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호

공룡은행, 보험을 먹는다

카운트다운! 금융권 빅뱅

  • 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입력2005-04-01 15:3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국경 없는 전면전. 구조조정을 마무리한 금융권이 대형화·겸업화·전문화·민영화를 지향하며 본격적인 전방위 경쟁체제에 돌입한다. 금융권의 새 지도는 어떤 모습일까.
    금융권의 대(大)지각변동이 본격화됐다. 은행권의 2차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서 내년 이후 금융권은 바뀐 제도를 활용, 수익 기반을 넓히기 위해 업역(業域)을 넘나드는 치열한 경쟁체제로 돌입할 전망이다. 또한 정부가 대주주로 있는 은행의 지분을 예정대로 조기 매각할 경우 이것이 누구에게 얼마나 넘어가느냐에 따라 금융권에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외환위기 직후 부실 종금사들을 무더기 퇴출시키는 등 제2금융권 구조조정을 실시한 후 1998년 6월부터 은행권에 대한 1차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퇴출, 합병, 해외매각 및 외자유치, 증자지원 등의 방법으로 추진된 1차 은행 구조조정에서 경기·대동·동남·동화·충청 5개 은행이 퇴출됐고, 보람·장기신용·강원·충북 4개 은행이 흡수합병됐으며,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대등합병했다. 제일은행은 미국의 투자펀드인 뉴브리지캐피털에 지분 51%를 매각했으며, 서울은행은 해외매각을 추진중이다.

    은행권 2차 구조조정에서는 금융지주회사 방식의 은행 통합이 추진됐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독자생존 불가판정을 받은 한빛·평화·광주은행을 정부가 주도하는 금융지주회사에 편입시켰다. 여기에 이후 부실판정을 받은 경남은행과 한국·중앙·한스·영남 4개 부실 종금사를 묶어 지난 4월 우리금융지주회사를 출범했다. 우리금융은 내년 6월 말경 기능별로 재편될 예정이다.

    민간 금융지주회사도 생겨났다. 9월1일 출범한 신한금융지주회사는 신한은행을 중심으로 신한증권, 신한캐피탈, 신한투신운용 등이 주식이전 방식으로 설립했다. 신한금융은 총자산 세계 3위의 금융그룹인 프랑스 BNP파리바가 지분의 4%를 투자키로 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국내 금융계는 국민·주택 합병은행(총자산 170조원), 우리금융(90조원), 신한금융(53조원)의 ‘빅3’를 중심으로 대형화, 겸업화, 전문화의 길을 걸으며 경쟁과 수익논리에 입각한 자체 구조조정에 진력할 것으로 보인다. 빅3체제에 포함되지 않은 은행들도 규모의 경제를 고려, 합병과 외자유치 등을 통해 1∼2개 지주회사를 더 만들어 이를 중심으로 뭉칠 가능성이 높다.



    대형화·겸업화·전문화

    국민·주택 합병은행장으로 선임된 김정태 주택은행장은 “국민·주택 두 은행을 이용하는 2800만명의 고객과 1100여개의 전국 지점망을 활용해 기존 은행업무는 물론, 증권 보험 리스 자산관리 뮤추얼펀드 등의 비(非)은행업무로까지 사업범위를 넓혀가겠다”고 밝혔다. 합병은행 아래 다양한 업역의 자회사를 두고 전방위 금융서비스를 제공, 수익기반을 확대하겠다는 것.

    금융지주회사는 국민·주택 합병은행과는 형태가 다르다. 금융지주회사는 은행 아래 자회사를 두는 게 아니라 지주회사라는 ‘컨트롤 타워’ 아래 은행 증권 보험 등의 자회사를 둔다. 이 경우 자회사가 부실해져도 그에 따른 영향을 지주회사가 흡수하므로 은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 제2금융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은행 임원이나 관료 출신 인사가 자회사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 초래하는 폐해도 막을 수 있다.

    은행과 증권사는 경영문화가 판이하다. 은행이 극히 신중하고 보수적이라면 증권사는 일단 치고 달려나가는 분위기다. 이러니 은행이 증권사를 자회사로 두고 직접 경영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금융지주회사 시스템에서는 은행과 증권사로 하여금 수평적 관계의 자회사로서 독립 경영케 하면서 그 위에서 지주회사가 전체 자회사들을 통합, 제어해 효율을 높인다. 세계적인 금융그룹들은 조직구조에서는 자회사들이 이렇듯 완전한 분업체제를 구축하고 있으나 업무에서는 협업체제를 이룬다. 업무의 중복을 없애고 전문성과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기 위해서다.

    합병은행과 금융지주회사의 가장 큰 이점은 겸업화에 있다. 업역이 다른 금융기업들을 한 울타리 안에 모아놓고 비교우위 분야에 특화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다. 그래서 금융기업의 대형화는 주로 이종(異種) 금융기업 간 합병을 통해 이뤄진다.

    예를 들어 시티그룹은 소매금융을 주로 취급하는 상업은행에서 출발했으나 트래블러스그룹과 합병해 보험업무를 추가했고, 살로만스미스바니와 합병해 투자은행·자산운용업무에서도 경쟁력을 갖췄다. 체이스그룹은 경쟁력이 낮은 소매금융을 미국시장에 한정하고 해외에서는 투자은행 업무를 확대해 왔는데, 이를 위해 JP모건을 흡수했다. 도이체방크도 가계금융과 기업금융을 종합적으로 취급하다가 국제금융시장에서 투자은행과 자산관리업무의 경쟁력을 보완하기 위해 뱅커스트러스트를 인수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손상호 연구위원은 “겸업화를 통해 금융의 3대 축인 은행, 증권, 보험이 동일한 지주회사 아래로 들어옴으로써 종합 금융서비스를 제공, 시너지효과를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한 점포에서 세 가지 업무를 다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한 규모의 비용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전산 및 정보처리 설비, 고객 정보 등도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소규모 자회사의 경우 후선(後線) 부서를 공동으로 이용함으로써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예컨대 자산운용회사는 소수의 펀드매니저와 분석업무를 담당하는 전문인력만 갖추고 일반 관리업무는 은행 같은 대형 기관에 위탁하면 된다. 아울러 고객들은 다양한 금융서비스의 ‘원 스톱 쇼핑’이 가능해져 편리하며, 금융기업이 업역별로 시장 위험의 상관관계가 작은 상품들을 이용해 자산을 포트폴리오하면 위험부담도 낮아질 수 있다.

    지금도 국내 은행 중에는 비은행업 자회사를 거느린 경우가 적지 않다. 겉으로는 이들도 자회사를 통해 겸업하고 있다는 점에서 복합 금융그룹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자회사들은 대부분 업역 확대 외의 목적으로 설립되거나 인수됐다. 한국경제연구원 금융·재정연구센터 이인실 소장은 “상당수의 투자신탁회사는 정부가 산업자본의 진입을 막기 위해 은행에게 출자하게 한 것이며, 일부 증권사나 상호신용금고는 은행이 차입금 상환이 어려운 기업집단의 대출을 정리하는 과정에 기업집단이 가진 지분을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됐다. 이런 배경 때문에 복합 금융그룹 차원에서 상품과 마케팅, 시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경영전략 아래 은행과 자회사가 밀접한 관련을 갖는 형태로 발전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진정한 의미의 겸업화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법적 규제도 겸업의 활성화를 가로막았다. 현재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의 업무범위는 개별법령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고유업무 외의 업무를 하고자 할 때는 당국에 신고하거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특히 은행과 보험의 겸업형태인 방카슈랑스(넓게는 은행, 증권, 보험 등의 업무를 직접 겸영 또는 자회사업무제휴 방식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영위하는 ‘유니버설 뱅킹’의 의미로 사용된다)는 보험법 시행규칙에 따라 2003년 8월까지 유보돼 있다. 이는 은행업계와 보험업계가 첨예한 갈등을 보이자 중재에 나선 정부가 마련한 절충안 격이었다.

    이처럼 금융권별로 가능한 업무만 열거해 규정하는 현행 포지티브 시스템은 규제 범위가 매우 넓다. 금융기업이 포지티브 시스템에서 허용하는 업무 리스트에 올라 있지 않은 상품을 개발하려면 복잡한 약관심사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상품 시판이 지연되고 신상품 개발의욕이 떨어진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재연 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금융규제 완화방안’ 보고서에서 “대형 합병은행과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를 통한 겸업화를 활성화해 금융혁신을 앞당기려면 겸업을 금지하는 특정 업무만 법령에 명시하고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업무는 별도의 인허가 없이 자유롭게 겸영케 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권간 장벽을 없애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전세계적으로 금융 관련 규제가 완화되고 경쟁이 격화되면서 금융기업들의 인수·합병,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한 방카슈랑스가 확대되고 있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1980년대부터 방카슈랑스를 본격화했으며, 1930년대의 대공황 이후 분업주의를 고수해온 미국도 1999년 은행과 보험, 증권을 갈라놓았던 글래스 스티걸 법을 폐지하고 업종간 상호진출을 허용하는 금융서비스현대화법을 제정했다.

    글래스 스티걸 법은 은행들이 증권업에 진출한 것이 대공황을 초래했다는 판단에 따라 만들어졌는데, 이런 규제를 지속하면 겸업이 자유로운 유럽 금융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미국 금융기업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일본도 1997년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하면서 방카슈랑스를 도입했다.

    정부도 이와 같은 추세를 감안, 방카슈랑스를 유보 시한인 2003년 8월 이전에 앞당겨 도입할 방침이다.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지난 5월 “금융산업의 급격한 변화에 맞춰 방카슈랑스를 조기에 도입하는 등 금융상품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8월에는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도 “겸업, 대형화와 외국 보험사들의 투자촉진, 비용절감을 위해 방카슈랑스가 필요하다”며 “재정경제부와 함께 조기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보험업계가 방카슈랑스 조기 도입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내년에 치러질 두 차례의 선거에 부담을 느낄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최근 이근영 위원장은 “조기에 도입하더라도 정형화된 상품부터 단계적으로 허용해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줄이겠다”며 한 발 물러났다.

    고비용·저효율의 전형

    보험업계는 은행에 보험상품 판매를 허용할 경우 은행의 높은 접근성, 편리성, 신뢰도로 인해 보험사 고객들이 무더기로 이탈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저금리 추세가 지속되면서 보험 가입자에게 주기로 약속한 이율보다 자산을 운용해 얻는 이율이 훨씬 낮아져 금리 역마진 사태에 허덕이는 마당에 막강한 자금력과 지점망, 고객 기반을 갖춘 은행이 보험업에 뛰어들면 과열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소 보험사의 연쇄 도산과 보험사 직원 및 30만명에 달하는 보험설계사의 대량 실직이 불보듯하다는 것.

    그 결과 경영난에 빠진 보험사들을 구제하거나 퇴출시키는 과정에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등 경제 전반에 부담을 줄 것이라는 주장이다. 20여 년 전부터 방카슈랑스가 본격 도입된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경우 은행계 보험사의 생명보험시장 점유율이 50%를 상회하며, 호주 보험업계 1위였던 AMP는 방카슈랑스가 도입된 지 4년 만에 시장점유율이 17% 하락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국내 보험사들은 영업방식이나 경영여건이 고비용·저효율의 전형이라 할 만큼 낙후돼 있어 은행의 경쟁력을 당해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은행의 영업형태는 찾아오는 고객을 상대하는 ‘풀(pull)형’인 데 비해 보험은 공급자가 고객에게 달려가는 ‘푸시(push)형’이다. 기본적으로 소요되는 인력과 시간, 비용이 그 만큼 많다.

    또한 일부 대형 보험사 외에는 지점망과 인력이 태부족이다. 특히 신설 보험사가 이런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드는 사업비 규모는 엄청나다. 그런데 1994년까지만 해도 정부는 보험사 설립 후 5년까지 사업비 상각을 이연(移延)시켜줬다. 사업비를 물 쓰듯 해도 5년 동안은 손익에 반영되지 않고 자산으로 처리됐기 때문에 신설·지방 보험사들은 능력 이상으로 점포를 확장하고 영업인력을 뽑아 과당경쟁을 벌였다. 막대한 초기 사업비 지출은 헤어나기 힘든 ‘원초적 부실’로 이어져 경영난을 가중시켰다.

    하지만 방카슈랑스가 도입되면 은행은 기존 직원에게 필요한 교육을 실시한 뒤 점포로 찾아오는 고객에게 보험상품을 팔면 된다. 초기 사업비 부담없이 보험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것이다.

    국내 보험업계의 고비용 구조는 설계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영업관행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고객이 스스로 필요를 느껴 보험에 가입하는 자발적 수요는 미미하고, 설계사들의 친분과 ‘안면’을 매개로 한 연고(緣故) 수요가 주류를 이룬다. 이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보험이라 할 보장성·종신형 상품 판매는 부진한 반면 보험금 규모가 작은 저축성·단기형 상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보험금에서 설계사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 보험사로서는 그 부담을 고객에게 전가하거나 마진을 최소화하는 수밖에 없다.

    약진을 거듭하는 외국계 보험사들도 설계사 수수료 비중이 높기는 마찬가지지만 이들은 종신형 보험상품이 특화돼 있다. 그래서 계약금이 대개 억대가 넘는데다 가입자가 보험금을 장기간 납부하기 때문에 설계사들의 생산성이 높을 뿐 아니라 금리 역마진으로 골머리를 앓을 일도 없다.

    더욱이 연고 계약으로 판매된 상품은 설계사가 보험사를 그만두면 가입자가 중도 해약하는 사례가 많아 가입 후에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국내 보험사 설계사 가운데 약 70%는 일을 시작한 지 1년 안에 보험사를 떠난다. 1년 정도는 주변의 친지를 상대로 근근이 영업활동을 이어가지만 곧 한계에 이르고 마는 것.

    그렇지만 창구에서 상품이 판매되는 은행권 보험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은행은 안정성, 신뢰도 등 기업 이미지 면에서 대부분의 보험사를 압도하기 때문에 보장성 상품 위주의 자발적인 보험 수요를 유치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초기 사업비와 설계사 수수료 부담에서도 자유로워 저비용 경영이 가능할 뿐 아니라, 방카슈랑스 도입단계에서는 시장 선점을 위해 다소간의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전략을 펼 것으로 보인다. 보험개발원은 방카슈랑스가 도입될 경우 생명상품 보험료는 현재보다 평균 7.5%, 손해보험 상품료는 14%가 인하될 것으로 분석했다.

    은행권 보험사에는 정보력이라는 또 하나의 막강한 무기가 있다. 은행이 구축한 방대한 고객 정보를 보험 마케팅과 연결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계열 은행의 프라이비트 뱅킹에 자금을 예치한 부유층 고객의 정보를 활용, 고객의 입맛에 맛는 라이프 플랜을 제시함으로써 거액의 보험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

    게다가 상업은행, 투자은행, 자산운용사 등의 계열 자회사와 유기적으로 협업하면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금을 각 계열사의 정보력과 투자테크닉을 기반으로 운용,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보험사의 자산운용 능력이 은행을 앞서는 것으로 평가받아 왔지만, 방카슈랑스가 도입되면 보험사는 이 대목에서도 마음놓기 어려워진다.

    정부와 금융계 일각에서는 방카슈랑스가 보험업계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도입 초기에는 판매방식과 상품에 제한을 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은행 창구에서 은행 직원이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것과, 보험업계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은행 등 타 금융기업이 기존 보험사를 자회사로 인수하는 것은 허용하되, 금융기업이 자체적으로 자회사를 설립해 보험을 판매하는 것은 당분간 허용하지 말자는 것. 또한 이근영 금감위원장이 언급한 것처럼 방카슈랑스 상품도 보험회사에 비교적 충격을 덜 주는 것부터 단계적으로 허용하자는 것이다.

    보험업계 구조조정 불가피

    이에 대해 한국금융연구원 정재욱 연구위원은 “자유시장 경쟁원리에 벗어난 인위적인 방카슈랑스 도입방안은 역효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소규모 자본금(300억원)으로 보험사 신설이 가능한 현실에서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소형 보험사를 인수하기 위해 수천억원을 낭비할 금융기업은 없다. 또한 상품을 한정하겠다는 것은 대형 슈퍼마켓을 차려놓고 라면과 과자만 팔게 하겠다는 비상식적인 경영마인드다. 방카슈랑스를 도입하는 과정에 어떤 상품을 어떤 방식으로 판매할 것인지는 해당 금융기업이 경영 판단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케 해야 한다.”

    정위원은 “세계적인 추세에 부응하고 국내 금융시장의 대내외 경쟁력을 높이며 금융소비자의 권익보호와 편의증진을 위해 방카슈랑스는 조기에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보험업계도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되, 자체적인 인수·합병과 구조조정, 상품 차별화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보험사의 수익원을 다변화하기 위해 업역을 확대할 수 있도록 정책당국을 설득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보험사가 탄탄한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신용카드 사업을 벌일 수도 있고, 보험금으로 신탁업무를 취급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외국 보험사들은 뮤추얼펀드를 팔기도 하고, 고객에게 지급하는 보험금을 일시 수령, 연금식 수령, 혹은 매월 이자만 수령하는 방식 등으로 다양한 옵션을 정해놓고 고객이 타가지 않은 보험금을 운용해 수익을 올린다고 한다.

    서강대 국제대학원 조윤제 교수(경제학)도 “보험은 은행보다 현금 흐름이 안정적이어서 여유자금을 장기적인 시각에서 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에선 보험사가 기관투자가 기능을 하고 있다”며 “국내 보험사들도 자금운용 패턴을 바꿔 대출 비중을 낮추고 자본시장에 대한 투자를 늘려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험업계가 금융권에서 구조조정이 가장 미진한 분야이기 때문에 금리 역마진 사태와 방카슈랑스가 오히려 부실 보험사를 정리하고, 살아남을 보험사의 자생력을 길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 과정에 공적 자금이 투입될 수도 있겠지만, 구조조정 대상이 주로 중소형 보험사들이라 소요될 공적 자금이 금융권을 뒤흔들 만한 규모는 못 되리라는 전망이다.

    한편 보험개발원 오영수 연구기획팀장은 “보험사더러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으라’고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은행은 보험사의 가장 큰 수익기반인 보험판매를 가져가는 반면, 보험사가 은행으로부터 받아올 것은 없다”는 것. 보험사가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하면 공평하지 않으냐는 주장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은행을 소유할 만한 자금력을 가진 보험사는 재벌 계열사 한두 곳에 불과하며, 그나마 그룹 내 지분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은행을 소유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또한 보험금 신탁업무를 얻어낸다 해도 이는 은행의 고유 업무가 아니라 투자신탁회사의 영역이므로 은행과의 업역 맞교환으로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은행 고유 업무 중에서 가져온 것은 외환업무가 유일한데 여기에서 얻는 수익은 보잘것없는 수준이라는 것.

    오영수 팀장은 은행권이 보험상품을 판매할 경우 보험업계에 미칠 충격 외에도 몇 가지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했다.

    그 하나는 ‘끼워팔기’. 기업에 덩치 큰 보험상품을 팔기 위해 부실 대출을 양산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단체보험시장에서 이런 사태가 우려되는데, 가령 기업연금의 경우 현재는 임의 가입제라 별 문제가 없지만 향후 퇴직금을 지급하기 위해 기업연금 가입을 의무화하면 시장이 엄청난 규모로 커진다. 이에 따라 은행권이 경쟁적으로 기업연금보험 유치전을 펴면서 대출을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은행 창구에서 보험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직원이 보험상품을 판매할 경우 고객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해 소비자 분쟁이 증가할 수도 있다. 또한 방카슈랑스 초기엔 은행권이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수수료를 낮게 책정하겠지만, 일단 시장을 장악한 후에는 수수료를 담합 인상하는 등 시장지배력을 악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중소 보험사들이 구조조정을 거쳐 퇴출되거나 은행권, 혹은 대형 보험사에 인수·합병되면 국내 금융권은 일본의 경우처럼 은행계 지주회사들이 시장을 선도하는 가운데 소수의 보험계 지주회사들이 이에 맞서는 구도로 재편될 전망이다.

    일본 은행들은 미즈호(다이이치간교+후지+니혼코교은행), 미쓰이 스미토모(스미토모+사쿠라은행), 미쓰비시 도쿄(도쿄 미쓰비시+미쓰비시신탁은행), UFJ(산와+도카이은행) 4개 그룹으로 거듭났다. 이들 그룹에는 보험사, 증권사도 대거 편입됐는데, 미즈호는 다이이치·야스다생명, 닛산·니치도화재, 미즈호증권 등을, 미쓰이 스미토모는 스미토모생명, 미쓰이해상, 사쿠라증권 등을, 미쓰비시 도쿄는 메이지생명·손보, 닛산화재, 고쿠사이·도쿄 미쓰비시증권 등을, UFJ는 다이요생명, 니혼화재 등을 아우르고 있다.

    이에 위기감을 가진 일본 최대 생명보험사인 니혼생명과 최대 손해보험사인 도쿄해상은 은행 중심의 금융업 재편에서 주도권을 되찾고 종합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자신들을 주축으로 한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니혼생명그룹에는 니혼생명, 도와화재, 닛세이손보 등이, 도쿄해상이 주도하는 미레아그룹에는 도쿄해상, 아사히·니치도·도쿄안신생명, 니치도화재 등이 뭉쳤다. 그러나 은행그룹 산하에는 보험사들이 즐비하지만 은행을 소유한 보험그룹은 없다.

    국내의 경우 지난해에 금융지주회사법만 마련됐을 뿐 금융지주회사를 활성화할 여건은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예로 지주회사 내 자회사들끼리 고객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야 흡인력 있는 복합 금융상품을 만들 수 있고 전산망과 지점망을 함께 이용해 마케팅 비용도 절감할 수 있지만, 아직은 고객 신용보호의무 규정 때문에 이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고객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허용하되 준법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것.

    은행지분 보유한도 논란

    금융권의 지도를 바꿀 또 하나의 변수는 은행지분의 소유제한 완화를 둘러싼 은행법 개정 논란이다. 1980년대 초부터 시중은행을 민영화하기 시작한 정부는 재벌이 은행을 소유해 사금고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1982년 은행법을 개정, 동일인 은행주식 보유한도를 8%로 제한했다. 1994년에는 이를 다시 4%로 낮췄다.

    그러나 최근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재벌의 사금고화를 막을 장치만 마련되면 은행지분의 보유한도를 완화할 방침이라고 거듭 밝혔다. 소유제한 완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의 근거는 대략 세 가지다.

    첫째는 현행 4% 제한규정으로는 투자수익에 기초한 책임경영을 촉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 따라서 은행에 ‘주인’을 찾아줌으로써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할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은행을 소유하는 데 있어 내국인에 대한 역차별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 금융기관은 금감위에 신고만 하면 은행 지분을 10%까지 보유할 수 있고, 10%, 25%, 33%, 51%등 특정 기준을 초과할 때마다 금감위의 승인을 얻으면 100%까지 보유할 수 있는데도 내국인에게만 보유한도를 4%로 규제할 명분이 없다는 것.

    셋째는 정부가 보유한 은행 주식을 매각하려면 소유제한을 완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은행 구조조정 과정에 공적 자금을 투입해 여러 은행의 지배주주가 된 정부로선 빠른 시일 안에 은행 주식을 민간에 매각, 은행의 민영화와 자본확충을 촉진하고 공적 자금도 회수해야 한다는 논리다.

    김대중 대통령은 8월28일 국무회의에서 “정부가 금융기관을 소유하는 것은 시장경제원칙이나 국제적 기준, 금융업이 서비스업이라는 측면에서 비정상적이다”며 “그간 주식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민영화를 주저해 왔지만, 이제 팔 주식은 팔고 해외매각을 추진중인 금융기관은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라”며 정부 지분의 조기 매각을 지시했다.

    하지만 현행 보유한도 규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보유한도를 완화하면 산업자본과 은행업이 결합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이 저해될 우려가 있고, 경제력 집중과 불공정 경쟁 문제가 초래될 수 있으나 아직 이를 통제할 감시장치가 미흡하다는 것. 이 때문에 기업이 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해 경쟁기업에 대한 대출을 제한하는 반면, 부실 계열사에 대해서는 무리한 대출을 남발하거나 은행이 가진 정보를 부당하게 이용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 은행의 사금고화를 막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은 8월28일 열린 은행법 개정방안 공청회에서 은행 지분 보유한도를 4%에서 10%로 늘리는 은행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산업자본이 은행을 지배하면 재무구조가 악화되는 등의 위기상황에서 기업의 리스크가 은행으로 파급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에 따라 산업자본에 대해서는 4% 보유한도를 유지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산업자본은 비(非)금융회사의 자기자본이 전체 회사 자기자본의 25% 이상이거나 비금융회사의 총자산합계가 2조원 이상인 기업. 최근 3년간 재계순위 30위 이내 기업의 비금융회사 총자산합계가 평균 2조4780억원이었기 때문에 30대 기업의 은행 지배를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 숨어 있다. 다만 2년 안에 비산업자본으로 전환하기 위한 계획을 제출해 금감위의 승인을 얻은 경우는 예외로 인정했다.

    정부는 이 안을 바탕으로 은행법 개정안을 마련해 올해 정기국회에 올릴 계획이지만, 보유한도 완화와 산업자본의 은행지배 허용을 둘러싼 논란은 좀처럼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어 앞으로도 갑론을박이 거듭될 전망이다.

    은행 지분 보유한도 완화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물론, 찬성하는 전문가들도 정부의 은행 지분을 서둘러 매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공적 자금을 회수하겠다는 것이야 말릴 일이 아니지만 은행 주가가 반토막난 마당에 굳이 주식을 팔아 국민의 혈세를 휴지조각으로 만들 까닭이 없다는 것. 더욱이 정부가 보유한 대량의 주식이 시장에 쏟아지면 주가는 또 곤두박질치게 마련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조기 매각을 지시한 것부터가 주가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한국금융연구원 이동걸 연구위원은 “정부가 관치금융을 지양하고 은행경영을 정상화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이면 지분을 보유한 상태에서도 민영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지배구조는 개선하지 않고 소유구조만 건드린다고 관치의 폐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산업자본의 은행업 진출을 봉쇄하면 정부의 은행 지분을 매수할 마땅한 세력이 없다는 ‘현실론’도 제기된다. 재벌을 빼면 은행 지분 매수가 가능한 세력은 외국인 투자자와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뿐이다. 하지만 철저히 수익성을 따지는 외국인은 하이닉스 등에 거액의 부실대출이 물려 있는 정부 지배 은행 지분을 사들일 리 만무하고, 설사 ‘싼 맛’에 산다 해도 가뜩이나 외국계 자본의 국내 금융권 지배력이 큰 상황(표 참조)에 외자 비중이 더 높아지는 게 우리에겐 달갑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또한 연·기금은 자금을 운용하고 은행을 경영할 전문가가 없는데다 경영의 책임소재도 불분명해 바람직한 매수세력이 못 된다는 게 중론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유용주 연구원은 “현실적으로 대안이 없는데도 무작정 산업자본의 접근을 막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며 “대기업이 은행을 가졌다면 설령 사금고화될 위험은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처럼 부실해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은행을 잃지 않으려고 그룹 차원에서 부실화를 막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소유는 허용하되, 사금고화를 차단할 수 있도록 감독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

    한국경제연구원 이인실 소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종금사에 대한 산업자본의 전횡이 외환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있으나, 종금사는 은행에 비해 외환 관련 규제 등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은 데 따른 제도의 희생물로 봐야 한다. 종금사들이 과당경쟁을 벌이면서 해외에서 마구잡이로 끌어들인 돈이 미스매치를 이루면서 외환위기가 촉발됐는데, 이는 은행 규제 때문에 산업자본에 돈이 흘러가지 않자 종금사에게 그 기능을 대신하게 할 의도로 규제를 느슨하게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건 감독을 제대로 안 했기 때문이지, 산업자본의 잘못만으로 볼 게 아니다. 하지만 은행은 규제가 엄격할 뿐 아니라 특히 요즘은 돈 흐름이 투명하게 추적되므로 사금고화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런 주장에 대해 한국금융연구원 이동걸 연구위원은 “은행에 대한 감독기능에는 한계가 있다”고 반박한다.

    “산업자본이 평소에는 은행을 정상적으로 경영하겠지만 자금난 등으로 막판에 몰리면 기업인의 속성상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아무리 감독기능을 강화해도 자금의 흐름을 매일 24시간 체크하지 않는 이상 돌발적인 이상행동은 사전에 감지하기 어렵다. 교차 대출(cross lending) 같은 것은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100% 찾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이렇듯 평행선을 달리는 보유한도 논란이 어디에서 절충점을 찾느냐, 그 결과 정부가 보유한 은행 지분이 누구의 손에 들어가느냐가 금융권 빅뱅의 강도와 방향을 결정할 전망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