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주일 만에 불법 졸속 투자”
취재 결과 이와 관련한 석연치 않은 점들이 드러났다. 이런 가운데 집권여당의 국회의원 측이 메릴린치 투자와 관련해 ‘신동아’에 “현 정권 실세 측이 개입한 외압 의혹이 있다”고 밝혔다. 1조원 대 나랏돈이 허무하게 공중에 날아간 사안이므로 메릴린치 건은 2008~2011년 국회 국정감사 때마다 단골로 다뤄졌다. 대부분 단순 투자손실로 받아들여져 언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그러나 여권 내부에서 권력형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메릴린치 관련 내용이 새롭게 규명될 필요가 있게 됐다.
‘신동아’는 메릴린치 투자 건과 관련된 방대한 분량의 4년치 국감 속기록 전부를 재검토했다. 미국에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발생해 메릴린치 부실이 널리 알려진 상황임에도 인수위 시절 메릴린치에 대한 투자 결정이 속전속결로 이뤄진 점이 잘 드러났다. 다음은 당시 상황과 투자결정 과정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20억달러라는 거액의 투자를 일주일 만에 결정하는 것은 국내외적으로 거의 전례가 없는 비정상적인 일이었다는 취지의 증언이 한국투자공사 내부에서 나오기도 했다. 2010년 10월21일 김용구 자유선진당 의원은 투자를 결정했던 구안 옹씨의 후임인 스캇 칼브 한국투자공사 투자운용본부장에게 다음과 같이 질의했다.
“제가 칼브씨에게 딱 한 가지만 문의해 보겠습니다. 세계시장에서 일주일 만에 20억달러라는 투자를 결정해서 하는 그런 예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3만원 짜리 물건 살 때도…”
이에 대해 칼브 본부장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그렇게 큰 규모의 금액을 그렇게 짧은 시간에 투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메릴린치 투자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사안이라는 주장은 여당 의원들의 입에서도 나왔다.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은 아래와 같이 말했다. (2010년 10월21일)
“당시 메릴린치 보세요. 서브프라임 모기지 때문에 부실이 엄청나게 있었고 그것은 세상 모든 사람이, 심지어 우리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어요. 심지어 그 손실 때문에 메릴린치는 자산상각이 진행되던 상황이었어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굉장히 다급합니까, 우리가 다급합니까? 그런데 일주일 만에 불법으로 투자가 이뤄지는 것 아닙니까? 한국투자공사의 행태를 보면 메릴린치 서울지부 같은 이름이 더 적당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일반 서민들은 3만원 짜리, 5만원 짜리 물건을 사도 더 싸게 살 수 있는 데가 없는지 백방으로 알아봅니다. 그런데 국민의 혈세로 만든 이 외환보유고, 2조2000억원이나 되는 큰돈과 관련된 이 문제를….”
이 의원의 주장대로 메릴린치 투자는 적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투자공사 측은 “메릴린치 투자와 관련해 절차적인 문제는 없었는가”라는 ‘신동아’의 질문에 “없었다”고 답했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를 확인해본 결과, 한국투자공사는 투자공사법 26조에 의해 준법감시인을 두게 되어 있었는데 메릴린치 투자 결정 과정에서 준법감시인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당시 한국투자공사 사장이 비밀에 부치는 바람에 준법감시인이 투자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 때문에 한국투자공사가 메릴린치 투자건을 상급부처인 기획재정부에 보고할 때 준법감시인의 서명도 없는 보고서를 냈다는 것이다.
감사원 감사는 또 메릴린치 측과 계약을 할 때 자산 배분이나 절차 기준을 전혀 설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국투자공사 측은 ‘신동아’에 “감사원이 지적한 부분을 모두 수용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