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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전 인권위원장 회고록

섬 같은 인권위와 북한 인권 시한폭탄

‘이카루스의 날개로 날다’ ③

  • 안경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ahnkw@snu.ac.kr

섬 같은 인권위와 북한 인권 시한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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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같은 인권위와 북한 인권 시한폭탄

2005년 고려대 학생들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명예박사 학위 수여 반대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답해야만 했다. 연말 이전에 북한 인권에 대한 인권위의 종합적인 입장을 밝히겠다고 약속했다. 인권위는 1년 전에 이미 한 상임위원을 위원장으로 해 5인의 위원으로 북한인권특별위원회를 구성해 20여 차례 회의를 거듭했지만 명확한 의견을 공표하지 못하고 있었다. 위원장에 갓 취임한 내게는 해묵은 이월부채였다. 무슨 핑계든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이 문제에 발목이 묶여서는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무조건 털고 가야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특위 위원장에게 독촉했다. 조속하게 매듭지으라고. 필요하면 내가 직접 챙기겠노라고.

내게 노골적으로 기대를 거는 언론도 있었다. 내가 취임한 직후 북한 인권에 관한 자료집이 발간됐다. 한 일간지는 이를 지목해 새 위원장의 취임과 동시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 보고서는 인권위가 적어도 1년 전부터 준비해왔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취임한 지 며칠 만에 어떻게 연구보고서를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일반에 잘못 알려진 바와는 달리 2003년 이래 인권위는 북한 인권문제에 나름대로 관심을 쏟아 국내외 각종 세미나를 개최했고 자료집과 연구보고서를 간행하고 있었다. 다만 북한 정부를 직접 겨냥하지 않았을 뿐이다.

자유로운 인권위

“도대체 이렇게 군기 빠진 국가기관이 있는 줄 몰랐다.”

다른 정부기관에서 전입한 지 얼마 안 되는 한 공무원이 인권위를 보고 한 말이다. 2006년 11월 어느 날 나의 메모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특이한 기관이다. 위계질서는 취약하다. 그게 도리어 기관의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독립의 대가는 고립이다. 최대한으로 어울려야 한다.”

내가 보기에도 인권위의 분위기는 다른 국가기관과 확연하게 달랐다. 옷차림과 서로를 부르는 호칭도 달랐다. 과장급 이상은 대체로 양복에 넥타이를 맨, 이른바 정장차림이었지만 나머지는 거의 캐주얼한 차림이었다. 때로 다소 지나치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도 있었다. 의상이 화려하게 튀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칙칙하게 초라한 사람은 적지 않았다. 검소와 질박이 도를 넘었다. 과장급 이하 직원은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를 ‘선생님’으로 불렀다. 상급자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국가기관이나 직장에서는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처럼 타이틀이 없는 일반직원을 ‘아무개 씨’로 부르지 않는다. 위원회 설립 초기에 심도 있는 논의를 한 후 선택한 호칭이라고 했다. 직급의 고하에 상관없이 개개인을 존중한다는 취지였다. 다소 인위적이지만 참신하게 느꼈다. 때로 이런 기준을 따르지 않는 ‘권위적인’ 상사를 비판하는 글이 내부통신망에 실리기도 했다. 나도 그 부류에 속했을 것이다.

인트라넷은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됐다. 나의 재임 중에도 위원회 업무나 고위직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이 가끔 올라왔다. 때로는 사실과 상식에 어긋나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이따금 생각을 달리하는 직원끼리 주고받는 언어에 저속한 표현도 있었다. 그러나 일절 문제 삼지 않았다. 이내 자정(自淨)을 통해 평온을 회복했다. 위원회 활동 초기에는 날선 비판을 제기한 기고자에게 분노한 위원장이 호통을 친 일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실제로 신원을 추적하는 조치는 따르지 않았다. 기관장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기고자의 신원을 알 수 있다. 적어도 전산 담당자는 글쓴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트라넷은 자유로운 소통의 공간이다. 그 자율의 공간에 검열이 따르는 순간 공동체의 민주적 자율성은 매장된다. 절대적인 비밀이 보장돼야 한다. 나는 이를 전산담당자의 업무수칙 제 1호로 강조했다. 재임 중에 감시를 통해 글 쓴 사람의 신원을 추적한 일이 없고, 전산담당자의 입을 통해 이름이 누설됐다는 말이 내 귀에 들어온 적도 단 한 번도 없다.

위원장 집무실에 직원들이 초임 시절 작성한 신상기록부를 비치해두고 수시로 참조했다. 무엇보다 이름과 얼굴을 짝지어 외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서식의 세부항목을 채우지 않은 기록부가 적지 않았다. 가족관계, 학력 등의 정보를 기재하지 않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 불필요한 개인정보 수집을 자제함으로써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라며 타 기관에 대해서 권고하던 바 그대로였다.

그리고 어느 기관보다 여성의 비율이 높았다. 여성부보다도 높다고 했다. 상임위원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여성이었고, 이런 구성은 재임 기간 내내 유지됐다. 인권위법 제5조 4항에 따르면 전체 인권위원 11명 중 최소한 4명은 반드시 여성이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한 나라의 양성평등도를 가늠하는 지표 중 하나가 여성이 상위직을 점유하는 비율이다. 인권위는 국제적 기준에 따라 설립된 것인 만큼 여성 할당제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인권위의 설립준거 기준인 ‘파리원칙’은 독립성(independency)과 함께 구성의 다원성(plurality)을 강조한다. 인종이나 종교 간의 갈등이 비교적 적은 우리나라에서 다원성의 상징은 성비 균형이다. (장애차별금지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장애인도 중요한 요소가 됐다.)

인권위에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비율도 월등하게 높았다. 혼인을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으로 여기는 것은 시대적 추세이지만, 인권위 여성에게는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한 것 같았다. 충분히 이유 있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의 인권감수성이 높은 것은 상식이다. 인권위는 여타 직장에 비해 대체로 여성에게 우호적인 분위기라고 한다. 응당 그래야만 할 것이다. 아직 여성 수장(首長)이 탄생하지는 않았지만 상임위원의 경우 성비에 대등한 균형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중견간부층에는 현저하게 모자란다. 이 직급과 연령층 여성 중에 유능한 인재가 많다. 그러나 직업공무원 출신은 드물다. 그래서 이들은 별정직, 계약직 등 신분상의 제약이 컸다. 기회 닿는 대로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는데 손도 대지 못하고 오히려 여러 사람의 일자리마저 잃게 했으니, 두고두고 안타까운 자괴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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