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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 천안함 미스터리

“wishful thinking에 젖은 정보 실패가 천안함 폭침 불렀다”

천안함 폭침사건의 불편한 진실

  • 이정훈 기자│hoon@donga.com

“wishful thinking에 젖은 정보 실패가 천안함 폭침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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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틀 뒤인 1월 15일, 북한 국방위원회는 문화일보가 북한 급변사태 대책인 ‘부흥’을 보도한 것을 문제 삼아 “남조선 본거지 날려버리기 위한 보복성전을 개시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우리 군 지휘부는 ‘북한군 이상 징후가 포착되지 않았다’며 경계태세 강화를 지시하지 않았다. 북한군의 위협은 현실화됐다. 1월 27일부터 30일 사이 나흘간 인민군 4군단 포병여단이 한 달 전에 해상사격구역과 통항금지구역으로 설정했다고 발표한 바다를 향해 300~400발의 포탄을 쏜 것이다.

북한은 두 구역을 NLL 너머로까지 설정했는데, 일부 포탄은 NLL을 넘어온 것으로 판단됐다. 중대 도발을 한 것이다. 그러나 합참의 대응은 미적지근했다. 북한군 사격이 끝나고서 한참 뒤 해병대로 하여금 사거리가 아주 짧은 대공(對空) 벌컨포를 잠시 쏘게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특별한 도발 징후가 없었다’며 역시 경계강화를 지시하지 않았다.

1월 28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영국 BBC 회견에서 “나는 김정일을 만날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고 말했다. 언론은 2009년 10월 중순 싱가포르에서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비밀리에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대청해전 직전과 직후 우리 통일부와 북한 통전부 대표가 개성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회담을 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연어급을 ‘건조의장 중’ 판단

얼음이 녹는 2월 초순이 되자 북한 해군이 운용하는 비파곶의 잠수함들이 미식별됐다는 정보가 올라왔다. 그때마다 정보부대는 ‘비파곶에서 사라진 북한 잠수함이 우리 함정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한 정보를 보냈다. 2함대는 대잠경계태세를 강화했다. 그러다 식별됐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평시로 환원하는 작전을 반복했다.



그러나 정찰총국이 관리하는 남포항의 작은 잠수정이 사라지면 정보부대는 ‘미식별’ 정보만 보낸다. 정보부대는 이 잠수정들은 정찰총국이 공작원을 침투시키는 데만 사용한다고 봤기에 ‘우리 함정을 공격할 수 있다’는 판단은 덧붙이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남포항의 잠수정이 미식별됐다는 정보가 올라와도 2함대는 대잠경계태세를 강화하지 않았다.

남포항의 잠수정 3척 가운데 가장 많이 움직인 것은 연어급이다. 문어급과 P-4급은 거의 활동하지 않았다. 연어급은 2월 8일 나온 정보부대 보고에 ‘건조의장 중’이라고 처음 거명됐다. 정보부대는 연어급이 동해와 서해에 각 한 척씩 등장했다고 했다. 건조의장 중은 새로 건조해놓고 칠을 하거나 내부 장비를 탑재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날 북한은 두 번째로 성전(聖戰)을 발표했다(표 참조).

2월 8일부터 천안함 사건 사이 연어급은 3~4번 미식별됐는데, 그에 대해 정보부대는 시운전한 것으로 판단했다. 작전 배치를 하지 않은 잠수정도 장비점검을 위해 시운전할 수가 있다(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천안함 사건 후 정보부대는 북한의 잠수함정이 미식별되면 항상 그 사실을 통보해왔다고 주장해, 책임을 피해갔다. 그러나 정보부대는 연어급에 대해서는 미식별 정보만 주고 아군 함정을 공격할 수 있다는 판단은 전혀 해주지 않은 것이다).

합참은 정보부대와 다른 판단을 할 수도 있지만, 같은 판단을 이어갔다. 합참은 천안함 사건 발생 20일 뒤인 4월 17일 발간한 북한군 전투서열 목록에 연어급 잠수정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연어급 잠수정은 여전히 작전세력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북한이 설정한 해상사격기간이 한 달 반이 나 남아 있던 2월 18일, 합참이 모든 경계태세 해제 지시를 내렸다. 2함대는 완전한 평시 작전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3월 25일 연어급 미식별

이 점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대청해전 이후 북한은 두 차례나 성전을 선언하며 위협과 도발을 반복했는데. 왜 합참은 모든 경계태세 해제를 지시했는가.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서해 충돌을 피하려고 한 것인가? 한미연합군이 키리졸브와 독수리연습을 준비하던 2월 25일, 북한군 총참모부는 ‘핵 억제력 등 강력한 대응수단으로 무자비하게 죽탕쳐버릴 것’ 이라고 발표했지만, 정보부대는 북한군이 특이 동향을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합참도 경계강화를 지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문제의 3월 23일이 다가왔다.

그날 우리 군 정보부대는 연어급이 미식별됐다고 했다가 24일에는 식별됐다는 정보를 보내왔다.여전히 우리 함정을 공격할 수 있다는 판단은 없는 단순한 보고였다. 우리로서는 ‘연어급이 시운전하는가보다’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합참에서도 경계를 강화하라는 지시가 전혀 없었다. 25일 다시 미식별됐다는 정보가 왔다. 그리고 26일 저녁 천안함이 두 동강 나 침몰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졌다. 그때 천안함장이 얼떨결에 어뢰에 피격된 것 같다고 보고했지만. 2함대는 북한 잠수함정(상어급을 지칭함)에 의한 공격 징후 정보가 전혀 없었기에 이를 믿을 수 없었다.

1977년 우리 군은 적 상륙을 막기 위해 MK-6 폭뢰 120여 발을 서해 5도 주변 수역에 깔아놓았다. 이 폭뢰는 연결된 도선으로 신호를 보내야 터진다. 그러나 서해 5도 주민들이 불안하다고 해서 도전선과 조종상자를 제거함으로써 불능화하고 10여 발만 직접 수거했다. 천안함이 큰 폭발 충격으로 침몰했다는 소식에, 일각에서는 이 폭뢰가 어떠한 이유론가 터진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공작원 침투용으로 시운전하고 있는 북한 연어급 함정이 어뢰를 쐈으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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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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