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호

‘관리’보다 ‘실행’ 상자 밖 생각하기

삼성맨 출신 ‘퇴사 컨설턴트’의 대량 퇴직 시대 생존법

  • 손성곤 | 직장생활연구소장, ‘나는 무적의 회사원이다’ 저자 companyman1@naver.com

    입력2016-08-23 13:16:33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살아갈 날은 긴데, 직장 생활은 짧아져만 간다. 굳이 신문을 펼치거나 인터넷을 검색하지 않아도 회사 떠나는 사람들 얘기를 주위에서 쉽게 접한다. 회사만 바라보며 인생을 바치는 시대는 곧 종말을 고할 것이다. 이런 변화를 개인의 힘으로 막을 순 없다. 그렇다면 10년, 아니 5년 후의 일상일 수도 있는 직장 생활의 변화를 예측해보자.



    정규직≒비정규직

    먼저, 해고가 쉬워진다. ‘제리 맥과이어’라는 영화가 있다. 톰 크루즈가 수화기에 대고 “Show me the Money(돈 내놔)!”라고 소리 지르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촉망받던 스포츠 에이전트인 그는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잘렸다. 그래서 클라이언트(운동선수)를 하나라도 더 데리고 나가려고 그렇게 소리를 질러댄 것이다. 결국 해고 통보를 받은 지 반 나절도 안 돼 단 한 명의 선수만 데리고 짐을 싸서 회사를 떠난다.

    대한민국 직장인의 미래도 이와 유사하게 변할 수 있다. 지금도 회사에 경영상 문제가 생길 경우 구조조정 등의 방법으로 합법적인 해고가 가능하다. 하지만 앞으론 그런 문제가 없어도 정규직 해고가 어렵지 않게 될 것이다. 지난해 9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일반해고’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가 가능한 단초를 만들었다(물론 아직 조율을 통한 입법 과정이 남았다). 몇 년 후엔 외국 영화에서나 본 듯한 개인별 해고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정규직’ ‘비정규직’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어질 것이다. 양자의 가장 큰 차이는 근무기간의 연속성이다. 정규직은 근로기간의 종료 시점이 정해지지 않은 것이고, 비정규직은 계약으로 명시된 근로기간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과 경계는 사라질 수 있다. 이유는 단 하나, 정규직 해고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해고의 요건이 완화돼 직업 안정성이 약해진 상황에서 정규직이란 단어는 의미가 희석될 수밖에 없다.



    결국 미래의 근로계약은 현재의 용어로 말하면 아마도 ‘프리랜서’ 혹은 ‘직무계약직’과 같은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나의 목적을 지닌 프로젝트를 위해 능력과 요건을 갖춘 사람들이 모이고, 이들이 팀을 이뤄 일하게 된다. 그리고 목표를 완수하면 해체하거나 다른 과업을 맡는 식의 조직이 많아질 것이다. 물론 회사에 적(籍)을 두고 일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소수일 것이며, 그들도 현재의 비정규직과 같은 형태로 고용될 것이다. 우리는 이력서에 ‘회사명’ ‘직급’ ‘근무기간’ ‘수행한 일’ 등에 대해 쓴다. 하지만 미래엔 ‘수행한 프로젝트’ ‘프로젝트 내 나의 역할’ ‘그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성과’ 등에 대해 적는 날이 온다.



    ‘라인 시대’의 종말 

    앞으론 능력 없는 관리자와 임원의 수도 줄어든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기 의지대로 선택할 수 없는 건 두 가지, 부모와 직장 상사다. 직장인의 가장 큰 슬픔 중 하나는 능력도, 배울 것도 없는 상사 밑에서 일하는 것이다. 지금은 상사가 일을 못해도, 아니 하지 않아도 빨간 펜으로 보고서 수정하고 잔소리만 하며 월급 받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미래엔 적어도 그런 일은 줄어들 것이다. 관리자나 임원은 그 성과를 수치화해 보여주고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이 잘 안되면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미루는 관리자가 많다. 그러나 앞으론 성과에 대한 책임은 관리자가 명확하게 지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일반 사원보다 관리자나 임원이 더 열심히 일해야만 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어쩌면 임원이 가장 일찍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아무리 처세에 능하고 정치를 잘해도 실적이 안 좋은 임원, 능력이 없는 관리자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정(情)으로 혹은 소위 ‘라인(line)’을 잘 타서 버티는 세상은 곧 끝난다. 관리자에 대한 평가가 전적으로 능력과 성과로 이뤄지는 시대가 온다. 실적 위주의 평가는 관리자를 더 움직이게 할 것이고, 순전히 정량적인 결과로만 평가받는 일터가 될 수도 있다.

    미래엔 정기 퇴직 제도도 생길 것이다. 현재 대기업은 연도별로 신입사원에게 기수를 붙인다. 동기의식을 고취하고 회사에서 쓸모 있는 존재가 되도록 여러 가지 교육도 시킨다. 그러나 앞으론 퇴직도 정기적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기업 제6기 정기 퇴사 교육’ 같은 일이 생겨날 것이다. 지금처럼 경영 악화에 따른 구조조정뿐 아니라 정기적인 퇴사가 진행된다는 말이다. 회사는 아예 조건을 제시하면서 정기적으로 대상자를 정하고, 원하는 사람에게 퇴사할 기회를 줄 것이다. 그들에겐 퇴사 이후를 위한 사회적응 교육 및 각종 재취업 프로그램 등을 회사가 제공할 수도 있다.



    “어떻게 해요?”

    이렇게 예측해본 직장인의 미래가 암담하기만 한가. 물론 필자는 이 글대로 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정말 안타까운 일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이런 상황에 대비하는 직장인이 생각보다 적다는 것이다. 미디어를 통해 신입사원이 권고사직을 종용받았다는 기사를 접하면서도 ‘나는 아니겠지’ ‘우리 회사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이가 대다수다.

    어느 날 필자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거기가 직장 생활 문제를 상담해주는 센터인가요?” 묵직한 한 남성의 목소리였다. “아, 상담센터는 아니고…저는 ‘직장생활연구소’를 운영하는 개인입니다. 죄송하지만 전화 상담은 하지 않는데요….” 정중한 거절에도 아랑곳없이 남자는 한숨과 함께 말을 이어갔다. “제가 지난주 홧김에 사표를 냈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큰 실수를 한 것 같은데, 돌이킬 방법이 없을까요?”

    이렇게 시작된 그와의 ‘상담’은 2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귀에 땀이 났다. 그는 7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중견기업의 인사지원팀장이었다. 회사의 부조리함과 답답함에 순간적으로 사표를 냈지만 그다음은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회사는 전쟁터, 밖은 지옥’이라는 말을 그저 남의 얘기인 줄로만 알았다. 아무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사회에 내동댕이쳐진 그는 길을 잃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다.  



    3주 후 다시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떻게 하죠? 저, 죽을 것 같아요. 집사람은 계속 어떻게 할 거냐고 닦달해요. 그래서 도망치듯이 차를 끌고 나왔는데 이대로 운전하다간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저도 제가 제어가 안 돼요. 도로 밖으로 뛰쳐나갈 것 같아서 겨우 차를 세웠어요. 어떻게 해요….”

    그는 거의 공황 상태였다. 울고 있었다. 직장 생활 상담 이전에 정신 상담이 더 필요해 보였다. 그를 진정시키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들어서 아는 것, 책을 읽고 아는 것, 옆에서 보고 아는 것. 이런 것들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책을 읽고 아는 불의 뜨거움과 주방 화로 앞에서 10시간을 보내는 사람의 뜨거움은 같을 수 없다. 본인이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퇴사’다.



    퇴사 준비가 배신?

    40대가 넘어 발끝을 들고 뒤를 바라보면 자신의 끝 모습이 보인다. ‘내가 언제 어떻게 회사를 떠나게 되겠구나. 어떤 노력을 하면 그 시기를 조금은 연장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대다수 직장인에게 이런 생각은 머릿속에서 빨리 떨쳐내고 싶은, 원치 않는 모습이다. 그렇기에 준비도 하지 않는다. 10년 근속상을 받고 회사의 역사가 곧 자신의 청춘이라 여기는 40대 이상 직장인에게 퇴사 준비란 어쩌면 ‘반역’ 행위에 가깝다. 회사가 나를 키워주고 내가 흘린 땀 냄새가 아직도 회사 곳곳에 배어 있는데 어찌 퇴사 준비를 하느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퇴사 준비가 회사를 배신하는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퇴사 준비를 회사 몰래 ‘투잡(two job)’을 하는 것처럼 회사 일과 동떨어진 것으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퇴사 준비는 배신이 아니라 ‘회사에서 일하며 인생 후반 준비하기’다. 당신이 40대 이상이라면, 또 언제 회사를 떠나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이 있다면, 먼저 아래 두 가지를 중심으로 회사 생활의 일상을 돌아보기 바란다.   

    우선 전문적 역량이다. 관리자인 당신은 실무에서 손을 놓았을 것이다. 대신 팀 간 업무 조율이나 사업부의 전체 전략 수립, 임원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주로 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타인의 눈엔 당신이 하는 일이 그저 밑의 직원들이 만들어놓은 보고서에 빨간 펜을 들고 휘갈기는 모습. 혹은 전략 수립이라고는 하지만 아무 생각도 없이 임원과 사장의 수족처럼 구는 모습일 수도 있다.

    따라서 실제로 문제가 생겼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 그것이 당신의 업무 역량이다. 해본 일 말고 실제로 ‘지금 할 수 있는 일’ 말이다. “아니, 그까짓 거 큰 그림만 그리고 밑의 애들 시키면 되지 뭐하러 그런 걸 고민해?”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회사 밖에서 먹고살려면 관리(management) 역량이 아니라 실행(execution) 역량이 필요하다.



    진정한 후배 관리

    어떤 이는 “대한민국에선 인맥이 최고야”를 외치며 매일처럼 술자리를 갖는다. 인맥 관리를 위해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100명의 이름을 적어놓고 1년에 한 번씩만 만난다고 해도 일주일에 2명은 만나러 가야 한다. 하지만 스스로 역량을 쌓고 전문가가 되면 100명의 사람이 자신을 만나러 찾아온다. 우리가 말하는 인맥 관리의 시작은 바로 역량 관리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10년 전 대리 시절에 한 일은 잊자. 역량 관리는 자신이 현 상태에서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생각해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두 번째는 사람이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네트워크를 말하는 게 아니다. 관리자인 당신이 회사에서 일하며 할 수 있는 최고의 인맥 관리는 바로 후배 관리다. 후배는 당신보다 직위가 낮거나 연차가 짧은 사람이다. 일부 관리자는 후배를 자신의 일을 대신 해주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 내에서 당신이 더 성장하기 위해, 혹은 회사를 떠나서도 도움을 얻기 위한 관계는 후배로부터 나온다.

    누가 보기에도 일 잘하고 성과도 좋은 49세의 김 이사. 그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대기업 내에서 차세대 주자로 촉망받는 임원과 친했고, 맡은 업무에서 성과도 좋았다. 아니나 다를까 한 번 미끄러지긴 했지만 결국 상무가 됐다. 하지만 1년을 넘기자마자 회사를 떠나야 했다. 바로 밑에서 따라주고 받쳐주는 후배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성과는 절반이 욕설인 폭력적인 업무 지시, 잘못되면 개인 탓으로 돌리는 행태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의 태도에 지친 후배들 중 그를 따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평판을 중요시하는 최고경영자(CEO)에게까지 그런 태도가 알려지면서 결국 그는 회사를 떠났다.

    더 안타까운 것은 퇴사 후 2년이 지났지만 그가 아직 ‘백수’라는 것이다. 회사를 그만둔 초기엔 몇몇 중견기업에서 연락이 왔지만 어느덧 끊겨버렸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가 아직도 백수인 것은 바로 밑 팀장들의 ‘평판조회(reference check)’ 때문이었다. 후배의 공을 가로채고 막말을 일삼던 그를 좋게 평가할 사람은 없었다.  



    회사 밖을 내다보라   

    후배 관리는 가끔 삼겹살에 소주 한 잔씩 사주고 호형호제를 허하는 게 아니다. 억지로 라인을 만들고 자기 밑에 사람을 채워 넣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후배 관리는 그들에게 명확한 기준을 세워 의사결정을 해주고, 그들이 더 클 수 있도록 양성하는 것이다. 그래야 당신이 임원이 될 때도 함께 일한 후배들이 당신을 지지하고 믿고 따른다. 설령 회사를 나가더라도 좋은 평판을 받고 새로운 회사에 들어갈 수 있다. 후배들에게 진심으로 대했다면 자기 사업을 하더라도 좋은 기회가 생길 때 그들이 당신을 추천해줄 수 있다.  

    세 번째는 만남이다. 회사 밖의 사람을 만나는 것은 당신의 시야를 넓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회사 내 인간관계는 한정적이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일하기에 대화의 폭도 넓지 않다. 회사 임원들 동향, 누가 어떻더라는 얘기, 치솟는 아파트값, ‘언제까지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넋두리 정도가 다다.

    하지만 회사 밖으로 눈을 돌려 다른 사람을 보면 어떨까. 당신과 완전히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은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가졌다. 당신이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색다른 관점으로 본다. 커피숍에 대해 얘기해도 어떤 이는 원두의 맛을 얘기하고, 어떤 이는 좌석 수, 커피 가격, 회전율처럼 경제적으로 접근한다. 같은 테이크아웃 커피잔도 위에서 바라보면 동그란 모양이지만 옆에서 보면 사다리꼴이다. 당신이 동그랗다고 믿어온 것을 사다리꼴이라고 일깨워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을 만나기 바란다.

    상자 밖 생각(think out of the box), 창의적 생각을 말하는 시대다. 이를 실행에 옮기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동종업계의 다른 회사 사람들을 만나며 관계를 유지하고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도 좋다. 하지만 더 큰 생각을 가진 당신이라면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 다른 생각의 충격을 경험하기 바란다. 세상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내공이 강한 고수가 즐비하다.

    대량 퇴직의 시대. 맹목적으로 목표만 좇으며 일하기보다 잠시 자신을 내려놓고 멈춰 스스로의 업무 일상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회사에서 규정한, 단지 오래 있었기에 이름 붙여준 것을 내려놓기 바란다. 자신과 현실, 그리고 미래의 변화를 냉정히 바라보자. 현재의 실전 역량을 쌓고 후배를 믿고 키워주자. 회사라는 상자 바깥의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자.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위치에서 올바른 역량과 사람을 만드는 게 회사 몰래 창업 을 준비하는 것보다 중요한 직장인의 자세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