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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 문명의 교차로에서 ⑬

베트남 신부는 세계화의 하녀일까, 첨병일까?

  • 정현주│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지리학 jung0072@gmail.com

베트남 신부는 세계화의 하녀일까, 첨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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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에서 이주여성은 시부모님을 봉양하고 살림과 육아에 뛰어난 ‘전천후 며느리’가 되어야 한다. 2008년 시행된 ‘다문화가족 지원법’도 다문화가족을 ‘국적을 소유한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배우자’로 규정한다. 가부장적 혈통주의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 전통적인 성 역할을 요구받는 그들에 대해, 이제는 균형 있는 윤리적, 정책적 성찰이 필요할 때다. 그들은 한국 가정의 주변인이 아닌, 한국 가정에 다문화를 전파하는 핵심이다. 결혼이민여성을 아내나 며느리로만 보는 시선을 거두고, 인간으로서, 세계화 시대 경계를 가로지르는 초국가적 행위자로서, 다양한 욕망과 변화하는 정체성을 가진 복잡한 존재로서 이해해야 한다.
베트남 신부는 세계화의 하녀일까, 첨병일까?

경제적 어려움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다문화가정 19쌍의 합동결혼식. 한 복지재단 후원으로 지난 2008년 10월 열렸다.

한국에 온 지 4년차 되는 필리핀 새댁 J씨는 경상도 가문의 종부(宗婦) 역할을 척척 해낸다. 시부모님 모시기는 기본이요, 살림이면 살림, 육아면 육아, 그야말로 전천후 며느리다. 아내, 엄마의 역할도 잘해 동네에서는 칭찬이 자자하다. 이러한 J씨에게도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으니, 바로 고향에 두고 온 병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다. 한 방송사는 J씨를 비롯해 여러 이주여성이 한국인 남편을 앞세우고 고향을 방문하는 다문화가족 감동 휴먼스토리를 보여주며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국제결혼에 대한 환상을 키우고, 매매혼(賣買婚)에 가까운 최근의 국제결혼을 감동 휴먼드라마로 포장해 결혼이민여성의 열악한 현실을 외면하게 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실제 국제결혼 부부의 이혼건수는 급격히 증가해, 2010년에는 국제결혼 부부의 약 30%가 이혼을 했다. 이는 전체 이혼율의 9.4%를 차지한다. 문제는 결혼이민여성의 이혼 사유가 주로 가정폭력과 인권침해이며, 그 사례는 이미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알려졌다.

“절대 도망가지 않는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국제결혼에 대해 위장결혼이라고 의심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도망간 신부는 불쌍한 한국 노총각들을 정서적으로 배신했을 뿐만 아니라, 국제결혼에 들어간 거액을 날리게 한 사악한 여성으로 묘사됐다. 특히 한국말과 한국 사정에 능통해 한국 사회에 정착할 수 있는 조선족 여성들이 비판의 중심에 놓였고, 그 대안으로 ‘절대 도망가지 않는다’는 베트남 신부 광고가 등장하기도 했다.

국제결혼이 많이 알려지고 다문화사회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6년은 베트남이 중국을 대체해 유교적 가부장제를 이어나갈 ‘새로운 신붓감 공급처’로 부상한 시기와 일치한다. 베트남 신부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가 등장했고, 베트남은 마치 한국 결혼중개업체들에 의해 ‘발견’된 보석이며, 어리고 순박하고 유교적 가치관까지 지닌 환상적인 신붓감을 보내주는 보물창고인 것처럼 재현되었다. 물론 한국 결혼중개업체들이 베트남 시장을 ‘개척’한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국제결혼의 선호 대상지는 한국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으로의 결혼이주가 유행하기 전 대만으로의 국제결혼은 더 큰 규모로 진행되었고, 일본으로 ‘유흥 비자’를 받아 이주노동을 떠나는 일도 다반사였다. 숱한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베트남에서 국제결혼은 유행을 넘어 글로벌 시대의 새로운 가족 만들기 전략으로 정착돼가고 있다. ‘어리고 순박한데다 유교적 가치관까지 지닌’ 그녀들은 어찌 보면 한국의 농촌총각보다 더 세계화된 능동적 주체일지도 모른다.



전쟁과 개혁·개방이라는 격동의 현대사를 지나온 베트남은 결혼 연령의 남성 인구가 부족하고, 급격한 이촌향도(離村向都)로 농촌사회의 남성노동력 공백을 겪게 되었다. 그 결과 농촌지역에서 신랑감이 부족해졌고, 농촌경제의 빈곤화가 여성에게 전가되는 상황이 나타났다. 배우자 선택의 폭이 좁아지자 여성의 조혼 경향은 더욱 확대된 반면, 개혁·개방 이후 서구적 사랑관과 연애결혼에 대한 열망이 높아져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증폭되었다. 이러한 사회 맥락 속에서 일부 여성들은 국제결혼이라는 대안을 선택하게 되는데, 그 배경에는 이런 선택을 현실화하고 부추기는 국제결혼중개업체가 있다.

매매혼이 불법인 베트남에서 결혼중개업은 음성적으로 활성화되었는데, 각 지역 구석구석을 다니며 신부를 모집하는 ‘새끼마담’과 이들을 관리하는 ‘대마담’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중개업체로부터 수수료를 받지만, 신부교육 및 AS비용(이혼 등 결혼 실패 시 대신 변상하는 비용) 명목으로 신부 가족에게 거액의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 돈은 신부 측에 빚으로 남게 돼 결혼 후 신랑 측이 처가에 지원금을 보내야 한다는 중압감을 안겨준다. 양측으로부터 이중 수수료를 취득하는 마담들은 이미 베트남 사회에서 신흥부자 계층으로 등장했고, 뒷돈을 주고 공무원을 매수하며 권력화하고 있다.

‘새끼마담’ ‘대마담’에 낸 수수료…결혼 후 중압감

이러한 불법적인 관행은 성혼 후에도 베트남 여성이 열악한 지위에 놓이거나 결혼이 파경에 이르는 원인이 된다. 이 때문에 베트남 당국은 국제결혼을 허가제로 바꾸어, 여성위원회(여성가족부에 해당)로 하여금 음성적으로 이루어지던 국제결혼을 양성화해 일괄적으로 감독하도록 했다. 하지만 마담에 의한 국제결혼 중개는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부계(父系)적 가부장제를 고수하는 한국과 달리 베트남을 비롯한 상당수 동남아 국가에서는 양면적(bilateral)인 가족체제가 정착되어 있다. 친정과 시댁이 동일한 효도의 대상이 됨은 물론, 아들뿐만 아니라 딸도 부모 봉양의 의무를 짐을 의미한다. 즉 베트남 여성들의 결혼이민은 다른 저개발국가 여성이 가족부양 의무를 떠안은 채 단순·비숙련 노동자로 이주노동을 떠나는 현상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의 가족의 생존전략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앞서 소개한 J씨와 같은 감동 휴먼스토리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다문화주의이기에 사회적 거부감 없이 미디어의 주목을 받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 다문화주의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거나 아예 다문화주의 담론에서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한국에서의 다문화주의는 어떤 다문화주의이며, 왜 결혼이민여성 수용담론으로 당연시되는 걸까?

다문화주의란 캐나다와 호주, 미국 및 유럽의 일부 국가처럼 이민자들을 끊임없이 받아들여 국민으로 삼은 나라에서 이민자를 포함한 국가 구성원들에게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이자 사회운동이며 정치철학이다. 근대 민족국가의 동질성 가정을 깨뜨리는 초국적 이주자들의 등장으로 인해 새로운 방식으로 국민 구성원을 규정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다문화주의는 인종, 국적, 연령, 성별 등으로 인해 개인의 문화적 권리가 침해받지 않도록 문화적 인정을 고취해 이를 정책을 통해 실현하고자 한다. 기존의 이주민 수용담론이었던 ‘동화주의’가 결국 이주민을 동화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인식 아래, 동화보다는 다양성의 공존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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