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소비자단체소송은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중단시킬 수 있지만 금전적 손해배상은 청구할 수 없는 불완전한 성격이다. 이 때문인지 더 이상 소송이 제기되지 않고 있다.
대다수 소비자 피해사건은 소액 다수의 피해자가 양산된다는 게 특징이다. 피해자 개인이 이렇게 소액 피해를 구제받겠다고 소송을 제기하다보면 배(손해배상금)보다 배꼽(소송비용)이 더 커지게 된다. 미국식 집단소송 제도가 도입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비록 피해액이 소액이지만 억울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찾아낸 방안이 바로 현재의 집단소송이다.
개별적으로는 국가나 대기업에 맞서 싸우는 것이 힘들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운 다수의 피해자가 십시일반하면 변호사 비용을 크게 낮추어 대등한 법적 싸움을 벌일 수 있다. 이것이 집단소송의 가장 큰 이점이자 기본적인 작동원리일 것이다.
집단소송은 국가나 대기업의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다수가 부당한 관행에 제동을 걸어서 경제 정의를 실현하는 효과를 낸다. 소송 과정에서 시민의식이 고양되는 측면도 있다. 실제로 일부 집단소송은 불합리한 관행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그러나 만사가 그렇듯이 집단소송에도 어두운 측면이 있다. 첫째 개인정보유출 사건과 같이 소비자에게 실제의 재산적 손해가 아닌 정신적 손해를 끼친 사건의 경우 법원의 위자료 인정기준이 매우 인색해 소송의 실익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GS칼텍스가 1000만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사건에서 법원은 위자료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둘째, 손해배상을 인정받더라도 원고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금액에 비해 변호사가 받는 수임료가 훨씬 커서 ‘변호사 배만 불리는 소송’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2011년 7월 법원은 SK브로드밴드가 고객 정보를 무단으로 제공했다며 2340명에게 4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원고 1인당 평균 17만원을 받게 되지만 이 중 20~30%를 변호사의 수임료로 내야 하므로 최후의 승자는 변호사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한 것이다.
집단소송에 참여하고자 할 때 우선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누군가의 부당한 행위로 인한 손해를 보상받고자 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면 1,2,3심까지 수년간 계속될 수도 있는 소송이 한없이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결과가 좋지 못한 경우 집단소송 자체에 대한 불만도 크게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억울함을 풀고 정의를 세우겠다는 생각도 있다면 집단소송은 훨씬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소송결과에 크게 영향을 받지도 않을 것이다.
집단소송의 상대방은 개개의 국민에 비해 월등한 힘을 가진 쪽이다. 이들은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거액을 들여 대형 로펌을 선임한다. 이런 상대와 맞서 싸우는 소비자 쪽 변호사에게도 무기를 충분히 공급해주고 동기를 부여해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집단소송 담당 변호사의 수임료가 마냥 아까운 것만은 아닐 수 있다.
생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
집단소송을 맡은 변호사에게도 필요한 자세가 있다. 소송에 대한 사명의식이 그것이다. 대중이 집단소송이라는 판을 벌이면 정의감에 불타는 변호사가 멋진 법정 퍼포먼스를 펼쳐 승리하는 그림을 꿈꾸어본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과거 시민운동은 ‘데모’라는 물리력으로 권위주의 정부에 대항했다. 집단소송은 권위주의의 부조리에 대항하는 좀 더 세련되고 지적인 시민운동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