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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종횡무진 공간 읽기 ⑥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맞은 국립중앙박물관

찰나의 세계를 떠난 영속의 시공간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맞은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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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맞은 국립중앙박물관

네덜란드, 스웨덴, 인도, 페루, 호주 등 50여 명의 주한 외국 대사부부 및 가족들이 10월19일 오후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 경천사 10층 석탑 등을 살펴보고 있다.

조선시대의 용산은 이 일대를 우선 가리켰다. 1884년 10월(고종 21년) 외국인의 거주와 통상을 허용하는 개시장(開市場)으로 지정한 후 용산은 원효로를 중심으로 프랑스, 중국, 일본, 미국 등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가져온 이질적인 경제, 종교, 문화가 수렴하고 확산하는 거점이었다.

구한말 이후 용산은 대체로 서울역에서 남영역을 거쳐 노량진으로 뻗어가는 철로의 왼쪽 편을 가리키게 되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의 여단 사령부가 용산 둔지산 일대에 주둔하면서 ‘신용산(新龍山)’이란 이름을 사용했고 식민 통치 때는 아예 조선군사령부까지 설치됐다. 광복 이후에는 미8군 사령부와 우리의 육군본부 그리고 6·25 전쟁으로 인해 유엔군 사령부까지 들어서면서 용산의 절반은 오랜 세월 군사기지의 육중한 무게를 갖게 되었다.

남산의 동쪽에서 정남향으로 뻗어 내려온 산줄기가 하얏트호텔과 아르헨티나 대사관 등이 있는 야트막한 봉우리를 지나 이태원 고개에서 갈라진다. 한 갈래는 오산고등학교 쪽으로 흘러내려가 한강에 이르러 단애를 형성하고 다른 한 갈래는 반포로를 따라 이촌동 쪽으로 부드럽게 펼쳐진다. 이 서쪽 갈래가 둔지산이다. 둔지산 아랫자락의 드넓은 평지가 임진왜란 때의 일본군을 시작으로 구한말의 일본군과 청군, 그리고 광복 이후 미군과 국군의 주요 본부가 설치됐던 곳이다. 한때 일본군이 진주했던 곳이라 해서 둔지산을 ‘왜둔산’이라고 불렀으며, 왜군 병영 시설의 잔영으로서 ‘남영동(南營洞)’이라는 이름이 지금껏 남아 있다.

역사(役事)의 중앙

한 나라의 ‘중앙’ 박물관이라면 도심 한복판의 흔들림 없는 랜드마크인 경우가 많다. 자연스러운 역사의 과정에서 대체로 ‘중앙’ 박물관은 수도 한복판, 곧 지리적으로도 ‘중앙’에 자리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재개관 5주년이 되는 우리의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리적으로 수도의 한복판에서 조금 아래쪽으로 밀려 내려왔을 뿐만 아니라 이 용산 일대의 복잡한 도로와 시설과 역사로 인해 접근성이 다소 떨어진다.

승용차를 이용해 서울역 쪽에서 찾아간다고 해보자. 서울역 앞에서 삼각지를 지나 한강대교 남단에 이르는 일반국도 제1호선 한강로(1914년 3월 경성시가지 원표 위치와 도로등급 제정 때 1등 도로로 지정된 곳)는 항상 오가는 차량이 많은데다 버스중앙차로제까지 실시되고 있다. 그 복잡한 도로의 한 갈래로 요령껏 갈아타고 용산역 방면으로 우회한 다음에야 겨우 박물관으로 이르는 비좁은 도로를 만날 수 있다. 지하철 이촌역에서도 한참을 걸어야 박물관에 다다른다. 물론 박물관에 도착하면, 그곳을 지향해 수고했던 몇십분 동안의 체증이나 답답함을 한순간에 씻어낼 만큼 광활한 공간과 창대한 시설을 마주하지만, 아무튼 아직까지는 박물관에 이르는 길이 복잡하고 까다롭다.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고자 서울시는 2011년 12월 완공 목표로 지하철 4호선 이촌역과 박물관 사이에 지하보도와 무빙워크를 설치할 계획이다. 현재는 박물관까지 짧지 않은 거리를 걸어야 할 뿐만 아니라 보도의 폭이 좁고 오가는 통행량이 많아서 폭 8m, 길이 240m 규모의 지하보도와 무빙워크를 구상하게 된 것이다.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 계획이 진행되는 2009년의 가을, 용산가족공원과 전쟁기념관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 등 세 권역의 압도적 크기, 장려한 시설, 드넓은 녹지로 인해 이제는 용산이 예전의 군사시설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군사시설의 짙은 그림자만큼은 엄연하다. 가족 단위의 나들이 풍경이 완연하게 펼쳐지지만 그 사이로 조깅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미군 병사들의 완강한 어깨 또한 여전하다.

미군기지 이전이 완료되면 국립중앙박물관을 중심으로 한 이 일대는 문화 시설과 녹지 공간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총 사업비 28조원의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프로젝트’가 본격화하면 머지않아 이 일대에서 군사기지의 면모를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용산역 일대를 공항터미널, 컨벤션센터, 외국인 체류시설, 첨단 국제업무 단지로 개발할 예정이고 여기에 서울시가 추진 중인 ‘한강 르네상스’와 ‘남산 르네상스’, 그리고 중앙 정부가 소매를 걷은 ‘국가 상징거리(광화문에서 한강 노들섬 사이 7㎞ 구간)’ 조성사업이 진행되면 용산은 수백 년 동안 지속된 왜군, 청군, 일본군, 미군의 군사 전략기지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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