, 그래서 전부 100명이다. 알래스카와 델라웨어, 다코타 같은 작은 주들은 상원의원은 2명인 반면 하원의원은 1명이다. 반대로 캘리포니아같이 큰 주는 상원의원은 2명이지만 하원의원은 53명이나 된다. 하원은 지역구민을 대표하기 때문에 주민들의 호주머니 사정, 즉 예산을 먼저 심의하는 권한이 있고 상원은 인사 문제에 권한이 있다. 대통령은 단지 각료 후보자를 추천만 할 뿐, 임명은 법사위원회를 거쳐 상원에서 최종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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