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호

나눔의 정신으로 만든 都農 협력 새 모델

‘금산을 사랑하는 모임’

  • 박은경 < 자유기고가 >

    입력2004-09-07 13:2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한 땅 금산은 이제 현지인들만의 터전이 아니다. 금산의 매력에 푹 빠진 별난 외지인들의 노력에 힘입어, 청정환경과 디지털 농업이 병존하는 ‘약속의 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하필이면 금산을 ‘꿈의 고향’으로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비단산’ 금산에는 태조 이성계와 관련한 전설 하나가 전해 내려온다. 왕이 되기 전 이성계는 당시 기도처로 이름난 보광산(금산의 당시 이름)의 보리암에 찾아가 산신에게 백일 치성을 드린다. 이때 이성계는 산신에게 왕이 되면 보광산을 비단으로 감싸겠다는 약속을 한다. 치성 덕분일까, 조선 개국으로 왕이 됐지만 약속 지키기가 난감해진 이성계는 행여 산신의 노여움을 살까 고민에 빠진다. 궁리 끝에 산 이름을 ‘비단금(錦)’자를 써 ‘금산(錦山)’으로 대신하는 것으로 산신을 달랬다고 한다.

    아름다운 지명과 달리 충남 금산군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재정자립도와 예산규모에서 전국 최하위 수준을 맴도는 낙후 지역이었다. 군 전체가 3000여 개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다, 그 분지에 자리잡은 474개 마을 중 상당수가 오지(奧地)라 지방자치단체마다 불어닥친 개발바람마저 비껴갔다. 그런데 이렇듯 시골의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가난하고 소박한 금산 땅에 아낌없는 애정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금산을 사랑하는 모임(금사모)’의 500여 회원들이다.

    “금산 사람들은 때가 묻지 않았다. 그동안 방우리 등 여러 오지를 다니며 마을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마을을 방문할 때 권하는 술을 받지 않으면 다시는 그곳에 갈 수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멀리서 차가 오면 막걸리통부터 들고 나오는 것이 금산 인심이다. 경제적 여유는 도시보다 덜할지 몰라도 사람 사는 멋은 한수 위인 곳이다.”

    “금산은 도시의 오염된 삶을 말갛게 씻어줄 수 있을 만큼 청량한 땅이다. 무엇보다 푸근하고 정겨운 사람들이 있어 좋다.”

    “금산 38경 중 첫손에 꼽히는 것이 보리암 일출이다. 수평선과 구름 사이를 뚫고 붉은 해가 솟구치는 모습은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점점이 떠있는 작은 섬들마저 뜨겁게 피어오른다. 참으로 황홀한 절경의 극치다.”



    남다른 풍광에 반하다

    “2000년 새해 첫날 새벽 4시에 금산군 진악산에 올랐다. 2000명 정도가 정상에 올라 있었다.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쉬는데, 가게문을 열어야 한다며 바삐 서두는 금산 아줌마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들에게선 소박한 생활인의 체취가 묻어나왔다. 하산 길엔 금산라이온스클럽 회원들이 큰 가마솥 두 개를 걸어놓고 장작불을 때가며 커피를 끓이고 있었다. 그들은 추위로 몸이 언 등산객들에게 플라스틱 바가지로 쉴 새 없이 커피를 퍼주었다. 세상 어느 곳에서 그렇듯 진한 커피 향을 느낄 수 있겠는가. 그날 난 클럽 회원들이 맞은 1500번째 손님이었다. 금산에 주는 것보다 그곳이 내게 주는 행복이 몇 배 더 큼을 느낀다.”

    금사모 회원들의 금산 예찬은 끝이 없다.

    요즘 금산에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군 전체를 푸른숲으로 덮어 청정환경을 조성하고 경제와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개발로 도시인들에게 ‘잃어버린 고향’의 역할을 할 준비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자치경영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금산군 기획정보실 배석희 실장은 “이를 위해 금산군경제사회발전5개년 계획을 준비했다. 개발논리로 망가진 여느 농촌과는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자는 생각에 지자체 최초로 민간 연구기관인 삼성경제연구소에 용역을 의뢰했다”고 첫 과정을 설명했다. 연구거리가 있으면 먼저 공공기관에 의뢰하고 보는 관행을 금산군은 따르지 않았다. 그만큼 ‘눈이 확 뜨이는’ 변화가 절실하다고 본 것이다. 금산군의 새로운 시도는 금사모를 탄생시키는 불씨가 됐다.

    1998년 12월 금산군으로부터 지방자치와 관련해 조언을 부탁받은 삼성경제연구소 정책연구센터 이언오 상무는 금산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김행기 군수를 만나 거두절미하고 ‘그린벨트를 확장합시다’ 했더니 벌써 숲 가꾸기와 약초꽃길 조성을 추진중이라고 답했다. 어설픈 공장유치와 관광지 개발로 자연을 훼손하는 다른 지자체와 달라 무언가 될 것 같다는 희망을 품게 됐다.”

    용역계약 체결 후 주말마다 현장답사를 위해 금산을 방문한 이상무는 마침 산림청과 금산군이 공동으로 실시한 식목행사에 참석했다. 자원봉사에 나선 의용소방대와 군 공무원들이 마치 자기 집 뜰 가꾸듯 정성을 다하는 모습에 그는 진한 감동을 받았다.

    “3개월 동안 주말마다 금산에 내려갔는데, 군청 문화공보관광과 박범인 과장은 일요일임에도 매번 자신의 차에 우리 연구소 팀을 태우고 군 구석구석을 보여주었다.” 그때 발견한 금산의 아름다움을 혼자 보기 아까워 이상무는 금산 여행에 여러 지인(知人)들을 끌어들였다.

    “1999년 6월 어느날 별이 쏟아지는 금강변 다리 위에서 청량한 물소리를 들으며 인삼주를 마실 기회가 있었다. 이때 동행했던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 인하대 전용수 교수 등이 즉석에서 의기투합해 금사모를 만들었다.”

    금산의 아름다운 자연풍광과 푸근한 시골인심에 반해 자발적으로 금산 팬이 된 금사모 사람들은 지난 3년간 금산을 위해 많은 일을 벌였다. 금산군청 기획정보실 박동완 계장은 그 대표적 예로 드라마 ‘상도’ 세트장 유치와 2000년 서울에서 열린 아셈회의에 금산인삼주를 선보인 것을 꼽았다.

    “인삼거래를 중심축으로 한 드라마 세트장 유치 아이디어도 금사모에서 나왔다. 뿐만 아니라 유치에 성공하기까지 무슨 비밀결사처럼 움직이며 정보를 제공하고 유치방법도 귀띔했다. 덕분에 불과 1년 사이에 금산인삼시장의 전체 매출액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금사모의 정보와 네트워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어떤 회원이 무슨 도움을 주었는지 박계장조차 파악하지 못할 만큼 금사모 회원들은 조직적이고 열성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금사모가 군청 공무원뿐 아니라 주민들로부터도 전폭적 신뢰를 받게 된 데는 회원 모두가 금산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금사모 사람들은 마음의 고향인 금산을 ‘환경보존이 잘되어 있으면서 풍족하게 사는 고장’으로 만드는 것이 꿈이다. 무분별한 개발의 폐해가 비껴간 덕분에 자연환경과 경관이 좋은 시골마을들은 예외없이 가난하다.

    자칭 금사모의 ‘골수분자’이자 모임의 산파역을 맡은 이언오 상무는 “금산이 자연보존과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 지역개발의 성공적 모델 역할을 하기 바란다. 어디든 살기 좋은 곳이면 사람들이 모여들게 돼있다. 좋은 사람들이 스스로 모여드는 농촌마을, 그곳이 바로 천국일 것”이라고 말했다.

    금사모 회원들의 면면은 매우 다양하다. 장관, 정부부처 공무원, 사업가, 타 지역 공무원, 금융계 인사, 벤처 사장, 방송사 간부에 실직자도 있다. 회원수는 500여 명을 헤아린다. 이중 ‘골수분자’가 10여 명, 핵심멤버는 40~50명 정도다. 회칙, 회비, 회장이 따로 없는 모임이라 정확한 회원 수를 추산해내기가 쉽지 않다. 이언오 상무는 “스스로 금사모 소속이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회원이 된다”고 설명했다.

    전직 장관부터 ‘엽기동장’까지

    금사모 사람들 중에는 서울대 미술대학 김병종 교수, 한국야생화연구소 김태정 박사, 태평양화학 이우영 사장,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 서울대 생물학과 최재천 교수, 숙대 문화관광학과 홍사종 교수 등 우리 사회에서 내로라하는 쟁쟁한 지식인이 여럿 포함돼 있다. 따로 회원가입 절차가 없는 탓에 금사모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사연 또한 회원들 직업만큼이나 각양각색이다.

    그중 한 사람이 1기 벤처농업대학 강사 35명 중 학생들로부터 ‘최우수강사’로 뽑힌 콤비마케팅 김광호 연구원장이다. 학생들에게 ‘골프마케팅과 농업’을 강의한 그는 지난해 초 지하철에서 우연히 이언오 상무를 만나면서 금사모와 인연을 맺게 됐다.

    “당시 마케팅 관련 책을 보고 있었는데 옆에 앉은 이가 자꾸 기웃거리기에 ‘관심 있으면 보라’고 책을 주었다. 그때 다음에 찾아뵙겠다며 명함을 내민 사람이 바로 김원장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광주에서 보험사 영업부장으로 일하다 외환위기로 명예퇴직한 뒤, 뭘 먹고살까 고민하다 접대로 이력난 골프에 생각이 미쳐 골프마케팅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벤처농업대학 강의를 부탁하게 됐다.” 이언오 상무의 설명이다.

    김태정 박사도 벤처농업대학에서 강의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금사모와 인연을 맺은 경우다. 김박사는 “금산은 4계절이 다 아름답다. 봄 풍경은 잊었던 옛 고향의 정취를 듬뿍 풍기며 어머니 품 속 같은 아늑함으로 다가온다. 여름에는 병풍처럼 둘러쳐진 기암절벽을 끼고 굽이쳐 흐르는 맑고 아름다운 금강에 쉬리, 소가리떼가 무리 지어 노닐고, 가을에는 탐스럽게 영그는 인삼의 붉은 열매가 발길을 잡아끈다. 겨울에는 겹겹의 산기슭에 소복이 쌓인 흰눈이 보는 이의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고 금산예찬론을 폈다.

    금사모 사람들 중 빼놓을 수 없는 이가 바로 ‘엽기동장’으로 불리는 서울 양재2동 김만수 동장이다. 모임 사람 중 유일하게 자신의 명함에 ‘금사모 회원’이라 새기고 다닌다. 그는 금사모 사람이 되기 전 금산에서 열린 하프마라톤에 출전한 적이 있다. “동강 살리기가 뜻대로 안돼 아쉬워하던 차에 마라톤을 하면서 본 금산의 금강과 적벽강, 천변 풍경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후 동강에 쏟던 애정을 금산으로 옮겨보자고 마음먹었다.”

    그가 명함에까지 금사모의 이름을 집어넣은 까닭은 그때 받은 첫인상과 다짐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공무원으로 조직생활 30년 간 느꼈던 답답함을 금사모를 통해 푼다는 김동장은 금산에서 벌이는 축제나 행사 대부분을 벤치마킹해 양재2동 이벤트로 ‘재활용’하는 순발력을 발휘하고 있다.

    “공무원 조직의 생리상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별난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공무원은 5급 승진시험 때부터 변화가 오기 시작한다. 고위직과 하위직 사이에 낀 과도기이자 ‘미래’를 결정해야 할 시기다. 그때 나는 수직상승에의 욕심을 버렸다. 수평으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싶었는데 그즈음 이언오 상무를 만나 금사모 얘기를 듣고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받았다.”

    김동장 부인은 최근 금사모의 여성모임 ‘언니파’의 ‘대장’으로 추대됐다. 금사모 모임이 있는 날이면 가족 또는 부부가 함께 금산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은데 부인들 사이의 호칭이 고민이었다. “동장님 사모님, 상무님 사모님 하는 식은 듣기에도 거북하고 모임 성격과도 맞지 않아 그냥 부인 이름 뒤에 나이 불문하고 무조건 언니라는 호칭을 붙이기로 했다. 아마 금사모 ‘언니’들 중 우리 집사람이 나이가 많아 대장이 된 것 같다.” 김동장의 설명이다.

    금산군청에 들어서면 층마다 복도에 김병종 교수의 그림이 걸려있다. 김교수는 “사람 사이의 정이 무너지고 배신이 난무하는 세상에 금산군청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감싸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고 어느 글에서 고백한 적이 있다. 금산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의 고장 금산까지 사랑하게 됐다는 것이다.

    금사모는 시작이 요란하거나 거창하지 않았던 것처럼 작고 사소한 것들을 나누고 아이디어를 내는 등의 일부터 꾸준히 실천해오고 있다. 금산지역 농산물 구입하기, 축제 참가하기, 무궁화 심기, 복지시설 방문, 농산물 전시회 등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한국벤처농업대학은 금산에 적을 두고 있지만 전국 농민의 희망이 되고 있다. 벤처농업대학은 금사모 사람들이 “농민에게 벤처농업과 마케팅 개념을 심어주고 농산물 수입개방화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자”는 취지에서 발 벗고 뛴 끝에 맺은 귀한 결실이다.

    ‘지식 나누기’가 ‘정 나누기’로

    벤처농업대학 개교의 산파 역할을 한 금사모 사람은 삼성경제연구소 민승규 박사다. 농업경제 발전에 큰 관심을 가진 그는 ‘우리나라가 잘되고 농촌이 활기차게 발전하려면 좋은 모델이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던 중 금산군청 박범인 과장을 만나 벤처농업대학 설립의 꿈을 키우게 됐다. “일 관계로 공무원을 많이 만나고 다녔지만 대부분 변화를 싫어했다. 모범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도 거부하는 공무원이 많은데 박과장은 달랐다. 이대로 가면 우리 농촌이 다 몰락한다며 ‘어떤 에너지를 집결해야 산다, 지역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며 적극적이었다. 세상에 이런 공무원도 다 있구나 하고 감동받았다.”

    금사모는 금산에만 국한하지 않고 우리나라 전체를 ‘아름다운 사회’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금사모 사람들이 희망하는 아름다운 사회란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사회다. 민박사는 “사회가 개방화, 온라인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이익을 보는 계층이 생겼다. 반면 가장 큰 손해를 보는 쪽이 농촌이고 농민이다. 이익을 보는 계층이 가진 걸 손해 보는 계층과 나눌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런 시스템이 안되어 있다. 금사모의 활동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나눔’에 있다”고 밝혔다.

    벤처농업대학은 지난 4월 1년 과정의 1기 졸업생 27명을 배출했다. 1기 87명 중 무려 60명의 농민 학생이 유급을 당했다. 졸업논문 대신 벤처사업계획서를 제출하도록 되어있는 대학규칙을 지키지 못했거나 까다로운 심사조건을 통과하지 못한 때문이다. 1년 동안 배우고 무장한 경영마인드, 벤처정신으로 농민 스스로 사업을 구상하고 ‘부농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단련시키는 것이 벤처농업대학 설립 목적이자 강사로 나선 금사모 사람들 뜻이다.

    비록 정규대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교정과 교실 하나 없이 금산군 제원면에 위치한 폐교를 군청으로부터 무상 으로 빌려 쓰고 있는 형편이지만, 우리나라 ‘벤처사업가 1호’이자 ‘대부’로 불리는 미래산업 정문술 전 사장이 학장을 맡고 있다. 전 농림부장관 김성훈 교수가 명예학장이다.

    “실리콘밸리도 창고에서 시작됐다”며 의욕적으로 벤처농업대학 설립을 준비한 민승규 박사는 요즘 자신도 미처 상상하지 못한 결과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강의를 듣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농민들의 열성도 그렇지만, 강의를 부탁 받고 마지못해 강단에 선 사람들이 금산에 푹 빠져 금사모가 된 과정이 더욱 신기하기 때문이다. “벤처농업대학 강사는 다들 사회 각 분야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굳힌 지식인이다.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금산에 내려와 사람 사는 정과 보람을 느끼게 됐고 오히려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당신이 가진 지식을 농민에게 조금만 나누어달라”며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는데 이제는 자청해 강의하고 싶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 이제 느긋하게 강사를 선별할 수 있어 걱정을 덜었다. 1기 강사 35명 대부분이 금사모 사람이 됐다.”

    벤처농업대학에서 ‘지식기반 정보화 사회에서의 농산물을 위한 특허와 브랜드 전략’을 강의한 나래특허법률사무소 박해완 이사는 “80명이 넘는 농민들이 눈을 반짝이며 강의를 듣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농촌현실이 얼마나 어려우면 저럴까 싶어 안쓰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해보려는 그분들의 열의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강의 후 금사모 사람이 된 박이사는 이제 금산에서 행사가 벌어지면 발벗고 나서는 ‘열성분자’가 됐다.

    민박사는 “21세기는 돈이나 일회성 봉사활동 등 몸으로 때우기식 농촌자원봉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가진 지식을 나눠주는 지식봉사가 활성화돼야 한다. 농촌사람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경영마인드와 벤처정신을 길러주어야 한다. 이게 바로 우리 농촌을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벤처농업대학의 개교는 금사모와 지역 주민들 간의 화합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처음엔 ‘저렇게 유명하고 바쁜 사람들이 왜 이런 시골구석까지 내려와서 휘젓고 다니냐’며 곱지 않은 눈초리를 보내던 마을주민들이 이제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이들을 반기게 된 것이다. 주민들은 벤처농업대학 교정에서 열린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에 감동해 금산 내 사회복지시설 향림원을 찾아 나눔의 기쁨을 직접 실천하기도 했다. 금사모의 나눔 정신이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민박사는 “한국사회는 실정법이 있지만 이를 안 지키고 적당히 봐주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정서법’이란 것이 지배하고 있다는 얘긴데 이게 무섭다. 한번 찍히면 망한다. 그런데 농촌지역에는 그보다 더 무서운 ‘떼법’이 있다. 농민들이 떼지어 들고일어나면 방법이 없다. 아직도 시골은 도시나 도시인에 대한 피해의식이 많아 배타적이며 특유의 지역정서가 강하다. 특히 금산은 낙후된 지역으로 오랫동안 소외돼 있어 금사모 사람들이 금산에 쏟는 애정을 주민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는다.

    “농민들 일손을 돕기 위해 금사모에서 신정배 따기 행사를 벌인 적이 있다. 전국 각지에서 회원들이 가족을 이끌고 와 참석했다. 농가에서 배를 따며 봉사하고, 집에 갈 때는 그 배를 사는 사소하고 작은 일들이야말로 금사모가 정말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다.”

    금산에서 출발한 벤처농업대학은 지역색 타파에도 일조하고 있다. 폐교된 초등학교(구 금강초등학교)에서 강의가 열리는 날이면 전국 각지에서 농민들이 타고 온 1t 트럭들이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채 운동장에 서있다. 강원·경남·충청·경북 등 전국의 차 번호판이 집결하는 이곳에서 지역색으로 패거리를 나누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힘든 농업에 종사한다는 동병상련과 끈끈한 유대감이 있을 뿐이다.

    스타 벤처농업인 잇따라 배출

    함평농업기술센터 이순영 기술보급과장은 벤처농업대학에서 멋진 강의로 인기를 끌어 이틀 연속 강단에 선 사람이다. 그 대가로 두 배의 강의료를 받은 그는 “강의료를 종잣돈삼아 함사모(함평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를 만들겠다”고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벤처농업대학은 ‘스타 벤처농업인’을 여러 명 키워냈고, 그들에게 성공의 결실을 안겨주었다. 매실농축액·매실장아찌·매실주 등 다양한 매실식품을 개발해 연간 수십억원의 판매수입을 올리는 청매실농원(대표 홍쌍리), 토종꿀 하나로 오지마을을 부자마을로 변모시킨 강릉 부연동 15농가, 새를 사육하여 학교·동물학습장·음식점 등에 판매해 연간 3억원 이상의 고수익을 올리고 있는 경남 통영관상조류농장(대표 설재홍), 바이오 기술과 전통적인 종묘생산 기술을 결합해 고품질·고부가가치의 호접란 종묘를 개발중인 오키드바이오텍(대표 빈철구), 도라지분말과 농축액·한방차 등 도라지 가공식품을 개발해 해외수출 등으로 연간 수십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주)장생도라지(대표 이영춘), 인삼초콜릿 등을 개발해 상품화에 성공한 본정초콜릿(대표 이종태) 등이 그 대표주자들이다.

    회사 혹은 농장 대표를 맡고 있는 농업인들은 벤처농업대학이 생기기 전 민승규 박사가 운영하는 사이버벤처농업포럼 회원으로 참여해오다 벤처농업대학 개교 후 학생까지 된 열혈 벤처농업CEO들이다. 벤처농업대학에서 정보를 나누고 서로의 노하우와 기술을 결합시켜 새로운 사업구상을 펼치는 데도 적극적이다. 이들의 열의에 금사모는 측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발렌타인데이’와 ‘초콜릿’ 대신 칠월칠석을 ‘견우직녀의 날’로 정해 아름다운 우리 농산물을 선물로 주고받자는 이벤트를 매해 열고 있으며 국내 최초의 농산물전시회인 ‘벤처농업과 벤처문화의 만남전’을 열어 우리 농산물 알리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농촌 살리기와 금산 사랑에 힘을 보태고 있는 또 한 명의 열성 회원이 삼성경제연구소 강신겸 박사다. 그는 녹색관광, 생태관광 마을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전국적으로 6개의 농촌마을을 돕고 있다. 금산에 대해서도 애정어린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금산의 풍광은 사람을 한번에 황홀경에 빠뜨리는 절경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산모퉁이, 강 언저리를 가든 다리 펴고 앉고 싶게 만드는 따뜻함과 아련한 정취가 있다. 봄볕 아래 벚꽃, 조팝꽃이 흐드러진 봄가리골과 산안리의 골짜기가 그렇고, 봄바람에 반짝이는 어재리와 적벽강의 금강 물비늘이 그렇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주민이나 공무원들에게서 천혜의 자연경관을 살리며 마을을 발전시키려는 비전과 열기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강박사의 바람은 ‘금산’이라는 상품과 브랜드를 만들고 그 가치를 지역주민과 외지인이 함께 나누는 일이다. “금산의 브랜드 가치는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함께하는 소박하고 건강한 삶에 있다. 이런 장점을 가진 금산을 상품으로 인식해 적극적으로 세일즈해야 한다. 금산의 매력을 널리 알려야 하는 것이다. 골짜기마다 들어앉은 때묻지 않은 농촌마을은 그 자체가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어느 곳이든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가 있고 청정 농산물이 있다. 사람이 살아온 얘깃거리가 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금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그 풍요로움을 체험케 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금산이 팔아야 할 것은 인삼만이 아니다.”

    산골짜기 안에 살포시 들어앉은 산안리 주변에는 약 100만평의 산벚꽃 자생군락지가 있어 매년 한 차례씩 산벚꽃 축제를 연다. 강박사는 그러한 축제가 일회성 행사로 그치고 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방자치 시대가 본격 개막된 지 6년. 그동안 각 지방자치단체는 지역발전이라는 명분으로 대규모 산업단지 유치와 공단·관광지·택지 개발 등으로 우리 농촌을 결과적으로 피폐화시킨 측면이 없지 않다. 다행히 금산은 환경과 생명, 문화라는 트렌드를 찾아 지역발전의 새로운 틀을 만들어왔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1000개의 자연공원 가꾸기’와 ‘숲 가꾸기’로 금산의 푸르름은 나날이 그 빛을 더해하고 있으며, 문화회관이 세워지고 철마다 다양한 축제가 열리면서 지역사회도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금사모는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금산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아름다운 마을을 가꿔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금사모 사람들에게 금산은 ‘생명의 고향이자 미래의 땅’이다. 금산 사람들이 넉넉한 인심과 잘 가꾸어진 자연 환경 속에서 높은 삶의 질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이들이 이루고 싶은 꿈이다. 도농간 생활격차가 심각함을 더해가고 있는 요즘, 이윤이 아닌 나눔, 강요가 아닌 배려, 지도가 아닌 참여를 강조하는 금사모의 남다른 비전과 활약상은 진정 ‘아름다운 모델’이 아닐 수 없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