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서울대 교수(왼쪽)와 박원순 서울시장.
그랬던 우리 정치가 요즘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다. 위기에 처한 정당들은 통합이란 명분으로 이합집산을 시도하고 있고, 개혁과 혁신을 명분으로 분열과 대립이 확산되면서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그 어느 때보다 급격하게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한국의 정치지형은 전광석화처럼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어제까지 멀쩡했던 정당이 갑자기 사라지는가 하면, 서로 가는 길이 달랐던 2~3개 정치세력이 통합의 깃발을 올리고, 여러 정치인이 속해있던 당을 스스로 박차고 나가고 있다. 그야말로 정치 빅뱅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 정치를 양분해왔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제 간판을 내려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 불고 있는 정당들의 이합집산과 혁신의 바람은 야권에서 먼저 시작됐다. 가장 먼저 통합을 완성한 곳은 민노당과 국민참여당, 진보신당이다. 이번 통합으로 인해 ‘진보는 분열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졌고 유권자에게 내세울 만한 스타급 정치인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조직과 명분과 인물을 얻은 나름대로 성공한 통합으로 평가된다.
다음으로 진행되는 쪽은 민주당과 친노계열의 ‘혁신과 통합’, 한국노총 등이 참여한 통합야당이다. 민주당이 통합을 결의하는 전당대회에서 의결정족수 문제로 갈등이 일었지만 이미 분위기는 통합으로 기울고 있다. 통합야당의 당대표를 누가 맡을 것인지가 주요 관전 포인트다. 당내 투쟁에 능한 정치인이 아닌, 당내 이견을 조율, 통합하며 국민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대표의 선출이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다. 통합야당이 어떤 식으로 후보를 뽑느냐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상향식 경선 절차는 당내 기득권이나 세력을 갖고 있는 인물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따라서 절차 만능주의로 간다면 공천 결과가 ‘그때 그 인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통합야당의 의미는 상당히 퇴색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현재 혁신과 재창당의 기로에 서 있다. 앞으로 친이와 친박의 통합, 당내 보수와 진보 세력의 통합문제가 관건이다. 결론을 먼저 말한다면 보수 한나라당은 단일 대오를 갖출 확률보다는 2개로 분열할 가능성이 더 높다. 우선 그간의 악연 때문에 친이와 친박은 한 배를 타기 어려운 지경이다. 겉으로는 이명박을 따르느냐, 박근혜를 따르느냐로 보이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보면 계파 이상의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친이가 신자유주의로 정통 뉴라이트라면, 맞춤형 복지를 내세우는 친박은 일단 신자유주의와는 선을 그은 상태다.
나아가 두 진영에 속해 있는 정치인들은 정치 역정에서 서로 수용하기 힘든 악연들을 갖고 있다. 친이 정치인들은 대부분 6·3세대와 그 영향권에 있는 정치인들로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과 악연을 갖고 있다. 이들은 반독재투쟁을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으로 삼고 있어 박정희, 전두환과 완전히 화해하기 어렵다. ‘독재자의 딸 박근혜’를 수용한다는 건 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는 사생결단 대결을 벌였던 경험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의 권력 중심추가 친박으로 넘어가면 친박의 친이 포용 여부를 떠나 친이의 친박에 대한 정서적 거리감과 정치적 불이익에 대한 공포는 생각 이상이 될 것이다. 따라서 친이는 생존을 위해 쇄신이란 명분에 집착하면서 새로운 정치적 생존을 끝없이 모색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종말
친박과 함께하기 어려운 일부 친이계가 중도보수를 표방하는 박세일 신당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박세일 전 의원이 만들 신당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한길리서치가 11월18~19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박세일 신당이 만들어지면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에 지지의사를 보낸 사람은 13.4%였다. 반드시 지지하겠다는 응답은 3.2%에 불과하다. 성공가능성은 회의적이다. 그나마 나오는 지지율도 실제 투표과정에서 표로 연결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는 모두 신자유주의를 신봉했다. 굳이 차이를 말한다면 좌·우파 신자유주의였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좌든 우든 이들 신자유주의 정부는 모두 사회양극화라는 비극을 양산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민과 중하층, 사회적 약자인 하위 계층은 여전히 이들 신자유주의자에게 기대를 걸었고 현재도 그 기대를 완전히 접은 것 같지는 않다.
우리 사회의 각 세대는 그동안 나름대로의 신화를 만들어왔다. 그 결과 세대 역할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 자기 세대 중심으로 사회를 이끌려는 경향이 강하다. 50대 중반 이후의 산업화 세대가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40대와 50대 초반, 30대와 20대가 주도한 IT, BT, CT산업은 이미 전 세계에 한류문화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할 정도로 성과를 내고 있다.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패러다임이다.
사회의 주축세력으로 새롭게 성장한 지금의 40대 이하 세대는 그들 세대가 이룬 눈부신 성취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안정이나 보상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받는 사회구조 속에서 살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 경제를 떠받들어온 대기업의 자본력 등 규모의 경쟁력에 밀려 이들이 주도한 산업은 서서히 대기업의 하청공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기성세대가 오랫동안 해온 투기적 재산 증식의 결과로 턱없이 높아진 주택가격 때문에 벌어도벌어도 하우스 푸어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항상 “이만큼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우리(윗세대)가 무에서 유를 창출한 희생 때문이다”라는 50대 이상 윗세대들의 고압적인 얘기를 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노동시장 진입조차 하기 어렵게 된, 그래서 결혼과 출산 같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마저 위협받는 20~30대에게 이런 소리가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이런 과정 속에서 서서히 세대별 정치지형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