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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정치참여 100일 비화

평화재단 관련된 ‘6인 회의’가 큰 그림 그려주다 와해

  • 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안철수 정치참여 100일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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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울시장 출마 오락가락 뒤 균열
  • ● “안철수에게 결정적 약점 있다”
  • ● 안철수 측 “윤여준은 기억할 것만 기억” 비판
  • ● 영웅적 이미지와 다른 모습 비쳐
안철수 정치참여 100일 비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은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판에 전격 등장해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의 ‘타이밍의 정치’는 여야를 뒤흔들고 있다. 한나라당이 ‘재창당을 뛰어넘는 변화’(박근혜 전 대표와 쇄신파의 12월14일 합의 내용)에 나설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도 결국 안철수였다.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진영도 ‘안철수 효과’의 여파로 야권통합을 서둘렀다.

안 원장은 9월2일 서울시장 보선 출마를 언급한 이후 100여 일 동안 적절한 시점에 절묘한 선택을 해왔다. 미리 타임스케줄을 짜놓고 이행해온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프로정치인의 동물적 감각을 가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여론의 흐름을 타는 정치’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나를 검증하지 말라

‘청춘콘서트’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출마 얘기를 했을 때가 첫 번째다. 당시 한나라당 후보에 대응할 범야권 후보가 누가 될지 관심이 쏠릴 때였다. 안 원장은 청춘콘서트라는 전혀 새로운 마당을 통해 출마 가능성을 열어 국민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2040세대’를 중심으로 인기가 치솟고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기 시작하자마자(9월6일) 박원순 변호사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전격 양보했다. 나경원 후보가 약진하자 안 원장은 선거를 이틀 남겨두고 박원순 후보 선거대책본부를 찾아 서울시민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A4 용지 2쪽 분량에 자필로 쓴 편지였다. 선거를 몇 차례 치러본 사람처럼 노회하기 이를 데 없는 행보였다.

두 번째는 재산 사회 환원 발표다.(11월14일) 그는 안철수연구소 임직원들에게 e메일을 보내는 형식으로 자신이 보유한 연구소 주식 지분 37.1%의 절반(1500억원 상당)을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 날에는 언론에 “그간 말해온 사회적 공헌을 행동에 옮긴 것뿐”이라고 짧게 말했다. 기부 발표를 계기로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안철수는 박근혜를 여유 있게 따돌리기 시작했다. 당시 안 원장의 정치참여 이후 안철수연구소 주가가 치솟는 것을 두고 비판적인 여론이 나오고 있었다. 기부 발표는 이러한 여론을 잠재우는 효과를 냈다.



세 번째는 신당 창당과 서울 강남 총선 출마설 부인(否認) 발표다. (12월1일) 이날 경기도 분당 안철수연구소 지하 1층 강당에선 연구소 측이 마련한 ‘사회공헌활동 계획’ 발표회가 열렸다. 김홍선 대표가 설명했지만 100여 명에 달하는 기자들은 강당 입구 쪽만 바라봤다. 안 원장이 격려차 발표회장을 방문한다고 연구소 측이 미리 언론사에 알렸기 때문이다. 안 원장이 도착해 마이크를 잡고 설명을 마쳤다. 기자들이 던진 첫 번째 질문은 “기부가 정치적 행보라는 시각이 있는데…”였다.

안 원장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학교 일과 (기부) 재단을 설립하는 일만 해도 바쁘다. 다른 일에 한눈을 팔 여력이 없다. 신당 창당이라든지 강남 출마설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전혀 생각도 없고 조금도 그럴 가능성이 없다. 정치 관련 질문은 그 정도 답으로 확실하게 말씀드린 것 같다.”

그 정도 답으로 확실해진 건 하나도 없다. 그는 대선 출마를 여전히 열어두고 있었다. 동시에 앞으로 상당 기간 자기를 검증하지도 말고 건드리지도 말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었다. 정치 9단의 솜씨였다. 그러나 기자들의 추가 질문을 막는 데에선 오만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안 원장은 박근혜 전 대표와의 맞대결 구도에서 계속 앞서나가고 있었다. 그가 신당 창당과 총선 출마설을 부인하자 정가에선 “총선을 건너뛰고 대선에 직행하려는 모양”이라는 해석이 우세했다.

언론 플레이의 귀재

안 원장의 행보는 박근혜 전 대표를 링에 빨리 올린 측면도 있다. 안 원장의 출현 이전인 2011년 8월까지만 해도 박 전 대표는 2012년 초에나 대외활동에 나선다는 대권플랜을 짜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젠 일정을 훨씬 앞당겨 전면에 등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박 전 대표는 날아오는 화살을 맞을 수도 있고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반면 안 원장은 느긋하게 관망하는 자세다. 대권 행보를 차분히 지켜보면서 맞춤형 대응전략을 짤 수 있다.

안 원장은 보름 정도의 터울로 큰 발표를 한다. 언론 플레이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가 대표로 있던 시절 안철수연구소는 관련업계에서 언론 플레이의 귀재로 통하기도 했다.

안 원장의 현란한 대권 행보와 관련해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그의 사적 모임인 ‘6인 회의’를 취재해봤다. 안 원장은 2011년 6월29일 시작한 ‘청춘콘서트’를 계기로 정치참여 결심을 굳혔다는 게 정설이다. 이때부터 안 원장은 생각을 같이 하는 사회 각계 인사들과 모임을 갖고 다양한 토론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6인 회의가 여러 차례 열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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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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