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 바울은 기독교를 누구나 말 걸 수 있는 보편 종교로 키워냈다.
통념을 깨뜨리는 소리 이방인의 사도
이와 같은 그리스인과 유대인의 자명하고 마땅한 세계에 사뭇 도전적인 출사표를 던진 인물이 있다. 경건한 유대인으로서 예수 추종자들을 핍박하다가 갑자기 그 운동에 투신한, 바로 사도 바울이다. 이방인의 사도! 극적인 회심 이후 스스로 사도가 된 이 예외적인 인물은 자신을 그렇게 규정하며 등장했다. ‘이방인의 사도’라는 바울의 자기 자신에 대한 천명은 이미 자기-타자, 중심-주변이라는 고대 세계의 정체성의 문법을 깨뜨리는 파격이었다. 그는 또 유대인이나 그리스인, 노예나 자유인,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은 누구나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확언했다. 어느 모로 보나 낯선 선언이었다. 그것이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던 대다수의 유대인을 혼란스럽게 했던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특정 집단을 특정한 땅과 그 땅의 신, 그 신을 예배하는 종교와 긴밀하게 결합시키는 정체성에 대한 당대의 어법에도 부합하지 않았다. 바울은 당시 유대인의 통념으로 보면 쓸모없는 존재였던 이방인들 속으로 거침없이 들어가 유대인의 고유한 유산을 그들과 공유하고, 이방인과 유대인 위에 새로운 공동체 원리를 세우고자 했다.

바울은 문명이 교차하는 대도시를 오가면서 기독교를 전파했다.
바울의 다문화적 배경과 새로운 공동체 실험이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세계가 우리 시대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이래 우리는 자본주의적 세계체제가 근대 국가들과 여러 지역을 잠식해가는 강압적이고 도도한 흐름을 목도하고 있다. 세계화와 자본주의에 편승하려는 욕망과 지역의 저항적인 문화 전략들이 충돌하고 공모하는 가운데 다양한 이민 공동체, 이주 노동자, 정치 망명객, 난민 등 각양각색의 이방인들이 공존하는 다문화, 다민족 사회가 늘어가지만 폭력과 차별, 편견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 안에서 어떻게 새로운 연대를 확립해 더욱 정의롭고 더욱 나은 공동체를 이룰 것인가? 우리 시대가 아직도 씨름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다. 바울의 행보는 유사한 상황들과 그 해법에 대한 고대 말기 버전처럼 보인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고, 때론 깊은 울림을 준다. 바울과 그의 세계를 좀 더 들여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